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안일로 지내는 사람들 우리가 지금 든 몇 개의 예는 너무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비평가가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어려운 생활 상태에서 쉬운 생활 상태로 옮겨진 사람들은 물론 한꺼번에 잔뜩 먹는 굶주린 인간처럼 ‘망쳐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훨씬 용이한 조건에 혜택을 입어온 사람들은 이 이점을 잘 이용하는 일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에서 구별한 두 경우 중 후자 즉, 용이한 환경 속에만 있었으며, 우리가 아는 한 아직 그 밖의 환경에 몸을 내맡긴 일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상이한 환경으로 옮아간다는 교란 요소가 배제되어 우리는 용이한 환경 조건이 나타낸 효과를 순수한 상태로 연구할 수 있다. 다음에 예시한 사례는 약 50년 전에 서양 관찰자의 눈에 비친 니아살핸드(말라위)에서의 용이한 조건의 효과에 대한 실견기이다.
"이 끝없는 삼림 속에 마치 숲 속의 새둥지처럼 서로 두려워하고, 또 공통의 적인 노예 상인을 두려워하는 작은 토인촌이 여러 군데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는 옷도 없고, 문명도 없고, 학문도 없고, 종교도 없는 원시인, 그리고 생각하는 일이 없으며, 걱정이 없는 만족된 자연아가 천진난만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외모로 보기에는 참으로 행복스러워 보이고 거의 아무런 부족도 느끼지 않는다. ······아프리카 인은 종종 게으르다고 비난당하나 그것은 말의 오용이다. 그는 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처럼 풍요한 자연 속에 있으면서 더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의 나태는 그의 납작한 코처럼 그 자신의 한 부분으로, 거북의 느린 동작이 비난 대상이 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비난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빅토리아조 시대의, 남서풍보다도 북동풍을 좋아하는ㅡ영국에선 남서풍이 부는 계절이 가장 좋은 계절, 북동풍이 부는 때는 그 반대ㅡ노력과 역행 생활의 전형이었떤 찰스 킹즐리(영국의 성직자, 그리스도교 사회주의를 주장했다)는 하루 종일 비파적을 불고 놀고 싶었으므로 ‘근면‘한 나라에서 도망쳐 나온 위대하고 유명한 「나라의 역사」라는 소설을 썼다. 그러나 이 태평한 자들은 고릴라로 퇴화하는 벌을 받았다. 로토스를 먹으며 안락하게 지내는 인종에 대해 그리스의 시인과 근대 서유럽의 도덕가가 나타내는 태도에 차이가 분명 있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호메로스의 경우에는, 로토스를 먹는 인종과 그들이 살고 있떤 로토스국이 가장 놀라운 유혹적 매력을 지닌 것이며, 문명화해가는 그리스 인의 앞길에 놓인 악마의 함성이었다. 이에 반해 킹슬리는 만사자유인을 모멸과 비난의 눈으로 바라보고, 일체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치 근대 영국인다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안락한 생활을 찾아 이동하는 이들 유민을, 물론 서유럽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이익을 위해 영국에 병합하여, 그들에게 바지를 입히고 성서를 주는 일이 절대적인 의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관심사는 시인도, 부인도 아닌 이해하는 일인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창세기> 처음 몇 장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로토스국이었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뒤 비로소 그들의 자손들이 농경과 도금술과 악기를 발명하게 된 것이다. - P121
130 시리아 사회의 전설에 보면 이스라엘 인의 신 야훼가 인간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엄중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왕을 시험한 이야기가 있다.
"하느님께서 밤의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솔로몬이 대답했다. "······지혜를 종에게 내려주소서" 솔로몬의 청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했다. "네가 이 일을 구하되 자신을 위한 장수를 구하지 않고, 또 자신을 위해 부를 구하지 않고, 또 자신의 적의 생명도 구하지 않고, 또 자신을 위해 불를 구하지 않고, 또 자신의 적의 생명도 구하지 않고, 오직 송사를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기 때문에 나는 너의 말대로 지혜롭고 현명한 마음을 주노라······ 너와 같은 자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네가 구하지 않은 부와 명예도 주겠노라.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열왕기 상> 3:11~13) 이 솔로몬 왕의 선택에 대한 전설은 ‘선민‘의 역사를 비유한 이야기이다. 정신적 이해력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 인의 군사적 용감함과 페니키아 인의 해양적 용감함을 능가했다. 그들은 이교도들 구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먼저 신의 나라를 구했다. 그러자 구하지 않은 모든 것도 그들에게 저절로 주어졌다. (<마태> 6:31~33, <누가> 12:29~31). 적의 생명에 대해 말하면, 필리스티아 인은 이스라엘의 수중에 들어갔다. 부에 대해 말하면, 유대인은 티로스와 카르타고의 유산을 이어받았고, 페니키아 인이 미처 알지 못했던 대륙에서 페니키아 인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대규모 상거래를 하게 되었다. 장수에 대해 말하자면, 페니키아 인이나 필리스티아 인이 모습을 감춘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도 아직 그들을 몰아낸 유대인은 그때와 똑같이 여전히 특수한 민족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고대의 시리아에 있어서 그들의 이웃사람은 세상의 도가니 속에 끌려들어가, 새로운 모습과 이름을 새긴 화폐로 다시 주조되었으나, 이스라엘은 이교도들을 거의 다 굴복시킨 이 연금술ㅡ세계 국가와 세계 교회와 민족의 이동이라는 도가니 속에서 ‘역사‘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ㅡ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았다. - P130
158 그러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손실이 도나우 합스부르크 왕국의 이익이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도나우 왕국의 영웅시대도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함께 종말을 고했기 때문이다. 오스만 세력이 붕괴됨으로써 동남 유럽에 다른 세력이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공지가 마련되었으나, 그와 동시에 도나우 왕국에 그때까지 자극을 주고 있던 압박에서 해방시켰다. 도나우 왕국은 왕국이 성립되도록 끊임없는 도적으로 자극을 준 세력의 뒤를 따라 쇠퇴하여 결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운명을 함께 했다. - P158
159-60 끝으로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의 중간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와 투르크의 대조적인 태도를 살펴보기로 하자. 1914~18년의 대전 후 그들은 함께 공화국으로서 새로 탄생했으며, 한때 서로를 적으로 여겨왔던 제국의 모습을 탈피했다. 그러나 유사한 점은 그것만으로 끝났다. 오스트리아 인은 패전 5개국 국민 중에서 가장 심한 고통을 입었으며 가장 순종적이었다. 그들은 새 질서를 극도의 단념과 극도의 회한으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에 반해, 투르크 인은 패전 5개국 중 유일하게 휴전 뒤 1년도 되기 전에 재차 무기를 들고 승전국과 싸움을 일으켜, 승전국이 그들에게 강요하려던 강화 조약의 근본적 개정을 요구하고 그 목적을 이룬 유일한 국민이었다. 그와 동시에 투르크 인은 그 젊음을 되찾고 그 운명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이미 퇴폐한 오스만 왕조 밑에서 망쳐진 채 버림받은 제국의 어느 한 지방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왕조로부터 버림을 받자 그들은 다시 한번 국경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 술탄의 오스만처럼 실력으로 선출된 지도자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그들의 조국을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1919~22년의 그리스·투르크 전쟁의 결전장이 되었던 인 에뉘(아나톨리아 고원의 서북단에 있는 거리)는 600년 전에 셀주크족의 마지막 왕이 오스만 왕조의 첫 왕에게 할당해준 본래의 세습 영토, 바로 그 ‘술탄의 새로운 시작의 땅 안‘에 있다. 수레바퀴는 완전히 일회전 한 셈이다. 첫 막이 올려질 때 나타났던 그 수레가 무대 뒤켠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 P159
165-6 살아 있는 유기체의 어떤 특정한 기관 또는 기능이 사용 불가능하게 되어 같은 종류에 속하는 다른 유기체에 비해 불리한 상태에 빠지게 되면, 이 도전에 대하여 다른 기관 또는 기능을 특별히 많이 사용하게 되므로, 결국 제2의 활동 분야에서 그 능력이 동료를 능가하게 되어 제1의 활동 분야상의 핸디캡을 메워주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장님은 눈이 보이는 정상적인 사람이 보통으로 가지고 있는 촉각보다도 그 촉각을 예민하게 발달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것과 거의 비슷한 현상이 사회 전체에서 발견된다. 우연에 의해서이건 자기의 행위에 의해서이건, 어쨌든 사회적으로 제재를 받고 있는 집단 또는 계급은 어떤 종류의 활동 분야에서 불리한 조건에 놓여지거나 그 분야에서 완전히 축출당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그런 도전에 대하여, 그 활동력을 다른 분야에 집중시킴으로써 다른 것을 능가하는 식으로 웅전하는 수가 많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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