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권력자와는 다른 선택을 하려는 자신의 의지에 반해 권력자의 선택 또는 결정을 따른다. 이를 통해 권력자는 타자에게서 자신의 의지를 본다. 타자에게서 자아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권력 감정의 핵심이다. 매개가 부족한 권력의 형태는 권력에 복종하는 자에게 부자유의 감정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자유의 분배는 그 권력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 P91
생명이란 "자신의 형태를 강제하는 것"이다. 에고는 타자에게 자신의 상을 찍거나 강제함으로써 타자를 정복한다. 여기서 타자는 에고의 의지를 견디기만 하는 수동적 질료처럼 행동한다. "자신의 형태를 강제하는 것"으로서 권력 행사는 타자에게 에고의 연속성을 강요한다. 그를 통해 에고는 타자 속에서 자신의 상을, 즉 자기 자신을 본다. 타자가 에고를 반영하기 때문에 에고는 타자 속에서 자신에게로 귀환한다. 권력 덕택에 에고는 타자의 현존에도 불구하고 자유롭다. 다시 말해 [타자에게서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 P91
권력이란 타자에게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권력은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니다. 헤겔은 이를 생명의 일반 원리로 내세운다. 권력은 살아 있는 존재를 죽어 있는 존재와 구별하게 해준다. "생명체는 비유기적 자연에 맞서 있다. 생명체는 비유기적 자연에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며, 그것을 자신에게 통합시킨다. 이 과정은 화학적 융합 과정과는 달리, 서로 대립하던 두 측면의 자립성이 모두 지양되는 중성적인 산물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체는 자신의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타자들을 장악하고 있다. [……] 이렇게 해서 생명체는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유지한다." 타자 속에서 자신을 상실하는 대신 "타자를 장악하고", 타자를 자신과 함께 점유하며, 타자 속에서 자신을 연속시키는 데에서 생명체의 권력이 드러난다. 타자를 향한 도정이 자기 자신을 향한 도정이 되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유기체란 "자신에게 외적인 과정", 다시 말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과 함께 가는 것"이다. 타자 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는 권력이 없다면, 생명체는 타자 속에서 몰락한다. 다시 말해 생명체로 침투해오는 타자가 그 속에서 번식시키는 부정적 긴장감에 의해 몰락하게 된다. - P93
권력은 내면성과 주관성의 현상이다. 자신을 내면화/상기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 자신의 내면이나 자기 자신 안에 머무르기만 하면 되는 존재, 아무런 외부도 갖지 않는 존재는 절대적 권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내면화/상기와 경험이 완전히 하나가 된다면, 무력이나, 고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무한한 내면성이란 무한한 자유와 권력을 의미한다. - P99
유한한 존재는 타자에 둘러싸여 있다. 자기주장이란 이 존재자가 타자와 접촉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머문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자아의 연속성이 없다면 존재자는 타자가 불러낸 부정성과 부정적 긴장감에 의해 몰락할 수밖에 없다. 자신 안에서 이 부정성을 견뎌낼 수 없고, 타자를 자신 안에 통합할 능력이 없는 존재자에게는 존재할 수 있는 권력/힘이 없는 것이다. 틸리히 또한 존재의 권력/힘을, 부정성 혹은 그가 말하는 "비존재"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비존재를] 자기주장에 편입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찾는다. "더 많은 비존재를 극복했거나 극복할 수 있다면 존재의 권력/힘은 더 커진다. 더 이상 이를 견디거나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전적인 무력, 모든 존재의 권력/힘의 종말, 패배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가 갖는 위험이다. 더 많은 비존재를 자신 안에 지니게 되면 그 생명체는 더 큰 위험에 빠지는데, 이 위험에 맞설 수 있다면 그 생명체는 더 큰 권력/힘을 갖게 된다. [……] 스스로 파괴되지 않고서도 더 많은 비존재를 자신의 자기주장에 편입시킬 수 있다면 생명체는 그만큼 더 강해진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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