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구판절판


그날 이후로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외로워졌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됐을까? 아마도 "너를 안다, 정말 잘 안다, 네가 무슨 속셈으로 그러는지 다 알고 있다, 네가 틀렸다는 것을 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밤들을 여러 번 보낸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의 속마음을 안다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하물며 누군가의 인생이 정의로운지 비겁한지, 성공인지 실패인지 말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했다.
[그저 말할 수 있다면,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45쪽

달리는 말에 채찍을 때리는 종족과 같은 하늘에서 살 수 없는 종족이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를 믿는 자들이다. 어떻게든 말은 달리겠지만, 피그말리온 효과를 믿는 사람들은 당근을 줄 떄 말이 더 잘 달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퇴사 조치를 간신히 면했으며 감봉 조치를 가까스로 피한 상습적 지각사원이라는 딱지는 결국 그 사람을 상습적 지각사원으로 만들 뿐이라는 게 피그말리온 효과의 교훈이다. 프리미어 리그에 가면 박지성은 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그를 세계적인 축구 선수로 볼 테니까.
[이 우주를 도와주는 방법]-100~101쪽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는 헤드폰을 끼고 배낭을 맨 채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가던 노인을 본 일이 있었다. 잘 타더라. 리스본에서는 젊은 연인들 옆에서 혼자 앉아서 우아하게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백발의 할머니도 봤다. 오래 산 사람과 그보다 덜 산 사람이 서로 뒤엉켜 살아가되 오래 산 사람은 덜 산 사람처럼 호기심이, 덜 산 사람은 오래 산 사람처럼 사려 깊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음, 그렇다면 나는 더욱더 아저씨들을 피해 젊은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다녀야만 한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나, 안 되나. 말이 되든 안 되든, 아무튼.
[롤러블레이드 할아버지, 에스프레소 할머니]-128쪽

두 번째로 달린다면 아마도 고통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경험할 것이다. 그걸 아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고통에게 끌려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더 달리면 그 정도로 집중해야만 하는 고통은 많지 않다는 걸, 사실 고통이란 내가 얼마나 많이 달렸는가를 알려 주는 신호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다. 고통은 우리의 자원을 완전히 점유하고서는 모든 게 소진될 때까지 빨아들인다. 고통이 생기면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해진다.
[한번 더 읽기를 바라며 쓰는 글]-143쪽

대개 어른들이 그런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일 위주로 생활하면 인생에서 후회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늙을수록 시간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해야만 한다. 얼마든지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시간이 갈 수록 사귈 수 있는 여자친구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게 돼 있다. 비슷하게 신입생 때 대학생이 어떻게 당구장에 다니느냐는 소리를 선배에게 들은 적이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하면 대학생 때가 아니면 언제 당구장에 다닌단 말이냐? 한두 번 직장 동료들과 당구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이건 국제대회도 아니고 다들 가만히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당구공의 움직임만 보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입이 아프도록 떠들어 대며 당구를 쳐 본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평일 오후 4시의 탁구 시합]-166쪽

왜 20대에는 제대로 산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모든 게 갑자기 부질없어 보이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20대에는 결과는 없고 원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고 생각하고, 그때 제대로 산다고 본다. 우리가 자꾸만 어떤 결과를 원하는 건 그 때문이다. (중략) 자기계발서에 써 놓은 것처럼,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원하지 않고 20대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럼에도 20대가 끝날 무렵에 우리 대부분은 알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지질하며, 자주 남들에게 무시당하며, 돌아보면 사랑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을.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모든 게 다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결과를 얻는 것일까? 그러니 20대 후반이 되면 우리는 모두 샐리처럼 울 수밖에 없다. 그건 아마도 20대란 씨 뿌리는 시기이지 거두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청춘이라는 단어에 '봄'의 뜻이 들어가는 건 그 때문이겠지. 20대에 우리가 원할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원인뿐이니까.
[어쨌든 우주도 나를 돕겠지]-204~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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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행복한 여자가 결혼해도 행복하다
엘리자베스 캔터 지음, 박미경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7월
절판


엘리너는 메리앤보다 덜 아파하지만 그녀가 덜 사랑했기 때문은 아니다. 고통에 직면해서 "더 굳건하게 견디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낭만적이지 않은 여주인공들은 고뇌 속에 빠져들지 않는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기 때문에 위엄을 갖출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은 덜 비참하고 덜 우울하다. 덜 사랑해서 그런 게 결코 아니다.-83쪽

오스틴의 너그러운 '솔직함'은 18세기 낙관주의나 야망과 같은 것이다. 그녀는 남자나 여자 혹은 사랑에 대해 환상을 품지 않는다. 또 환멸을 느끼거나 냉소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여주인공들은 너그러운 '솔직함'을 발휘하여 모든 남자들을 싸잡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런 실수는 절대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남자와 맺어지길 원한다면, 개개인이 실제로 어떠한 사람인지 볼 줄 알아야 한다.-126쪽

그들이 남자를 존중한 이유는 자신들도 단점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는 너그러운 마음에서 비롯된다. (중략)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은 주변 남자들을 함께 애쓰는 사람이자 함께 고통을 겪는 사람으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단점이 있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존중한다. 결국 제인 오스틴이 '자기 이해'라고 부르는 치유책이 해답이다.-128~129쪽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이제 완벽한 균형을 갖추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이룬 완벽한 균형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다. 또 미적지근한 중간 상태가 아니라 일종의 역동적 균형이다. 각자 상대에게 자극을 받고 온갖 갈등을 겪으며 이뤄낸 것이다. 별 볼일 없는 조연으로 전락시킬 편견과 불합리를 떨쳐내고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주인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들의 사랑에 이토록 엄청난 힘이 실리는 이유는 바로 갈등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도 여느 연인들처럼 연애 초기에 맛보는 들뜬 기분을 만끽한다. (중략) 하지만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연애 테마는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상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확실히 삶을 바꿔놓는다. 하지만 이때 일어나는 변화는 낭만주의에서 말하는 순간적 해방과 진정성이라는 헛된 약속과는 다르다.-176쪽

당신과 어떤 남자 사이에 일어난 특별한 불꽃이 단지 그가 관계에 가져오는 것과 당신이 관계에 가져오는 것을 합한 거라니 얼핏 시시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 식의 사랑은 그렇다. 그것은 상대방을 제대로 알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지닌 특별함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당신이 지닌 특별함을 그에게 보여주고 축하받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점이다. 그것이 영원한 행복에 도달하지 못할 운명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237쪽

오스틴이 말하는 '원칙'은 인간에게 새겨진 바른 행동의 자명한 규칙을 말한다. 좋은 원칙을 지닌 남자는 정직해야 하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해야 하며, 공정한 몫 이상을 취하지 않고, 타인의 권리와 기분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245쪽

현재의 훅업 현상이 펼쳐갈 적자생존 방식의 무한 경쟁 시대에서는(오스틴의 여주인공들이 연민과 존경을 받아 마땅한 '동료 인간'으로 대하던 대상인) 이성의 구성원들을 적으로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우리의 약점을 노리고,우리 역시 그들의 약점을 노린다. 그들이 헨리 크로포드처럼 일부러 우리 마음을 갖고 놀지는 않더라도(그리고 우리가 레이디 수전처럼 남자의 성욕을 자극해 놓고 일부러 무시하지는 않더라도), 여자는 계속해서 매력을 동원해 남자를 비참하게 느끼도록 자극할 것이고, 남자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수작을 걸고 화려한 깃털을 보여준 다음 자신들이 일으킨 혼란을 알지도 못한 채 유유히 떠나갈 것이다.-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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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0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스틴'을 바탕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잘 그려서 보여주는 책인 듯하네요.
여자도 남자도
모두 아름다운 사랑을 일구며 살아간다면
참말 아름답고 즐겁지요.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 - 애인, 아내, 엄마딸 그리고 나의 이야기
김진희 지음 / 이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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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갑작스레 내 등을 '탁'하고 치고 간 두려움에 떠밀려 그제야 남편이란 존재를 인식한 것이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도 완벽하게 분리될 수 있는, 원래부터 무척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도 새삼 떠올랐다. 외출하지 않는 날엥ㄴ 샤워하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며 웃다가 울다가 심각했닥 ㅏ다시 소란스러워지며 감정의 끝과 끝을 바삐 오가는 내 모습도 그에게는 낯선 것도 모자라 외계인처럼 보이리라는 것도 알 것 같았다. 그 즈음이나 혹은 그 이전에 이미 나 역시 남편에게는 한집에 살고 있는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낯선 여자가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다. 가방을 싸들고 떠나고 싶었던 충동이 나에게만 일었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36~37쪽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여자들은 희생하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진다. 양손에 글러브를 끼고 누가 던지는 공이건 일단 받고 보는 것이다. 쏟아지는 공을 반복해서 받다 보면 점점 내가 왜 공을 받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자신을 향해 수없이 날아드는 공의 포화 속에 있는 순간 바로 글러브를 벗어야 한다. 그리고 글러브를 벗고 힘을 그러모아 멋지게 한 방 되던질 것인지, 이대로 마운드를 떠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92쪽

내 아이가 뒤처질까 봐 미리 대비하도록 훈련시키는 것도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진짜 돌아갈 마음의 고향은 어디일지 생각하면 그런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세계가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언제든 그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순수한 열정과 기쁨을 돌이켜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동안 우리는 진정 집으로 돌아온, 길을 잃었던 어른이 된다.-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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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5월
절판


"우리는 일종의 계급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장은 특권에 대한 비판이고, 엘리트 비판입니다."
"원래 좌익은 사회의 엘리트잖아요. 예전의 전공투 운동도 사실상 엘리트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대학생은 다들 특권계급이었잖아요. 차별이다 뭐다, 우리한테 따지는 노동조합도 다 엘리트예요. 그렇게 잘 사는 사람들이 없어요.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엘리트들이 재일 코리안을 비호해 온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재일특권 문제에 경각심이 없는 거고요."
여기서 '계급투쟁'이란 말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회의 비주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을 비엘리트라고 규정함으로써 특권을 가진 자들에 대한 복수를 꾀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2.회원들의 본 모습과 속마음]-60~61쪽

진실. 재특회 회원들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이다. "진실에 눈을 떴다", "진실을 알았다." 그 출처는 모두 인터넷이다. 신문/잡지/텔레비전 등에 의해 은폐되었던 진실이 인터넷의 힘으로 간신히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자명종 소리에 깨어났을 때처럼 헉하고 일어나서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일본의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이다.
(중략)
나는 재특회 회원들이 말하는 '재일 코리안'이라는 말이 무기질 기호처럼 느껴졌다. 재일 코리안이라는 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얼굴도, 표정도, 생활도, 역사도, 풍경도, 그 자세한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일본의 위기를 나타내는, 또는 모든 모순과 문제를 풀 블랙박스 같은 존재로 편의에 따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2.회원들의 본 모습과 속마음]-75~76쪽

그러나 인터넷에는 비판이나 비난 댓글을 훨씬 넘는 막대한 지지 댓글이 달렸다. 이렇게 많은 격려와 찬성은 그 뒤 재특회의 자신감과 과격화로 이어지게 된다.
"잘했다."
"재특회, 고맙다."
"재특회, 파이팅!"
"(재특회에)박수!"
지금 일본을 감도는 분위기가 여기에 반영되어 있다. 불과 10여 명의 활동이었지만, 그 배후에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재특회와 공명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조선학교를 습격한 이들의 정체는 보이지 않는다.
[3. 범죄 또는 퍼포먼스]-103~104쪽

"눈물이 나서 어쩔 줄 몰랐어요. 진짜로 감동해서 하루에 여섯 번씩 봤죠. 그 희생정신을 저는 동경했습니다. 애국심이 없으면 삶의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야마토를 보고 저는 애국자가 됐어요."
그때까지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요멘이었지만, 야마토 이야기가 나오자 열기를 띄었다. 얼굴도 제법 상기되었다. 그 나름의 애국심을 기르며 2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 겨우 도착한 곳이 인터넷이었다. 2채널 같은 게시판에서 '언론전'을 전개하고, 블로그에서 위기를 호소하며, '야마토 정신'으로 일본을 구하기 위해 일어선 것이다. 우습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책 한 권, 영화 한 편이 인생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우주전함 야마토>의 메시지가 정말로 이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멘은 진지하게 쿠데타를 하러 나섰다. 인터넷을 통해 선전하고, 장소를 빌려 '쿠데타 설명회'를 개최하며, 때로는 재특회 등의 시위를 경호하기도 했다.
[4. 반재일 조직의 뿌리]-182쪽

그보다 내 관심을 끈 것은 그가 집요하게 나를 조선인이라고 우기는 것이었다. 사키자키만이 아니었다. 많은 재특회 회원들이 "너는 국적이 어디냐?", "사실은 조선인이지?", "언제 귀화했냐?"라고 몇 번이나 물었다. 그들에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조선인인 것이다. 조선인이나 재일 코리안은 일종의 기호다. 그들은 그 기호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고, 조롱함으로써 우월감을 가지게 된다.
[5. 재일특권의 정체]-197~198쪽

"우리한테 없는 것을 그 녀석들(재일 코리안)은 다 갖고 있는 것 같았어요."
지켜야 할 지역, 지켜야 할 가족, 지켜야 할 학교, 오래 사귄 벗, 재특회와 대치하는 재일 코리안들의 모습에서 그런 것을 발견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민 단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역 사람들을 위해 나설 수 있을까? 가족과 어깨동무하고 적에게 맞설 수 있을까? 아니, 출신 초등학교를 위해서 달려갈 수 있을까? 모두 '노'였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동지 말고는 연대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 싸움은 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특회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들이 증오하는 특권의 정체는 의외로 그런 부분이 아닐까? 즉, 재일 코리안에게 있는 긴밀한 인간관계와 강렬한 지역 의식, 지금의 일본 사회가 잃어버린 것들 말이다. 개인으로 분열되어 인터넷으로밖에 단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눈부신 '특권'으로 보였던 것이 아닐까?
[6. 떠나가는 어른들]-227쪽

하리야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재특회 특유의 경박한 발언과 현실 감각의 상실이다.
"인터넷에서 그대로 현실 사회로 나왔을 뿐이에요."
그제야 그는 불량배다운 험악한 표정을 보였다.
"인터넷과 현실의 구분이 안 되는 거죠. 그들이 금방이라도 폭주할 것 같은 이유는 일상생활에서의 물리적 충돌을 경험하지도 않고 인터넷과 같은 감각으로 대처하려고 들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인터넷과 현실은 연속적이니까요."
키보드를 연타하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감각을 그대로 길 위에가져온다. 하리야가 말한 이 연속성 때문에, 집회 때 반대하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욕설을 퍼붓는 집단 린치도 블로그에 '악플'을 다는 정도의 의미밖에 가지지 않는다. "죽여 버려."라는 말을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하리야는 말했다.
[6. 떠나가는 어른들]-255쪽

"이런 단체에 기부하는 사람이 진짜 있을까?", "뒤에 거대한 스폰서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취재를 계속하다 보니 '활동에 참가하지는 못하지만 활동비만은 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재특회의 재정에 협력하고 있는 것은 이름 없는 일반인들이었다.
[7. 리더의 표변과 허실]-267쪽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반후지TV의 흐름을 만든 것이 재특회가 아니었다는 데 있다. 재특회는 그저 흐름에 편승했을 뿐이다. 후지 TV와 한류 프로그램에 대한 공격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터넷에 의해 촉발된 '일반 시민'들이었다. 그 점을 강조해 두어야겠다. 나는 이런 점에서 재특회라는 존재를 만든 오늘날 일본의 '토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8. 늘어나는 표적]-310~311쪽

김치찌개가 인기 랭킹 1위로 소개된 것이 어째서 편향인가? 그런 하찮은 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축제다. '후지 TV 반대', '한류 반대'의 이름을 빌린 축제. 아무리 우아한 시위였다 하더라도, 차별적인 언동이 적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상에 일반적으로 떠다니는 희미한 '반한국', '반북한'의 목소리를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한 것뿐이 아닌가?
나는 거기서 재특회의 배경을 본 것 같았다. 후지 TV 반대 시위 참가자들은 돌출된 언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 도착점은 재특회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재특회처럼 과격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낳고 있는 것은 이렇게 세련된 사람들의 어딘가 우울한 분노다. 재특회의 배후에 일반 시민이 대량으로 줄지어 서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8. 늘어나는 표적]-314쪽

실제로 재특회 같은 보수 조직에는 어딘가 유사 가족과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9. 재특회에 들어가는 이유]-324쪽

사회운동은 이론보다 기세를 통해 확산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세는 '지키기'보다는 '바꾸기'를 원하는 쪽에 붙기 마련이다. 일찍이 학생운동이 기세를 떨쳤던 것은 무엇보다도 체제를 부수자는 데서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편 지금의 좌익은 '지키기'만 할 뿐인 운동이다. 평화를 지켜라, 인권을 지켜라, 헌법을 지켜라, 우리 직장을 지켜라. 재특회 같은 신흥 보수 세력은 그것들을 모두 의심하고 '쳐부숴라.'라고 호소한다. 좌익이 보수가 되고 보수가 혁신이 된 '역전 현상'이 생긴 것이다.
[9. 재특회에 들어가는 이유]-348쪽

주간지 기자로 여러 사건들을 쫓으며 세상에 왠지 여유가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까지는 이데올로기와 입장의 차이를 초월해 애매모호한 형태로나마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내일이 오늘보다 반드시 나아질 거라는 '시간의 약속'이었다. 달력을 한 장씩 넘기면서 풍요로움을 조금씩 획득해 온 것이 전후의 일본이었다. 좀 낯간지럽지만, 희망이나 미래라는 말을 입에 담기만 하면 우리는 어떻게든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끝났다. (중략) 계약직이나 하청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취급을 받지 못한다. 많은 기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담당/관리하는 부서는 인사부가 아니라 기자재를 다루는 부서다. (중략)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런 상황을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소속이 없는 사람들은 아이덴티티를 찾아 나선다. 그중 일부가 의지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일본인'이라는 불변의 '소속감'이었다. 이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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