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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샅바를 잡다
조영남 지음 / 나무와숲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조영남 선생님은 44년생이니 60이 넘으셨다. 우리가 그 연세의 가수 중에는 텔레비젼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분이다. 대체로, '제비'아니면 '화개장터'를 부르시거나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은 거의 변화가 없다."'그런데도 저 가수가 왜 아직도 노래를 부르는지... 누가 듣는 사람은 있나?"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서울대 성악과를 나와서 성악풍으로 옛스럽게 부른다는 것 빼고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데다가 아마도 노래가 구식이거나 요즘과 동떨어진 탓이리라.
그러고나서 들려오는 소리는 이혼을 두번했다드라 하는 소리다. 그런데 뜻밖에 미국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래서 그림을 보니 화투장 그림이다.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보니 '화투장이 가장 한국적인데 누구도 안그려서 먼저 그렸다'고 너스레를 떠신다. 그러다 이책 [예수의 샅바를 잡다]를 보게 되었다. 그 누구도 이런 발칙한 제목을 달지 못했으리라. 나는 샅바에서 예수 역시 사타구니가 있는 젊은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고 보면 조영남 선생님이 미국에서 신학대학교를 나와 목사자격증도 있다는 것이 언뜻 생각났다. 그러고 보면 평범한 모습이시지만 참 다양한 삶을 사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예수의 탄생에서 예수의 부활까지 21장으로 나누어 놓고 그 각각의 장면에서 신학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을 다양하게 생각하고 묻고 한 책이다. 토마스 아퀴네스 같은 옛날 신학자부터 불트만이니 본 훼퍼니 하는 현대 신학자들의 이야기도 고비고비 등장하는데, 그제서야 조영남 선생님이 과연 신학대학교를 다니시긴 한 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예수와 공자 노자 석가 소크라테스가 서로 비교될 뿐 아니라 원효 최제우 강증산 나철 등 우리나라의 위인들도 같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특히 몇년전부터 싸부로 추앙하는 도올선생님도 까메오로 등장해서 흥미를 유발한다.
그렇지만 더 특이한 점은 각 장 후반부에 자신의 인생사가 병렬되어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절절한 대목도 있는데 가롯유다의 배신 장면에서 자신의 배신을 고백하는 부분 같은 것은 언제나 웃는 모습 뒤에 깔린 고뇌가 잠시 드러난다.
"나는 내 혈육으로 두 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내 자식들을 내 손으로 보살피지 못했다. 나는 자식을 배반했다. 나는 나의 두 자식을 먼저 아내한테 떠맡겼다. 나는 아내와 수백 명의 하객과 주례 목사님 앞에서 백년을 해로하겠다던 하나님과의 약속도 13년을 못 버티고 깨 버렸다. 배반의 행진은 계속된다. 나는 두 번째 여인과의 똑같은 백년해로의 언약도 얼마 안 가서 깨뜨려 버렸다. 나는 똑같은 종류의 배반을 두번씩이나 반복했다. 나는 아둔한 삼류급 배반자다.
나는 원효나 최제우 혹은 나철 같은 사람을 배반했다. 나는 그토록 훌륭한 선각자들이 바로 내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애꿎은 수십 년 세월만 죽였다. 내가 만약 사람 같은 사람이라면 나는 가롯 유다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 물론 나는 가롯 유다처럼 사람을 죽이는 배신을 저지르진 않았다. 가롯 유다보다는 훨씬 경미한 배신이었댜. 그러나 그 경미한 배신들을 모두 합하면 나의 배신은 가롯 유다의 배신을 충분히 능가한다."
우린 언제나 유다를 우리와 다른 몇 등급 떨어지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다른 그를 우리의 삶 밖에 두고 돌을 던지기를 좋아한다. 이 글을 보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배신자로 만들어 저주하는 신앙이 얼마나 편협하며 폭력적인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이들만이 가능한 신앙이다. 세월의 때가 묻은 성인의 신앙은 끝없는 배신과 갈등의 신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배신을 합리화하고 남에게 죄를 덧씌우고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지 잠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제 14부인 듯하다. 그렇게 많이 듣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에 대한 선생님의 탐구가 적혀있다. 즉, 이 유명한 구절을 읽다보면 결국 진리란게 무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의 복음의 핵심이 여기에 있을 거 같다. 바로 14부가 이걸 풀어보는 부분이다. 재미도 있고 내용도 좋아서 가능하면 읽어보시길 바란다. 다만 조금만 언급하자면 예수가 돌아가시기 전 '최후의 만찬'에 대해 "뭐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무슨 만찬이겠는가? 그런게 다 후세사람들이 멋있게 과장한거다."라고 일축하시고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수가 제자의 발을 씻는 부분일거라고 지적하시는 것 은 감동적이었다. 그게 바로 예수가 말하는 사랑이고 그런 구체적인 실천이야말로 예수이 세상에 나타내신 사랑의 정의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에 멍멍한 느낌조차 들었다.
끝으로 몇줄 적는다면, 조영남 선생님이 예수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된 것은 평생 성경책을 끼고 사신 어머님 김정신 권사님과 술꾼으로 사시다가 중풍으로 쓰러진후 조영남 선생님이 13세 되던 해에 돌아가시기 까지 머리맡에 오줌깡통과 성경책을 놓고 지내셨던 아버지 조승초 때문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근본주의 신앙의 폐해에 대해 고발하기보다는 부모님께서 천당에 가서 잘 지내시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그러고 보면 늘상 그림그리시고 자신의 예수에 대한 첫번째 책 표지에도 그려놓았다는 선생님의 화투그림도 돌아가시기 전에 둘째 아들에게 심심풀이로 화투를 가르쳐주셨던 병든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기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인생이란게 깊고 깊어서 함부로 재단할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권사님은 애당초 확신을 가지고 다리를 건너갔고, 아들은 아직도 미심쩍어 계속 다리를 두드려 보고 있는 중이다. 김권사님의 둘째 아드님은 혹 더 튼튼한 다리가 없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중이다.
목적지는 한 곳이다. 도달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런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삶의 딜레마다. 딜레마라는 낱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김권사님과 조승초씨는 옆면이 빨간 예수책 하나로 안락하게 생을 마쳤다. 예수는 끝내 나의 양친 부모에겐 복음 혹은 가스펠이었고 나에겐 딜레마였다. 나는 지금 이끼껴서 지린내 풍기는 오줌 깡통만도 못한 딜레마를 샅바처럼 바짝 잡고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부모를 팔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나머지 생애를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