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사람이 마음의 공허를 느낀다. 아파한다. 중심을 잡지 못한다. 세상이 마음을 안정되게 내버려두지도 않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도 어렵다. 단지 요즘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일용생활의 풍족함이 커졌음에도 왜 마음의 평안은 찾아오지 않는가? 마음은 내적인 안정과 외적인 정돈을 함께 요구하기 때문이다.
유교는 내성 외왕을 추구한다. 내적인 안정과 외적인 정돈을 함께 추구한다. 내적인 안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외적인 요소도 정돈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외적인 정돈이 내적인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그 둘은 함께 필요하다. 대략적으로 말하면, 종교는 내적인 안정을 추구하고 철학은 외적인 정돈을 요구한다. 이 책은 내적인 안정을 위한 유교의 방안을 소개한다. - P9

철학이 제시하는 외적 정돈의 방안은 시대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반면에, 종교가 제시하는 내적 안정의 방안은 시대가 변화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예컨대 AD 4세기 이후 전개된 유식 불교에서는 마음의 4분설을 제시하여 수행의 지침을 제시했는데, 그 의의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대상도 마음이 지어낸 것으로 본다면, 마음은 대상과 주관(대상의식)으로 이분된다. 그런데 주관에는 반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반성을 위해서는 매번의 경험을 저장하여 반성될 수 있게 하는 의식도 있어야 할 것이다. 철학에서는 그것을 통각이라고도 하고 자기의식이라고도 한다. 이리 보면, 마음은 대상, 대상의식, 자기의식, 반성의식으로 나눠진다. 유식 불교가 말하는 4분된 마음, 곧 상분, 견분, 자증분, 증자증분을 필자는 각기 대상, 대상의식, 자기의식, 반성의식으로 이해한다. 번뇌 10 망상은 기억이라는 반성의식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반성의식을 어떻게 작동시키는가에 따라 번뇌 망상의 제거와 마음의 안정이 가능할 수 있다. 필자는 불교의 수행론이나 유교의 수양론이 마음의 안정을 위한 반성의식의 작동에 관한 논의로 본다.
현대의 명상가들은 마음을 4분화하지는 않지만 의식을 4단계로 구분하고는 있다. 예컨대 자기가 화를 내는 것을 모르고 화를 내는 단계, 자기가 화난 것을 알아차리면서도 화를 내는 단계, 자기가 화난 것을 알면서 화를 억제하는 단계, 화를 내지도 않지만 화를 내는지의 여부를 알아차리지도 않는 단계가 그것이다. 이 각각의 단계를 명상가들은 무의식적 무능, 의식적 무능, 의식적 유능, 무의식적 유능이라고 표현하는데, 필자는 그것들을 심4분을 염두에 두고 무반성적 무능, 반성적 무능, 반성적 유능, 무반성적 유능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반성적 무능이나 반성적 무능의 단계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명상을 한다는 것은 마음 안정의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고, 이것은 반성적 유능을 위한 훈련에 착수하는 것이다. 반성적 유능의 단계에 이른 사람은 무반성적 유능의 단계에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이유교의 용어로 성인(聖人)과 현자(賢者)이고, 의상 법사의 말로는 십불(十佛)이자 보현(普賢)이고 대인(大人)이다. - P9

1절 유교 수양론의 특성

유교의 수양론은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함양한다‘(存心養性, 존심양성)는 말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선한 마음을 보존하여 선한 본성을 함양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선한 마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을 수시로 반성하면서 선한 마음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마음의 내적 성찰(內省, 내성)이다. 자기 마음의 성찰을 통해 선한 마음을 보존하고 선한 본성을 함양한다는 것은 성현이 되는 길이 자기 자신에게 있고 자기 밖에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일의 잘잘못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서 구한다‘(反求諸己, 반구제기)는 자세를 갖게 해준다.
유교에서 보는 이상적인 사람, 곧 안으로는 성인의 마음을 갖추고 있고,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보여주는 사람(內聖外王, 내성외왕)이 되기 위해서는 ‘내적 성찰‘과 ‘반구제기‘가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불교와 유학』의 저자인 라이용하이(賴永海)는 불교와의 비교 측면에서 ‘존심양성‘을 ‘수심양성‘(修心養性)이라고 표현하면서, 수심양성의 기본원칙이 ‘내성‘과 ‘반구제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19 "수심양성(修心養性)의 방법에 대하여 유가에서는 상당히 정비된 이론 체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이론 체계에서 두드러진 하나의 특징은 바로 주관적인 내성(內省)을 강조하는 데 있다. 이 점은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로부터 대단히 중시되었다. 공자는 단지 ‘안으로 살펴 꺼릴 것이 없는데, 무엇이 걱정이며 무엇이 두렵겠는가?"라고 생각하여, 자신에 대하여 그는 ‘나는 하루에 세 번 내 자신을 반성한다‘라고 하였다. 다른 측면으로 공자는 자주 제자들에게 ‘인을 행함에 자기로부터 말미암는다"라고 가르쳐,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유가의 수양이론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유가의 두 번째 성인인 맹자 및 수많은 유학자들은 모두 반구제기(反求諸己)를 대단히 중시하여 그를 수심양성의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으로 삼는다. 따라서 유가의 수양이론 가운데 수많은 구체적인 수행방법은 모두 이러한 기본원칙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기의 마음을 성찰하거나 잘잘못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구하는 일은 성실함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다. 성실함의 중요성은 맹자, 순자, 자사가 거듭하여 강조하였다. 관련 내용들을 예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맹자: "그런 까닭에 성실함(誠)은 하늘의 도이고, 성실함을 생각함(思誠)은 인간의 도이다. 지극히 성실하면서 감동시키지 않는 경우는 있지 않 20 고, 성실하지 않으면서 감동시킬 수는 없다."

순자: "군자가 마음을 기르는 것은 성실함(誠)보다 더 나은 것이 없고, 성실함에 이르게 되면 일이 없음이다. 오직 어짊(仁)을 지키며 오직 의로움(義)을 행한다."

자사: "성실함(誠)은 하늘의 도이고, 성실하려는(誠之) 것은 인간의 도이다."

자사: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본성(性)이라 하고, [본성에] 밝아짐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지는 것을 교(敎)라 한다.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실해진다."

내적 성찰과 반구제기를 통해 성실함에 이르는 것에 대해, 라이용하이는 그것이 천도에 도달하는 것이자 천인합일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誠)은 성인(聖人)의 본성의 근원적인 도덕규범으로 바로 ‘천도‘(天道)이다. 그리고 이른바 ‘사성‘(思誠, 성실을 생각함), ‘성지‘(誠之, 성실하려고 함), ‘명성‘(明誠, 밝아짐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짐)은 바로 내적인 성찰의 노 21 력이다. 유가에서는 이러한 주관적인 내성(內省)의 노력을 통하여 사람들이 ‘마음‘(心)과 ‘성‘(性)으로부터 천도에 도달하고, 그에 따라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중용』(中庸)에서 ‘오직 천하에 성(誠)이 지극해야 능히 본성을 다한다. 능히 그 본성을 다하면 [...] 가히 천지의 화육을 도우며, 가히 천지의 화육을 도우면 천지와 함께 한다‘라고 설하는 것과 같다. 이로부터 전통 유가의 수행방법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상노선 및 그 최고 경계는 바로 심성의 내적인 성찰을 통하여 천도‘에 도달하고, 나아가 ‘천인합일‘을 실현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필자는 이 책에서 천인합일의 방법과 경지를 ‘명상‘과 ‘명상이 실현하는 마음의 경지‘라는 관점에서 해설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천인합일을 목표로 하는 유교 수양의 3영역은 대체로 미발 공부, 이발 공부, 격물치지이다. 이 세 영역은 불교의 수행 공부의 세 영역과 상통한다고 말해진다. 라이용하이는 이정(二程: 정명도와 정이천)의 공부의 3영역을 불교의 삼학에 비교하고 있다:

"후기 선종의 ‘공안‘(公案, 선문답), ‘기봉‘(機鋒, 언변의 날카로움) 등에 대하여 이정(二程)은 또한 자못 반감을 지녔는데, ‘비록 내심을 바로 함에 경건함이 있으나, 방외(方外, 외부를 바로 잡음)로써 의(義)가 없기 때문에 말라빠지거나 방자함으로 흐른다‘고 보았다. 그러나 불교의 수행법에 있어서 이정은 찬양하고 동의하였다. 그들의 치학(治學)과 수양의 세 가지, 즉 ‘정좌‘(靜坐), ‘용경‘(用敬), ‘치지‘(致知)는 어떤 의의 상에서 불교의 ‘계‘(戒), 22 ‘정‘(定), ‘혜‘(慧) 삼학(三學)에서 유도해낸 것이다."

여기서 라이용하이는 불교의 삼학을 이정의 공부영역에만 비교하고 있지만, 이정의 사상을 계승한 주자의 공부영역이나 육상산의 사상을 계승한 양명의 공부영역도 역시 불교의 삼학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수양론도 역시 불교 수행론의 영향 아래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주자와 양명에게 있어서 수양의 3영역이 명상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해설하게 될 것이다.
유교 수양론이 불교 수행론과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불교 수행론은 대체로 여래선, 조사선, 분등선(分燈禪)으로 분류된다. 통상적으로 여래선은 인도의 깨달음을 얻은 많은 각자(覺者)들의 선법(禪法)과 달마의 선법을 지칭하고, 조사선은 남종 6조 혜능의 선법을 지칭하고, 분등선은 혜능 이후 분화되어 전개된 선종의 5개 종파(五宗)의 선법을 총괄하는 말이다. 이런 3종의 선이 각기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은 유교 수양론의 이해를 위해 중요하다. 3종선의 특색을 개괄하기 위해 먼저 중국 선종의 대표적인 선사들의 어록을 중심으로 중국 선불교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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