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겨울비가 여러날째 계속 되는군요.
저는 한의원에 나와 빗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조금 센치해져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넋두리에 불과하니깐 조금 쑥스럽군요.
요즘 제가 사는소식 정도 되겠습니다.
저는 대체로 3시 반에 일어나는데
1주일에 2번은 30km를 뛰기 때문에 집에서 나와 바로 전주천을 달리는 편이고
4번은 15km를 뛰기 때문에 한의원에 나와 1,2시간 공부를 하다가 달리는 편이죠.
2. 요즘처럼 비가 오는 경우는
이슬비면 뛰고 철철 내리면 잠시 1시간쯤 산책을 하다가 한의원에 옵니다.
오늘은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좋아서 한참을 걷다 왔습니다.
이런 경우가 가장 편안한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눈물겨울 정도로 외롭고 충만한 시간입니다.
잠시 시간이 멈춘듯하고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
아이 넷에 좌충우돌 한의원을 운영하는 제 입장에서는 사치스러운 시간입니다.
이 순간만은 잠시 제가 누군지도 잊어버립니다.
어디로 갈지도 생각지 않고
다만 창가에서 들리는 빗소리 속에 저를 둘 뿐이죠.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요.
3. 순수한 호기심과 즐거움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밝게 생각하기
매 순간을 더불어 즐기기
이런 것이 요즘 제 화두예요.
마라톤이 전해준 지혜인 셈이죠.
사실 언제나 그러자고 다짐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까먹고 허덕이죠.
그래도 뛰다보면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4. 저는 다음 달 제주도 일주200km 대회에 참가합니다.
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죠.
그렇지만 힘겨운 일이다보니 이런 식으로 떠벌이고
안하는게 창피스러우니깐 더 노력해서 이루고
다 그런거죠.
제주도 대회는 잊혀졌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20대 초 사는 것이 지겨워서 자살을 생각하다가
휴학을 하고 신문배달을 하고 노가데를 하고
군대가고 하다가 돈을 털어 남해안을 거쳐 제주도에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무어라도 하나 이루고 싶었어요.
제주도를 하루종일 해안선을 따라 걸었지요.
하루에 바나나 3개가 전부였는데 길은 멀고 바람은 아주 셌지요.
그러다가 검은 바위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제 삶도 어느순간 저렇게 부서지고 말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책 속의 제주도는 아주 만만해 보였죠.
그런데 생각보다 제주도는 커서
허기와 피로만을 안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지나고 보니 20대의 바닥에서 찾아간 제주도
채 끝내지 못하고 끝낸 제주도 일주여행에서 부터
저는 서서히 걸어나왔던 것 같습니다.
5. 실패나 패배란 없다고 생각해요.
무상한 인생 속에 다만 채우지 못한 여행이 있을 뿐.
그러니 젊음은 아름다운 것이죠.
젊은이는 다만 새로운 출발을 재촉하면 되니까요.
이런 것은 사실 명료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출발을 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는 편이죠.
다만 바라는 것은 새롭게 대면하는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열림의 경험 뿐이죠.
그러나 열림과 깨달음이 거저 얻어지진 않죠.
오로지 길 저 너머 또는 길 속의 모험 그 자체의 힘이
무언 중에 전해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가는 자만이 길을 가는 감각을 터득한다는 것이 요즘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 힘겨워도 저는 가고 싶습니다.
이 외의 길은 없다고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6. 마흔이 되어
그 동안 노력으로 다듬은 근육으로
제주도를 일주하게 된다니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시작에 불과하죠.
여름이 되면 남해안에서 휴전선까지 달리는
멋진 여행이 계획되어 있고.
초가을에는 인천 앞바다에서 속초 앞바다까지 달리는
또다른 여정이 저를 손짓합니다.
이것은 환타지와 같죠.
제 삶 속에서 이런 일들이 펼쳐진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니까요.
7. 저도 가끔 힘겹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머의 구원을 생각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고생이 고생만은 아니며
바닥이 꼭 바닥은 아니며
궁색할 때가 반드시 불행할 때도 아니었습니다.
삶 속의 처지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는 없지만
행복함은 언제나 선택할 수가 있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어디 선가 들었던 얘기인 거 같아요.
그렇지만 요즘은 정말 그 말이 맞다고 생각이 듭니다.
8. 아! 20대의 저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요!
그렇지만 저는 그때의 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아마도 40대의 저를 더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은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40대를 가장 젊었던 시기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제주도의 파도처럼 제 인생도 언젠가 스러져 버릴 거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죽는 날까지 번민 속에서 살 것도 아마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땠거나 분명한 것은 저는 행복하고 충만한 길을 갈 것입니다.
9. 편지나 전화를 자주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눈앞에 일에 몰입하면서 사는 편이라
그 너머의 사람이나 일은 잘 까먹습니다.
아마 한의원을 안정시키고
한반도 횡단과 종단을 이룬다는 코앞의 숙제를 이룬다면
좀 여유를 가지게 될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젊은 노무현 대통령처럼 요트같은 걸 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범람하는 파도와 싸우고
힘들면 요트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죠.
한걸음 한걸음 딱딱한 땅을 디디는 것을 이어서 긴거리를 완성하는 마라톤과는
조금 다른 세상일거 같아요. 그래서 조금 솔깃합니다. 다만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스카이다이빙이 아닐까요?
그야말로 허공을 향한 죽음과도 같은 점프....죽음과 맞닿은 율동!
그 무엇도 기대지 않은 무아의 시간!
깨달음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스포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그럴거라는 거죠. 이런 걸 생각하면 어느 순간 별빛을 손에 쥐는 순간도 올거 같아요.
육체라는 한계를 깨고 무궁하게 상상하게 만드니까요.^^
10. 설날이네요.
새해 복많이 지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