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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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경우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열 살부터 청소년으로서의 고뇌와 성찰을 시작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때부터 싱클레어는 ‘한 세계’와 ‘다른 한 세계’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어색해한다. 싱클레어가 어릴 적 부모님의 집에서 경험한 밝은 세계는 신의 세계다. 부모님의 집은 경건함을 띠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다. 성경에서의 신은 ‘선한 신’으로서 선함과 질서를 대표한다. 따라서 이곳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신이 명한 의무를 수행하고, 죄를 지었으면 뉘우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선량한 세계다.


 ‘다른 한 세계’는 질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어두우면서도 이상한 세계로, 악과 혼란, 금기가 있는 곳이다. 또한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벗어나 있어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유발하기도 한다.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유혹적이다. 싱클레어는 두 세계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느낀 혼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정말이지 기이한 일은 이 두 세계가 서로 맞닿아 있고 너무나도 가까이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12p)

 한편 작품에서의 ‘두 세계’는 헤세가 살던 20세기 초 독일에 지배적이었던 ‘기독교적 가치관’과 하층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던 ‘개방적 태도’를 각각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데미안』은 널리 알려진 대로 성장 소설로 읽힐 수 있을 뿐 아니라, 보수적 가치관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대적 요구를 드러낸 것으로도 읽힌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작품에 나타난 두 세계를 사회적·개인적 두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밝은 세계'는 엄격한 윤리와 도덕을 기반으로 한 사회를 가리킨다. 이곳에서는 기독교적 권위를 바탕으로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모습이 나타난다. 한편, '어두운 세계'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따르지 않던 하층 민중들의 세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곳은 상대적으로 무절제하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인다.

 다음으로 개인적 측면에서 두 세계를 비교해보자. ‘밝은 세계’는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안정된 가정을 뜻한다. ‘다른 세계’는 밝은 세계에서는 금지된 다양한 욕구가 있는 곳이다. 가령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의 무리에 끼고 싶어서, 도둑질을 했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꾸며낸다. 밝은 세계에서의 악행이 여기에서는 미덕으로 인식된다. 그는 이 거짓말로 인해 크로머로부터 고초를 겪다가 데미안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온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악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비난하지 않았다. 단지 싱클레어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조건 없이 그를 도와주었다. 여기에서 데미안이 외부에 드러나는 밝은 세계를 이미 전혀 개의치 않아 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일이 있고 나서도 싱클레어에게서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생겨나는 고민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렇듯 청소년기의 고뇌와 성찰은 대체로 성장하면서 인식하는 자신의 욕망과 기존 사회의 질서와의 충돌에서 시작된다.

 사회적으로는 엄격한 도덕률로부터,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개성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데미안』은 일관되게 개인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긍정한다. 이는 ‘아브락사스’라는 거대한 새의 형상을 한, 선악을 초월한 상징적 존재로서 드러난다. 그러나 누구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의 내면을 면밀하게 탐구하는 것이라고 작품은 이야기한다. 그렇게 찾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데미안』이 주는 메시지다. 이는 의존과 자립, 미성숙과 성숙 사이에 놓인 청년들의 마음을 정확히 대변한다고 느껴진다. 나 역시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독립을 갈망하게 되었다. 내 경우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산 지 이제 4개월이 넘어간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경제적으로 독립하지는 못했다. 휴대폰 요금은 아버지께서 내주고 있고, 형에겐 가끔씩 돈을 빌리곤 한다. 이러한 의존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다. 작년에 한 교수님께서 강의 도중 “경제적 독립 없이, 인격적 독립 없다.”라는 말씀을 했는데, 나는 이 말에 참으로 공감하고 있다.

 결국 우리에게 어린 시절은 ‘잃어버린 낙원’(78p)이다.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새는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144p) 알을 깨고 나온 자는 담담히 운명을 받아들이고 뚜벅뚜벅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 없고 불안할 때가 많다. 싱클레어가 ‘소년의 사랑스러움은 내게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리라 느꼈으며, 나도 나를 절대로 사랑하지 않았다.’(109p)고 했던 것처럼, 스스로에게 자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도 어색하기만 하다. 문득 앞서 언급한 교수님께서, “나는 결코 20대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언젠가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가진 돈도 많지 않고, 직업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이 무척 불안했다는 것이다. 이를 듣고 비슷한 상황에서의 불안을 나만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위안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며 자신과 세계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자연히 사라질 불안감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을 표현하는 두 가지 명칭이다.”(133p) 고유한 자신의 심성(타고난 마음씨.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운명과도 같다. 그렇다면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곧 운명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의 본성은 결코 나의 삶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죽을 때까지 책임지고 가져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태어난 이후 내가 이제까지 겪었던 모든 경험과 이로 인해 떠올린 생각들 또한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유일무이한 것이다. 누구도 내가 겪은 경험들을 완전히 똑같이 겪지 않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오지도 않았다. 즉 나 자체가 완벽하게 고유한 맥락을 가진 하나의 복잡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각자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다.’(9p) 결국 주어진 본성을 인정하면서 생에 대한 주체적인 해석을 통해 의미를 찾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며, 언제 끝날지 모를 여정을 착실히 살아가는 것이 삶을 정직하게 대하는 인간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몇 달 전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서도 이와 비슷한 결심을 했었는데, 이번에 『데미안』을 읽으면서 다시금 삶에 대한 생각을 다듬을 기회를 얻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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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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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참신함만으로도 이 책에는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스스로가 무해한 사람이라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느낌뿐이다.

57 종국에는 특별한 뜻이 없는 은지의 말과 행동이 비수가 되어 이경에게 날아왔다. 은지가 뒤돌아 누워 있는 것조차도 이경을 슬프게 했다. 은지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이경을 상처 입힐 수 있었다. - P57

175 그때의 나는 내가 졸업 이후에도 변변한 일자리를 잡지 못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가며 대학원에 입학하게 될 것도, 그곳에서 처음으로 연애를 하고, 졸업과 취직을 하고, 오래 연애한 남자와 파혼하고 한동안은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리라는 것도 몰랐다. 아무렇지 않게 서른 살의 허들을 넘고 원래 그 나이로 살아온 사람처럼 능청을 떨게 될 것도, 최승자의 시집을 읽으며 간신히 버티던 스물셋의 가을 같은 건 어린 날의 유약한 감상이었다고 과거의 나를 평하게 되리라는 것도 몰랐다. - P175

181 당시는 몰랐지만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서 자라나던 공포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커졌던 것 같다.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멀리서 맴돌기만 했다.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알고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 P181

223 산다는 건 이상한 종류의 마술 같다고 혜인은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가 나타나 함께하다 한순간 사라져버린다. 검고 텅 빈 상자에서 흰 비둘기가 나왔다가도 마술사의 손길 한 번으로 사라지듯이. 보통의 마술에서는 마술사가 사라진 비둘기를 되살려내지만, 삶이라는 마술은 그런 역행의 놀라움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마술. 그건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는 가지만 다시 무에서 유로는 가지 않는 분명한 법칙을 따랐다. 그 룰을 알고 있는 이상 그저 꽃이 필 때 웃고 비둘기가 마술사의 손등에 앉아 있을 때 감탄할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면. 사실 사라졌다는 것이 너무도 교묘한 트릭이라면 어떨까. 그래서 언젠가 다른 마술들처럼, 마술사의 손길이 닿아 영영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새와 꽃이, 토끼가 나타난다면. 무대 뒤에 또다른 무대가, 역행의 마술이 가능한 무대가 있다면 어떨까. - P223

324 작가의 말_ 개인행동을 하고 싶었다. 나의 개인행동은 아무도 해치지 않으리라 믿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의도의 유무를 떠나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나, 때때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무심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나. 내 마음이라고, 내 자유랍시고 쓴 글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다. 어떤 글도, 어떤 예술도 사람보다 앞설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닌 어떤 무디고 어리석은 점으로 인해 사람을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겁이 났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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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31 1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연말이 되어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올해의 남은 시간이 조금 남았고, 이제 내일이 되면 또 다른 해가 새로 시작됩니다.
새로 시작하는 날들에는 좋은 일들과 기쁜 소식 자주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따뜻한 연말과 좋은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베텔게우스 2018-12-31 22:3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방문 감사해요!! 한 해 동안 알라딘 서재에서 교류하면서 참 좋았습니다. 서니데이님께 2018년은 어떠셨나요? 저는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많았지만 결국 모두 지나간 일이 되어 버리고, 어찌어찌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되네요. 그래도 좋았던 추억은 해를 넘어가도 잊지 않고 부디 잘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 2018-12-31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게도 2018년은 좋은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어떻게 여기까지는 왔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어요. 네, 좋은 일들은 계속 이어지고, 더 좋은 일들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인사 감사해요. 따뜻한 밤 되세요.^^

AgalmA 2019-01-01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저도 새해 인사 하러 왔어요^^ 서재에 뜸하게 나타나다 보니 자주 못 왔던 점 섭섭해하셔도 됩니다😂;
2019년 하시는 일 잘 풀리시길 바라고 건강하고 알찬 한해 되세요^^

베텔게우스 2019-01-01 23:57   좋아요 1 | URL
AgalmA님. 제 서재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섭섭하기보다도 쓰시는 좋은 글들. 특히 과학 서적에 관련된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도 올해는 여러 과학서적을 읽는 것이 목표입니다!

AgalmA님께서도 201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행복한 한 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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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밑줄긋기

46 지난 수십 년 신경과학과 행동경제학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인간을 해킹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인간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 결과 음식부터 배우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어떤 신비로운 자유 의지가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에 확률을 계산하는 수십억 개의 뉴런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인간의 직관‘이라고 과시해온 것이 사실은 ‘패턴 인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좋은 운전사, 은행원, 변호사라고 해서 교통이나 투자, 협상에 관한 마술적 직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함으로써 부주의한 보행자나 부적격 대출자, 부정직한 사기꾼을 알아보고 피할 뿐이다. 또한 인간 두뇌의 생화학적 알고리즘도 완벽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뇌는 어림짐작이나 손쉬운 방법, 그리고 현대의 도시 정글보다 아프리카 초원 시절에 맞춰진 시대착오적 신경회로에 의존한다. 좋은 운전사와 은행원, 변호사조차 때로는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는 게 당연하다. - P46

64 앞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재훈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평균적인 인간이 그런 끝없는 격변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의 근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변화는 늘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21세기 초 세계는 미친 듯 바빠지면서 온 지구는 스트레스라는 유행병을 앓고 있다. 고용 시장과 개인 직업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현실에 잘 대처해나갈 수 있을까? 아마도 사피에스의 정신이 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효과가 큰 스트레스 경감 기술ㅡ약물부터 뉴로피드백neuro-feedback(뇌파 측정을 통한 조절 훈련-옮긴이), 명상에 이르기까지ㅡ이 필요할 것이다. 2050년 ‘무용’ 계급이 출현하는 원인에는 일자리의 절대 부족이나 관련 교육의 결여뿐 아니라 정신 근력의 부족도 포함될 것이다. - P64

71 그러니 인간이 생산자로서도 소비자로서도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면, 인간의 육체적 생존과 정신적 안녕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우리가 해답을 찾기 시작하기 전에 위기가 전면적으로 분출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그때쯤이면 너무 늦을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전례 없는 기술적, 경제적 파괴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모델을 최대한 빨리 개발해야 한다. 이런 모델들은 일자리보다 인간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 많은 일자리들이 따분한 고역이고 구제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아무도 현금출납원을 평생의 꿈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을 보호하는 일이다. - P71

280 오늘날 과학자들은 도덕성이 사실은 진화 과정에서 나왔으며, 그 뿌리는 인류가 출현하기 전 수백만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한다. 늑대, 돌고래, 원숭이 같은 사회적 포유류는 모두가 윤리 규약이 있으며, 이는 진화 과정에서 집단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채택되었다. 가령, 늑대 새끼들이 함께 놀 때에도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있다. 새끼 한 마리가 놀이 상대를 너무 심하게 물거나 상대가 배를 보이고 누워 항복을 표시했는데도 계속해서 물면 다른 새끼들이 끼어들어 놀이를 막는다.

침팬지 무리에서도 우월한 개체들은 보다 약한 개체들의 소유권을 존중해야 한다. 만약 어린 암컷이 바나나를 발견하면 심지어 우두머리 수컷조차 대개는 자기가 먹으려고 훔치려 들지는 않는다. 이런 규칙을 어기면 자신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유인원들은 무리 안의 약자를 이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나서서 그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미국 밀워키 카운티 동물원에 사는 키도고라는 이름의 피그미침팬지 수컷은 심장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몸도 허약한 데다 어리벙벙했다. 키도고는 처음 이 동물원에 왔을 때 적응은커녕 관리사들의 지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다른 침팬지들이 키도고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는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종종 키도고의 손을 잡고 어디든지 그가 가야 할 곳으로 이끌었다. 키도고가 길을 잃었을 때는 큰 소리로 조난 신호를 보내면 다른 개체들이 달려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키도고의 주요 조력자들 중 하나는 무리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수컷, 로디였다. 로디는 키도고를 안내했을 뿐 아니라 보호해주기도 했다. 무리의 구성원은 거의 모두 키도고를 친절하게 대했지만, 머프라는 이름의 나이 어린 수컷 한 마리만 자주 키도고를 무자비하게 놀려대곤 했다. 그런 행동을 알아챈 로디는 머프 녀석을 쫓아내거나 팔을 바꿔가며 키도고를 감싸서 보호할 때가 많았다.

훨씬 더 감동적인 일은 코트디부아르의 정글에서 일어났다. 오스카라는 별명의 어린 침팬지는 어미를 잃고 혼자서 힙겹게 살고 있었다. 다른 암컷들은 자기 새끼를 돌보느라 아무도 오스카를 맡아 돌보려고 하지 않았다. 오스카는 갈수록 몸무게가 줄었고 건강과 활력을 잃어갔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때 무리의 우두머리 수컷인 프레디가 오스카를 ‘입양’했다. 이 우두머리 수컷은 오스카의 먹을 것을 확실히 챙겼고, 자신의 등에 오스카를 태우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유전자 검사를 해봤지만 프레디와 오스카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무엇이 이 무뚝뚝한 나이 많은 리더로 하여금 어미 잃은 젖먹이를 돌보게 만들었는지 우리로서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분명 유인원 리더들은 무리 중에서 약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구성원, 고아가 된 구성원을 돕는 성향을 발전시켜왔다. 성경이 고대 이스라엘인에게 "과부나 아비 없는 아이를 학대하지 말라"(출애굽기 22장 22절)고 가르치고, 선지자 아모스가 사회 지도층을 향해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를 학대한다"(아모스 4장 1절)고 책망하기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시작된 일이다.

고대 중동 지역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들 중에도 성경 속 선지자들보다 앞선 사례가 있었다. "살인하지 말라"와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수메르 도시 국가들과 파라오 이집트, 바빌로니아 제국의 법과 윤리 조항으로도 유명했다. 주기적인 휴식의 날도 유대인의 안식일 전통보다 훨씬 앞서 존재했다. 선지자 아모스가 이스라엘 지도층을 향해 압제적인 행동을 꾸짖기 1,000년도 전에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는 위대한 신들이 자신에게 가르쳐주기를 영토 내에 정의를 증명하고, 악과 사악함을 분쇄하며, 힘 있는 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것을 막으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 P280

307 그렇다면 세속주의의 이상이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세속주의의 가치는 진실이다. 단지 믿음이 아닌 관찰과 증거를 기반으로 한 진실을 말한다. 세속주의자들은 이 진실과 믿음을 혼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만약 당신이 어떤 이야기에 대한 강한 믿음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심리와 유년기, 뇌 구조에 관해서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려줄 수 있겠지만, 그 이야기가 진실임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 때 강한 믿음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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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24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텔게우스님,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차가운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베텔게우스 2018-12-25 19:5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세요~~~
 
만화 전략 삼국지 - 전60권 - 흑백
요코야마 미쓰테루 지음 / 대현출판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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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06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0권은 너무 많아요 ㅜㅜㅜㅜㅋㅋ

베텔게우스 2018-11-06 21:5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래봐야 만화책 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1-06 22:2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쉼 없는 분주함 속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
수영.전성민 지음 / 루이앤휴잇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성공과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삶을 살라고 연신 강조하더니 돌연 장자를 인용, ‘사심과 사리사욕을 버리라‘는 내용으로 마지막 챕터를 마무리하는데, 전체 맥락과 배치되어 다소 엉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삶에 대한 의욕을 북돋아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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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9-29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성공과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며 살되 큰 욕심은 버려라, 뭐 그런 뜻 같네요.

제목이 가슴에 와 닿네요.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 제 머릿속에 입력함.

저는 글의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자고 했다가 요즘은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자로 바꿨습니다. 또 어떻게 바뀔지 몰라요. ㅋ

베텔게우스 2018-09-30 09:52   좋아요 0 | URL
네, 제목 좋죠? ㅎㅎ 듣고보니 말씀하신 의도로 작가분이 쓰신 것 같은데 문맥상 너무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었네요 ㅜ

질보다 양인가요. 당분간 페크님 글 더 자주 읽을 수 있겠군요 환영합니다😃

서니데이 2018-10-09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의 페크님이 쓰신 댓글을 읽으면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잘 되고 싶은 마음을 줄이는 것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글날 휴일 즐겁게 보내셨나요.
베텔게우스님, 편안한 밤 되세요.^^

베텔게우스 2018-10-10 06:46   좋아요 1 | URL
두 분 댓글을 읽어보니 두 가지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을 종종 쓰는데,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간밤에 비가 왔네요. 오늘은 조금 쌀쌀할 것 같습니다. 서니데이님,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