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는 우도의 길은 무엇인가? ‘독만권서와 행만리로’의 길이다. 만 권의 독서를 하고 그 다음에 만 리의 여행을 해보는 것이다. 독서와 여행, 이 두 가지가 인간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만 하고 여행을 안 하면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다. 여행만 많이 하고 독서가 적으면 머리가 적을 수 있다. 머리에 뭐가 좀 들어 있으면서 여행을 하면 새로운 장면과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통찰이 오고 스파크가 튄다. - P320

① 적선 : 선행으로 복과 운을 저축하다
적선을 해야 팔자가 바뀐다.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실천이 어렵다. 적선이란 다른 사람 가슴에 저금을 해놓는 것이다. 동시에 자기 가슴에도 저금을 해놓는 일이다. 보다 차원 높은 적선은 자기 가슴에는 저금하지 않는 일이다. 적선하고도 다 잊어버리는 게 수준 높은 삶이다. 그러나 수준 높기 어렵다. 적선을 하면 자기 무의식에 기록을 하는 것과 같다. 마치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같다.
무의식은 자기가 한 일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추락해도 블랙박스에 기록된 비행기록은 남는다. 육체가 죽더라도 그 사람의 무의식에 기록된 정보는 남는다. 정보는 후손들에게 계좌이체 된다. 계좌이체 되는 장면은 꿈으로 나타난다. 태몽으로 나타난다. 죽은 조상들의 영혼은 후손의 뱃속으로 들어가 잉태된다. 잉태되는 순간의 꿈이 태몽이다. 태몽을 보면 그 조상들의 삶 전체가 농축된 데이터가 후손의 뱃속이라는 저장고에 입력되는 장면이다. 나는 태몽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래서 태몽을 무시할 수 없다. 사주팔자가 디지털이라고 한다면 태몽은 아날로그에 해당한다. 전자시계나 시계바늘 시계나 시간 가리키는 것은 동일하다. 태몽과 팔자는 대개 같이 간다.
적선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전쟁이다. 난리가 나면 평소에 쌓인 개인감정을 정리하게 된다. 한국전쟁 때 전남 영광에서는 4만 명 이상이 죽었다. 당시 영광 인구가 12만 정도였다고 하는데, 4만 명 이상이면 웬만한 성인 남자 328 는 거의 죽었다고 봐야 한다. 공식적인 기록에는 2만 명 남짓 죽었다고 되어 있지만, 이는 좌익이 우익을 죽인 숫자이다. 우익이 좌익을 죽인 숫자도 현지인들의 중언에 따르면 대개 2만 명 남짓이다. 이 후자의 2만 명은 공식 기록에서 빠져 있다. 얼마나 처절한 기록인가. 작년에 영광에 답사를 갔다가 산비탈의 밭에서 일하는 노인을 만났다. 82세였다. 한국전쟁 당시 중학교 3년생이었다고 한다.
"어르신 6.25 때 사람 많이 죽었죠? 어르신 동창들도 많이 죽었습니까?"
"많이 죽었지. 나만 빼고 다 죽었어."
"어르신 혼자 살았단 말입니까."
"응. 우리 반에서 나 혼자만 살아남고 모두 다 죽었어."
어린 학생이 무엇을 안다고 죽였을까. 아이에게 무슨 이념이 있고 사상이 있었겠는가. 그만큼 전쟁은 처절하고 한편으로 인간의 무식과 잔인함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영광 읍내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대선당 약방은 살아남았어."
"살아남은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양반은 인심이 좋았어. 당시 약방을 했으니까 돈도 있었지. 집에 머슴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 머슴들에게 잘 했어요. 머습들과 밥도 같이 먹었지. 겸상을 했어. 자기가 밥 먹다가 머슴이 옆에 보이면 ‘이리와 같이 먹게.’ 하면서 겸상을 했어. 담배도 나눠 피웠지. 자기 담배는 궐련 담배였고, 머슴들은 대개 봉초 담배를 피웠는데, 머슴들을 보면 자기 궐련 담배를 피우라고 건네주고, 머습들 피우던 봉초 담배를 자기가 피우곤 했지."
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이 내려와 머슴들 8명을 한 조로 만들었다. 8명 뒤에는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 한 명이 총을 들고 뒤따랐다. 8명의 머슴들이 읍내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그 집주인에 대하여 품평을 하였다. 평소에 인심 잃었던 사람들은 ‘이 놈 나쁜 놈 329 이다.’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면 즉결처분이었다. 대선장 약방 주인은 평소에도 덕인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그 참혹한 즉결처분의 상황에서 평소 적선해놓은 대선당 약방 주인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담배 바꿔 피운’ 적선이다.
지난 탄핵과정도 혁명적인 상황이었다. 탄핵정국에서 불려나가 곤욕을 치렀던 고위 인사 A씨. 검찰조사에서도 여러 번 불려 다녔다. 최근에 얼굴 볼 기회가 있어서 관상을 보니 의외로 찰색이 좋다.
"팍 늙은 줄로 알았는데 어찌 이리 혈색이 좋습니까?"
"아내 공덕입니다. 사건이 나 보니까 집사람이 적선해놓은 공덕이 작용한다는 걸 알았어요. 조 선생님 이론대로 팔자 바꾸려면 적선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는 계기였어요."
A씨의 부인은 충청도 양반집안의 딸이었다. 평소에 차분하면서도 겸손한 인상이었다. 명절이 닥치면 아파트 관리인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씩 돌렸다. 더운 여름에는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해둔 수박을 두세 통씩 1층 관리실에 가져다주곤 하였다. 겨울에는 선물로 들어온 인삼차 박스라도 관리실에 건넸다. 아파트 관리인이 다른 동으로 옮기면 일부러 찾아가서 3~4명 정도의 저녁식사 값을 봉투에 넣어 쥐여주곤 하였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도 마주치면 그냥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주변의 과일가게에서 과일 살 때도 물건 값을 절대 깎지 않았고, 약간 바가지를 씌우더라도 모른 체하고 달라는 대로 값을 지불하였다. ‘남들 보기에 나는 상류층인데 이렇게라도 적선한다고 생각해야지’가 부인의 생각이었다.
탄핵이 터졌다. 기자들이 아파트 입구에 몰려들면 관리인 한 명은 기자들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고, 다른 관리인은 A씨가 평소 모르고 있었던 지하 이동통로를 통해 다른 동으로 몰래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퇴근 시간 무렵에 방송중계차가 아파트 입구에 대기하고 있으면 관리인들이 부인에게 전화해서 ‘상황이 이렇습니 330 다.’하고 알려주었다. 그러면 A씨는 그날 집에 오지 않고 호텔에서 숙박하였다. 검찰조사 받으러 가는 날, 새벽에 부인이 꿈을 꿨다. ‘펄펄 끓는 물에 계란을 삶는데,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는’ 꿈이었다. 그래서 걱정이 안 되었다고 한다. 배우자가 후덕하여 남편이 덕을 본 경우이다.
불교에서는 전생이라고 말하지만,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전생은 조상에 해당한다. 윗대 조상들(특히 증조대나 고조대)이 적선을 많이 한 사람들의 후손들은 아우라가 있다. 대개 성격도 차분하면서 겸손한 편이고 얼굴색이나 머리 뒤쪽에 밝은 빛이 감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는 일이 잘 풀린다. 뒤로 넘어져도 돈 있는 데로 넘어진다고나 할까. 친가나 외가 쪽에 적선을 많이 해놓은 조상들이 있는 집안의 후손들 팔자를 보면 대개 재복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게 참 신기하다. 팔자에 재복이 있으면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돈이 붙는다. 조상들이 뿌려놓은 재물을 갑절로 이자를 쳐서 후손이 받는 것 같다.
적선을 많이 해야 팔자를 바꾸고 집안이 잘된다는 명제는 이론이 아니라 500년 임상실험 결과(?)다. 적선은 재물로도 하고 마음으로도 한다. 평소 성질 안 내는 것도 적선이고, 고통을 들어주는 것도 적선이다. 강한 적선도 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을 살려주는 것이다. 죽일 사람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적선이다.
적선이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자기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갖도록 투자하는 이치와 같다. 주변이 우호적인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으면 그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덕이 있다는 것은 자기 둘레에 우호적인 사람의 층이 두껍게 쌓여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자기를 보호하는 ‘외호’가 두텁다는 말이다.

② 스승 : 눈 밝은 스승이 대낮의 어둠을 밝힌다
주유천하라는 말이 있다.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이다. 왜 주유천하를 하는가?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그냥 앉아만 있어서는 선생을 만나기 어려우니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나를 지도해줄 선생님이 어디 계시는가 찾으러 다니는 것이 주유천하의 개념이다. 여기에 전제가 있다.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선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필요를 느껴야지 선생도 찾는다. 왜 선생을 찾아야 할까? 그냥 살아도 되지 않겠는가. 선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뭔가 갈급한 게 있는 사람들이다. 갈증이 없는 사람은 선생이 필요 없다. - P327

④ 독서 : 강한 날에는 경전을, 부드러운 날에는 역사책을 읽는다

운이 나쁠 때는 밖에 나가면 안 된다.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 어떻게 집에 있느냐, 독서를 하면서 지내야 한다. 운이 안 좋을 때는 독서가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되도록 사람을 안 만나는 게 좋다. 만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 운이 좋을 때는 길에서도 자기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지만, 운이 좋지 않을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해가 되기 쉽다.
독서는 재미있는 책부터 읽어야 한다. 무협지라도 읽는 것이 안 읽는 것보다는 낫다. 옛날 사람들은 ‘유일독사, 강일독경’이라고 하였다. 마음이 편안한 날에는 역사책을 읽고, 마음이 심란할 때는 종교 경전을 읽는다는 말이다.
편안하면 나태해지기 쉽다. 이때는 역사책을 본다. 역사에는 고비가 기록되어 있다. 그 고비를 어떻게 넘기고 어떻게 대처했는가가 역사책에 나온다. 해이해진 마음에 긴장과 경각심이 생겨난다. 또 판단 사례를 많이 읽다 보면 실전에 부딪혀서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가늠이 된다.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할 때는 경전을 읽는 게 역시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넘치지 않게 한다. 경전은 사서삼경과 같은 책들이다. 기독교로 치면 성경이고, 불교로 치면 금강경, 법화경, 능엄경과 같은 경전들이다. 도교로 치면 도덕경이나 장자도 된다. 경전을 읽을 때는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좋다. 자기 소리를 자기가 귀를 통하여 듣는 게 더 효과가 있 338 다. 서라운드 효과이다. 큰 소리로 읽으면 정신이 집중되는 효과가 있어서 마음속에 쌓여 있는 근심 걱정도 줄어든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 생긴다. 중세 시대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독서를 통하여 불운을 견뎌낸 인물이다. 서기관으로 일하던 마흔셋 나이에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10년 치 봉급의 벌금을 물고 감옥에 갔다. 피렌체에서 쫓겨나 시골구석에서 처자식을 데리고 생계를 이어야 했다. 낮에는 주막집에서 장돌뱅이들과 어울렸지만, 밤이 되면 흙으로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책이 가득한 서재로 돌아가 독서에 몰입하곤 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서 그 대목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예절을 갖춘 복장으로 몸을 정제한 다음, 옛 사람들이 있는 옛 궁전에 입궐하지… 그곳에서 나는 부끄럼 없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곤 하지. 그들도 인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대답해준다네.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네."
만약 마키아벨리가 독서하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이 시절에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독서를 해서 팔자를 바꾼 또 하나의 사례는 고 신영복 선생 이야기다. 그는 소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년간 옥살이를 하는 고초를 겪었다. 보통 사람이 20년간 감옥살이를 하면 대개 폐인이 되고 만다. 그러나 신 선생은 20년간 수많은 독서와 사색을 하면서 거듭나게 된 것 같다. 그의 저서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 《강의》 등의 책을 읽다 보면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과 달관이 행간마다 배어 있다. - P337

⑥ 지명 : 내 삶의 지도는 스스로 읽을 줄 안다
내가 밴텀급인가, 미들급인가, 헤비급인가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크게 헛손질을 하지 않는다. 신의 섭리는 세 가지로 나타난다. 지분, 지지, 지족이다. 자기 분수를 알고, 그칠 줄을 알고, 만족할 줄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지명이다. 팔자를 알고 있으면 이 세 가지가 어느 정도는 된다. 인생의 시행착오는 자기 분수를 모르고 과욕을 부리는 데서 온다. 과욕을 부리는 것을 ‘적극적’이라고 착각하고, 분수를 지키려는 노력을 ‘소극적’인 태도로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다. 팔자의 핵심은 때를 아는 것이다. 내 인생이 지금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눈 내리는 한겨울에 씨 뿌리려고 덤벼드는 사람은 때를 모르는 사람이다.
문제는 자기 팔자를 아는 일이다. 자기가 직접 사주명리학을 공부해서 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게 안 되면 잘 보는 전문가를 만나서 아는 방법이다. 전자가 되었든 후자가 되었든지 간에 자기 팔자와 그릇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숙지하고 있는 게 인생의 지혜이다.
관운이 없고 선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돈 좀 있다고 선거판에 나가서 몸 축나고 돈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자기 팔자를 모르다 보니 수업료를 많이 내야 하는 것이다. 원래 인생은 수업료를 내고 배워야 하지만, 자기 팔자를 안다는 것은 수업료를 좀 덜 내고 알자는 노선이다. - P340

나의 팔자는 글 쓰는 일이다. 쓰기 싫다는 생각도 더러 많았지만 팔자이다 보니 쓰는 것이다. 글 쓰는 일 외에 다른 일은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운전도 못 한다. 자기 팔자를 대강 안다는 것은 ‘오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수를 알아 넘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어디 용하다는데 가서 아들 팔자를 보니까, ‘이 아들은 붓으로 먹고 살겠소.’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한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40년을 지나 보니까 그 말이 맞다. 글 쓰는 팔자에서 만족하고 더 이상 욕심내면 안 된다고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인생에서 오버만 하지 않아도 큰 지혜를 터득한 셈 아니겠는가.
이상 팔자 바꾸는 방법 여섯 가지를 정리해보았다. 30여 년 동안 고금의 문헌들을 보고 수없이 여행하고 만난 사례들을 정리한 결과이다. 이 여섯 가지를 염두에 두고 조금이라도 일상에서 실천하며 꿋꿋이 걷다 보면, 인생길 어디쯤에서 변화된 ‘나’와 맞닥뜨리지 않겠는가.​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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