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의 경우 사제에게 결혼을 허용하는 것은 성 바울로 이래 부부 또는 애정생활에 대한 경건한 독신생활의 우위를 명시해온 윤리와 전통을 포기하는 것이 되었다. 물론 결혼은 성사가 될 수 있었지만, 남녀 커플의 상징적인 인정은 더 진전될 수 없었다. 사제가 순결의 의무를 위반해도 괜찮을 수는 없었다. 부부생활과 성직자 생활 사이의 분명한 위계를 유지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성직자와 평신도가 동등해질 우려가 있었다. 달리 말하면 제도 자체가 다시 문제될 수 있었다. - P163

16세기에 사랑의 시는 거의 대부분 아내가 아니고 아내가 되리라고 여겨지지도 않는 여자를 예찬했다. 아내에게 부치는 연시의 이 몇몇 경우는 꽤 새로운 현상이었는데, 이 현상은 르네상스 시대의 아주 중대한 이중의 변화를 나타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남녀의 사랑과 양립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남녀의 사랑과 결혼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아차리게 되었다. - P169

이 의학 ‘지식‘은 때때로 중세의 사랑 개론서에서 다시 발견되는데, 특히 앙드레 르샤플랭은 사랑의 단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의학 지식을 활용한다.
연인들을 분명하게 단죄하는 데에는 또 다른 논거가 있다. 즉, 사랑과 베누스에게 바쳐진 희생은 사람의 몸을 쇠약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남자는 전쟁 활동에서 활력을 잃는다. 사랑은 아주 논리적인 세 가지 이유로 남자의 기력을 빼놓는다. 우선 의사들이 가르쳐주듯이 성행위 자체가 생명력을 많이 감퇴시킨다. 다음으로 사랑 때문에 덜 먹고 덜 마시게 되며 따라서 육체의 저항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끝으로 사랑은 또한 잠을 앗아가고 당연히 모든 휴식을 박탈한다. 그리고 수면 부족은 소화불량과 엄청난 체력 감소를 초래한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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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통계를 볼까요? 우리나라 1000대 상장사의 시이오(CEO) 중에 ‘스카이’ 대학(학부)을 나온 사람의 비율입니다. 유니코써어치라는 조사 전문 기업에서 발표한 건데요, 2007년에는 59.7%이던 것이 불과 6년 만에 뚝 떨어져서 2013년에는 39.5%가 됩니다. 3분의 1이 감소해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우리나라가 강력한 정부 주도 경제에서 자유 시장 경제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었어요. 바로 1997년의 외환 위기입니다. 흔히 ‘IMF 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 이후에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든가 하는 일이 벌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에서 정부의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요. 이후 기업에서 승진 가도를 달리던 사람들이 사장이 되면서, ‘스카이’의 비율이 뚝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 P106

왜 시이오 중에 ‘스카이’ 출신이 감소했을까요? 학벌보다는 실적이 좋은 사람이 유리해졌기 때문이지요. 물론 학벌의 가치가 없어졌다고 보는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하락했습니다. 정부 주도 경제가 끝나면서 연고의 중요성이 떨어졌거든요. 그 대신 개인의 내재적 가치, 예를 들면 시장 대응력이나 조직 적응력 등이 중요해진 겁니다. 학벌이 좋다고 해서 시장 대응력이나 조직 적응력이 좋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 P109

탈학벌의 원인 셋, 도련님·공주님의 출현

학벌과 ‘스펙’의 중요성이 낮아지는 세 번째 이유는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을 만나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우리나라 유명한 기업들의 채용 담당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는데요, 이분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있어요.

"도련님, 공주님이 너무 늘고 있다!"

‘스펙’ 좋고 허우대 멀쩡해서 뽑았는데, 뽑고 나서 보니 인간성이 그냥 ‘도련님’, ‘공주님’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거죠. 도련님, 공주님이란 수동적이고 자기만 알아서, 팀워크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을 말해요. 심지어 사원을 어디로 발령 보내면 부모들이 전화한대요. "우리 애를 왜 거기로 보냈나요?" 하고요.

대학에서 학기 말에 성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있죠? 대학 교수들에 의하면 학생이 아닌 부모가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법원의 부장 판사들도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 밑에 젊은 판사가 인사 배정되면 그 부모들이 찾아와서 "우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하며 인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요. (이것이 심지어 한류의 구성 요소가 된 것 같아요. 한류 ‘막장’ 드라마의 양대 소재가 ‘출생의 비밀’과 더불어 ‘부모의 간섭’ 이지요.)

혹시 ‘그런 현상이 뭐가 이상한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엄청난 세대 차의 증거라고 여길 수밖에 없겠네요. 지금 기성세대가 젊었던 시절에는 성인이 된 자녀의 사회생활에 부모가 나서서 간섭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요새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간섭이 너무 일상화된 나머지, 성인이 되었을 때 인격의 독립성이나 자율적인 판단 능력은 좀 부족해지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듭니다.

도련님, 공주님들은 대개 ‘스펙’은 좋습니다. ‘스펙’만 보고 뽑으면 이들이 뽑히기 쉬워요. 다지고 보면 ‘스펙’이라는 것은 인격의 독립성이나 자율적 판단 능력을 보여 주기는 힘들어요. 오히려 남들이 하라는 대로 했을 때, 예를 들어 부모나 선배나 교수가 조언하는 대로 했을 때 더 좋은 ‘스펙’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팀워크’의 원천이 되는 협업 능력을 봐도 그렇습니다. 요즘 인턴을 통한 채용이 늘어나잖아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인턴 제도가 노동 착취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미지가 안 좋긴 하지요. 인턴에게 허드렛일만 시킨다든가, 그러고 나서는 정규직 채용을 거의 안 한다든가 해요. 하지만 ‘일하는 것을 보고 나서 뽑자’는 것이 꼭 불합리한 방식은 아니죠. 만일 여러분이 기업에서 인턴을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면 어떤 점을 주로 보겠습니까? 두 가지, 즉 ‘업무 능력’과 ‘태도’를 볼 겁니다. 태도가 좋은 사람은 아마도 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는 사람일 거예요.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속하는 팀(team)이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사람이 드물어요. 그런데 ‘이런 건 팀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하는 것.’이라는 태도가 배어 있는 사람과,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뒷짐 지는 태도가 배어 있는 사람은 겪어 보면 대번에 차이가 나거든요.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바로 도련님, 공주님이지요. - P118

희소성이 있는 것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예전에는 중국어 배우는 사람들이 드물었어요. 그런데 이후 중국어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런 희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각광받았죠. 지금도 중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부족하다고 합니다. 중국 다음으로 뜨는 나라가 베트남이잖아요? 베트남이 뜨는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정치와 치안이 모두 안정된 드문 나라고, 교육 수준도 높은 편입니다. 그리고 인구가 9000만 명이 넘어요. 베트남어를 배워 두면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겁니다. 그다음 순서는 말레이시아일 가능성이 있는데요,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서로 비슷해서 한꺼번에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말레이시아 인구와 인도네시아 인구를 더하면 2억 5000만 명이 넘어요. 얼마 전에 제가 봉사 활동으로 상담을 한 적 있는 고3 학생이 대학에 합격했는데, 이란어 전공을 택했다는 거예요. 제가 그 학생보고 참 잘했다고 했습니다. 희소성 있는 능력에 도전해 보는 건 참 좋은 일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이란이 얼마나 잠재력을 가진 나라인지 상상도 안 해 보는데, 이 학생은 기꺼이 스스로 희소성을 만들어 가고 있잖아요? - P129

두 번째, 동료들을 포함해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해집니다. 사실 전문성은 정량화되기 어려운 요소가 많기 때문에 누가 어떤 입장에서 평가하는지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는데요,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평가에는 신뢰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주인공이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려고 면접을 봅니다. 말하자면 ‘경력직 채용 면접’이지요. 그런데 면접관이 갑자기 종이를 한 장 꺼내 드는데, 바로 예전에 이 주인공의 상사였던 패션업계의 거물이 쓴 편지예요. 자기에 대해 악담을 썼을까 봐 긴장했는데 뜻밖에도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라고 적혀 있었고 그 덕분에 주인공은 입사에 성공합니다. 여러분도 경력직 채용 면접관의 입장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어떤 사람을 채용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데 ‘내가 이 사람과 몇 년 일해 봤는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더라’라는 자료가 있다면, 이를 능가할 자료는 이 세상에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요새 우리나라 헤드헌터들도 개개인에 대한 평판 자료를 점점 많이 모으고 있어요.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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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잠들기 전에 L은 뜻밖의 고백을 했다.
"사랑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L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나를 사랑한, 혹은 사랑한다고 믿은 최초의 여자였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 아이는 따뜻함과 사랑을 혼동해왔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희미한 쓸쓸함을 느꼈고, 그보다 희미한, 까닭을 알 수 없는 구역질을 느꼈다. - P168

나, 살 빼고 나서 잘난 척 많이 했었어요. 몇 달 사이에 나한테 비굴해진 남자들, 그제야 상대해주고 끼워주는 여자애들…… 속으루 죄다 비웃어줬어. 백이면 백, 모두 구역질나는 이중인격자들이더라구. 그러면서 나도 함께 살찐 애들을 무시하고 싫어했어요. 왜 그런지 쳐다보기두 싫더라구요. - P175

"내가 진짜 참을 수 없는 건, 그 새끼가 아니야. 지금까지두 그 새낄 못 잊고 있는 엄마도 아니야. 내가 정말로 증오하는 건, 내 병신 같은 모습…… 그렇게 병신같이 당하구 있었던, 나중엔 반항도 안 하구, 다 포기하구, 어디 신고할 생각도 못 하구, 비겁하게 가출도 못 하구…… 그래요, 내가 진짜 용서할 수 없는 건, 바로 나야…… 그렇게 몇백 번을 당해도 쌌던…… 나."
(…)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서 물러나 앉았다. 그렇지 않아. 넌 단지 어렸을 뿐이다. 비겁해서가 아니라, 너무 어렸을 뿐이다. - P177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무엇인가가, 내 내부의 무엇인가를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이 변화시켰다. 그러나 그것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결코 알아낼 수 없었다. - P187

"나…… 과거는 생각 안 해요. 미래두 생각 안 해요. 상담 선생님도 그게 좋대요. 내 이빨, 내 몸이 이렇게 된 거, 내 청춘이 흙탕물처럼 떠내려가버린 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 것두 생각 안 해요. 생각하려다가두 얼른 잊어버려요. 그냥, 순간순간 살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그녀는 문득 미소 지었다. 수수께끼 같은 평화가 그녀의 입가에 어려 있었다.
"……천국이 따로 없어요."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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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워프(Time Warp), 버뮤다 삼각지대, 엘도라도, X-파일, UFO. 나열한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그렇다. 불가사의다. 인간의 변덕도 이 단어로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또 잠이 오지 않았다. 커피 탓이 아니었다. 문 두들기는 소리와 현선이를 찾는 절규가 들리지 않자 이번에는 불안해서 잠이 안 오는 것이었다. 현선 엄마는 백합방에서 뭘 하며 지내려나? - P140

나는 혼란에 빠졌다. 승민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으나 거기에서 온 혼란은 아니었다. 내 안에서 고개를 드는 혼란이었다. 시계를 주웠을 때부터 나를 괴롭혀온 그 혼란이었다. 땅거미가 질 때 찾아드는 불안감과 비슷한 혼란이었다. 승민 옆으로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낯선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와락 열려버릴 것 같은 막연하고도 불길한 육감이었다. - P146

한이는 백합방으로 갔다. 보호사가 꽂은 주사에 정신을 잃고 이동 침대에 실려 갔다. 이는 병원의 문제 해결방식이었다. 당사자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 한이의 해결방식이 한이가 병원에 들어온 이유를 설명하는 거라면, 간호사실의 해결방식은 한이가 병원을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생각할 능력을 상실한 자가 바깥세상에서 생존할 길은 없는 것이다. - P185

"물품 트럭이 자주 와요?"
"한 달에 한 번, 특별히 주문하는 게 있으면 중간에 오기도 하고. 우리가 제법 큰 손님이라 소홀히 못하거든."
나는 웃었다. 그도 따라 웃었다. 웃고 나서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왜 웃었어?"
"정신병원 덕에 먹고사는 사람도 있다 싶어서요."
"있는 정도겠어. 많아. 조리실에 물건 대는 업자, 사식 대주는 업자, 보일러실에 기름 대는 업자. 봉투차도 있고." - P246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게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말하려 애쓰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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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출신 좋은 사람들에게는 경우가 다르다. 그들은 가장 깊은 심연에 의해 민중들과 유리되어 있고, 이러한 점은 <출신 좋은 사람>이 갑자기 외부적인 상황에 의해 이전의 특권을 상실하고 민중들과 생활을 같이 해야만 하는 변화가 주어졌을 때에만 <완벽히> 지각할 수 있다. 비록 평생을 민중과 일한다 하더라도, 예를 들어 조건으로 제약을 받는 행정적인 형식 때문에 비록 40년 동안이나 매일같이 그들과 일 속에서 접한다 하더라도, 또는 은인의 모습이나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의 모습으로 우호적으로 지낸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결코 민중과 합치될 수 없다. 모든 것은 단지 시각적인 기만일 뿐이고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견해를 읽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내가 과장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옳다고 확신한다. 나는 책이나 사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것을 확신했고, 이 확신을 검증할 매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이것이 얼마만큼 옳은 것인가는 뒷날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 P373

이미 오래 전부터 나의 마음속에 불분명하게 생겨나 나를 따라다녔던 하나의 상념이 이제서야 처음으로 확실하게 밝혀졌고, 나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추측했던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설사 내가 흉악범이거나 종신형을 받은 죄수거나 특별 감옥의 죄수라도, 그들은 나를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특히 이 순간에 보았던 뻬뜨로프의 모습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당신들이 어떻게 우리의 동료입니까?> 하는 그의 질문에는 너무도 꾸밈 없는 소박함과 솔직한 의아스러움이 스며 있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 말 속에 어떤 비꼼이나 악의나 조소가 있는 것은 아닌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동료가 아니다. 그것뿐이었다. 너희는 너희 길로 가라.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다. 너희에겐 너희의 일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일이 있다는 것뿐이다. - P390

이 부류는 완전히 무관심한 죄수들이었다.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든 감옥에서 살든 그들에겐 마찬가지란 말이다. 물론 우리에겐 있지도 않은 일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아낌 아끼미치는 예외였다. 그는 심지어 마치 평생을 감옥 안에서 살 것처럼 갖추어 놓고 살고 있었다. - P391

그러나 그들이 보여 주는 반목의 중요한 요인은 편견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대하며, 죄수들의 야만성만을 보고 어떠한 장점이나 인간다운 면을 발견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은 환경의 힘과 운명에 의해 이러한 불행한 관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감옥에서의 우수가 그들을 질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 P394

작업은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 한 달 동안 소령은 우리 모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완전히 바꾸었고 우리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갑자기 J-끼를 감옥에서 자기에게 오라고 부른 일까지 있었다.
「J-끼!」 그는 말했다. 「내가 너를 모욕했다. 나는 너를 이유 없이 태형에 처했어. 나도 그것을 알고 있지. 나는 후회하고 있어. 너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겠나? 나, 나, 나는 후회하고 있다고!」
J-끼는 이해한다고 대답했다.
「너 이해할 수 있어? 나, 너의 상관인 내가, 너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서 너를 불렀단 말이다. 이것을 느낄 수 있나? 내 앞에 있는 <너는> 누구냐? 벌레! 어쩌면 벌레만도 못할지 몰라! 너는 죄수란 말이야!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자비로 된 소령이야! 너, 이것을 이해하겠는가 말이야?」
J-끼는 그것도 이해한다고 대답했다.
「자, 그런데 지금 나는 너랑 화해를 한다. 그러나, 너는 이것을 완전히 모두 느낄 수 있는가? 너는 이것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가? 단지 상상이라도 해봐. 나는, 나는 소령이란 말이야…….」
J-끼는 이 모든 장면을 직접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결국 주정뱅이에 부조리하고 무뢰한 같은 이 사람에게도 인간다운 감정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생각과 교양 정도를 고려해 보면, 그런 행동은 거의 위대한 일이라고까지 여길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술기운이 많이 작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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