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0 법칙 - 최신개정판 만화로 읽는 경제경영 명저 시리즈 5
리처드 코치 지음, 공병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1. 내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의 월급을 대충 보면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간병인은 100만원 정도,
낮근무와 밤근무를 교대하는 간호조무사와 간호사는  각각 120과 200 전후로 받는다.
10년 경력사원인 수간호사는 300정도 받는다.
그에 비해 갓들어온 한의사와 양의사는 각각 500과 1000 전후로 받는다.
10년 경력의 전문의의 경우 1500-2000까지 받는다. 

2. 사족을 달면, 이런 이유로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자식들을 기를 쓰고 의대를 보내려는 것이다.
법대가면 1%만이 변호사가 되지만 의대가면 거의 95%의 확률로 의사가 된다.
게다가 노동 시간만을 볼때 상대적인 임금은 비교할 직업이 없다.
예를 들어 요양병원 의사의 1시간은 간병인의 20시간 또는 40시간의 가치를 가진 것이다.

옛날 이야기에는 나뭇꾼이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걸 구경하다가
집에 와 보니 수십년이 흘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것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1년의 노동을 20년 30년을 해도 벌 수 없는 자들의 서글픈 이야기이다.-

3. 50대의 간병인 아주머니가 24시간 이어지는 힘든 노동을 감내하면서 100을 받을 때,
의대나온지 얼마안되는 30대의 젊은 의사는  대략 3-5시간의 근무로 1000을 받는다.
이런 임금 격차를 어떻게 합리화할 수 있는가?
교육에 대한 투자랄지 인적자원의 질적 차이 등등
많은 이유를 댄다고 하더라도
심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너무도 불공정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상황을 조금 더 펼쳐보자.
이사장이나 병원장같은 자본가로 넘어가면 2000-5000만원으로 다시 올라간다.
누구에게나 인생이란 소중한 것이라 말하지만
누구의 시간은 똥값이고 누구의 시간은 금값이다.

4. 이런 현실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지금이 인문계나 이공계의 위기라고 말을 많이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렇다. 고등학교 다닐때 똑같은 성적 똑같은 노력을 했더라도 
인문대나 공대에 간 친구들에게는 40만 넘어도 명예퇴직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평생 빠듯하게 살며 사장이 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그러나 같은 성적으로 의대에 입학한 동기는 서른다섯살에 병원이라는 중소기업의 사장이 된다.

참고로 전문대나와 기사자격증 따서 한전에 입사했다가 중소기업에 간 친구가 있다.
13년 근무하고 차장으로 종쳤던 친구의 마지막 월급은
그 회사가 상당히 잘 나갔던 핸드폰 부품 제조업체였음에도 350에 불과했다. 

5.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인문대 교수 월급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인문대 정교수의 월급은
공무원 호봉에 따라 주다보니 많아봤자 200 -300전후에 불과하다.
의대만 졸업하면 2-3년안에 1000만원까지 받는 의사와 비교해보라.

젊은 시절을 아침엔 천안 오후엔 서울 저녁엔 경기 식의 시간강사로 떠돌다가
운좋게 서울소재대학의 부교수가 되는 것도 힘든 일이거니와
50전후에 서울대에 입성하더라도  별 보잘게 없는 월급에 묶이는 것이다.
따라서 교수란 가끔은 자산가들의 명예직일수밖에 없는 것이고
가난한 학자란 처자 먹여살리기에도 힘든 가련한 처지인 경우가 많다.

6. 내가 인문대 사회대 의대 한의대 하는 식으로 대학을 전전하다가 참 씁쓸했던 것은
인문대박사가 거의 10년에 걸려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들게 논문을 쓰는 반면
의대의 석박사라는 것은 배부른 원장님들이
수백만원씩 돈을 내고 수요일 오후 잠깐 나오는 식으로 한학기를 설렁설렁 다니다
학기말에 회식자리에서 조교들이 다음주에 나올 문제라고 나눠주는
시험문제지를 받아 눈깜땡감 시험을 치고
천여만원을 마지막으로 출연하여 실험실 논문을 사는 것으로
쉽게 쉽게 명예와 학문을 거래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자랑스럽게 의학박사 한의학 박사하고 쌩쑈를 한다.
이런 것이 박사는 많되 맹랑한 골통이 많은 의학계의 현실이다.
그리고는 그런 걸 자격으로 매달 1000만원 그이상의 소득을 올린다.
 
그러니 어제까지 카이스트 또는 유명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다가
가족의 생계를 생각하고 암담한 미래를 걱정하다
때늦은 고3 재수생이 되는 희극같은 비극이 펼쳐지지 않겠는가?
이런 현실을 방기하고 무슨 인문계 위기 자연계의 위기를 외치는가?
누구나의 인생이 소중하다면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는
솔직하게 처음부터 다 법대나 의대로 가라고 하는 것이 옳다.
현재 자연대나 인문대에 가고 나서도 40전후에 후회를 않는 자들이 있다면
원래 돈이 많거나 
아주 마음을 비우고 다음 생을 기다리는 자들일 것이다. 

7. 그런데 다시 논점을 돌이켜서 80/20법칙이란 걸 생각해보면 씁쓸하게도
우리 병원 또는 사회의 임금 격차를 합리화하는 이론이라는 걸 알게된다.

"왜 의사들한테 그렇게 돈을 많이 주느냐면 그 양반이 청구한 걸로 병원이 먹고 살기 때문이지.
그 핵심적인 업무를 위해 다른 사람은 하녀와 머슴이라는 걸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직원 중 20%가 성과의 80%를 내고 나머지 직원 80%는 겉다리라는 것,
그러니까 저임금으로 묶어도 된다는
무서운 상식이 80/20법칙의 중요한 결론이라는 걸 당신은 아는가?

난 이런 면에서 이런 독극물을 우리 사회에 유포시키는 공병호 선생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책일수록 저질 난잡 번역으로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좋고
출판되면 확실하게 씹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이다.


8. 왜 이런 걸 반박하는 논문이 나오지 않는 걸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지적 허깨비를 용납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우리사회가 이런 법칙을 마치 우주의 법칙인양 인용하는 자들로 넘쳐나는 걸 보면 열불이 난다.
80/20 법칙이 보여주는 강고한 폭력을 보고서도
오직 20이 되기를 희망하는 자들이 왜 이리도 많은 것일까?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런 심정적인 비난을 넘어 어떻게 논리적으로 반박할 것인가 이다.

9. 우선 내가 간단한 반박을 해 보겠다. 나는 시간 활용 부분을 반박하겠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때 작업시간 중에는 성과의 80%를 내는 핵심적인 20%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나머지 80%는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그 핵심적인 20%를 지원하는 영감의 시간 또는 준비의 시간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핵심을 지원하는 또 다른 핵심 20%라 부르자.
그러면 다시 그 외의 시간 속에는 또 다른 핵심을 지원하는 파생된 핵심 20%가 존재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언뜻 보기에 빈둥거리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무척 유용한 창조적인 시간이 군데 군데 박혀있는 셈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가 어떤 작업 하나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한다고 하면 우리의 시간에는 다차원적인 핵심이 존재한다.
그러면 창조적 시간이란 곳곳에 박혀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르키메데스가 목욕만 했더라면 그는 유레카를 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옛부터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런게 건전한 상식이다.
편협한 80/20론이란 비만환자에게 체중만 줄이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다. 

결국, 80/20법칙이란 기묘하고 별난 주장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이론은 힘들게 1,2,3,4층을 오르지말고 곧장 전망좋은 5층에 다다르자고 우리를 부추긴다.   

10. 내 이야기가 너무 주관적이라고 느끼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탁월한 반론이 있다. 이것은 80/20법칙의 생산성과 임금격차론에 대한 반박이다.
(이하는 조지 샤프너 [숫자를 보면 인생의 답이 보인다](진명 출판사) 78-97쪽)

11. 우선 80/20법칙을 이용해서 간단한 '목화따기'모델을 만들어 보았다.

1) 10명의 노동자가 100개의 목화솜을 딴다고 가정한다.
2) 그렇다면 80/20법칙에 따라 상위 2명이 목화솜 80개를 따고,
3) 나머지 8명은 겨우 20개를 딸 뿐이다.
4) 따라서 상위 2명은 평균 40개의 목화솜을 따지만
5) 나머지 8명은 평균 2.5개를 딴다.
6) 이것은 상위 2명의 노동자가 나머지 8명과 비교했을 때 16배의 능률을 올린다는 의미가 된다.  

이렇게 모델로 보면 80/20법칙이 얼마나 폭력적인 내용인지 알 수 있다.
이 법칙의 성과대로 임금을 책정한다면 우리는 한 조직에서 16배의 임금차이를 목격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폭력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겠다.
놀랍게도 간병인 월급 100과 전문의 월급1500은 대체로 16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

12. 이 모델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프로농구팀 시애틀 레인의 기록을 확인하였다.
왜냐?  프로농구팀은 간판스타와 주변선수로 이루어지는 데다가
각각 선수의 연봉, 출전시간, 팀 기여도 등등이 세밀하게 기록되기 때문에
80/20법칙을 확인하기에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의 목표를 확인한다면 이런 것이다.
"80/20법칙에서는 최고의 직원이 보통의 직원보다 16배의 성과를 낸다고 한다.
정말 최고의 직원이 그정도의 성과를 내는 것일까?
16배라는 것이 너무나 과장된 것은 아닐까?"

13. 이 부분의 분석을 책에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80/20 법칙이 옳다면, 상위 두 명의 득점자이며 팀 구성원 중 18.2%를 이루는
샬론다 에니스와 발 파이팅이 80% 가까운 득점을 올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 둘이 올린 점수는 1399점에 불과하며, 그것은 전체 팀 득점의 43%에 지나지 않는다.
...세번째 득점자인 케이트 스타버드를 추가해서 상위 득점자가 27.3%가 되더라도
세 사람이 딴 그해 총득점은 60%를 조금 넘을 뿐이었다."

14. 이런 식의 노력을 거듭하여 80/20법칙은 과장된 것으로 67/30 법칙으로 수정되었다.
 이 경우 수정된 '목화따기' 모델은 다음과 같다.

1) 다시 10명의 노동자가 100개의 목화솜을 딴다고 가정한다.
2) 그러나 67/30법칙에 따라, 상위 3명의 노동자가 67개의 목화솜을 따고,
3) 나머지 7명의 노동자가 따는 목화솜은 33개뿐이다.
4) 따라서 상위 3명의 노동자는 평균 23.33개의 목화솜을 따지만
5) 나머지 7명의 노동자들은 평균 4.714개의 목화솜밖에 따지 못한다.
6) 따라서 상위 3명의 노동자들은 그래도 나머지에 비해 4.9배 더높은 능률을 올린다.

굳이 이야기하면 간병인 임금 100과 한의사 임금 500 또는
간호사 임금 200과 양의사 임금 1000사이의 격차가 난다.  

15. 그러면 이게 끝인가?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계산이 무척 불공평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간판 스타는 매경기 출전하지만 주변 선수들은 들쭉 날쭉하지 않은가?
게다가 한 시즌 내내 30분도 채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도 있지 않은가?

간판 스타가 1000점을 내고 무명 선수가 100점을 냈다고 하더라도
간판 스타가 100시간을 뛰었고 무명 선수가 30분을 뛰었다면
무명선수가 더 나은 성과를 낸 걸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개인 능력에 따른 적절한 임금을 추산하는 모델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간판 스타와 주변 선수들의 시간차이를 보정해서 동일한 시간에 따른 기여를 계산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에 따라.... 지금은 해체된 시애틀 레인의 선수 명부에서
1997/1998년 모든 선수들의 경기 시간을 똑같이 만들기로 했다.
팀 11명 모두 한 시즌 동안 임한 경기 시간이 총 8850분이므로
각 선수가 정확히 804.5분 경기했을 경우 각 선수들의 점수를 계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16. 이렇게 모든 선수의 기회를 균등하게 만든 후 기여도를 더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예상과 반대로 , 레인팀의 점수는 겨우 108점, 즉 한 경기당 2.54점 떨어졌을 뿐이다....
그 점수가 프로 스포츠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기는 하지만,
기업의 생산성 저하라고 가정할 때는 겨우 3.3%에 지나지 않으며,
그 정도 생산성 저하는 '스타' 봉급자들에 대한 의존을 줄임으로써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17. 이런 식의 기회균등 보정을 행한 후 67/30법칙은 47/30법칙으로 수정되었다.  
이 경우 변형된 '목화따기' 모델은 다음과 같다.

1) 다시 10명의 노동자가 목화솜 100개를 딴다고 가정한다.
2) 그러나 47/30 법칙에 의해, 상위 3명의 노동자가 47개의 목화솜을 따고,
3) 나머지 7명의 노동자가 53개의 목화솜을 딴다.
4) 따라서 상위 3명의 노동자는 평균 15.667개의 목화솜을 따지만
5) 나머지 7명의 노동자들은 평균 7.571개를 딴다.
6) 그러므로 상위 3명의 노동자는 그래도 나머지 7명의 노동자들에 비해
두 배 이상(2.06배)의 생산성을 올린다.

18. 아마도 성장론자들이라면
80/20의 법칙이야말로 세상의 철칙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남은 문제란
80을 소유한 소수의 부유한 자들이 20을 나누는 가난한 다수에게 온정을 나누는 것뿐이다.
이것은 기회를 많이 잡은 덕에 생산성이 높아진 -지나치게 많은걸 차지한 -소수의 윤리문제로
모든 문제를 귀결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 누구나의 인생이 소중하지 않은가?
이 세상은 애초에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지 않는가?
다함께 주인으로 살아야 할 다수에게
소수의 밥상에서 떨어진 떡고물이나 먹으며 살라는 이 어처구니 없는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19. 믿지말자! 80/20이라는 기괴한 상식을!
적어도 이 사회가 더 다수에게 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80/20 법칙따위의 어처구니 없는 궤변이 무비판적으로 사회에 횡횡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천박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잡설을 누군가는 법칙이라 속이고 대중은 그 가짜이름에 속아 믿고 있으니 
왠 해괴한 지적 맹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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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택과 집중 - 파레토 법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from 테스팅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009-10-22 14:15 
    파레토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법칙은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일명 80:20 법칙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본 파레토 법칙에 대한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파레토 법칙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파레토 법칙( - 法則, Pareto principle, 80-20 rule, the law of the vital few, principle of factor sparsi..
 
 
하늘연못 2008-03-1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슬럼프에 시달리다 보니까 글 한번 쓰기가 힘드네요. 우연히 조지 샤프너의 글을 보고 비분강개해서 글을 써봅니다. 80/20법칙의 폭력성에 대해 이런 저런 반감은 가졌지만 딱히 대항할 논리가 없다가 이 글을 보니까 눈이 확 밝아지는 것 같더라구요. 이래저래 작고하신 정운영 선생님의 책들과 읽다만 자본론을 마저 읽어야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허준 2008-03-1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80/20 이라는 새로운 고착된 주입물을 조심해야겠네요^^ 누구나 20의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과 이것을 이룰수 있도록 서로 돕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ainmania 2008-03-2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로운 관점으로 책을 볼 수 있겠군요
아직 책을 이해하기 급급하지 그 책의 내용을 비판할 수준은 안되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였나 봅니다..

한번 곰곰히 양쪽의 시각에서 책을 읽어보도록 해야 겠네요..
리뷰 감사합니다

하늘연못 2008-04-07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성공학 DVD를 보면서 느낀 것은 80/20법칙을 마치 상식처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는 겁니다. '꿈을 꾸고 성취하라. 세상 끝까지 번식하라.' 물론 저도 성공하고 성취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 책이나 DVD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습니다.그렇지만 80/20으로 성취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실은 많아질수가 없고 경쟁만 극심해지는 것이겠습니다만- 세상은 자신의 꿈이라는 독단의 불도저로 차이를 뭉개는 살벌한 세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살벌한 꿈입니다.
꿈이란 무지개와 같아야 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다양한 아름다움이어야 하며 조화로워야 합니다.그 조화로움이란 빨주노초파남보를 넘어 또다른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화는 너무나 현실적이 아니어서 다시 새로운 미래와 차이가 있는 현실에 열려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실적과 심미적인 꿈이 결합될 때 우리는 숨쉴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비가 와서 그런지 유독 센치해 지는군요. 그렇지만 핵심은 이것입니다. 정복은 꿈이 아니라 야욕입니다.비유하자면 자신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살아있는 노루의 피를 빨아먹는 그런 성취를 지향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80/20을 넘어서는 공존의 성취 방법론을 우리는 찾아야 한다는 것! 자본주위적인 가치를 넘어서는 살림의 문화를 일궈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진정 저주받은 척박한 땅에 서 있다는 것!

살찐궁둥이 2008-04-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80 법칙, 일명 파레토의법칙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로 글쓰신분의 법칙에 상당히 오류가 많으신것 같습니다.

저도 경제,경영,미래경제학,시간관리,철학 등등을 많이 보고 있지만.
왠지 글쓰신분의 반박에는 동의할수 없는 내용이많네요

분명히 글쓰신분의 말대로 20대80법칙 하나만 보았을때
짧은 시야로 보시면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많은 경영인들이 20대80법칙은 단지 응용분야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응용하고, 좀 더 효율성 높은 분야를 더욱더 집중하느냐에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글쓰신분이 예로 든 목화따기
기업인 입장에서 7명은 짤라버리고, 신입사원을 유치하는 방법도 있을것이며,
또는 상대적으로 능률이 떨어지는 7명에 대해서 교육을 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며,
말 시작하면 계속나오기 때문에 이쯤 멈추고

20대80법칙은 단지 응용분야 일뿐이지, 잣대가 아닙니다.
잣대로 생각하셨다면, 상당히 오해하셨군요.

글쓰신분이 20대80법칙으로 경쟁만 심화된다 생각되신다면.
블루오션, 부의미래를 꼼꼼히 챙겨보신다면 절대 그러지 않다는거 알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나오는 글 뀌를 쓴다면
세상 모든사람이 똑같은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행복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또한 글쓰신 분이. 또 오해 하는데
정복이 꿈이 아니라, 야욕이라는 내용은 단지 한면만 보시는 겁니다.

내용이 길어지네요
아무쪼록, 저도 비판은 좋아하는 편이지만 상당히 한면만 보고,
넓은 시야로 바라보지 못하고, 스스로의 슬럼프에 괴로워 하는 모습에
한마디 적고 가봅니다.

하늘연못 2008-06-1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의사가 되기 전에는 경제학과 사회복지학, 종교학을 복수전공했고 성장 위주냐 분배 위주냐 하는 것을 고심했던 사람입니다. 80/20을 어떻게 볼것인가? FTA나 세계화를 어떻게 볼것인가? 는 계급적인 편차가 큰 부분입니다. 물론 80중에는 20이 기준이 되고 목표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노력을 통해 성장하고 더 나은 미래를 일구어 자신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자라날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꿈과 노력, 성장과 성취 - 이런 것 없는 젊음을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삶은 자신만의 삶은 아니지 않습니까? 적어도 지식인은 사회적 책무가 있다는 걸 가슴에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제 글은 사회과학도라는 우선적으로는 한정된 독자들에게 80/20이란 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숙고할 것이며 자신의 현실적 처지를 통해 비판해보는 것이 어떻느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가족과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저자신에게도 과연 성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게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프로농구와 기업이 어떻게 1:1 대응이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반례 또는 예외를 통해 맹목적인 추종의 과정을 잠시 늦추고 숙고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리고 님께서 지적한 80/20이 잣대가 아니라 응용일 뿐이라는 것은 자세히 보시면 글 속의 저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법칙이 아니라 상황상황에 맞추어 현식적인 적용을 해야하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뺀치로 못을 박을 수는 있지만 원래 가장 유용한 용도는 따로 있다는 식의 숙고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80에 속하는 사람들은 20이 뺀치는 못을 박을때 쓴다고 할때 잠시 그 이상한 개념정의에 주저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는 80/20을 법칙이라고 강요하는 그런 나라 아닌가요?
또 사람이란 글쓰기에 있어 논리적인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감정적인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죠. 저는 당연히 짐작하시겠지만 후자인 셈이고 좋게 포장하면 실존적인 글쓰기를 선호하는겁니다. 제가 알라딘 알바생도 아닌데 글쓰는데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다면 일단 제 삶에 유용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따라서 제 리뷰는 제 일기이기도 합니다. 일기에는 당연히 감정의 기복이 실립니다. 제가 학생도 아닌데 슬럼프나 번민이 아니면 왜 이 골치아픈 책을 읽겠습니까? 제가 지금 당장 고민하는 것은 병원안의 저임금 노동자의 삶의 애환과 호의호식하는 저의 처지 사이에서 오는 삶의 갈등입니다. 삶의 구비구비에서 역경과 고뇌가 생길 때마다 힘써 읽고 쓰는 것이 제 글입니다. 그런 글쓴이의 개인적인 선택은 주체적인 것이기에 내용자체의 논리를 훼손하거나 구체적인 다른 근거가 없는 한 무시되기 힘든 것입니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제 글이 완전 개념오류의 잡문이라고 합시다. 그렇지만 저는 그 잡문을 밟고 또다른 인생의 선택을 하고 다른 삶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생활하면서의 논의와 토론이란 논리 정합성만이 아닌 삶의 통찰의 교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수학적 기호적 토론이 아니라 상황적이고 드라마적인 제시와 공감, 그 후에는 제각각의 선택이 펼쳐지겠지요. 꿈만 제각각인 것이 아니라 논리와 말도 제각각 아닙니까? 그런데도 최초의 개념정의를 통합하려한다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처럼 시간만 낭비될 것입니다.
궁금한 것은 과연 님의 동의할수 없음의 근거는 뭡니까? '오해의 소지가 있다. 꼼꼼히 챙겨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한면만 보는 것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을 통해 님을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과연 님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제가 님의 문하에 있는 제자가 아닌 바에는 이 시간을 훈도의 시간으로 만드시지 마시고 구체적인 근거와 맥락에 근거해서 이렇게 생각된다는 식의 논지를 펴 주셔야 저도 배웁니다. 저는 결코 한마디가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르는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통찰과 그를 지탱하는 구체적 정황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또 목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허깨비하고 무슨 대화나 토론을 할 수 있을까요?

ㅇㅇ 2011-07-1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읽고 왠지 이건 아닌거같다는 생각이들었는데


좋은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