책을 읽으면서 일본식 년도 표기가 너무 불편했다. 일본은 아직도 일왕이 바뀔 때마다 연도를 바꿔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에 일왕이 바뀌었기에 2018년은 헤이세이 30년이지만, 2019년은 레이와 1년, 2020년은 레이와 2년이다. 사건을 추리해가는 화자가 일본 사람이다보니 '1932년 7월'이 아닌 '쇼와 7년'이라고 쓰여있는 표기법이 낯설었다. - 일본에서 보통 연호는 일왕의 이름과 별개로 중국 고전에서 차용되어 지었는데 '레이와'는 일본 만요슈에서 따왔다고 한다.화자는 크게 2명이다. 동양계 미국인 조슈아 칼린과 일본 기자 오자키 호츠미. 초반에 조슈아 칼린이 동아시아 3국 중 어느 나라 사람인지 크게 고민했었다. 초반에 조슈아는 미국 사람은 물론 일본 사람이나 중국 사람하고도 대화를 나누었고, 대화를 쓸 때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중에 어떤 것일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상하이에서는 4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 '살아남기'에는 제일 적합했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무언가를 속단할 수는 없었다. 조슈아 칼린은 살아남아 복수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아마 4개국어를 모두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예상한다.소설을 읽으면서 식민국가에서 피지배계층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피비린대가 물씬 나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가해자가 누구이건 '피해사실'은 분명히 존재했다. 가해자는 전쟁 아니면 미친 군국주의라는 시대적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 가해자가 선택한 결과 때문에 일어난 피해라는 것이다. 소설의 자세한 내용을 쓸 수는 없지만, 모든 사건은 가해자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