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출신 좋은 사람들에게는 경우가 다르다. 그들은 가장 깊은 심연에 의해 민중들과 유리되어 있고, 이러한 점은 <출신 좋은 사람>이 갑자기 외부적인 상황에 의해 이전의 특권을 상실하고 민중들과 생활을 같이 해야만 하는 변화가 주어졌을 때에만 <완벽히> 지각할 수 있다. 비록 평생을 민중과 일한다 하더라도, 예를 들어 조건으로 제약을 받는 행정적인 형식 때문에 비록 40년 동안이나 매일같이 그들과 일 속에서 접한다 하더라도, 또는 은인의 모습이나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의 모습으로 우호적으로 지낸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결코 민중과 합치될 수 없다. 모든 것은 단지 시각적인 기만일 뿐이고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견해를 읽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내가 과장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옳다고 확신한다. 나는 책이나 사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것을 확신했고, 이 확신을 검증할 매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이것이 얼마만큼 옳은 것인가는 뒷날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 P373

이미 오래 전부터 나의 마음속에 불분명하게 생겨나 나를 따라다녔던 하나의 상념이 이제서야 처음으로 확실하게 밝혀졌고, 나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추측했던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설사 내가 흉악범이거나 종신형을 받은 죄수거나 특별 감옥의 죄수라도, 그들은 나를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특히 이 순간에 보았던 뻬뜨로프의 모습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당신들이 어떻게 우리의 동료입니까?> 하는 그의 질문에는 너무도 꾸밈 없는 소박함과 솔직한 의아스러움이 스며 있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 말 속에 어떤 비꼼이나 악의나 조소가 있는 것은 아닌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동료가 아니다. 그것뿐이었다. 너희는 너희 길로 가라.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다. 너희에겐 너희의 일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일이 있다는 것뿐이다. - P390

이 부류는 완전히 무관심한 죄수들이었다.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든 감옥에서 살든 그들에겐 마찬가지란 말이다. 물론 우리에겐 있지도 않은 일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아낌 아끼미치는 예외였다. 그는 심지어 마치 평생을 감옥 안에서 살 것처럼 갖추어 놓고 살고 있었다. - P391

그러나 그들이 보여 주는 반목의 중요한 요인은 편견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대하며, 죄수들의 야만성만을 보고 어떠한 장점이나 인간다운 면을 발견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은 환경의 힘과 운명에 의해 이러한 불행한 관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감옥에서의 우수가 그들을 질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 P394

작업은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 한 달 동안 소령은 우리 모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완전히 바꾸었고 우리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갑자기 J-끼를 감옥에서 자기에게 오라고 부른 일까지 있었다.
「J-끼!」 그는 말했다. 「내가 너를 모욕했다. 나는 너를 이유 없이 태형에 처했어. 나도 그것을 알고 있지. 나는 후회하고 있어. 너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겠나? 나, 나, 나는 후회하고 있다고!」
J-끼는 이해한다고 대답했다.
「너 이해할 수 있어? 나, 너의 상관인 내가, 너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서 너를 불렀단 말이다. 이것을 느낄 수 있나? 내 앞에 있는 <너는> 누구냐? 벌레! 어쩌면 벌레만도 못할지 몰라! 너는 죄수란 말이야!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자비로 된 소령이야! 너, 이것을 이해하겠는가 말이야?」
J-끼는 그것도 이해한다고 대답했다.
「자, 그런데 지금 나는 너랑 화해를 한다. 그러나, 너는 이것을 완전히 모두 느낄 수 있는가? 너는 이것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가? 단지 상상이라도 해봐. 나는, 나는 소령이란 말이야…….」
J-끼는 이 모든 장면을 직접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결국 주정뱅이에 부조리하고 무뢰한 같은 이 사람에게도 인간다운 감정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생각과 교양 정도를 고려해 보면, 그런 행동은 거의 위대한 일이라고까지 여길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술기운이 많이 작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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