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로 mms가 도착했다.
"할머님 색칠공부 하신거예요 보시고 답장주세요"
얼마전 할머니께 전화가 왔었다.
'보훈청에서 참전 용사들 치매 예방한다고 색칠하는 걸 줬는데, 해보니 재미가 있더라. 그림이 좀 복잡하고 예쁜 거 있으면 구해다오' 하고.
요새 핫한 컬러테라피가 그 시골까지 가는구나~하고 신기한 마음에, 이것저것 주문을 해드렸었다. 제일 유명했던 비밀의 정원과, 마법의 숲, 정교한 패턴이 많은 것처럼 보였던 크리에이티브 테라피 컬러링북까지 해서 세 권.
배송 쩌는 알라딘답게 원통 그 시골에도 익일배송이 되더라.
원통에는 문방구에 12색 색연필밖에 없다고 하시길래 36색 색연필도 같이 주문해드렸다.
나중에 가서 할머니 완성하신 거 봐야지 했었는데, 주기적으로 오는 보훈청 도우미분이 감사하게도 사진을 찍어 보내주신 것이었다.
할머니가 완성하신 걸 보니 진짜 할머니 센스가 어디 안간다 싶다. 전화드렸을 때 "너무 복잡해서 할머니는 못하겠다~ 그래도 이쁘구나" 하시더니 당연하게도 겸양이었어!! 배신감이 든다 ㅠㅠ 할머니는 색감이 뛰어나신데 왜 난 7세 수준에서 색감이 멈춰있는가...
스무 살이 넘어서부터, 할머니 댁에 간간히 놀러가면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해주시기 시작했다. 그전엔 옛날 얘기를 잘 안해주셨는데 이제는 내가 이해할만한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셔서 그런가, 자주 이야기를 해주신다. 듣다보면 정말 입이 딱 벌어질만한 이야기들이다. 빠워한 신여성이셨음.
1. 일제시대 북쪽에서 공장장 딸내미로 태어나 온갖 호사를 다 누리면서 학창시절을 보내셨다. 공장장이었던 아버지한테 밤에 놀러오던 손님들이 독립운동가였다는 클리셰같은 이야기는 덤.
2. 유치원때는 일본인 유치원을 다녔는데, 거기에 러시아인 친구도 있었다고.
3. 어린이 합창단을 했었고, 해방 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 숨어지내다가(아버지가 자본가라서?) 북한 라디오 방송국 합창단 활동을 하셨다. 다시 방송국으로 가게 된 일화도 정말 신기했다. 고등학교때 소풍을 등대로 갔는데, 돌아다니다가 등대 옆 방송국에 우연히 들어갔더니 예전에 합창단을 맡았던 사람과 조우해서 '너 다시 합창단 해라'해서 하게 되셨다고.
4. 한국전쟁때 해병대 행정/보급쪽으로 복무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6~70년대 장교로 근무하셨는데 할머니가 꽂아주셨다는 식으로 얘기하시기도 했다. 우스개소리인지 진짠지는 모르겠지만.
이외에도 아빠한테 건너 들은거라 정확하지 않지만 서울대 가정교육과인가, 그쪽으로 입학하셨는데 결혼하는 바람에 그만두셨다고.
할머니의 책장을 보면 니체와 하루키의 책, 마리아 칼라스의 음반 같은 것들이 꽂혀 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의 책장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세련된 목록들로 가득차 있는데,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왜 반짝거렸던 할머니의 삶이, 결혼이라는 기점에서 뚝 하고 암전되어 버리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요새는 내가 좀 더 여성주의를 잘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혹은 역사나 문화인류학적 소양이 뛰어났더라면 할머니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무척 가치있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 나같은 머글밖에 모르고있어ㅠㅠ'하는 답답함. 나 말고 다른 인터뷰이가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줬으면 하는 욕심. 뭐 이런 감정들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요원하고, 결국은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 몫인 것 같다.
사실, 친가 친척들의 관계가 소원하기도 했고, 나도 바쁘단 핑계로 명절날밖에 못찾아뵀었다. 그러니 이제사 찾아뵙는 건 좀 간질간질한 일이라 선뜻 마음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할머니의 삶에 대한 내 호기심(불경스러운 말일수도 있지만 정말 호기심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이 요사이 점점 커지고 있는 걸 느끼면서, 3월이 되기 전에 원통에 나 혼자 가서 하루이틀 묵으면서 할머니 이야기를 진득하게 듣기로 결심했다. 가는 길에 컬러링북도 몇권 더 사서 들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