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작은 일이라도, 자신을 칭찬하세요. 이럴 때 속으로 ‘이 정도가 뭐라고 칭찬을 하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가지고‘라고 평가절하하는 말이 들려올 겁니다. 그렇더라도 ‘아니야! 작은 일도 인정받을 가치가 있어‘라고 강하게 자신에게 말해줘야 합니다.
신념은, 타인과 하는 대화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변화한답니다. (...) ‘잘못했구나. 다음에 다르게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요. - P65

누구나 공동체에 처음 들어갈 때는 어색함과 불편함이 있지요. - P66

자신의 신념을 반드시 바꾸려고 하기보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가를 깊이 인식하고 그런 삶을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 P67

혼자서 밥도 먹어보고, 혼자 영화도 보고, 혼자 산책도 하고, 혼자 작은 물건을 살지 말지 결정하는 연습을 통해 이 신념을 녹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 그리고 해낼 때마다 큰 소리로 말해봅니다. "재연아, 참 잘했어. 수고했어. 멋져"라고 말입니다. 대화의 힘은, 눈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할 때 더욱 커집니다. 거울을 보고 스스로 하나씩 할 때마다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말해보세요. 자존감은 일상에서 성취하는 작은 것들의 누적을 통해 이루어짐을 꼭 기억하세요. 응원합니다. - P69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도전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패할 것 같은 신념은, 이 신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에서 그 회복이 시작됩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성공했거나 잘 마친 것들을 모두 써보는 것입니다.
(...) 30등이었다가 25등 하는 것도 성공입니다.
(...) 도전 앞에서 도망치려는 행동이 있었을 뿐, 그리고 과거의 그런 경험에서 학습한 수치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 P72

이유에 대한 설명을 변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들어보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도 스스로 용서해주는 너그러움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먼저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해보세요. 책임을 지는 것과 처벌을 받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처벌보다 행동에 대한 건강한 책임을 지도록 방법을 함께 논의해보고 용서와 화해를 배워가 보세요. 이 부분은 앞으로 우리가 연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처벌의 신념은 너무 딱딱하고 메말라서 외롭습니다. - P84

대화 훈련을 통해 희망하는 것은 ‘자동적 생각 그만두기‘가 결코 아닙니다. ‘자동적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기‘입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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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참고로,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인간이 도덕적 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탈선하게 만드는 교묘한 인지 전략을 8가지로 세세히 제시한다(Bandura. A., "Moral Disengagement in the Perpertration of Inhumantie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3(3), 1999). 첫 번째, ‘도덕적 정당화‘란 악행을 선행으로 포장하는 전략이다. 실상 악행임에도 불구하고, 이 행동이 사회적 . 도덕적 .종교적 선에 이바지한다고 믿는다. 신을 위해 살육을 정당화하는 성전(聖戰)이 대표적 예이다. ‘생명이 위험한 사람을 돕는 것도 종교적 선행이지만, 나의 종교를 탄압하는 자들을 죽이는 것도 종교적 선행이다. 둘 다 신을 위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비슷한 선행이다‘와 같이 생각한다. 두 번째, ‘유리한 비교‘란 더 큰 악행과 비교하여 해당 악행의 부당성을 사소하게 취급하는 동시에, 해당 악행을 했을 때의 이득이 그렇지 않을 때의 경우보다 클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악행의 장점은 크게 보고 단점은 작게 본다. 마스크를 버리는 일은 마스크를 홈치는 일보다는 별일 아니잖아. 그리고 마스크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으면 미화원들의 일감도 넘쳐나니, 이게 일석이조 아닐까?‘와 같이 생각한다. 세 번째, ‘완곡한 표현‘은 그 악행이 갖는 폭력성이나 험오감을 감추어서, 심지어 그럴싸하고 아름답게 꾸며서 해당 악행을 표현하는 것이다. 전쟁을 ‘청소‘라고 하거나, 따돌림 가해자들이 따돌림을 ‘참교육‘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 예이다. 네 번째, ‘책임의 전가‘는 악행을 명령한 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위에서 시켰으니까‘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 ‘책임의 분산‘은 악행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책임을 분산시킴으로써 일개 개인인 자신의 책임을 축소하는 것이다. ‘마스크 버리는 게 나뿐인가? 지금 내 눈 앞에만 3개나 있는데?‘와 같이 생각한다. 여섯 번째, ‘결과에 대한 축소, 무시, 왜곡‘은 악행이 미치는 피해를 사소하게 여기는 것이다. ‘따돌림을 당하면 우울증에 걸린다고 했지? 그런데 우울증은 감기라고도 하잖아. 감기 걸리는 게 별건가? 잘 이겨내면 되지.‘와 같이 생각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 ‘비인간화‘는 악행의 피해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음으로서, 마음 편하게 심지어 당당하게 피해자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유대인을 병원균으로 취급할 때, 가해자들은 ‘인간이 아닌 균에게‘ 가책 없이 악행을 저질렀다. 여덟 번째, ‘비난의 귀속‘은 악행의 이유를 상황이나 피해자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같이 따돌림을 하지 않으면, 내가 당할 수도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리고 개는 찐따라서 따돌림을 당할 만해요. 원인은 걔라고요.‘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들을 미리 배운 후, 이러한 전략들에 근거한 마음의 왜곡을 알아채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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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유가 있으면 학문을 닦아라

배우는 과정에 있는 제자들은 집에 들어가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오면 윗사람에게 공손해야 한다. 행동과 말이 조심스럽고 믿음이 있으며, 사람들을 널리 사랑하면서도 어진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것들을 행하고도 여유가 있으면 학문을 닦아야 한다. - P36

7. 아홉 가지 생각

군자는 생각해야 할 아홉 가지가 있다. 볼 때는 명확하게 보려고 생각하며, 들을 때는 또렷하게 들으려고 생각해야 한다. 따뜻한 얼굴빛을 마음에 두고 용모는 공손한 모습을 염두에 둔다. 말은 진실하기를 생각하며, 일은 경건하기를 생각하며, 의문에 대해서는 물을 것을 생각하며, 화가 날 때는 후환을 생각하며, 이익을 보면 이로운가를 생각한다. - P99

8. 군자에게 소중한 세 가지

군자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세 가지 도리가 있다. 몸을 움직일 때는 포악하거나 오만한 태도를 멀리하며, 얼굴빛을 바로잡을 때는 성실한 모습에 가깝게 하며, 말을 할 때는 비루하거나 도리에 어긋난 내용을 멀리하는 것이다. - P100

9. 몸을 수양하고 말을 실천하라

예는 절도를 뛰어넘지 않으며, 남을 공격하거나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허물없이 가까이 지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수양하고 자신이 한 말을 실천하는 것을 ‘선한 행실‘이라고 한다. - P100

군자는 배부르게 먹으려고 하지 않으며, 편안하게 거처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일은 민첩하게, 말은 신중하게 하며 도를 체득한 사람에게 나아가 자신을 바로잡으려고 하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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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많은 사람이 마음의 공허를 느낀다. 아파한다. 중심을 잡지 못한다. 세상이 마음을 안정되게 내버려두지도 않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도 어렵다. 단지 요즘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일용생활의 풍족함이 커졌음에도 왜 마음의 평안은 찾아오지 않는가? 마음은 내적인 안정과 외적인 정돈을 함께 요구하기 때문이다.
유교는 내성 외왕을 추구한다. 내적인 안정과 외적인 정돈을 함께 추구한다. 내적인 안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외적인 요소도 정돈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외적인 정돈이 내적인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그 둘은 함께 필요하다. 대략적으로 말하면, 종교는 내적인 안정을 추구하고 철학은 외적인 정돈을 요구한다. 이 책은 내적인 안정을 위한 유교의 방안을 소개한다. - P9

철학이 제시하는 외적 정돈의 방안은 시대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반면에, 종교가 제시하는 내적 안정의 방안은 시대가 변화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예컨대 AD 4세기 이후 전개된 유식 불교에서는 마음의 4분설을 제시하여 수행의 지침을 제시했는데, 그 의의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대상도 마음이 지어낸 것으로 본다면, 마음은 대상과 주관(대상의식)으로 이분된다. 그런데 주관에는 반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반성을 위해서는 매번의 경험을 저장하여 반성될 수 있게 하는 의식도 있어야 할 것이다. 철학에서는 그것을 통각이라고도 하고 자기의식이라고도 한다. 이리 보면, 마음은 대상, 대상의식, 자기의식, 반성의식으로 나눠진다. 유식 불교가 말하는 4분된 마음, 곧 상분, 견분, 자증분, 증자증분을 필자는 각기 대상, 대상의식, 자기의식, 반성의식으로 이해한다. 번뇌 10 망상은 기억이라는 반성의식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반성의식을 어떻게 작동시키는가에 따라 번뇌 망상의 제거와 마음의 안정이 가능할 수 있다. 필자는 불교의 수행론이나 유교의 수양론이 마음의 안정을 위한 반성의식의 작동에 관한 논의로 본다.
현대의 명상가들은 마음을 4분화하지는 않지만 의식을 4단계로 구분하고는 있다. 예컨대 자기가 화를 내는 것을 모르고 화를 내는 단계, 자기가 화난 것을 알아차리면서도 화를 내는 단계, 자기가 화난 것을 알면서 화를 억제하는 단계, 화를 내지도 않지만 화를 내는지의 여부를 알아차리지도 않는 단계가 그것이다. 이 각각의 단계를 명상가들은 무의식적 무능, 의식적 무능, 의식적 유능, 무의식적 유능이라고 표현하는데, 필자는 그것들을 심4분을 염두에 두고 무반성적 무능, 반성적 무능, 반성적 유능, 무반성적 유능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반성적 무능이나 반성적 무능의 단계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명상을 한다는 것은 마음 안정의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고, 이것은 반성적 유능을 위한 훈련에 착수하는 것이다. 반성적 유능의 단계에 이른 사람은 무반성적 유능의 단계에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이유교의 용어로 성인(聖人)과 현자(賢者)이고, 의상 법사의 말로는 십불(十佛)이자 보현(普賢)이고 대인(大人)이다. - P9

1절 유교 수양론의 특성

유교의 수양론은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함양한다‘(存心養性, 존심양성)는 말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선한 마음을 보존하여 선한 본성을 함양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선한 마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을 수시로 반성하면서 선한 마음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마음의 내적 성찰(內省, 내성)이다. 자기 마음의 성찰을 통해 선한 마음을 보존하고 선한 본성을 함양한다는 것은 성현이 되는 길이 자기 자신에게 있고 자기 밖에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일의 잘잘못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서 구한다‘(反求諸己, 반구제기)는 자세를 갖게 해준다.
유교에서 보는 이상적인 사람, 곧 안으로는 성인의 마음을 갖추고 있고,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보여주는 사람(內聖外王, 내성외왕)이 되기 위해서는 ‘내적 성찰‘과 ‘반구제기‘가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불교와 유학』의 저자인 라이용하이(賴永海)는 불교와의 비교 측면에서 ‘존심양성‘을 ‘수심양성‘(修心養性)이라고 표현하면서, 수심양성의 기본원칙이 ‘내성‘과 ‘반구제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19 "수심양성(修心養性)의 방법에 대하여 유가에서는 상당히 정비된 이론 체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이론 체계에서 두드러진 하나의 특징은 바로 주관적인 내성(內省)을 강조하는 데 있다. 이 점은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로부터 대단히 중시되었다. 공자는 단지 ‘안으로 살펴 꺼릴 것이 없는데, 무엇이 걱정이며 무엇이 두렵겠는가?"라고 생각하여, 자신에 대하여 그는 ‘나는 하루에 세 번 내 자신을 반성한다‘라고 하였다. 다른 측면으로 공자는 자주 제자들에게 ‘인을 행함에 자기로부터 말미암는다"라고 가르쳐,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유가의 수양이론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유가의 두 번째 성인인 맹자 및 수많은 유학자들은 모두 반구제기(反求諸己)를 대단히 중시하여 그를 수심양성의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으로 삼는다. 따라서 유가의 수양이론 가운데 수많은 구체적인 수행방법은 모두 이러한 기본원칙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기의 마음을 성찰하거나 잘잘못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구하는 일은 성실함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다. 성실함의 중요성은 맹자, 순자, 자사가 거듭하여 강조하였다. 관련 내용들을 예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맹자: "그런 까닭에 성실함(誠)은 하늘의 도이고, 성실함을 생각함(思誠)은 인간의 도이다. 지극히 성실하면서 감동시키지 않는 경우는 있지 않 20 고, 성실하지 않으면서 감동시킬 수는 없다."

순자: "군자가 마음을 기르는 것은 성실함(誠)보다 더 나은 것이 없고, 성실함에 이르게 되면 일이 없음이다. 오직 어짊(仁)을 지키며 오직 의로움(義)을 행한다."

자사: "성실함(誠)은 하늘의 도이고, 성실하려는(誠之) 것은 인간의 도이다."

자사: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본성(性)이라 하고, [본성에] 밝아짐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지는 것을 교(敎)라 한다.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실해진다."

내적 성찰과 반구제기를 통해 성실함에 이르는 것에 대해, 라이용하이는 그것이 천도에 도달하는 것이자 천인합일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誠)은 성인(聖人)의 본성의 근원적인 도덕규범으로 바로 ‘천도‘(天道)이다. 그리고 이른바 ‘사성‘(思誠, 성실을 생각함), ‘성지‘(誠之, 성실하려고 함), ‘명성‘(明誠, 밝아짐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짐)은 바로 내적인 성찰의 노 21 력이다. 유가에서는 이러한 주관적인 내성(內省)의 노력을 통하여 사람들이 ‘마음‘(心)과 ‘성‘(性)으로부터 천도에 도달하고, 그에 따라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중용』(中庸)에서 ‘오직 천하에 성(誠)이 지극해야 능히 본성을 다한다. 능히 그 본성을 다하면 [...] 가히 천지의 화육을 도우며, 가히 천지의 화육을 도우면 천지와 함께 한다‘라고 설하는 것과 같다. 이로부터 전통 유가의 수행방법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상노선 및 그 최고 경계는 바로 심성의 내적인 성찰을 통하여 천도‘에 도달하고, 나아가 ‘천인합일‘을 실현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필자는 이 책에서 천인합일의 방법과 경지를 ‘명상‘과 ‘명상이 실현하는 마음의 경지‘라는 관점에서 해설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천인합일을 목표로 하는 유교 수양의 3영역은 대체로 미발 공부, 이발 공부, 격물치지이다. 이 세 영역은 불교의 수행 공부의 세 영역과 상통한다고 말해진다. 라이용하이는 이정(二程: 정명도와 정이천)의 공부의 3영역을 불교의 삼학에 비교하고 있다:

"후기 선종의 ‘공안‘(公案, 선문답), ‘기봉‘(機鋒, 언변의 날카로움) 등에 대하여 이정(二程)은 또한 자못 반감을 지녔는데, ‘비록 내심을 바로 함에 경건함이 있으나, 방외(方外, 외부를 바로 잡음)로써 의(義)가 없기 때문에 말라빠지거나 방자함으로 흐른다‘고 보았다. 그러나 불교의 수행법에 있어서 이정은 찬양하고 동의하였다. 그들의 치학(治學)과 수양의 세 가지, 즉 ‘정좌‘(靜坐), ‘용경‘(用敬), ‘치지‘(致知)는 어떤 의의 상에서 불교의 ‘계‘(戒), 22 ‘정‘(定), ‘혜‘(慧) 삼학(三學)에서 유도해낸 것이다."

여기서 라이용하이는 불교의 삼학을 이정의 공부영역에만 비교하고 있지만, 이정의 사상을 계승한 주자의 공부영역이나 육상산의 사상을 계승한 양명의 공부영역도 역시 불교의 삼학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수양론도 역시 불교 수행론의 영향 아래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주자와 양명에게 있어서 수양의 3영역이 명상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해설하게 될 것이다.
유교 수양론이 불교 수행론과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불교 수행론은 대체로 여래선, 조사선, 분등선(分燈禪)으로 분류된다. 통상적으로 여래선은 인도의 깨달음을 얻은 많은 각자(覺者)들의 선법(禪法)과 달마의 선법을 지칭하고, 조사선은 남종 6조 혜능의 선법을 지칭하고, 분등선은 혜능 이후 분화되어 전개된 선종의 5개 종파(五宗)의 선법을 총괄하는 말이다. 이런 3종의 선이 각기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은 유교 수양론의 이해를 위해 중요하다. 3종선의 특색을 개괄하기 위해 먼저 중국 선종의 대표적인 선사들의 어록을 중심으로 중국 선불교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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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형의 만족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그것을 추구하는 우 32 리의 마음에는 물론 괴로움도 있지만, 기쁨과 희망도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려 애쓰며 결국은 늙을 것을 알면서도 꿈을 꾼다. 불완전한 삶 속에서도 우리는 기쁠 수 있고, 쓰레기가 가득한 바닷가에서도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감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완벽한 만족을 기다리느라 지금 있는 희망을 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진짜 행복하게 살려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빨강머리 앤과 다이애나 사이 같은 진정한 우정을 꿈꾸면서도 가꾸어야하는 관계들은 소홀히 하고, 예상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완벽한 어떤 것이 아니라면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삶의 여러 부분에서 단절을 선택하고 산다면, 고통스럽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지루하고, 우울하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된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완벽한 관계를 찾기보다 싸울 수도 있는 관계를 권한다. 괴롭겠지만, 불편하겠지만, 어쩌면 바라던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겠지만, 갈등을 포함하는 관계를 통해서 고립에서 나와 현실을 직시하고, 내 삶에 있는 불만족을 통과해서 살아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마찰이 있다는 것이기도 하며, 사랑한다는 것은 실망을 무릅쓴다는 것이기도 하 33 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고,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한다. 인간은 결코 희망을 놓지 못하는 존재라서 그렇다.
예상되는 고통을 피하느라 단절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지속되는 작은 고통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화를 못 내니 일상적으로 짜증을 낸다든가, 애도를 하지 못하니 그대신 멍해지고 무감각해진다든가, 부부가 갈등을 직면하지 못하니 점점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든가, 성폭력의 고통을 덮어두는 대신 몸의 감각이 없어진다든가 하는 식이다. 우리는 때때로 정말 중요한 결정을 피하고 싶어서 해야만 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도 하고, 본질적인 싸움은 피하고 빙빙 도는 싸움을 지루하게 오랫동안 반복하고는 한다. 시스템을 바꿀 만한 큰 싸움은 피하고 시스템 안에서 소소한 싸움을 계속 하거나, 삶을 행복하게 할 변화를 만드는 대신 불행한 삶의 구조 속에서 순간의 소소한 기쁨을 찾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은 지금 우리 사회의 특징인 것 같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명품 가방 소비는 줄지만 명품 지갑 소비는 늘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외식은 안 하지만 비싼 케이크 집에는 간다. 더 이상 혁명이 없고 전복이 없는 시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매우 개인적이고 매우 순간적인 대응만 있는 시대 말이다. 진짜 고통, 진짜 괴로움, 진짜 아픔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둘러싼 34 세상은 물론 자기의 내면과 단절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 되었다. 두렵거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는 대신 얼굴을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에 파묻는다든지 일이나 음식이나 운동에 중독이 되는 일은 얼마나 흔한가? 그리고 얼마나 쉬운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우울과 고립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더많은 심리 치료가 아니다. 심리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삶의 문제와 갈등이 물론 있지만, 일반적인 삶의 고통이 심리 치료의 주제는 아닌 것 같다. 어떤 고통은 치료가 아니라 감당을 해야 하고, 분석을 받을 것이 아니라 애도를 해야 하며, 치료사가 아니라 친구와 나누어야 한다. 심리 치료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 치료사에게 받는 진정어린 관심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역할을 소수의 심리 치료사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어떨까?
우리는 바라건 바라지 않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작용을 한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가까운 거리 때문에 개입이 가능하고, 사랑할 수 있고, 상처를 입거나 입힐 수 있다. 즉 싸울 수 있는 거리의 관계이다. 그리고 우울과 절망을 치유할 수 있는 관계 또한 싸움이 가능한 사정거리 안의 관계이다. 물론 관계의 단절이 필요한 때가 있다. 관계를 포기하는 것을 각오하고라도 자기의 존엄성을 지키기 35 위해서 관계를 깨야 할 때도 생긴다. 그러나 그 순간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도 싸움은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반복적인 싸움으로 인한 지겨움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정성을 들여서 싸워보기를 제안한다. - P31

그들의 경험 또한 사실일진대 인터넷 매체와 SNS를 통해 관계를 맺는 것이 걱정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은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쭉 온몸으로 감각하는 동물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간이 사이보그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는 포옹의 따스함으로 위로를 받고, 함께 어루만지고 호흡을 주고받으면서 감정 조절 능력을 배우고, 시각만이 아니라 촉각과 청각 등 여러 감각으로 세상을 경험하며, 언어뿐만 아니라 몸으로 하는 비언어로도 타인과 소통한다. 인터넷과 스크린으로 접촉 없이 만나는 관계와 달리, 진짜 접촉하는 관계는 만나고 부딪치고 찔리느라 불편하다. 그리고 그러한 불편함으로 인해 자신과 상대를 알아가고 38 성장하게 된다.
감각하는 몸, 소통하는 몸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필연적으로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며, 그 안에 무수한 밀물과 썰물도 있고, 다가감과 멀어짐도 있다. 접촉하고 개입하는 관계에서는 서로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주 부딪치고 건드려지기도 하지만 또한 쓰다듬기도 하고 보드랍게 안기도 한다. - P37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칭찬으로 고래를 춤추게 해야 할까? 고래가 춤을 춘다는 것은 동물원에서 사육된 고래에게나 해당하는 사항이고, 야생의 고래는 누가 칭찬을 한다고 해서 춤을 추지 않는다. 이른바 ‘X세대‘라고 불리는 대략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에게 칭찬을 들어보지 못해 서러운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자신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우면서는 ‘잘한다‘ ‘훌륭하다‘ ‘멋있다‘ 심지어 ‘너는 완벽해‘ 같은말들로 끊임없이 칭찬을 해서 아이들을 ‘춤추는 고래‘로 키웠다. - P38

어렸을 때 "너는 특별해"라는 메시지를 자주 들은 아이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실패를 겪고 "나는 어떤 점에서는 특별하고 어떤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방식으로 믿음이 교정되기도 하지만, "너는 특별해"라는 칭찬이 "나는 특별해야 해"라는 내면화된 명령이 되어 이 명령을 받들고자 노력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러한 내면의 명령이 아이 자신이 겪는 감정이나 경험에 대한 충분한 공감 없이 이루어질 때, 아이는 자기 존재를 걸고 스스로의 특별함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자라서도 자신을 칭송해 줄 타인을 필요로 하고, 타인에게 특별하게 보이려 노력하는 동안 내면의 자아는 공허한 채로 남게 된다. 이것이 자기애는 강하지만 내면은 공허한 나르시시즘의 특성이다. - P39

흔히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르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NPD)의 대표적인 특징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고, 타인들이 자신을 찬양하기를 바라며, 공감력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이 늘 문제가 되는것은 아니다. 발달 단계에서 아기의 유아적 자기애infantile narcissism는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이며, 이는 성장하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자아존중감을 키워나가는 데 기초가 된다. 그런 면에서 어떤 심리학자들은 유아적 자기애를 건강한 나르시시즘으로 부른다. 그 반면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시즘은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려하고 따라서 자기를 바라보는 타인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편 자신의 내적 경험은 빈 상태가 되고 자기의 불완전함이나 타인의 거부에 강한 정서적 반응을 나타낸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친구라는 특별한 관계가 사라지고 있는것과 나르시시즘이 증가하는 것이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나르시시즘의 원형인 신화 속의 나르시스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와 다른 타자로서의 친구가 아니라 자신의 거울로서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아주고 인정해 주는 등 자신의 공허한 내면을 채워주는 사람 말이다. - P40

펀치를 날릴 수도,
끌어안을 수도 있는 관계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싸움은 피하고자 한다. 싸움은 불편한 일이고, 싸워서 기분이 별로 좋았던 기억도 없으며, 싸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경험도 별로 없는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싸우는가? 아니다. 참고 참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하는 방식으로 싸운다. 또는 참기를 도 닦기의 수준으로 승화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심리학 공부를 하기도 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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