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인 통계를 볼까요? 우리나라 1000대 상장사의 시이오(CEO) 중에 ‘스카이’ 대학(학부)을 나온 사람의 비율입니다. 유니코써어치라는 조사 전문 기업에서 발표한 건데요, 2007년에는 59.7%이던 것이 불과 6년 만에 뚝 떨어져서 2013년에는 39.5%가 됩니다. 3분의 1이 감소해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우리나라가 강력한 정부 주도 경제에서 자유 시장 경제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었어요. 바로 1997년의 외환 위기입니다. 흔히 ‘IMF 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 이후에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든가 하는 일이 벌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에서 정부의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요. 이후 기업에서 승진 가도를 달리던 사람들이 사장이 되면서, ‘스카이’의 비율이 뚝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 P106

왜 시이오 중에 ‘스카이’ 출신이 감소했을까요? 학벌보다는 실적이 좋은 사람이 유리해졌기 때문이지요. 물론 학벌의 가치가 없어졌다고 보는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하락했습니다. 정부 주도 경제가 끝나면서 연고의 중요성이 떨어졌거든요. 그 대신 개인의 내재적 가치, 예를 들면 시장 대응력이나 조직 적응력 등이 중요해진 겁니다. 학벌이 좋다고 해서 시장 대응력이나 조직 적응력이 좋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 P109

탈학벌의 원인 셋, 도련님·공주님의 출현

학벌과 ‘스펙’의 중요성이 낮아지는 세 번째 이유는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을 만나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우리나라 유명한 기업들의 채용 담당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는데요, 이분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있어요.

"도련님, 공주님이 너무 늘고 있다!"

‘스펙’ 좋고 허우대 멀쩡해서 뽑았는데, 뽑고 나서 보니 인간성이 그냥 ‘도련님’, ‘공주님’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거죠. 도련님, 공주님이란 수동적이고 자기만 알아서, 팀워크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을 말해요. 심지어 사원을 어디로 발령 보내면 부모들이 전화한대요. "우리 애를 왜 거기로 보냈나요?" 하고요.

대학에서 학기 말에 성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있죠? 대학 교수들에 의하면 학생이 아닌 부모가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법원의 부장 판사들도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 밑에 젊은 판사가 인사 배정되면 그 부모들이 찾아와서 "우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하며 인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요. (이것이 심지어 한류의 구성 요소가 된 것 같아요. 한류 ‘막장’ 드라마의 양대 소재가 ‘출생의 비밀’과 더불어 ‘부모의 간섭’ 이지요.)

혹시 ‘그런 현상이 뭐가 이상한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엄청난 세대 차의 증거라고 여길 수밖에 없겠네요. 지금 기성세대가 젊었던 시절에는 성인이 된 자녀의 사회생활에 부모가 나서서 간섭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요새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간섭이 너무 일상화된 나머지, 성인이 되었을 때 인격의 독립성이나 자율적인 판단 능력은 좀 부족해지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듭니다.

도련님, 공주님들은 대개 ‘스펙’은 좋습니다. ‘스펙’만 보고 뽑으면 이들이 뽑히기 쉬워요. 다지고 보면 ‘스펙’이라는 것은 인격의 독립성이나 자율적 판단 능력을 보여 주기는 힘들어요. 오히려 남들이 하라는 대로 했을 때, 예를 들어 부모나 선배나 교수가 조언하는 대로 했을 때 더 좋은 ‘스펙’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팀워크’의 원천이 되는 협업 능력을 봐도 그렇습니다. 요즘 인턴을 통한 채용이 늘어나잖아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인턴 제도가 노동 착취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미지가 안 좋긴 하지요. 인턴에게 허드렛일만 시킨다든가, 그러고 나서는 정규직 채용을 거의 안 한다든가 해요. 하지만 ‘일하는 것을 보고 나서 뽑자’는 것이 꼭 불합리한 방식은 아니죠. 만일 여러분이 기업에서 인턴을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면 어떤 점을 주로 보겠습니까? 두 가지, 즉 ‘업무 능력’과 ‘태도’를 볼 겁니다. 태도가 좋은 사람은 아마도 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는 사람일 거예요.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속하는 팀(team)이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사람이 드물어요. 그런데 ‘이런 건 팀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하는 것.’이라는 태도가 배어 있는 사람과,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뒷짐 지는 태도가 배어 있는 사람은 겪어 보면 대번에 차이가 나거든요.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바로 도련님, 공주님이지요. - P118

희소성이 있는 것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예전에는 중국어 배우는 사람들이 드물었어요. 그런데 이후 중국어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런 희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각광받았죠. 지금도 중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부족하다고 합니다. 중국 다음으로 뜨는 나라가 베트남이잖아요? 베트남이 뜨는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정치와 치안이 모두 안정된 드문 나라고, 교육 수준도 높은 편입니다. 그리고 인구가 9000만 명이 넘어요. 베트남어를 배워 두면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겁니다. 그다음 순서는 말레이시아일 가능성이 있는데요,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서로 비슷해서 한꺼번에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말레이시아 인구와 인도네시아 인구를 더하면 2억 5000만 명이 넘어요. 얼마 전에 제가 봉사 활동으로 상담을 한 적 있는 고3 학생이 대학에 합격했는데, 이란어 전공을 택했다는 거예요. 제가 그 학생보고 참 잘했다고 했습니다. 희소성 있는 능력에 도전해 보는 건 참 좋은 일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이란이 얼마나 잠재력을 가진 나라인지 상상도 안 해 보는데, 이 학생은 기꺼이 스스로 희소성을 만들어 가고 있잖아요? - P129

두 번째, 동료들을 포함해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해집니다. 사실 전문성은 정량화되기 어려운 요소가 많기 때문에 누가 어떤 입장에서 평가하는지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는데요,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평가에는 신뢰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주인공이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려고 면접을 봅니다. 말하자면 ‘경력직 채용 면접’이지요. 그런데 면접관이 갑자기 종이를 한 장 꺼내 드는데, 바로 예전에 이 주인공의 상사였던 패션업계의 거물이 쓴 편지예요. 자기에 대해 악담을 썼을까 봐 긴장했는데 뜻밖에도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라고 적혀 있었고 그 덕분에 주인공은 입사에 성공합니다. 여러분도 경력직 채용 면접관의 입장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어떤 사람을 채용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데 ‘내가 이 사람과 몇 년 일해 봤는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더라’라는 자료가 있다면, 이를 능가할 자료는 이 세상에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요새 우리나라 헤드헌터들도 개개인에 대한 평판 자료를 점점 많이 모으고 있어요. - P1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