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형의 만족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그것을 추구하는 우 32 리의 마음에는 물론 괴로움도 있지만, 기쁨과 희망도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려 애쓰며 결국은 늙을 것을 알면서도 꿈을 꾼다. 불완전한 삶 속에서도 우리는 기쁠 수 있고, 쓰레기가 가득한 바닷가에서도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감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완벽한 만족을 기다리느라 지금 있는 희망을 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진짜 행복하게 살려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빨강머리 앤과 다이애나 사이 같은 진정한 우정을 꿈꾸면서도 가꾸어야하는 관계들은 소홀히 하고, 예상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완벽한 어떤 것이 아니라면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삶의 여러 부분에서 단절을 선택하고 산다면, 고통스럽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지루하고, 우울하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된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완벽한 관계를 찾기보다 싸울 수도 있는 관계를 권한다. 괴롭겠지만, 불편하겠지만, 어쩌면 바라던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겠지만, 갈등을 포함하는 관계를 통해서 고립에서 나와 현실을 직시하고, 내 삶에 있는 불만족을 통과해서 살아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마찰이 있다는 것이기도 하며, 사랑한다는 것은 실망을 무릅쓴다는 것이기도 하 33 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고,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한다. 인간은 결코 희망을 놓지 못하는 존재라서 그렇다.
예상되는 고통을 피하느라 단절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지속되는 작은 고통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화를 못 내니 일상적으로 짜증을 낸다든가, 애도를 하지 못하니 그대신 멍해지고 무감각해진다든가, 부부가 갈등을 직면하지 못하니 점점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든가, 성폭력의 고통을 덮어두는 대신 몸의 감각이 없어진다든가 하는 식이다. 우리는 때때로 정말 중요한 결정을 피하고 싶어서 해야만 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도 하고, 본질적인 싸움은 피하고 빙빙 도는 싸움을 지루하게 오랫동안 반복하고는 한다. 시스템을 바꿀 만한 큰 싸움은 피하고 시스템 안에서 소소한 싸움을 계속 하거나, 삶을 행복하게 할 변화를 만드는 대신 불행한 삶의 구조 속에서 순간의 소소한 기쁨을 찾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은 지금 우리 사회의 특징인 것 같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명품 가방 소비는 줄지만 명품 지갑 소비는 늘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외식은 안 하지만 비싼 케이크 집에는 간다. 더 이상 혁명이 없고 전복이 없는 시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매우 개인적이고 매우 순간적인 대응만 있는 시대 말이다. 진짜 고통, 진짜 괴로움, 진짜 아픔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둘러싼 34 세상은 물론 자기의 내면과 단절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 되었다. 두렵거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는 대신 얼굴을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에 파묻는다든지 일이나 음식이나 운동에 중독이 되는 일은 얼마나 흔한가? 그리고 얼마나 쉬운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우울과 고립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더많은 심리 치료가 아니다. 심리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삶의 문제와 갈등이 물론 있지만, 일반적인 삶의 고통이 심리 치료의 주제는 아닌 것 같다. 어떤 고통은 치료가 아니라 감당을 해야 하고, 분석을 받을 것이 아니라 애도를 해야 하며, 치료사가 아니라 친구와 나누어야 한다. 심리 치료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 치료사에게 받는 진정어린 관심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역할을 소수의 심리 치료사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어떨까?
우리는 바라건 바라지 않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작용을 한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가까운 거리 때문에 개입이 가능하고, 사랑할 수 있고, 상처를 입거나 입힐 수 있다. 즉 싸울 수 있는 거리의 관계이다. 그리고 우울과 절망을 치유할 수 있는 관계 또한 싸움이 가능한 사정거리 안의 관계이다. 물론 관계의 단절이 필요한 때가 있다. 관계를 포기하는 것을 각오하고라도 자기의 존엄성을 지키기 35 위해서 관계를 깨야 할 때도 생긴다. 그러나 그 순간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도 싸움은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반복적인 싸움으로 인한 지겨움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정성을 들여서 싸워보기를 제안한다. - P31

그들의 경험 또한 사실일진대 인터넷 매체와 SNS를 통해 관계를 맺는 것이 걱정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은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쭉 온몸으로 감각하는 동물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간이 사이보그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는 포옹의 따스함으로 위로를 받고, 함께 어루만지고 호흡을 주고받으면서 감정 조절 능력을 배우고, 시각만이 아니라 촉각과 청각 등 여러 감각으로 세상을 경험하며, 언어뿐만 아니라 몸으로 하는 비언어로도 타인과 소통한다. 인터넷과 스크린으로 접촉 없이 만나는 관계와 달리, 진짜 접촉하는 관계는 만나고 부딪치고 찔리느라 불편하다. 그리고 그러한 불편함으로 인해 자신과 상대를 알아가고 38 성장하게 된다.
감각하는 몸, 소통하는 몸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필연적으로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며, 그 안에 무수한 밀물과 썰물도 있고, 다가감과 멀어짐도 있다. 접촉하고 개입하는 관계에서는 서로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주 부딪치고 건드려지기도 하지만 또한 쓰다듬기도 하고 보드랍게 안기도 한다. - P37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칭찬으로 고래를 춤추게 해야 할까? 고래가 춤을 춘다는 것은 동물원에서 사육된 고래에게나 해당하는 사항이고, 야생의 고래는 누가 칭찬을 한다고 해서 춤을 추지 않는다. 이른바 ‘X세대‘라고 불리는 대략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에게 칭찬을 들어보지 못해 서러운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자신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우면서는 ‘잘한다‘ ‘훌륭하다‘ ‘멋있다‘ 심지어 ‘너는 완벽해‘ 같은말들로 끊임없이 칭찬을 해서 아이들을 ‘춤추는 고래‘로 키웠다. - P38

어렸을 때 "너는 특별해"라는 메시지를 자주 들은 아이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실패를 겪고 "나는 어떤 점에서는 특별하고 어떤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방식으로 믿음이 교정되기도 하지만, "너는 특별해"라는 칭찬이 "나는 특별해야 해"라는 내면화된 명령이 되어 이 명령을 받들고자 노력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러한 내면의 명령이 아이 자신이 겪는 감정이나 경험에 대한 충분한 공감 없이 이루어질 때, 아이는 자기 존재를 걸고 스스로의 특별함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자라서도 자신을 칭송해 줄 타인을 필요로 하고, 타인에게 특별하게 보이려 노력하는 동안 내면의 자아는 공허한 채로 남게 된다. 이것이 자기애는 강하지만 내면은 공허한 나르시시즘의 특성이다. - P39

흔히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르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NPD)의 대표적인 특징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고, 타인들이 자신을 찬양하기를 바라며, 공감력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이 늘 문제가 되는것은 아니다. 발달 단계에서 아기의 유아적 자기애infantile narcissism는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이며, 이는 성장하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자아존중감을 키워나가는 데 기초가 된다. 그런 면에서 어떤 심리학자들은 유아적 자기애를 건강한 나르시시즘으로 부른다. 그 반면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시즘은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려하고 따라서 자기를 바라보는 타인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편 자신의 내적 경험은 빈 상태가 되고 자기의 불완전함이나 타인의 거부에 강한 정서적 반응을 나타낸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친구라는 특별한 관계가 사라지고 있는것과 나르시시즘이 증가하는 것이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나르시시즘의 원형인 신화 속의 나르시스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와 다른 타자로서의 친구가 아니라 자신의 거울로서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아주고 인정해 주는 등 자신의 공허한 내면을 채워주는 사람 말이다. - P40

펀치를 날릴 수도,
끌어안을 수도 있는 관계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싸움은 피하고자 한다. 싸움은 불편한 일이고, 싸워서 기분이 별로 좋았던 기억도 없으며, 싸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경험도 별로 없는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싸우는가? 아니다. 참고 참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하는 방식으로 싸운다. 또는 참기를 도 닦기의 수준으로 승화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심리학 공부를 하기도 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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