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의 조약돌 - 틱낫한의 작은 이야기
틱낫한 지음, 김이숙 옮김, 정경심 그림 / 열림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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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앞에 있는 리뷰 중에 마리안느님의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무언가 긴장감이 부족한 그저 좋은 이야기같은 느낌이 드는 책입니다. 저도 그래서 50페이지까지 읽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진부하고 반복되는 이야기...음..지루하다.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장마가 들고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자 어느새 이 책을 다시 펴게 됩니다.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래리 코리엘의 pieta(=죽은 예수의 몸을 떠받치고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를 들으며 멍한 느낌으로 책을 보는데 처음엔 전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성모 마리아의 슬픔이 불교의 자비로움으로 변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음성조차 지척에서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아홉 살때 어느 잡지에 실린 붓다의 사진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붓다는 우리나라 절에 있는 뚱뚱하고 위대한 모습도, 비쩍 마른 고행하는 붓다의 모습도 아니었나 봅니다. 붓다는 다만 풀밭에 평화로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이후로 스님은 수도승이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됩니다. 무협지에 나오는 절대 경지나 궁극의 깨달음 따위를 성취하기 위해 스님이 되려하는 모습과는 무척 다릅니다. 반면 실연의 아픔이나 가족간의 갈등 따위로 도피하는 모습과도 무척 다릅니다. 해탈이 아닌 평화로움을 향한 길이었던 겁니다.

스님은 열한 살 이었을 때 친구들과 은자가 사는 산으로 소풍을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은자는 없고 떠나간 흔적만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스님은 아쉬워서 혼자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샘물을 마시게 됩니다. 인자를 향한 배고픈 여정에서 인자는 사라지고 텅 빈 마음이 되어 맑은 샘물을 마신 스님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게 됩니다. 멍하니 한잠을 잔 스님은 '나는 이 세상 최고의 물을 맛보았네'라고 읇조리게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저 샘물이 바로 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득 이 조그만 샘물 이야기가 실은 매우 깊은 가르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깨달음이나 지혜의 스승에 대해 갖고있는 편견을 깨뜨리는 매우  힘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어쩌면 샘물을 참으로 느끼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없고 티없이 맑은 어린이가 읊조리는 한 줄의 시보다 더 큰 지혜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숨이 멎을 거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 같은데 조금더 생각하다보면 지금 나의 생각과 너무도 다른 이야기인 것입니다.

너무도 다른 이야기는 달리보면 너무도 먼 이야기이기도 합니다.--스님의 세계에서는 돌멩이도 꽃도 나무도 친구 또는 형제입니다. 아니 우리와 같은 한 몸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깊은 체험과 명상 속에서 나온 것이고, 도시 속의 우리와는 다른--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니 스님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세계와 너무도 동떨어진 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헝클어진 자신을 만나게 되지만, 그렇다고 평화를 위해 스님이 계신다는 프랑스의 자두 마을(=plum village)로  갈수도 없는 대한민국의 저로서는  이 책의 아름다움이 절망스러울 뿐입니다. 제가 가진 선입견을 뒤흔들지만 책이 주는 대안의 차이는 저를 한없이 망설이게 합니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이런 생각조차 듭니다. 저는 숲 속에 살 수도 없고 나무도 풀도 돌도 친구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착잡한 마음을 접고 책을 다시 펼치면,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이 된 조약돌 이야기입니다. 책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이야기 한 편마다 한 장씩 그려져 있어서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림에 적힌 내용을 옮겨 보겠습니다.

(1) 어느날 나는 숲 속에서 조용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집을 떠나기 전, 모든 창문과 문을 열어두었다. 햇빛과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그런데 오후가 되자 날씨가 바뀌었다.

(2) 그래서 당장 집으로 돌아갔다. 나의 외딴 집은 매우 끔찍한 상태였다. 춥고 어두웠으며, 종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전혀 즐거울 수가 없었다.

(3) 나는 바로 창문과 문을 닫고 등불을 켰다. 그리고 난로에 불을 지폈으며, 종이들을 주워 돌멩이로 눌러놓았다. 이제 빛이 존재했으며, 나는 따뜻했다.

(4) 바깥에서 쌩쌩 불어대는 바람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나무들이 바람 속에 나동그라진다고 상상했다. 난롯가에 앉아 있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그지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5) 그대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들어갈 외딴 집이 있다. 은신하여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이. 그렇다고 그대를 세상으로부터 절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대 자신에게 좀더 가까이 접근하라는 뜻이다. (39쪽)

어떻습니까? 책 내용이 이렇기 때문에 때로는 구름잡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 깊이 속삭여 주는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면 볼 수록 샘물처럼 맑고 깊은 이야기라는 것입니다.그리고 알고보면 스님은 사회운동에 헌신했던 현실 참여적인 분이셨습니다. 현실도피적인 또는 염세적인 신도를 양산하는 그런 종교가는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없이 무의미한 일상을 사시는 분들이라면, 잠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날카로운 이성을 거두고 이 책을 펴보는 것도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와 우리와의 거리는, 이야기가  당장 현실화가 될 수 없다는 절망도 주지만, 반성없는 일상에 대한 사색과 성찰의 여유도 주는 무엇일 테니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감명을 받았던 이야기는 17쪽의 '팔이 많은 보살 이야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 보살로 불리웁니다. 고통을 겪고있는 뭇 생명을 구하고자 그렇게 많은 손과 눈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이야기는 보살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겁니다. 팔이 많은 보살은 먼 데 있지 않고 바로 이 곳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문득 신영복 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에 그려져 있는 고달픈 한 어머니의 초상이 떠올랐습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무와 풀과 돌멩이와의 우정은 저멀리 있을지언정,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과의 인연은 저버릴 수 없는 책무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맑은 샘물처럼 저를 적셔주고 끝없이 자라나게 할 것입니다.  

붓다나 보살을 하늘에 계시는 존재로 생각하지 말라. 그분들은 바로 이곳에, 우리 곁의 어디에나 계신다. (19쪽)

그대가 사랑과 이해를 발견하는 어디에나 붓다는 계신다.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다.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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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미스터리를 찾아서 - 모든 이야기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SBS 백만불 미스터리 제작팀 지음 / 북로드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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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스터리가 무언지 사전을 찾아보았다. '알려고 해도 알 수 없고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않는 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something that is not understood, or not known about.) 그렇다면 '미스터리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기묘한 일이다'라고 해도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자결한 민영환이 죽은  곳 바닥에서 자라났다는 대나무랄지, 머리카락이 자라는 오키코 인형이랄지, 한해에 187명이 자살하면서 들었다는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랄지...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때로는 등골이 오싹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과연 무슨 까닭일까?'하는 호기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미스터리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상식을 넘어 이어지는 과학적 탐구를 요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종교적 충동을 일으키기도 하는 매혹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초등학교때 공룡이나 4차원의 세계에 대한 책을 읽은지도 30년이 다 되는 지금, 우연히 읽게된 이 책은 묘한 즐거움을 주었다. 상식적이거나 교과서적인 주제가 아니므로 나는 꼼꼼히 읽기 보다는 편안히 읽을 수 있었다. 생활에 다급한 필요로 읽는 독서가 아니므로 힘을 빼고 기억이라는 과정을 무시하고 죽 따라갈 수 있었다. 특별한 해답없이 뒤숭숭하게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맥빠지는 대목도 있었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잠시 꽉 막힌 일상에서 벗어나서 '일본의 천재화가가 김홍도가 아닐까?' '장국영의 기묘한 죽음의 실체는 뭐냐?' '황제 다이어트의 창시자가 과체중에 동맥경화로 죽었다드라.' 등등의 화제를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다빈치 코드]를 읽는 듯한 경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경쾌함은 책 3쪽에 한 장 꼴로 들어있는 사진들 때문에 더욱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인지라 책 제목 그대로 하룻밤에 읽어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식에 의존해서 사는 우리는 상식을 벗어나는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경외심을 느낀다. 거부감은 호기심을 차단해서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미지로의 여행을 가로막는다면, 경외심은 자신의 감정을 서둘러 결론지음으로써 맹종과 독단으로 몰고가는 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스터리를 미스터리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갇혀있음과 우리의 사고의 편협함을 응시할 수 있다면 미스터리는 우리를 성숙시키고 새로운 의미와 깊은 사색으로 이끌 것이다.'  이 책을 읽고있으니 그 분주하고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것 없어도 책 읽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유년시절의 나를 잠시 만났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쓸모없음이 쓸모있음의 토대가 된다는 노자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거다. 몇 개의 오타자나 잘못된 정보를 볼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358쪽의 기억의 저장창고 해마에 대한 정보는 조금 어색하다. 기억의 저장창고는 해마를 연상시키는 형태라서 해마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다른 모양인지라 잘못된 명명으로 생각되고 있다. 또 해마가 인간의 뇌 속에 약 4천만 개 정도 있다고 하는 것은 완전 잘못된 것이다. 해마는 대뇌 안에 좌우로 한 쌍이 있고, 해마를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가 1천만 개 정도 된다고 보고 있다. 이런 1%의 오류가 아쉽긴 하지만 별탈없는 책이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추천대상 : 호기심이 왕성한 중고생, 뭔가 지루한 2,30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누군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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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지혜 1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박민수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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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 책은  1994년 개정 1판 1쇄인데요. 1994년 7월에 나온 책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눈에 띄네요. 이 책이 1991년 12월에 처음 나온 이후 그야말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모양입니다.  개정 1판이 나오기 전에 무려 75쇄를 발행합니다.

전 75쇄를 낸 다른 책을 본 적이 없거든요. 찾아보니 최근 책중에서 30만부를 넘어 40만부로 가고 있는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가 1년만에 73쇄를 찍네요. 이러고 보면 3년만에 도달한 75쇄가 별거 아닌거 같은데, 비슷한 시기에 나와 히트한 책인 [미학 오디세이1]은 95년 1월에 나와 97년 3월에 7쇄를 찍는데 그칩니다. 제 생각엔 [세상을 보는 지혜]의 난이도는 [미학 오디세이]보다 더 높습니다. 설렁설렁 읽기는 힘든 책이라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40만부에 육박하는 판매를 올렸을까요? 

이 책의 맨 앞에는 굉장히 인상적인 괴테의 시가 나옵니다.

거대한 행운의 저울 위에서/ 지침이 평형을 이루는 순간은 드물다./

그대는 비상하지 않으면 곤두박질 쳐야 하고,/

승리하여 지배하거나/ 패배하여 복종할 수밖에 없으니,/

고통을 겪거나 승리에 취하고/

모루가 아니면 망치가 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시가 주는 숙명성때문에 음산한 느낌도 들지만, 크게 보아 '인생이란 언제나 이런 저런 변화가 찾아오니까 평온하게 살기를 헛되이 바라지 말고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발타자르 그라시안, 쇼펜하우어, 괴테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 책이 1990년대 머나먼 한국땅의 사람에게 무슨 의미를 지녔기에 그렇게 읽고 또 읽고 하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현대사 연표를 들추어 보았습니다.

1990년 1.22 민정 민주 공화 3당 합당 = 민자당 탄생  10.4 윤석양 이병,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1991년 3.26 지방 자치제, 30년만에 부활    4.28 강경대군, 경찰 쇠파이프 치사  5월 강경대 치사 항의, 5월투쟁, 분신정국    10.24  남북한 화해 불가침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1992. 1.8  정주영 정계진출 선언, 국민당 창당

1993. 2.25 김영삼 대통령 취임    3.5 공직자 재산공개 파동    8.12  금융실명제 실시    10.10 서해 훼리호 침몰(292명 사망)      12.15  쌀시장 개방,  UR 타결

특히 관심이 가지는 시기는 이 책이 발행되어 베스트셀러로 굳어지는 무렵인 1991년입니다. 강경대군의 죽음과 이에 이은 5월 투쟁, 그리고 연이어 이루어진 분신자살의 행진.... 그 시기를 지낸 사람들이 얼마나 낙담하고 얼마나 분노하고 얼마나 환멸감을 느꼈던가를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후의 민자당 창당이나 김영삼 대통령 취임 등은 권모술수와 협잡이 판을 치는 어두운 오리무중의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책의 히트 뒤에는 이런 난장판 속에서 고통받고 어지러워했던 슬픈 우리들의 과거가 배여있었던 모양입니다.  

1990년대의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면서 칠흑같은 세상의 어둠 속에서 일신의 평안을 구할 무엇을 찾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마음의 평안을 줄 위로거리를 찾았던 것일까요? 어쨌거나 그 시기를 생각하다가 책을 펼치니 이런 글이 눈에 띄네요. 그러고보면 발타자르 그라시안에게도 세상을 사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시대에 충실하라. 비범하고 특출한 사람도 자신의 시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어울리는 시대를 살았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적절한 시대에 태어났지만 그 시대를 이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나은 시대에 태어났어야 했을 이들도 있었다. 선이 언제나 승리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물은 그 나름의 시기를 갖는 법이며, 최고의 천부적 재능도 시대의 흐름을 이겨낼 수 없다.

그렇지만 현자는 하나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불멸의 존재라는 점이다. 만약 시대가 그에게 적합치 않다면 많은 다른 시대가 그를 맞이할 것이다. "

누구나 평화롭게 살고 싶고 싶을 터이지만, 우리의 삶이 평화와 자유의 핵심에 다다랄수록 시대나 세상과 부딪히게 된다는 그런 얘기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쉽지 않으나 천천히 읽고 이거 저거 생각하다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건 느낄 수 있는 그런 책 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소프트한 책은 아니니까 선물하지는 마세용.  

*** 아마도 이 책을 사며 기대하는 내용-인정받고 사는법-은 이민규 선생님의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를 보시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 책을 사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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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장승수 지음 / 김영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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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도 나는 대학생 신분으로 15년 있었다. 경제학과 종교학을 배우고 의대를 거쳐 한의대를 졸업했다. 그러나 언제나 뛰어난 동기들 속에 있었기에 언제나 주눅이 들어서 산 느낌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읽던 책이 공부기법과 관계된 책들이었는데, 이 책과 [공부 기술]이 가장 기억에 뚜렷하다.  재미있는 것은, 지은이들의 삶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공부 기술]은 지은이 조승연이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서 미국에 유학가는 걸로 책을 여는 반면에 이 책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는 지은이-경상도 촌놈인 장승수가 고등학교를 거의 꼴찌로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노가데판에 뛰어드는 걸로 시작한다. 몇년동안 장승수는 낮엔 노가데하고 밤엔 술마시고 매월 번 30만원 정도 되는 돈으로 부모를 봉양하며 살았다. 그러던 그가 언젠가부터 '이렇게 인생을 끝마쳐야 하는가?'라는 절실한 질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중학교 교과서부터 공부하기 시작하여 몇 년간 매진한 결과 2006년 서울대 인문대 수석이라는 놀랄만한 성취를 한다. 밑바닥 인간이었던 그가 몇 년후에 서울대 인문계 전체 수석이 되었다는 것은 만약 이 책이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노가데꾼이고 도대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한 젊은이가 최고의 자리로 치솟았다니! 그는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제가 일하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은 굶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책을 잡은 겁니다. 그렇게 공부하는데 어찌 절박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보통 열 여덟시간이나 열 아홉시간씩 공부했습니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모두 공부했습니다." 서울대 인문계 수석이라는 발표가 나던 날조차 노가데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그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할 때 나는 그 '공부의 쉬움' 뒤에 존재하는 처절한 생존의 고통을 듣는다. 그럼에도 이 제목은 여러 사람에게 꽤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해서, 심지어 '공부가 쉽다니 지 머리좋다는 자랑이냐? 재수없다'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의 뜻이 사실은 '저는 정말 힘들게 살아야만 했습니다'라는 걸 읽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장승수가 노가데판에 있었을 그 시기에 똑같이 노가데판에 있었기에 그의 땀, 그의 고뇌, 그의 외로움을 절실히 느낄 수가 있다. 그건 겪어보기 전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공사판 체험은 그처럼 절실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나는 대학생으로 현실의 도피처로서 낭만적인 노가데 생활을 보냈을 뿐이었지만 노가데는 그에게 진정 절망과 고독의 삶 자체였으니 말이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에, 또 법대 옆 사회과학동에 있었기에 종종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졸업하는 해에 그는 힘든 전쟁같은 삶에서 나와 법대 신입생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와 어쩌다 스쳐지나게되면, '이 녀석 앞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져 있겠지? 젠장. 내 앞은 오리무중인데 말이야' 라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나는 그렇게 그의 평탄한 출세를 믿었다. 동갑내기의 성공에 질투심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그게 아니었다. 그는 그동안의 힘든 노동 때문인지 폐결핵에 걸려 힘든 시기를  3년 보낸다. 폐결핵은 예전 영화에서 보면 폐병쟁이라고 불리는 비운의 주인공이 캑캑거리고 피를 토하다가 점차 쇠약해져서 죽는 병이다. 설혹 회복된다고 해도 결핵균이 살던 자리는 섬유화되어 영원히 상처로 남는 무서운 병이다. 그의 폐결핵 소식을 들었을때 나에게는 공사장안의 먼지, 석면가루 그런게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다만 건강하기만을 빌었다. 그러나 장승수는 그렇게 쉽게 나자빠질 사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입원생활을 마치고 팔공산을 뛰며 건강을 추스리던 그는, 용기를 내어 권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2000년 프로테스트를 합격함으로써 그는 결국 프로 권투선수가 된다. 과연 전국 수석이라는 사람 중에 이렇게 역동적으로 산 사람이 있을까? 사실 나에게는 서울대 수석보다 폐결핵 이후 프로 권투선수라는 것이 더 놀랍고 위대한 성취로 느껴진다.  장승수는 20대를 그렇게 뜨겁게 불살랐던 것이다. 

나는 그 후 장승수가 2003년 사법고시에 합격함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룬 소식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어려움도 그의 꿈을 꺾지 못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아니, 그가 역경을 끝내 이겨냈다는 사실이다. 그를 보면서 나는 무기력한 요즘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시들어가는 나의 꿈을 다시 소중히 품게 된다. 장승수! 고맙다! 너는 어떻게 살것인가를 가르쳐준 진정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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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샅바를 잡다
조영남 지음 / 나무와숲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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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선생님은 44년생이니 60이 넘으셨다. 우리가 그 연세의 가수 중에는 텔레비젼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분이다. 대체로, '제비'아니면 '화개장터'를 부르시거나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은 거의 변화가 없다."'그런데도 저 가수가 왜 아직도 노래를 부르는지... 누가 듣는 사람은 있나?"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서울대 성악과를 나와서 성악풍으로 옛스럽게 부른다는 것 빼고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데다가 아마도 노래가 구식이거나 요즘과 동떨어진 탓이리라.

그러고나서 들려오는 소리는 이혼을 두번했다드라 하는 소리다. 그런데 뜻밖에 미국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서 그림을 보니 화투장 그림이다.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보니 '화투장이 가장 한국적인데 누구도 안그려서 먼저 그렸다'고 너스레를 떠신다. 그러다 이책 [예수의 샅바를 잡다]를 보게 되었다. 그 누구도 이런 발칙한 제목을 달지 못했으리라. 나는 샅바에서 예수 역시 사타구니가 있는 젊은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고 보면 조영남 선생님이 미국에서 신학대학교를 나와 목사자격증도 있다는 것이 언뜻 생각났다. 그러고 보면 평범한 모습이시지만 참 다양한 삶을 사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예수의 탄생에서 예수의 부활까지 21장으로 나누어 놓고 그 각각의 장면에서 신학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을 다양하게 생각하고 묻고 한 책이다. 토마스 아퀴네스 같은 옛날 신학자부터 불트만이니 본 훼퍼니 하는 현대 신학자들의 이야기도 고비고비 등장하는데, 그제서야 조영남 선생님이 과연 신학대학교를 다니시긴 한 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예수와 공자 노자 석가 소크라테스가 서로 비교될 뿐 아니라 원효 최제우 강증산 나철   등 우리나라의 위인들도 같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특히 몇년전부터 싸부로 추앙하는 도올선생님도 까메오로 등장해서 흥미를 유발한다.

그렇지만 더 특이한 점은 각 장 후반부에 자신의 인생사가 병렬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절절한 대목도 있는데 가롯유다의 배신 장면에서 자신의 배신을 고백하는 부분 같은 것은 언제나 웃는 모습 뒤에 깔린 고뇌가 잠시 드러난다.

"나는 내 혈육으로 두 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내 자식들을 내 손으로 보살피지 못했다. 나는 자식을 배반했다. 나는 나의 두 자식을 먼저 아내한테 떠맡겼다. 나는 아내와 수백 명의 하객과 주례 목사님 앞에서 백년을 해로하겠다던 하나님과의 약속도 13년을 못 버티고 깨 버렸다. 배반의 행진은 계속된다. 나는 두 번째 여인과의 똑같은 백년해로의 언약도 얼마 안 가서 깨뜨려 버렸다. 나는 똑같은 종류의 배반을 두번씩이나 반복했다. 나는 아둔한 삼류급 배반자다.

나는 원효나 최제우 혹은 나철 같은 사람을 배반했다. 나는 그토록 훌륭한 선각자들이 바로 내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애꿎은 수십 년 세월만 죽였다. 내가 만약 사람 같은 사람이라면 나는 가롯 유다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 물론 나는 가롯 유다처럼 사람을 죽이는 배신을 저지르진 않았다. 가롯 유다보다는 훨씬 경미한 배신이었댜. 그러나 그 경미한 배신들을 모두 합하면 나의 배신은 가롯 유다의 배신을 충분히 능가한다."

우린 언제나 유다를 우리와 다른 몇 등급 떨어지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다른 그를 우리의 삶 밖에 두고 돌을 던지기를 좋아한다.   글을 보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배신자로 만들어 저주하는 신앙이 얼마나 편협하며 폭력적인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이들만이 가능한 신앙이다. 세월의 때가 묻은 성인의 신앙은 끝없는 배신과 갈등의 신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배신을 합리화하고 남에게 죄를 덧씌우고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지 잠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제 14부인 듯하다. 그렇게 많이 듣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에 대한 선생님의 탐구가 적혀있다. 즉, 이 유명한 구절을 읽다보면 결국 진리란게 무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의 복음의 핵심이 여기에 있을 거 같다. 바로 14부가 이걸 풀어보는 부분이다. 재미도 있고 내용도 좋아서 가능하면 읽어보시길 바란다. 다만 조금만 언급하자면 예수가 돌아가시기 전 '최후의 만찬'에 대해 "뭐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무슨 만찬이겠는가? 그런게 다 후세사람들이 멋있게 과장한거다."라고 일축하시고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수가 제자의 발을 씻는 부분일거라고 지적하시는 것 은 감동적이었다. 그게 바로 예수가 말하는 사랑이고 그런 구체적인 실천이야말로 예수이 세상에 나타내신 사랑의 정의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에 멍멍한 느낌조차 들었다.

끝으로 몇줄 적는다면, 조영남 선생님이 예수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된 것은 평생 성경책을 끼고 사신 어머님 김정신 권사님과 술꾼으로 사시다가 중풍으로 쓰러진후 조영남 선생님이 13세 되던 해에 돌아가시기 까지 머리맡에 오줌깡통과 성경책을 놓고 지내셨던 아버지 조승초 때문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근본주의 신앙의 폐해에 대해 고발하기보다는 부모님께서 천당에 가서 잘 지내시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그러고 보면 늘상 그림그리시고 자신의 예수에 대한 첫번째 책 표지에도 그려놓았다는 선생님의 화투그림도 돌아가시기 전에 둘째 아들에게 심심풀이로 화투를 가르쳐주셨던 병든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기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인생이란게 깊고 깊어서 함부로 재단할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권사님은 애당초 확신을 가지고 다리를 건너갔고, 아들은 아직도 미심쩍어 계속 다리를 두드려 보고 있는 중이다. 김권사님의 둘째 아드님은 혹 더 튼튼한 다리가 없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중이다.

목적지는 한 곳이다. 도달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런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삶의 딜레마다. 딜레마라는 낱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김권사님과 조승초씨는 옆면이 빨간 예수책 하나로 안락하게 생을 마쳤다. 예수는 끝내 나의 양친 부모에겐 복음 혹은 가스펠이었고 나에겐 딜레마였다. 나는 지금 이끼껴서 지린내 풍기는 오줌 깡통만도 못한 딜레마를 샅바처럼 바짝 잡고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부모를 팔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나머지 생애를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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