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호소한다?‘
나는 그런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호소하거나, 어머니에게 호소하거나, 경찰에게 호소하거나, 정부에 호소하거나 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의 언변에 휘말리게 될 것이 뻔하지 않을까?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결과가 나타날 게 뻔해. 결국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참으며, 익살꾼 노릇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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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본 무성 생식과 유성 생식의 간략한 자연사는 이 책의 주제인 무성애적 인간과 약간의 관계가 있을 뿐이다. 한 종의 유성 혹은 무성의 생식 유형은 인간을 비롯하여 유성 생식만을 하는 종들의 무성애 현상과 다소 차이가 있다. 또한 성과 번식 능력도 별개의 것이다. 대부분의 무성애자들은 그들이 성적 메커니즘을 통한 번식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여전히 성을 통해 번식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여전히 유성 생식을 하는 인간이라는 종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인간에게 성이란 번식과 관계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무성애는 무성 생식과는 부분적으로 다른 현상이다. - P66

가장 유명한 현대 수학자 중 한 사람인 폴 에르디쉬Paul Erdos는 무성애자였다. 뉴턴이 그랬듯이 그도 수학에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전기를 쓴 한 작가는 그 책 제목을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The Man Loved Only Numbers』라고 했다. 에르디쉬는 자신이 수학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미학적으로 더 아름다웠는지 이렇게 이야기했다. "숫자가 아름답지 않다면, 그 어떤 것이 아름답겠는가!" 또한 그는 섹스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성적 쾌락이 정말 싫다." 이것은 성의 모든 양상, 즉 매혹, 욕망, 흥분에 관심이 없다는 뜻인지, 단지 흥분과 쾌락의 요소만 싫다는 것인지 알려진 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에르디쉬가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의 미학적 관심이 수학에만 국한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는 다른 사람에게 성적인 혹은 로맨틱한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 P75

나는 성애자들에 비해 무성애자들이 대체로 전통적인 성 역할을 따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성적 발달은 여성을 보다 여성스럽게 만들고 남성을 보다 남성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성애 여성들은 로리 브로토와 내가 말한 ‘욕망의 대상 자의식Object-of-Desire Self-Consciousness‘이라고 명명한 것이 없기 때문에, 복장과 태도와 언어에서 보다 덜 여성적일 수 있다. 우리는 이성애 여성들의 성애는 종종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욕망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는 이런 여성들은 욕망의 대상을 주제로 한, 성적 시나리오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믿는다. 실제로 이것에 대해서 나의 제자들과 내가 이성애 여성과 이성애 남성의 판타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증거가 있다. 이성애 여성들은 이성애 남성에 비해, 다른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파트너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매력적이라고 보는 것에 더 흥분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여성들의 언어는 이런 주제들을 반영하는데, 예상대로 이러한 성적 시나리오는 우리의 인식에 스며든다. 결국 언어와 우리의 생각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P142

댄 새비지는 여기서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앞서 일부 이성애자들이 언급한 게이 혹은 레즈비언들이 게이 퍼레이드를 열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과시‘하는 것에 대한 의문에 일정 부분 대답을 해 주고 있다. 이들은 어쩌면 금지될 수도 있는 행위들을 인정받고 받아들여지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중에게 정체성을 공표하는 것은 게이 혹은 레즈비언들에게는 중요하지만, 무성애자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이러한 견해는 많은 무성애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유지되고 있다. 내 생각에 일부 무성애자들이 퍼레이드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공표하는 반면, 대다수의 무성애자들은 무성애자 문제를 다루는 웹 사이트에 접속하지도 않고 성 소수자들의 퍼레이드에 참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댄 새비지의 요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가 주장하는 것의 일부는 옳기도 하지만, 나는 더 중요하고 일반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을 갖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의 타당성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지될 수 있는 행위를 인정받아서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자아에 대한 어떤 근본적 질문인 ‘나는 누구일까?‘,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등과 관계가 있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고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이다. 성 정체성을 포함한 정체성 형성은 인간 발달의 근본적인 양상이다. 주변에 아는 청소년들이 있거나 혹은 자신의 10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체성 형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회, 문화, 종교 단체들이 ‘성년식‘을 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생식과 성의 성숙이라는 맥락에서 발달에 미치는 정체성 형성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성 정체성 및 기타 정체성 문제는 무성애자들과도 관계가 있다. - P156

나와 카롤린 하퍼는 세상에 대한 신뢰가 커밍아웃 시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이 남성은 세상이 공정하고 또 사람들이 공평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을 때, 이런 신뢰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보다 빨리 커밍아웃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믿는 게이 남성들은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에 비해 인생의 후반기까지 벽장 속에 머물거나 혹은 거기에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우리가 세상의 정의에 대한 믿음이 게이 남성의 커밍아웃 경험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게이 남성들이 종종 차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 앞에 있는 세상이 불공평함으로 가득 차 있고 이런 불공평이 차별의 모습으로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믿거나 인식한다면, 그 사람은 세상이라는 무대에 멋지게 등장하지 못하고 피하게 될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부인된 정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이 금언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자 한다. "지연된 등장은 부인된 불공평이다." 이는 일부 게이들이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인식할지도 모른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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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권력자와는 다른 선택을 하려는 자신의 의지에 반해 권력자의 선택 또는 결정을 따른다. 이를 통해 권력자는 타자에게서 자신의 의지를 본다. 타자에게서 자아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권력 감정의 핵심이다. 매개가 부족한 권력의 형태는 권력에 복종하는 자에게 부자유의 감정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자유의 분배는 그 권력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 P91

생명이란 "자신의 형태를 강제하는 것"이다. 에고는 타자에게 자신의 상을 찍거나 강제함으로써 타자를 정복한다. 여기서 타자는 에고의 의지를 견디기만 하는 수동적 질료처럼 행동한다. "자신의 형태를 강제하는 것"으로서 권력 행사는 타자에게 에고의 연속성을 강요한다. 그를 통해 에고는 타자 속에서 자신의 상을, 즉 자기 자신을 본다. 타자가 에고를 반영하기 때문에 에고는 타자 속에서 자신에게로 귀환한다. 권력 덕택에 에고는 타자의 현존에도 불구하고 자유롭다. 다시 말해 [타자에게서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 P91

권력이란 타자에게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권력은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니다. 헤겔은 이를 생명의 일반 원리로 내세운다. 권력은 살아 있는 존재를 죽어 있는 존재와 구별하게 해준다. "생명체는 비유기적 자연에 맞서 있다. 생명체는 비유기적 자연에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며, 그것을 자신에게 통합시킨다. 이 과정은 화학적 융합 과정과는 달리, 서로 대립하던 두 측면의 자립성이 모두 지양되는 중성적인 산물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체는 자신의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타자들을 장악하고 있다. [……] 이렇게 해서 생명체는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유지한다." 타자 속에서 자신을 상실하는 대신 "타자를 장악하고", 타자를 자신과 함께 점유하며, 타자 속에서 자신을 연속시키는 데에서 생명체의 권력이 드러난다. 타자를 향한 도정이 자기 자신을 향한 도정이 되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유기체란 "자신에게 외적인 과정", 다시 말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과 함께 가는 것"이다. 타자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는 권력이 없다면, 생명체는 타자 속에서 몰락한다. 다시 말해 생명체로 침투해오는 타자가 그 속에서 번식시키는 부정적 긴장감에 의해 몰락하게 된다. - P93

권력은 내면성과 주관성의 현상이다. 자신을 내면화/상기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 자신의 내면이나 자기 자신 안에 머무르기만 하면 되는 존재, 아무런 외부도 갖지 않는 존재는 절대적 권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내면화/상기와 경험이 완전히 하나가 된다면, 무력이나, 고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무한한 내면성이란 무한한 자유와 권력을 의미한다. - P99

유한한 존재는 타자에 둘러싸여 있다. 자기주장이란 이 존재자가 타자와 접촉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머문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자아의 연속성이 없다면 존재자는 타자가 불러낸 부정성과 부정적 긴장감에 의해 몰락할 수밖에 없다. 자신 안에서 이 부정성을 견뎌낼 수 없고, 타자를 자신 안에 통합할 능력이 없는 존재자에게는 존재할 수 있는 권력/힘이 없는 것이다. 틸리히 또한 존재의 권력/힘을, 부정성 혹은 그가 말하는 "비존재"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비존재를] 자기주장에 편입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찾는다. "더 많은 비존재를 극복했거나 극복할 수 있다면 존재의 권력/힘은 더 커진다. 더 이상 이를 견디거나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전적인 무력, 모든 존재의 권력/힘의 종말, 패배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가 갖는 위험이다. 더 많은 비존재를 자신 안에 지니게 되면 그 생명체는 더 큰 위험에 빠지는데, 이 위험에 맞설 수 있다면 그 생명체는 더 큰 권력/힘을 갖게 된다. [……] 스스로 파괴되지 않고서도 더 많은 비존재를 자신의 자기주장에 편입시킬 수 있다면 생명체는 그만큼 더 강해진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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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인생은 ‘자기 예언‘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들로 가득하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이 마치 전쟁터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살아가게 한다. 세상은 경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대개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 P164

훌륭한 과학자는 가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실패‘는 진리에 이르는 데 필요한 길을 더 분명하게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성공한 하나의 가설보다도 더 많은 사실을 알려 주기도 한다. - P169

세상의 모든 전통적인 지혜의 말씀이 두려움을 언급하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모든 지혜의 말씀이 인간이 이 오래된 적을 이겨내기 위한 싸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지혜의 전통은 엄청난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말씀으로 통합한다.
"두려워 말라."
두려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자칫 그 뜻이 왜곡되어 ‘완벽‘이라는 기운 빠지는 충고를 만들어 내지 않기 위해, 그 말씀들을 주의 깊게 읽었다. 두려워 말라는 말은 두려움을 가져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면에서 리더십을 발견한 사람들은 종종 더 많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이 말에 담긴 뜻은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그 두려움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두려움의 공간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그 때문에 두려움이 증폭되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부에 두려움의 공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뢰와 희망, 믿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공간들도 있다. 우리는 그 공간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거기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그런 공간들 중 하나에 서 있을 때에도 두려움은 가까이 있고 우리 영혼은 아직도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를 지탱해 줄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시작해서 더 믿을 만하고, 더 희망차고, 더 충실한 존재의 길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다. - P173

"겨울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겨울 때문에 미쳐버릴 겁니다."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두려움 속으로 대담하게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 두려움이 우리 인생을 지배한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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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이념과 이익의 상충에 관한 해묵은 논란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념보다는 이익에 더 무게를 두는 게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 P380

여기서 말하는 사적 이익은 넓은 개념이다. 자신이 주도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인정 욕망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 인정 욕망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나 패거리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으로도 나타나는데, 실제로 이게 편 가르기의 주요 토대가 된다. 이게 바로 이념과 이익이 유착하는 전형적 방식이다. - P381

한국인은 욱하는 기질이 있다. 참고 모아뒀다 한꺼번에 처리하거나 폭발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학생들이 벼락공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불법 폐기물을 쌓아두었다가 홍수가 날 때 슬쩍 휩쓸려가게 만드는 폐기물 처리법이 있다. 욕먹어 마땅한 수법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홍수 처리법은 우리에게 익숙한 관행이다. 특히 그 어떤 사회적 홍수가 났을 때에 좋지 않은 것들을 일거에 해치우려는 습성은 한국 사회의 오랜 전통이다. 그런 특성에 ‘홍수 민주주의‘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겠다. 홍수 민주주의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일장일단이 있는 한국적 특성일 뿐이다.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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