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소멸 -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산다는 것
박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휴대전화는 그냥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휴대전화는 '그것을 통해서 응답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한다. 그것은 테크놀로지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의무이고 정언명령이다.
-p.47. 1장 휴대전화-소통 혹은 단절의 오브제

정보화된 환경은 노인들을 고립시킨다. 정보화된 사회가 유발하는 노인들의 소외감을 젊은 세대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생활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정보화된 환경에 적응한 사람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나아가 그런 시스템이 합리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특별히 깊은 관심을 쏟지 않는 한 노인들의 소외감과 낭패감, 불합리함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의 노인들은 다른 세대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사회가 정보화되기 이전에 젊었고, 정보화된 이후에 늙었다. 말하자면 중간에 '걸친 세대'다. 그들의 소외감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p 68. 1장 휴대전화-소통 혹은 단절의 오브제

아날로그 기기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디지털 기기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 기술 수준이 인간의 감각을 배신하지는 않았다. 기기가 고장이 나면 사용자들이 스스로 고쳐 쓰는 경우도 많았다. 작동 과정과 원리가 관심을 기울이면 보통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기기를 사용하는 과정은 기기가 포함하고 있는 물리적/과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날로그 기기는 사용자의 이해와 통제를 허용한다. 그래서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명실공히 '내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중략)
그러나 첨단 디지털 기기는 다르다. 디지털 기기들은 '내 것'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기기들은 고도로 추상적인 개념에 기초해 있다. 일반인이 작동 과정과 원리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고장이 나도 손수 고칠 수 없다. 기술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첨단 디지털 기기들은 소비할 권리만 부여할 뿐 사용자에게 지적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p.81. 2장 디지털-편리함의 잔혹한 이면

대중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보의 연결'을 넘어 '몸의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몸의 연대는 친밀함과 지속성을 바탕으로 강한 유대감을 낳는다. 그것은 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는 기반이자, '약한 연결'과 '약한 연대'를 광범위하게 결집시키는 기반이다. 몸의 연대는 친밀함과 지속성을 낳고, 그것이 정치적 탄압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대중운동에서 군중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러나 몸의 연대로 이루어진 '동지'가 없으면, '군중' 역시 정치적 파괴력이 없다.
-p.93. 2장 디지털-편리함의 잔혹한 이면

디지털 기기 조작은 '예'와 '아니오', 그리고 정해진 분류 항목 중 하나를 클릭하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디지털 기기 조작의 룰은 사용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 룰은 사용자가 순순히 따라야 할 것으로 일방적으로 강제된다. 또한 디지털은 새로운 기능,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새로운 정보에 열광하게 만든다. 그것은 '무엇을 어떻게 발명할 수 있는가'를 문제삼지, '왜 그것을 발명해야하는가'를 문제삼지 않는다.
-p.125. 2장 디지털-편리함의 잔혹한 이면

예리하면서도 유연한 사고능력은 디지털 환경으로 인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사람들은 정보 기기를 조작하느라 독서할 시간이 없다. 인쇄 매체에 대한 관심도 크게 줄었다. 정보 기기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습관은 종이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종이책도 독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진과 그림이 많아지고, 글씨가 커졌다. 어떤 주제에 대해 풍부한 논리와 근거를 동원해 깊이 있게, 자세히 해설하는 책보다는 단순히 주제를 간단히 말하는 책들이 많아졌다. 그로 인해 종이책을 읽어도 예전만큼 지력이 발전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p.133. 2장 디지털-편리함의 잔혹한 이면

그러나 상류층의 만족이 관념적이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도 관념적인 것만은 아니다. 만족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만, 고통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감내해야하는 배고픔과 질병, 육체적 고통은 현실적이다. 빈곤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일반적으로 부의 축적으로 인한 기쁨을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빈곤으로 인한 고통은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존감에 심각한 외상을 입은 빈자가 먹을 것이 남아 있더라도 죽어가거나, 자살하는 것을 흔히 본다. 이 역시 인간이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p.368. 6장 낭만없는 시대-인간적으로 산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스트 제너레이션 심리학 - 1970년생부터 1980년대 전반생까지,‘잃어버린 세대’의 마음을 읽다
구마시로 도루 지음, 지비원 옮김 / 클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농업이나 공업보다 서비스업이 산업의 중심이 된 세상임에도 서비스업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몬스터 클레이머에 대처 가능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요구한다는 것. 이 얼마나 가혹한 사회 상황인가요.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몬스터 클레이머에 따라 현대의 서비스업과 서비스 종사자의 질이 규정된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몬스터 클레이머도 견뎌낼 수 있는 사람과 사업자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도태되는 사회가 된 결과, 소비자로서도 서비스 제공자로서도 우리는 지나치게 큰 비용을 지불하고 너무 높은 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34p 1장 내가 아는 것만이 옳고 그름의 척도가 된 사회

그러므로 '패미콤이 유행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빼앗았다'기보다 '패미콤이 유행하게 된 것은 혼자 노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상황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빼앗았다'는 것이 사실에 입각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범인'으로 고발해야만 하는 것은 패미콤, 만화, 애니메이션 등이라기보다 아이들이 모여 놀 시간을 빼앗은 입시전쟁과 그러한 입시전쟁을 요구했던 여러 가지 배경인 것은 아닐까요.
-77~78p. 2장 우리는 왜, 어디에서 실패했는가

이러한 점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사회에서는 그렇게 자기애를 지나치게 충족하려는 멘털리티를 이용하려는 듯 꿈을 파는 장사나 자기실현 비즈니스가 속속 등장했습니다.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 '사람을 위하는 이상적인 일을 하고 싶다''단순한 월급쟁이로만 그치지 않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충족시켜주기는 하지만 금전적으로는 거의 보수가 없는 일, 장래성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일에 우리 세대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려들었고 걸레처럼 쥐어짜이면서 노동력과 장래성을 착취당했습니다.
-158p. 4장 취급에 주의가 필요한 물건과도 같은 자기애

만약 고독한 중년과 노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일관할 게 아니라 인간관계의 '구속'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중장기적인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데 적합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만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친구사이에 그런 관계를 만들어도 좋고 동성끼리 결혼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정말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나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될때 서로 의지할 수 있을만한 인간관계, 엄혹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안심하고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는 쪽이 나이를 먹었을 때 좀더 편히 살아갈 수 있고 마음도 든든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한창 왕성한 오늘날 '구속'이 포함된 인간관계는 젊은 세대에게는 고정되고 안정된 느낌을 주어 인기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에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구속'을 포함한 '귀찮은'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하우를 젊을 때 축적하는 것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185p. 5장 SNS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파트너십은 따뜻한 일체감을 서로 느끼고 두 사람 간의 시간/금전/심리적 이익이 커지도록 협력하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신뢰가 사라지지 않고 각자의 성장 기회를 존중하는 관계입니다.
이러한 파트너십은 상대방을 착취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로 신뢰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므로 어느 한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상대와 만나고 또 반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고 의지할 만한 파트너와의 만남은 매우 중요합니다. 멋진 외모는 보면 바로 알 수 있고 연수입도 지위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의지할 수 있는 파트너'인가는 겉보기나 지위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211p. 6장 커뮤니케이션에 자신이 없다는 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파트 한국사회 -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박인석 지음 / 현암사 / 2013년 7월
장바구니담기


단독주택은 개인이 직접 공공서비스에 접속하여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자신의 책임으로 부담해야 하는 반면에, 아파트는 개인이 공공서비스를 경비원 등을 통해 전달받기만 하는 일방향 관계에 있다. '아파트는 단독주택처럼 신경 쓸 일 없어서 편리하다'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일까? 각 개인이 공공과 직접 접속하며 공공에 대한 자신의 책무를 수행하는 일이야말로 시민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쓰레기 수거, 택배 서비스와 벌이는 실랑이, 이웃집 눈치보느라 눈삽을 들지 않을 수 없는 눈 내린 겨울 아침. 이를 단독주택의 불편함이자 단점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시민 공동체의 자산을 생성하는 소중한 삶의 양식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가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개인적인 삶터가 되는 것은 이러한 '불편함'을 모르고 살기 때문은 아닐까?
3장 단지 도시에서 우리는 일방통행 중- 53쪽

만고의 진리로 통하던 '한국은 땅이 좁다'는 주장은 주로 서울과 수도권 일부 도시에 국한된 주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도시들이 외국의 이른바 '중세 건축물들이 들어찬 아름다운 도시들'과 비슷한 인구밀도를 보인다는 사실과 함께 고밀개발은 땅이 좁은 한국의 여건이 빚어낸 불가피한 처방이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히 해야 한다.
5장 한국은 땅이 좁은가- 79~80쪽

결국 집 없는 사람들은 물론 집을 가진 사람들도 집값이 오르면 손해고 집값이 떨어지면 이익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집값 오르는 것을 은근히 반가워할까. 이는 순전히 명목뿐인 자산이 늘어나는 것을 실제 이익인 양 착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손해뿐인 일을 이익인 양 즐거워하는 사람들. 한 채뿐인 집을 팔아치울 생각이 없는 한 오르는 집값에 즐거워하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짓이다.
7장 오르는 집값에 춤추는 바보들- 110쪽

게다가 발코니 확장은 조세정의를 훼손한다. 발코니 확장으로 실제로는 40평형대 규모가 되더라도 재산세는 발코니 면적을 뺀 30평형대 아파트 만큼만 과세한다. 시민들을 본의 아닌 탈세자로 만드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발코니를 전용면적에 산입할 경우 주택 규모가 커져서 "거주자들의 세금 부담이 커지는"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세정의 자체를 부정하는 무분별한 주장이다. 공용면적인 아파트 복도, 계단실 면적도 과세하는데 개인 전용 공간이 된 발코니 면적에 이제껏 과세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대형 아파트일수록 발코니 면적이 크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문제의 질이 더욱 나쁘다.
발코니 확장은 비록 합법의 탈을 썼지만 공공공간 환경을 삭막하고 과밀하게 만드는 해악이며 주거 공간을 왜곡하는 불합리한 일이다. 또한 사회 정의를 훼손하는 부정의한 일이다. '월드 베스트' 한국 아파트 평면, '넓고 밝은 집'은 바로 이 해악과 불합리와 부정의라는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얻어진 것이다.
8장 '넓고 밝은 집'의 불편한 진실
- 138쪽

결국 아파트를 시장에서 구매자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품주택'이 아니라 공공의 복지와 주택시장의 균형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한 역사를 갖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아파트 건축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으로 아파트 건설을 시작한 나라에서는 아파트 설계에서 개인 전용공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지 않는다. 물론 이들 나라라고 해서 모든 아파트가 공공임대주택인 것은 아니다. 상품주택으로 건설되고 판매되는 아파트가 공공임대아파트보다 더 많다. 상품주택으로 판매되는 아파트는 이들 나라에서도 개인 전용공간을 중요시한다. 건축 형식에서도 한국 아파트에 비해 별다른 특징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 전용공간만을 위해 다른 가치들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는 않는다. 공공임대아파트를 통해 형성된 아파트 건축 규범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 147쪽

주택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사회에서 주거 공간 규범은 자칫 개인적인 욕구와 선호에 편중되기 쉽다. 공공임대주택은 시장에 매몰되지 않은 채 건축 형식과 공간 구조에서 공공성을 강조하고 확대해나감으로써 사회 전체의 주거 공간 규범에 공공적인 가치를 유지하는 유일하고 강력한 수단이다.
9장 아파트 평면진화, 닥치고 전용공간!- 150쪽

건설업체들이 수납공간을 충분히 만들지 않는 이유는 한국 아파트가 모델하우스를 통해 분양되기 때문이다. 복덕방을 통해 기존 아파트를 구입하거나 전셋집을 구할 때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살펴보게 된다. 따라서 실생활에서 가구 배치나 물품 수납 상태가 어떤지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건설업체가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는 수요자에게 견본주택, 즉 모델하우스를 보여준다. 모델하우스는 비록 공간 구조는 실제 아파트와 동일하다고 해도 실제 살림살이가 없는 가상 공간이다. 가구 배치나 수납 상황은 모두 연출된 것이다. 내 집이 항상 모델하우스처럼 깨끗하게 정돈되고 장식되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다들 알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공간 연출에 혹하기 마련이다.
11장 엄마를 착취해서 얻은 '넓어 보이는 집'- 167~168쪽

아파트 브랜드 현상, 아파트 벽면을 장식한 브랜드 로고가 도시를 가득 채워가는 현상을 그저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브랜드 인기순위를 집계하여 발표하는 데에만 골몰할 일이 아니다. 아파트 브랜드 현상은 한국사회가 그만큼 공간 정의에 무감각한 사회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공공공간이어야 마땅한 공간을 상표 붙여 판매하고 이를 소득수준에 따라 구입해야 하는 살벌한 사회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아파트 브랜드 시대- 187쪽

공공공간의 설계는 기존 정치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지향하는 가치를 반영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지배 이데올로기 입장에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공공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민주적인 것보다는 귀족적이고 권위적인 건축양식을 선호하고, 경제적/행정적 효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공공공간 생산 과정 역시 이를 반영할 것이다. 정부의 각종 제도와 의사결정 절차는 권위적이거나 경제적/행정적 효율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다.
23장 소란스러운 공공공간을 획득하라
- 34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장바구니담기


미네르바, 용산참사 그리고 쌍용자동차에 관한 이십대들의 반응과 지금 이 이야기의 골간은 사실상 거의 같다. 여기서도 앞서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정정당당하지 못한 도둑놈 심보'라고 부른 여타 이십대들의 논리가 그대로 반복되는 셈이다. 입사할 때 비정규직인 줄 알았으면서 나중에 가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정규직 지위를 요구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했던 바로 그 논리다.
시간강사에 대한 3호의 입장도 이와 마찬가지다. 시간강사가 '이런 대우'받는다는 건 알았을 것이고, 교수라는 지위는 '이런 대우'를 받는 시간을 지나왔기에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강사들의몇몇 요구는 일정한 선을 넘은 것이란 주장이다. 즉 '힘들다는 것 자체'가 어떤 요구로 이어져서는 안 됨을 분명히 했다. 그건 본인이 선택한 '결과'이고, 그 결과의 '무게'는 스스로가 짊어져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73~74쪽

"공부도 더 많이 한 분들도 아직 어려운데"라는 이유가 또 등장했다. 5호는 교직원(혹은 강사)와 환경미화원의 지위 차이를 분명한 판단 근거로 삼았다. 이는 '공부도 더 많이'라고 표현되었듯이 노력이 더 많은 쪽이, 즉 남들보다 시간관리를 더 잘 해온 사람이 사회적 우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을 더 가치 있게 효율적으로 잘 사용한 능력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직급의 차별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차벼르이 근거가 정당하므로, 해고당하거나 비정규직이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차별도 정당한 것이다. 이걸 뛰어넘는 요구가 나오면 이십대들은 의아해한다. 게다가 자기들 생각에는 당연히 정규직이 되어야 할 사람들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는 판인데, 어떻게 '감히 부족한 사람'이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는지 개탄하는 것이다.-76쪽

이처럼 이십대들이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다. 이는 어쩌면 그만큼 이십대의 취업 현실과 이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인생을 날로 먹으려는 게으름뱅이나 루저들이라"고 간주하며, 취업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가는 자기통제형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이십대들의 박탈감과 불안감 알이다. 이 암울한 불안감이야말로 지금의 이십대를 설명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요, 이것이 일종의 시대정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77쪽

경영학이 '보편적'학풍으로 존재한다는 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자기계발 시대가 빚은 지독한 학력위계주의 모습이 더욱 학화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경영학은 사실상 기업의 논리를 체득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개인의 사고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고정관념을 재해석하는 일이 인문사회 학문에 비해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말하자면 '스스로 해석하라!''상상력을 발휘하라!'등의 주문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180쪽

인류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인종차별을 부당하게 여겨 철폐하고... 이런 변화는 기존의 사회가 문제 많다는 걸 직시한 개인들의 노력에서 시작된 일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다만 그것이 왜 문제인지, 또 문제라면 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모를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원래의 것이 옳은 듯 착각할 뿐이다. 그러나 착각이 깨지면 그 사회는 절로 좋은 쪽으로 구성원들을 이동시킨다. 사회는 그렇게 '개인들'로 인해 변하는 것이다.-192쪽

겉으로는 동일한 출발선인 것 같아 보여도, 이렇게 여러 상황과 조건에 따라 기회는 균등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가족구조에 따라서 차이가 나며, 부모의 독서습관조차 자녀의 학업성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가정 분위기가 나빠지면 자녀의 심리가 불안정해지면서 학업성적이 하락하기도 한다. 하고자 하는 열정조차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누린 선수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했던 선수는 같은 출발선에 섰다 하더라도 결코 동등한 상태에 있는 게 아니다. 긍정이나 희망이 마음먹는 대로 생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211쪽

누가 그랬던가,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그저 사람들이 '출발선에 함께 서 있다'는 것만으로 기회 균등이라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다. 할 수 있다는 각오, 그러니까 일종의 '동기부여'도 누구나 얻을 수 있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산다"는 말이 있다. 3루에 있는 사람은 홈이 바로 눈앞이니 홈인할 수 있다는 희망을 쉽게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사람은 그런 희망을 품기조차 힘들고, 마음이 쫓겨 삼진당할 확률이 높다. 이런 상황을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희망을 품고 노력하라 말하면 될까? 희망, 그건 개인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자연스레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 사회가 진정 공정해지면 절로 희망이 부풀기 마련이다. 기회의 균등은 그럴 때 '실재'할 수 있는 것이다.-21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엔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이선배 지음 / 지식채널 / 2013년 2월
장바구니담기


크나큰 좌절을 맛보더라도, 꿈을 꿀수조차 없는 비참한 기분을 맛본다 하더라도 다음날 멀쩡하게 하루가 시작되고, 또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하다 보면 결국 새로운 길이 조금씩 보이고 어느덧 경험과 실력, 어느 정도의 지위도 주어진다. 꿈을 꿀 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역시도 결코 인생의 끝이 아니며, 스스로가 방구석에 처박히지 않는 한 도전은 다시 시작될 준비를 하고 있다.-18쪽

적극적 만족은 자기 위안과는 다르다. 욕망은 가득한데 뜻대로 안 되어 분함에도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이 자기위안이라면, 적극적 만족은 `내가 선택해서 이런 삶을 사는 거니까 대만족!`이라는 개념이다.-122쪽

서른 즈음은 갈림길이다. 정신적으로 아기와 같은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내가 의존하고 나를 보살펴주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혹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보살핌을 베풀거나...
서른 즈음에 1, 2단계를 졸업하고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선다면, 즉 순수한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하면 나이를 먹어 후회할 일이 그만큼 적어질 것이다.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조금만 더 신경 써 줄 걸...`하는 후회 말이다. 또한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진정으로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고,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거나 기쁨의 기억을 안겨줄 수도 있다. 먼 훗날 그들에게는 아니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195쪽

유연한 협상 능력이란 건 내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터무니없는 금액은 거부하되, 장기적으로 함께 일하고픈 회사가 정말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일시적으로 원하는 금액을 보장하지 못할 때, 내 능력이 객관적으로 고액을 요구할만하지 못할 때, 기대치보다 낮은 수입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 일에 대한 열정과 즐거움,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이긴 하다.-30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