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갑작스레 내 등을 '탁'하고 치고 간 두려움에 떠밀려 그제야 남편이란 존재를 인식한 것이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도 완벽하게 분리될 수 있는, 원래부터 무척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도 새삼 떠올랐다. 외출하지 않는 날엥ㄴ 샤워하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며 웃다가 울다가 심각했닥 ㅏ다시 소란스러워지며 감정의 끝과 끝을 바삐 오가는 내 모습도 그에게는 낯선 것도 모자라 외계인처럼 보이리라는 것도 알 것 같았다. 그 즈음이나 혹은 그 이전에 이미 나 역시 남편에게는 한집에 살고 있는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낯선 여자가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다. 가방을 싸들고 떠나고 싶었던 충동이 나에게만 일었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36~37쪽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여자들은 희생하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진다. 양손에 글러브를 끼고 누가 던지는 공이건 일단 받고 보는 것이다. 쏟아지는 공을 반복해서 받다 보면 점점 내가 왜 공을 받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자신을 향해 수없이 날아드는 공의 포화 속에 있는 순간 바로 글러브를 벗어야 한다. 그리고 글러브를 벗고 힘을 그러모아 멋지게 한 방 되던질 것인지, 이대로 마운드를 떠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92쪽
내 아이가 뒤처질까 봐 미리 대비하도록 훈련시키는 것도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진짜 돌아갈 마음의 고향은 어디일지 생각하면 그런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세계가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언제든 그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순수한 열정과 기쁨을 돌이켜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동안 우리는 진정 집으로 돌아온, 길을 잃었던 어른이 된다.-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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