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온 넷우익 -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야스다 고이치 지음, 김현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5월
절판


"우리는 일종의 계급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장은 특권에 대한 비판이고, 엘리트 비판입니다."
"원래 좌익은 사회의 엘리트잖아요. 예전의 전공투 운동도 사실상 엘리트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대학생은 다들 특권계급이었잖아요. 차별이다 뭐다, 우리한테 따지는 노동조합도 다 엘리트예요. 그렇게 잘 사는 사람들이 없어요.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엘리트들이 재일 코리안을 비호해 온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재일특권 문제에 경각심이 없는 거고요."
여기서 '계급투쟁'이란 말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회의 비주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을 비엘리트라고 규정함으로써 특권을 가진 자들에 대한 복수를 꾀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2.회원들의 본 모습과 속마음]-60~61쪽

진실. 재특회 회원들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이다. "진실에 눈을 떴다", "진실을 알았다." 그 출처는 모두 인터넷이다. 신문/잡지/텔레비전 등에 의해 은폐되었던 진실이 인터넷의 힘으로 간신히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자명종 소리에 깨어났을 때처럼 헉하고 일어나서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일본의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이다.
(중략)
나는 재특회 회원들이 말하는 '재일 코리안'이라는 말이 무기질 기호처럼 느껴졌다. 재일 코리안이라는 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얼굴도, 표정도, 생활도, 역사도, 풍경도, 그 자세한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일본의 위기를 나타내는, 또는 모든 모순과 문제를 풀 블랙박스 같은 존재로 편의에 따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2.회원들의 본 모습과 속마음]-75~76쪽

그러나 인터넷에는 비판이나 비난 댓글을 훨씬 넘는 막대한 지지 댓글이 달렸다. 이렇게 많은 격려와 찬성은 그 뒤 재특회의 자신감과 과격화로 이어지게 된다.
"잘했다."
"재특회, 고맙다."
"재특회, 파이팅!"
"(재특회에)박수!"
지금 일본을 감도는 분위기가 여기에 반영되어 있다. 불과 10여 명의 활동이었지만, 그 배후에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재특회와 공명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조선학교를 습격한 이들의 정체는 보이지 않는다.
[3. 범죄 또는 퍼포먼스]-103~104쪽

"눈물이 나서 어쩔 줄 몰랐어요. 진짜로 감동해서 하루에 여섯 번씩 봤죠. 그 희생정신을 저는 동경했습니다. 애국심이 없으면 삶의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야마토를 보고 저는 애국자가 됐어요."
그때까지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요멘이었지만, 야마토 이야기가 나오자 열기를 띄었다. 얼굴도 제법 상기되었다. 그 나름의 애국심을 기르며 2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 겨우 도착한 곳이 인터넷이었다. 2채널 같은 게시판에서 '언론전'을 전개하고, 블로그에서 위기를 호소하며, '야마토 정신'으로 일본을 구하기 위해 일어선 것이다. 우습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책 한 권, 영화 한 편이 인생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우주전함 야마토>의 메시지가 정말로 이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멘은 진지하게 쿠데타를 하러 나섰다. 인터넷을 통해 선전하고, 장소를 빌려 '쿠데타 설명회'를 개최하며, 때로는 재특회 등의 시위를 경호하기도 했다.
[4. 반재일 조직의 뿌리]-182쪽

그보다 내 관심을 끈 것은 그가 집요하게 나를 조선인이라고 우기는 것이었다. 사키자키만이 아니었다. 많은 재특회 회원들이 "너는 국적이 어디냐?", "사실은 조선인이지?", "언제 귀화했냐?"라고 몇 번이나 물었다. 그들에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조선인인 것이다. 조선인이나 재일 코리안은 일종의 기호다. 그들은 그 기호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고, 조롱함으로써 우월감을 가지게 된다.
[5. 재일특권의 정체]-197~198쪽

"우리한테 없는 것을 그 녀석들(재일 코리안)은 다 갖고 있는 것 같았어요."
지켜야 할 지역, 지켜야 할 가족, 지켜야 할 학교, 오래 사귄 벗, 재특회와 대치하는 재일 코리안들의 모습에서 그런 것을 발견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민 단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역 사람들을 위해 나설 수 있을까? 가족과 어깨동무하고 적에게 맞설 수 있을까? 아니, 출신 초등학교를 위해서 달려갈 수 있을까? 모두 '노'였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동지 말고는 연대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 싸움은 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특회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들이 증오하는 특권의 정체는 의외로 그런 부분이 아닐까? 즉, 재일 코리안에게 있는 긴밀한 인간관계와 강렬한 지역 의식, 지금의 일본 사회가 잃어버린 것들 말이다. 개인으로 분열되어 인터넷으로밖에 단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눈부신 '특권'으로 보였던 것이 아닐까?
[6. 떠나가는 어른들]-227쪽

하리야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재특회 특유의 경박한 발언과 현실 감각의 상실이다.
"인터넷에서 그대로 현실 사회로 나왔을 뿐이에요."
그제야 그는 불량배다운 험악한 표정을 보였다.
"인터넷과 현실의 구분이 안 되는 거죠. 그들이 금방이라도 폭주할 것 같은 이유는 일상생활에서의 물리적 충돌을 경험하지도 않고 인터넷과 같은 감각으로 대처하려고 들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인터넷과 현실은 연속적이니까요."
키보드를 연타하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감각을 그대로 길 위에가져온다. 하리야가 말한 이 연속성 때문에, 집회 때 반대하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욕설을 퍼붓는 집단 린치도 블로그에 '악플'을 다는 정도의 의미밖에 가지지 않는다. "죽여 버려."라는 말을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하리야는 말했다.
[6. 떠나가는 어른들]-255쪽

"이런 단체에 기부하는 사람이 진짜 있을까?", "뒤에 거대한 스폰서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취재를 계속하다 보니 '활동에 참가하지는 못하지만 활동비만은 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재특회의 재정에 협력하고 있는 것은 이름 없는 일반인들이었다.
[7. 리더의 표변과 허실]-267쪽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반후지TV의 흐름을 만든 것이 재특회가 아니었다는 데 있다. 재특회는 그저 흐름에 편승했을 뿐이다. 후지 TV와 한류 프로그램에 대한 공격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터넷에 의해 촉발된 '일반 시민'들이었다. 그 점을 강조해 두어야겠다. 나는 이런 점에서 재특회라는 존재를 만든 오늘날 일본의 '토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8. 늘어나는 표적]-310~311쪽

김치찌개가 인기 랭킹 1위로 소개된 것이 어째서 편향인가? 그런 하찮은 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축제다. '후지 TV 반대', '한류 반대'의 이름을 빌린 축제. 아무리 우아한 시위였다 하더라도, 차별적인 언동이 적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상에 일반적으로 떠다니는 희미한 '반한국', '반북한'의 목소리를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한 것뿐이 아닌가?
나는 거기서 재특회의 배경을 본 것 같았다. 후지 TV 반대 시위 참가자들은 돌출된 언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 도착점은 재특회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재특회처럼 과격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낳고 있는 것은 이렇게 세련된 사람들의 어딘가 우울한 분노다. 재특회의 배후에 일반 시민이 대량으로 줄지어 서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8. 늘어나는 표적]-314쪽

실제로 재특회 같은 보수 조직에는 어딘가 유사 가족과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9. 재특회에 들어가는 이유]-324쪽

사회운동은 이론보다 기세를 통해 확산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세는 '지키기'보다는 '바꾸기'를 원하는 쪽에 붙기 마련이다. 일찍이 학생운동이 기세를 떨쳤던 것은 무엇보다도 체제를 부수자는 데서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편 지금의 좌익은 '지키기'만 할 뿐인 운동이다. 평화를 지켜라, 인권을 지켜라, 헌법을 지켜라, 우리 직장을 지켜라. 재특회 같은 신흥 보수 세력은 그것들을 모두 의심하고 '쳐부숴라.'라고 호소한다. 좌익이 보수가 되고 보수가 혁신이 된 '역전 현상'이 생긴 것이다.
[9. 재특회에 들어가는 이유]-348쪽

주간지 기자로 여러 사건들을 쫓으며 세상에 왠지 여유가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까지는 이데올로기와 입장의 차이를 초월해 애매모호한 형태로나마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내일이 오늘보다 반드시 나아질 거라는 '시간의 약속'이었다. 달력을 한 장씩 넘기면서 풍요로움을 조금씩 획득해 온 것이 전후의 일본이었다. 좀 낯간지럽지만, 희망이나 미래라는 말을 입에 담기만 하면 우리는 어떻게든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끝났다. (중략) 계약직이나 하청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취급을 받지 못한다. 많은 기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담당/관리하는 부서는 인사부가 아니라 기자재를 다루는 부서다. (중략)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런 상황을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소속이 없는 사람들은 아이덴티티를 찾아 나선다. 그중 일부가 의지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일본인'이라는 불변의 '소속감'이었다. 이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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