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악했을 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악한 자도, 선인도, 비열한 자도, 정직한 자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가 없었다. 영리한 인간은 진정 아무것도 될 수 없고 단지 바보들만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는, 비뚤어지고 무엇에도 쓸모없는 위안으로 나 자신을 흥분시키면서, 나만의 구석에 처박혀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 19세기의 영리한 인간은 도덕적으로 절대 어떤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될 의무가 있다. 성격을 가진 인간, 즉 활동가는 대개 모자라는 인간들이다. - P442
나는 예전에는 이 방에 살았으나 이제는 이곳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 P443
당신께 맹세컨대,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이것은 병이다. 진짜 완전한 병이다. 인간의 일상 생활에는 평범한 인간의 의식만으로도 충분하다. 즉 불행한 19세기에 태어나 살고 있는, 그것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계획된 도시(도시는 인위적으로 계획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뻬쩨르부르그에 사는, 이중의 불행을 짊어진 지식인들은 그들 몫으로 주어진 의식량의 2분의 1, 4분의 1만으로 충분하단 말이다. 소위 능력 있는 사람들과 실무자들이 사는 데 필요한 정도의 의식이라면 충분할 것이다. - P444
선한 일에 대해, 그리고 이 모든 <아름답고 숭고한 것>에 관해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나는 더욱더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었고 그곳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일들이 나에게 마치 우연처럼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었던 것처럼 발생한 데에 있다. 마치 이것이 나의 정상적인 상태이고, 결코 병도 타락도 아닌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러한 타락과 싸움을 벌이고 싶은 욕망이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은 이것이 정상적인 나의 상태라는 것을 내가 거의 믿게 되는 것으로(아마도 사실은 믿었을지도 모른다) 끝났다. 그런데, 처음 얼마 동안은 이 싸움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아 내야 했는지 모른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살면서 내 자신에 대해 이것을 비밀로 했다. 나는 수치스러웠다(심지어는 지금도 수치스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은밀한, 비정상적인 비열함에서 오는 쾌감을 느꼈고 어떤 기분 나쁜 뻬쩨르부르그의 밤에 방구석으로 돌아와서는 오늘 또다시 추잡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그리고 저지른 일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의식했으며, 이것으로 인해 내면적으로 은밀하게 자신을 갉아먹고, 갉아먹으며 괴롭히고 고통을 주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 쓰라린 비애는 어떤 치욕스럽고 저주받을 달콤함으로 바뀌었고, 드디어는 결정적이고 진지한 쾌락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렇다. 쾌락으로, 쾌락으로 말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나는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도 이 같은 쾌락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설명하겠다! 이 경우의 쾌락이란 바로 자신의 비하를 너무나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는 데서 오는 것이다. 즉 당신 스스로 마지막 벽에 다다랐다는 것을 느끼며, 이것이 추잡한 일이지만 달리 방도가 없고, 이미 당신에게는 출구가 없다는 것, 그리고 결코 당신은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다른 것으로 바뀔 수 있는 시간과 믿음이 남아 있다 할지라도, 당신은 아마도 변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며, 원했다 할지라도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변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결국 이 모든 것이 강화된 의식의 정상적이고 기본적인 법칙에 의해, 그리고 이러한 법칙들로부터 기인하는 무기력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며, 이때 당신은 단지 다른 것으로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강화된 의식의 결과로 다음과 같은 일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비열한 인간이, 자신이 실제로 비열한 인간이란 것을 느끼고, 이것을 위안처럼 여기고 있다면 이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그만두겠다……. 에이, 쓸데없는 말을 지껄였다. 나는 무엇을 설명하려는 건가? 이때의 쾌락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나는 설명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끝까지 가볼 것이다! 나는 그래서 손에 펜을 잡은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대단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나는, 곱사등이나 난쟁이처럼 의심이 많고 성을 잘 낸다. 그러나 정말로 나에게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누군가 내 뺨을 때리는 일이 일어났다면, 아마도 나는 심지어 이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말하는 거다. 아마도 나는 이때 내 특유의 쾌락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물론 절망의 쾌락을 말한다. 절망 같은 것에도 가장 열렬한 쾌락들이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막다른 골목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낄 때 특히 그렇다. 그리고 따귀 같은 것을 맞는 바로 그 때,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을 온통 기름칠해 버린 것 같은 의식을 느끼고 답답해 한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모든 일에 죄가 있는 것은 그 첫째가 바로 나구나>라고 느끼면서 끝나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죄 없이 죄의식을 느끼는 일은 흔히 말하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자면 무엇보다도 치욕적인 일이다. 내게 죄가 있다. 왜냐하면 첫째로, 나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보다 영리하기 때문이다(나는 항상 내 주위의 모든 이들보다 내가 영리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때때로 심지어 이 사실을 수치스러워했다는 것을 믿어 주기 바란다. 적어도 나는 전생애를 통해 웬일인지 옆을 보고 살았고 절대로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내게 죄가 있다. 만인 내게 관대함이 있었더라면, 그것이 아무 쓸모 없다는 의식 때문에 나만 더욱더 고통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내 도량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용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욕을 준 사람은, 아마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나를 때렸을 것이며, 자연의 법칙이란 가혹한 것이기 때문이다. 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법칙이란 어쨌든 치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완전히 옹색해지기를 원했다 할지라도, 정반대로 나를 모욕한 사람에게 복수하기를 원했다 할지라도, 나는 그 무엇으로도 그 누구에게도 복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도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는 결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무엇 때문에 결심을 할 수 없었을까? 이것에 관해 나는 특별히 두어 마디만 하고 싶다. - P445
예를 들어 이 쥐 또한 모욕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그런데 쥐는 거의 항상 모욕을 받고 있다). 그리고 또한 복수하기를 갈망한다고 해보자. 쥐 내면에서 증오감 같은 것은, 아마도 자연과 진실의 인간보다 더욱더 깊이 쌓이게 될 것이다. 모욕을 준 이에게 이와 같은 증오심으로 복수하려는 혐오스럽고 저열한 욕구는 아마도 그 자연과 진실의 인간보다 이 쥐 내부에서 더욱더 추악하게 용솟음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자연과 진실의 인간은 자신의 타고난 우둔함 때문에, 아주 단순하게 자신의 복수를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쥐는 자신의 날카로운 의식의 결과로, 이런 경우 정당성을 부정한다. 우리는 마침내 문제의 본질에 다다르게 되었다. 바로 복수라는 행동이 그것이다. 불행한 쥐는 원래의 혐오스러움에 덧붙여 혐오스러움만큼이나 많은 질문과 의심 등의 형태로 자신의 주위에 이미 장벽을 쌓아 올렸다. 그 쥐는 한 가지 문제에 다른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계속 덧붙여서, 그 주위에는 어떤 운명적인 영문 모를 일과 악취 나는 진흙탕 같은 것이 쌓이게 된다. 이것은 회의, 불안, 그리고 직선적인 사람들이 내뱉은 침으로 구성된 것이다. 직선적인 사람들은 환희에 차서 그 쥐 앞에 선 채 재판관과 독재자처럼 쥐를 큰 소리로 비웃고 있다. 물론 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모든 것에 대해 발을 구르는 것밖에 없다. 자기 자신도 믿지 않는 가장된 경멸의 미소를 지으며, 수치스럽게 자신의 쥐구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곳, 자신의 더럽고 악취 나는 지하에서, 우리의 모욕받고 타격받고 비웃음을 당한 쥐는 곧 차갑고 독기 서린, 그리고 수세기 동안 지속되는 증오심에 빠져 들게 된다. 40년 동안 계속해서, 자신이 받은 가장 치욕스러운 마지막 모욕을 일일이 기억할 것이며, 자신의 환상으로 자신을 사악하게 조롱하고 화나게 하면서 이때마다 자신이 받은 모욕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들을 할 것이다. 쥐 자신은 자신의 환상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기억ㅈ하고 뒤적거리며, 이러한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구실로 자신에 대한 수많은 비난들을 생각해 낸다. 이 쥐는 복수를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 하찮은 방법으로 어쩐지 이따금 생각난 듯이 벽난로 뒤에서 은밀하게 복수하려고 한다. 자신에게 복수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자신의 복수가 성공하리라는 것도 믿지 않으면서, 그리고 복수하려는 시도들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복수당하는 사람들보다 1백 배는 더 고통스러우며 정작 복수의 대상은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 P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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