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워프(Time Warp), 버뮤다 삼각지대, 엘도라도, X-파일, UFO. 나열한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그렇다. 불가사의다. 인간의 변덕도 이 단어로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날 밤, 또 잠이 오지 않았다. 커피 탓이 아니었다. 문 두들기는 소리와 현선이를 찾는 절규가 들리지 않자 이번에는 불안해서 잠이 안 오는 것이었다. 현선 엄마는 백합방에서 뭘 하며 지내려나? - P140

나는 혼란에 빠졌다. 승민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으나 거기에서 온 혼란은 아니었다. 내 안에서 고개를 드는 혼란이었다. 시계를 주웠을 때부터 나를 괴롭혀온 그 혼란이었다. 땅거미가 질 때 찾아드는 불안감과 비슷한 혼란이었다. 승민 옆으로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낯선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와락 열려버릴 것 같은 막연하고도 불길한 육감이었다. - P146

한이는 백합방으로 갔다. 보호사가 꽂은 주사에 정신을 잃고 이동 침대에 실려 갔다. 이는 병원의 문제 해결방식이었다. 당사자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 한이의 해결방식이 한이가 병원에 들어온 이유를 설명하는 거라면, 간호사실의 해결방식은 한이가 병원을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생각할 능력을 상실한 자가 바깥세상에서 생존할 길은 없는 것이다. - P185

"물품 트럭이 자주 와요?"
"한 달에 한 번, 특별히 주문하는 게 있으면 중간에 오기도 하고. 우리가 제법 큰 손님이라 소홀히 못하거든."
나는 웃었다. 그도 따라 웃었다. 웃고 나서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왜 웃었어?"
"정신병원 덕에 먹고사는 사람도 있다 싶어서요."
"있는 정도겠어. 많아. 조리실에 물건 대는 업자, 사식 대주는 업자, 보일러실에 기름 대는 업자. 봉투차도 있고." - P246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게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말하려 애쓰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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