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장승수 지음 / 김영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하게도 나는 대학생 신분으로 15년 있었다. 경제학과 종교학을 배우고 의대를 거쳐 한의대를 졸업했다. 그러나 언제나 뛰어난 동기들 속에 있었기에 언제나 주눅이 들어서 산 느낌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읽던 책이 공부기법과 관계된 책들이었는데, 이 책과 [공부 기술]이 가장 기억에 뚜렷하다.  재미있는 것은, 지은이들의 삶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공부 기술]은 지은이 조승연이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서 미국에 유학가는 걸로 책을 여는 반면에 이 책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는 지은이-경상도 촌놈인 장승수가 고등학교를 거의 꼴찌로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노가데판에 뛰어드는 걸로 시작한다. 몇년동안 장승수는 낮엔 노가데하고 밤엔 술마시고 매월 번 30만원 정도 되는 돈으로 부모를 봉양하며 살았다. 그러던 그가 언젠가부터 '이렇게 인생을 끝마쳐야 하는가?'라는 절실한 질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중학교 교과서부터 공부하기 시작하여 몇 년간 매진한 결과 2006년 서울대 인문대 수석이라는 놀랄만한 성취를 한다. 밑바닥 인간이었던 그가 몇 년후에 서울대 인문계 전체 수석이 되었다는 것은 만약 이 책이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노가데꾼이고 도대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한 젊은이가 최고의 자리로 치솟았다니! 그는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제가 일하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은 굶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책을 잡은 겁니다. 그렇게 공부하는데 어찌 절박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보통 열 여덟시간이나 열 아홉시간씩 공부했습니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모두 공부했습니다." 서울대 인문계 수석이라는 발표가 나던 날조차 노가데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그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할 때 나는 그 '공부의 쉬움' 뒤에 존재하는 처절한 생존의 고통을 듣는다. 그럼에도 이 제목은 여러 사람에게 꽤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해서, 심지어 '공부가 쉽다니 지 머리좋다는 자랑이냐? 재수없다'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의 뜻이 사실은 '저는 정말 힘들게 살아야만 했습니다'라는 걸 읽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장승수가 노가데판에 있었을 그 시기에 똑같이 노가데판에 있었기에 그의 땀, 그의 고뇌, 그의 외로움을 절실히 느낄 수가 있다. 그건 겪어보기 전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공사판 체험은 그처럼 절실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나는 대학생으로 현실의 도피처로서 낭만적인 노가데 생활을 보냈을 뿐이었지만 노가데는 그에게 진정 절망과 고독의 삶 자체였으니 말이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에, 또 법대 옆 사회과학동에 있었기에 종종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졸업하는 해에 그는 힘든 전쟁같은 삶에서 나와 법대 신입생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와 어쩌다 스쳐지나게되면, '이 녀석 앞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져 있겠지? 젠장. 내 앞은 오리무중인데 말이야' 라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나는 그렇게 그의 평탄한 출세를 믿었다. 동갑내기의 성공에 질투심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그게 아니었다. 그는 그동안의 힘든 노동 때문인지 폐결핵에 걸려 힘든 시기를  3년 보낸다. 폐결핵은 예전 영화에서 보면 폐병쟁이라고 불리는 비운의 주인공이 캑캑거리고 피를 토하다가 점차 쇠약해져서 죽는 병이다. 설혹 회복된다고 해도 결핵균이 살던 자리는 섬유화되어 영원히 상처로 남는 무서운 병이다. 그의 폐결핵 소식을 들었을때 나에게는 공사장안의 먼지, 석면가루 그런게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다만 건강하기만을 빌었다. 그러나 장승수는 그렇게 쉽게 나자빠질 사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입원생활을 마치고 팔공산을 뛰며 건강을 추스리던 그는, 용기를 내어 권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2000년 프로테스트를 합격함으로써 그는 결국 프로 권투선수가 된다. 과연 전국 수석이라는 사람 중에 이렇게 역동적으로 산 사람이 있을까? 사실 나에게는 서울대 수석보다 폐결핵 이후 프로 권투선수라는 것이 더 놀랍고 위대한 성취로 느껴진다.  장승수는 20대를 그렇게 뜨겁게 불살랐던 것이다. 

나는 그 후 장승수가 2003년 사법고시에 합격함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룬 소식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어려움도 그의 꿈을 꺾지 못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아니, 그가 역경을 끝내 이겨냈다는 사실이다. 그를 보면서 나는 무기력한 요즘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시들어가는 나의 꿈을 다시 소중히 품게 된다. 장승수! 고맙다! 너는 어떻게 살것인가를 가르쳐준 진정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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