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로스트메모리즈 S.E.
이시영 감독, 장동건 외 출연 / 엔터원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뛰어난 영상미와 탄탄한 각본, 절묘한 상황 설정을 통해 명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최근에 개봉된 [한반도]와 비교해 보면 단연 [2009]가 영화적 재미에서 압도한다. 그러면 나는 왜 [2009]를 명작이라 부르는가?

1.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를 모티브로 했다. : 거대한 상상력의 세계

무척 뛰어나지만 잊혀진 소설이 있다. 1988년에 나온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다. 1990년대에 1980년대 10년을 통해 최고의 장편소설을 뽑았었다. 문학 평론가들은 대부분 1위 [태백산맥] 2위[비명을 찾아서] 또는 1위[비명을 찾아서] 2위 [태백산맥]이었다. 그런데 왜 [비명을 찾아서]는 읽히지 않는 걸까?

여하튼 그 잊혀진 걸작을 모티브나마 빌려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반갑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지 못하고  미래에서 온 자객  이노우에의 총에 죽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영화는 초반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훌륭한 장면을 보여준다. 광화문의 풍신수길 상이라니! 일본국가대표 이동국의 일장기라니!

여기서  '이토가 살아난다고 그렇게 달라질까? '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이토는 일본에서는 근대국가의 기초를 닦은 영웅이다. 간단히 약력을 살펴보자.

런던 대학 화학과를 나와 정치계에 투신하였다. 일본에 근대적 양원제를 도입하고 초대 총리가 되었다. 명치 일왕을 도와 메이지 헌법의 기초를 닦았으며 이후 4차례 수상을 역임했다. 이 기간동안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즉, 현대 일본의 아버지라 불리울 수 있는 거목이 이토 히로부미다. 그가 안중근 의사의 총에 죽지 않았다면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독일이 아닌 미국편을 들어 연합군으로 참전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일본 근대화 당시 상황이나 이토 개인의 사상에 대한 고찰이 요구된다.) 

2. 민족감정에 치우친 감은 있지만 드라마가 살아있다. : 뛰어난 상황 설정

나는 이 영화를 굳이 '나라와 민족 찾기'라는 진부한 틀로 보고 싶지 않다. '쪽발이들을 많이 쏴 죽이는 영화'라느니 '광화문에 풍신수길이라니 친일영화다 재수없다'라느니 하는 시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우선 이 영화의 배경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토 히로부미의 탁월한 영도력과 역사의 고비 때마다 이노우에라는 뛰어난 인물이 등장하면서 일본은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결과, 한일합방 후 조선은 일본의 영구적인 식민지가 되고 만다.

장동건이 연기한 사카모토 마사유키는 무척 뛰어난 일본 특수 경찰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조선인이고 뛰어난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테러조직인 후레이센진에 매수되어 사살된 아픈 기억 역시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대적 광복군인 후레이센진을 타도하는데 더 적극적이 된 사람이다. (**참고: 욕중에 후레자식이 있다. 그런데 후레는 자식의 일본말이다. 따라서 후레이센진은 조센진의 자식, 멋지게 말하면 '조선인의 후예'가 된다.)

그러나 후레이센진이 노리는 것이 월령과 영고대이고, 석연치 않은 이 물건이 일본의 명문인 이노우에 재단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일은 꼬여간다. 이 장면은 아마도 아버지 사카모토 마사오 역시 겪게 되었던 과정일 것이다. 뛰어나다는 것은 자꾸 깊이들어가서 진실에 닿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여하튼 영화 속에서는 언제나 진실이란 현실을 산산조각내는 위험한 무엇이다. 아버지가 사살된 그 지점에서 아들은 친구 사이고의 도움으로 죽음을 모면하게 된다.

이어 후레이센진의 본부에서 2008년 남북통일 후 한중일 합동 고구려 유산발굴 현장에서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을 발견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이것을 알게 된 일본이 자객 이노우에를 보내 안중근 의사의 암살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도! 더 놀라운 것은 아버지는 비열한 경찰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로운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영화 표면 상으로는 조선의 역사를 되찾자는 영화지만, 아버지 찾기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카모토에게는 정의로운 아버지를 되찾는 영화이고, 사카모토에게 아버지를 잃은 아이에게는 다시 아버지를 살려주는 영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카모토를 살려준 사이고 입장에서는 역사를 다시 돌리는 것은 히로시마에 살고 있던 자신의 조상이 죽는 것이며 사랑하는 처자 유리꼬와 게이꼬를 영영 볼 수 없다는 것이 되니 기가 막힌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서로 절친한 친구면서도 상황에 의해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관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진정 좋은 점을 발견했다면, 민족주의적인 색깔이 이 우정과 가족애에 대해서만큼은 그나마 여백을 두고있다는 점이다.

3. 그 동안 이해가 안되었던 점 한 두가지.. 두 남녀의 관계와 로스트 메모리즈?

영화를 세 번보면서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것은 오혜린과 사카모토의 관계였다. 마지막으로 짜맞춰보면 이렇게 된다. 타임머신을 통해 일본의 자객 이노우에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여자 발굴단 한 명도 끌려 들어가게 된다. 이 여자가 독립 단체에게 비밀을 전하고 결국 후레이센진 조직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이 여자의 자손이 사카모토가 만나게 되는 술집의 여자가 된다. 이 여자는 후레이센진 조직의 핵심으로 조선의 광복에 헌신하는 인물이며 사카모토에게 묘하게 끌리는 사람이다.

사카모토가 다시 타임머신으로 들어가서 만나는 사람은 최초의 여자 발굴단이고 이 모든 비밀의 실마리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그녀와 영고대를 파괴하여 시간의 문을 없애고 조선 광복군의 일원으로 함께 활동하게 된다. 그러면 끊임없이 사카모토의 머리에 떠올랐던 월령과 여자의 기억은 무엇인가?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영원한 사랑의 원형인가? 아니면 또다른 인연의 끈이 있었던 것일까?

2009년 월령과 영고대의 발굴현장에는 아마도 연인 사이였던 사카모토와 오혜린이 함께 있었으리라. 사랑하던 그들은 예기치 않게 오혜린이 타임머신 속으로 사라지면서 이별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를 잃고 고독한 삶을 사는 사카모토가 진정 찾아야 했던 '잃어버린 기억'이란 '오혜린과의 사랑의 기억'이다. 따라서 두번째 생에서도 묘한 이끌림 속에서 시간의 벽을 넘어갔던 것이다. 사카모토는 민족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을 생각했으리라.

(*** 참고 : 사카모토와 오혜린의 만남은 3중구조이다.

1. 발굴단의 연인사이....

2.일본경찰 사카모토와 후레이센진의 오혜린-

사실 이 여자는 사카모토가사랑했으나 타임머신 때문에 헤어지게 된 여자 발굴단원의 후손으로 실제 사카모토의 연인과는 다른 사람이다. 아마 증손녀뻘? 그럼에도 잊혀진 기억 속의 연인과 모습이 비슷하기에 사카모토가 자꾸 끌리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서진호라는 같은 배우가 연인과 손녀 2역을 연기하기에 자꾸 헷갈리는 것이다.-.-...

3.시간을 건너 다시 만난 연인- 이들은 광복군이 된다.-

 이라는 3중 구조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은 광복군 사진이다. 사카모토와 오혜린이 투쟁의 역경 속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서있는 모습이다. 사랑이란 시간을 초월하고 시련을 추억으로 만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내가 가증스럽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나마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역시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 배암발 : 사이고 역(나카무라 토오로) 사이고 아내 유리꼬 역(요시무라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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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2-0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복거일 꾸준히 읽고 있는데, 이게 <비명을 찾아서>를 본따 만든거군요. 보면서도 몰랐는데. 소설도 아직 못봤구요. 함 봐야겠습니다. 복거일의 사회비평에 관한 책만 봤어요 아직까진.

하늘연못 2007-02-05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래요. [비명을 찾아서나] [죽음의 한 연구] [최인훈의 화두] 이런 책들은 항상 마음 속에 있으면서도 선뜻 읽질 못했어요. 또 읽다가 너무 좋아서 중간에 접기도 했죠.그럴 정도로 이 책들은 어떤 면에서 존재감이 있고 소중한 그 무엇이라는 느낌이 드는 책이죠. 올해는 마음 한번 내보자는 생각을 영화보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못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나더군요. 참 어리석은 생각이죠.
 
강아지 똥 + OST 특별 패키지 - Limited Edition
스톰프뮤직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강아지 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화이다. 나는 이 동화가 작가의 원숙한 시기에 발표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69년 서른 셋의 늦깎기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선생님의 삶은 시련과 고통을 받아들이는 삶이었다.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광복 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다. 청송이란 아직도 오지 중에 오지인데 그때는 오죽 했을 것인가? 가난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 나무 장수, 고구마 장수 등을 했고 전신 결핵을 앓으면서 걸식을 하다가, 열 여덟 살에 경북 안동 일직면 조탑리에 들어와서 그 후로 쭉 살았다. 선생님의 집은 마을에서 떨어진 시냇가에 지은 다섯 평짜리 흙집이다.


권정생 선생님 사진을 보면, 매우 유명한 작가라는 선입견을 비웃는 뜻 밖의 모습이다. 올해로 일흔의 나이시니까 노인이시기는 하다. 그래도 선생님이 고무신을 신은 모습은 그냥 시골 할아버지이다. 솔직한 표현을 하면,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넝마중이 아저씨나 청소부 아저씨들의 모습 그대로시다. 이런 걸 생각해볼 때 [강아지 똥]에 나오는 ‘똥’은 일생동안 저 낮은 곳에서 질병에 신음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되물어야 했던 선생님일 수밖에 없다.


참고로 선생님이 드물게 긴 이야기를 하셨다는 인터뷰가 있어 소개한다. 이현주 목사님의 드림교회에 방문하셨던 모양이다. 이것은 뜻밖의 일로, 내가 알기로는 선생님은 사람만나기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또 집밖을 나서기도 싫어하신다. 말 몇 마디 하시는 것도 버거워 하신다. 태생이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결핵 때문에도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그런 분이다. 오죽했으면 찾아온 도법스님이 말이 많다는 이유로 냉대를 받으시겠는가? (이 부분은 제 추측입니다.)


선생님이 그날 하신 말씀은 이러하다.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들에게 그 많은 고통을 주는 것도 하느님의 뜻인가요? 인간이 한 것이죠.”

“사람들이 교회에서 ‘착하게 살아가라’는 설교를 귀가 따갑게 들었으면서도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기 일쑤인데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교회나 절이 없었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았을 것 같다.”

“세상에 교회와 절이 이렇게 많은데, 왜 전쟁을 막지 못하는가?”

“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동화 [강아지똥]은 월간 기독교 교육 제 1회 아동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이 동화가 꼭 기독교에 한정되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강아지똥이 꽃으로 피어나는 과정은 오히려 동양적인 생명관이 물씬 나는 장면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원작을 보고 기독교적인 느낌을 받기는 조금 어렵다. 적어도 내 판단에는, 원작의 하느님은 천지의 하느님이지 조물주인 유일신 하나님이 아니라고 보인다.


[강아지똥]과 비견될 수 있는 동화가 있다면 [미운 오리 새끼]일 것이다. 그러나 미운 오리가 백조였음을 알고 비상하는 장면이 꼭 상쾌한 것만은 아니다. 백조와 오리가 계급적으로 나뉘어지는 세계를 내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백조가 아니라 더 흉한 어떤 존재였다면 미운 오리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인가?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 찾기 과정이 다른 존재 위에 서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에 비해 강아지똥이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은 훨씬 고통스럽지만 평화롭게 진행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외부 세계로의 비상, 즉 출세라기 보다는 변화로 이어지는 내부적 성장, 즉 깨달음에 가깝다.


애니메이션 [강아지 똥]은 국내 최초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많은 정성이 깃들여진 작품이다. 다른 어느 나라의 애니메이션이 이런 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나처럼, 농촌에서 성장하고 소똥이 떨어진 길을 달구지를 타고 지나본 기억이 있었던 세대에게는 너무도 친숙한 세계를 감동 깊게 보여준다. 어색한 듯한 모양새와 움직임, 투박한 질감이 더 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야말로 걸작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인 ‘하느님은 쓸모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에 대해서는 만인의 작품을 기독교적 작품으로 한정짓고 말았다는 한탄이 절로 일어난다. 우선 하느님을 주어로 앞세우면서 기독교적인 색깔을 깊이 새겨놓았다. 현재의 언어적 습관으로는 하느님이 기독교적으로 들리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 ‘세상에는 쓸모없는 물건이 하나도 없어’라는 것과 ‘하느님은... 만드셨어’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그야말로 좋은 동화에 개칠을 한 셈이라고 느껴진다.


강아지 똥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른 똥도 아니고 강아지 똥이라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하층민의 신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설혹 계급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보더라도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이고,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거들떠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처절한 고독감을 느껴보았던 사람이라면 강아지 똥의 절규는 결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으리라. 그렇다. 강아지 똥의 이야기는 처절한 자신의 혐오로부터 시작된다. 자기 혐오에서 비롯한 강아지 똥의 일생은 자기 존재 발견이라는 깨달음으로의 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선지식을 찾아나선 화엄경의 선재동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강아지 똥이 만난 최초의 선지식, 흙덩어리의 선량함과 쓸모에 대한 고민은 구시대적인 고민인 것 같다. 과연 착하게 살면 다 좋은 주인을 만나 구제될까? 나는 착하기만 한 누나와 이모들이 못된 남편 만나 신세 조지는 것을 종종 보았다. 따라서 구시대 농사꾼들이 물건 아끼는 것에 대한 향수로만 보여 진다. 그런데 어쨌거나 흙덩어리의 쓸모에 대한 생각은 마음을 울리는데, 많은 실직자나 취업 희망자들을 생각해볼 때 좋은 땅에 옮기면 엄청난 생산력을 보여줄 인재들조차 사회적으로 버림받았을 때는 무용한 사람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강아지 똥이 만난 두 번째 선지식, 감나무 잎은 너무도 가벼워서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리는 신세에 대해 말해준다. 나는 감나무 잎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바퀴아래 으스러지는 장면이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다. 인생의 무상, 존재의 무상 그 사이에 바람을 타고 추는 너울너울한 춤 ....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 될 것이다. 적어도 싯달타나 장자는 그런게 인생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여하튼 그런 존재조차 아쉬움과 무상의 슬픔은 있을 것이다. ‘과연 이 허망한 존재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절절한 질문을 감나무 잎은 던지며 사라진다.

 

강아지 똥이 만난 마지막 선지식은 민들레이다. “나에게 거름이 되어줘.”라고 부탁하는 민들레. 그러나 여기서 나는 이런 부드러운 말조차 위험하다고 생각이 든다. ‘여러분의 피와 땀이 조국의 근대화의 거름입니다. 여러분은 조국 근대화의 역군인 것입니다.’이런 감언이설도 있었지 않았는가? 그러면 민들레와 강아지 똥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민들레가 꽃을 피우는 것과 강아지 똥이 녹아 없어지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예를 들어 우리가 소고기를 먹어 피가 흐르는 것과 소가 우리를 잡아먹고 피가 흐르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 왜 민들레는 감히 강아지 똥에게 희생을 강요하는가?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강아지 똥과 민들레가 조물주가 만든 별도의 존재라면 이런 논리적 모순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애니메이션을 이렇게 만들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좀 더 내밀한 성숙의 이야기, 서로간의 관계와 사랑의 이야기를 포착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민들레와 강아지 똥은 별도의 존재가 아니라 친구들이 우정을 쌓듯이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 합해져서 새로운 존재가 되듯이 그렇게 만나는 존재인 것이다. 강아지 똥이 민들레를 만나 이루어지는 일은 ‘희생과 헌신’이 아니다. 이루어지는 것은, 이전에 자신이 가졌던 낡은 관계에 대한 생각이 깨짐으로써 자연히 찾아오게 되는 ‘사랑의 몸짓’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참으로 탁월한 부분을 찾는다면 민들레가 강아지똥과 포옹하면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차디찬 눈에 덮혀 존재의 아픔을 경험했던 강아지똥에게 그 포옹의 따뜻함이야말로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었으리라. 더러운 강아지똥에게 몸을 의탁한 민들레도, 민들레를 위해 자신의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강아지똥도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포옹 속에서 변하였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과거에서 벗어난 또다른 여행, 우주적 신비를 향한 것이었다.   


민들레 씨앗이 날리며 이루마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엔딩에서 나는 울었다. 저 움직임을 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내가 원작에서 느꼈던 내밀한 울림을 산산히 조각낸 채 비행하는 저 씨앗을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느님은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만들지 않으셨어."라고 나래이션이 나올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거부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마침내 느끼는 것은 꽃이 피고 씨앗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감나무 잎도 민들레 씨앗도 바람에 날리운다. 그런데, 감나무 잎은 무상의 몸짓으로 날릴 뿐이지만, 민들레 씨앗은 사랑의 추억을 품고 미래의 희망을 그리며 춤을 추는 것이다. 그러니, 민들레는- 아니 모든 생명은 사랑의 춤으로 태어난 존재들인 것이다.  

 

다시 한번 권정생 선생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  배암발 : 강아지 똥 홈페이지(www.doggypoo.co.kr)도 방문할 만 하고, 권정생이라고 자료검색하다보면 인터뷰 내용과 음악, 그리고 [강아지 똥] 애니메이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싸이트가 있으니까 한두 번 보실려면 굳이 안사셔도 될거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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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2005 NBA 챔피언 : 스퍼스 - [할인행사]
워너브라더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작은 선수들의 활기찬 플레이를 좋아한다. 휴스톤의 스티브 프란시스나 피닉스의 스티브 내쉬를 좋아한다. 조금 큰 선수들 빈스 카터나 코비 브라이언트, 드웨인 웨이드 역시 좋아한다. 그래서, 팀 던컨이라는 멀대 선수가 있는 샌 안토니오는 항상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왜 이 DVD를 보게 되었는가?

여기서 잠시 90년 이후 우승팀을 살펴보자.   

90-91,91-92,92-93 시카고 불스 우승 :   93-94,94-95 휴스톤 로케츠 우승 : 95-96,96-97,97-98 시카코 불스 우승,:   98-99 99-00 샌 안토니오 스퍼스 우승 :  00-01 01-02 LA레이커스 우승 : 03-04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우승 :   04-05 샌 안토니오 스퍼스 우승 : 05-06 마이애미 히트 우승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1)1990년대를 통틀어 마이클 조던이 지휘하는 시카고 불스가 절대 강자였다 (2)1990대 말과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샌 안토니오 스퍼스와 LA 레이커스가 양분했다는 것이다. 팀이 아닌 선수로 압축해 보자. 1990년대는 마이클 조던이고 2000년대는 샤킬 오닐(또는 코비 브라이언트)와 팀 던컨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 점이 있다. 팀 던컨이라는 멀대 선수의 플레이는 그리 화려해 보이지 않고, 그의 언행도 다른 스타 선수들처럼 수다스럽거나 빛이 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MVP에 3회나 선정되는  현역 최고의 선수가 되었는가?-이런 질문이 저절로 일어나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DVD를 보게 되었다.

사실 2004-2005 시즌은 샌 안토니오 팀이 큰 변화를 치른 해였다. 두 번의 우승을 이끈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의 두 개의 탑이 무너진 해였기 때문이다. 노장이자 팀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데이비드 로빈슨의 은퇴로 팀 던컨- 하나의 탑만 남게 되었다.

달라진 팀 구조를 정비하기 위해, 2004년 8월 조국 아르헨티나를 올림픽 농구 금메달로 이끈 뛰어난 전천후 공격수 마누 지노블리를 영입하여 찰리 파커의 빠른 플레이와 결합시켰다. 그위에 무려 5번의 챔피온 반지를 가진 뛰어난 승부사 로버트 호리를 들였다. 따라서 이 해는 샌 안토니오가 기존의 강한 수비 위주의 색깔에서 5명의 다채로운 선수들의 팀웍을 중시하는 팀으로 거듭난 해였던 것이다.    

 게다가 2004-2005시즌이 매우 역동적인 시즌인 까닭은  다음과 같다.

(1)시즌 중 팀 턴컨의 발목 부상으로 겨우 플레이 오프에 오르기도 버거웠다. 서부지역 결승전의 상대인 화려한 플레이의 피닉스 선스부터도 결코 쉬운 팀이 아니었던 것이다. 피닉스 선스는 스티브 내쉬, 아마레 스투드마이어, 레이 알렌이라는 뛰어난 선수들을 중심으로 샌 안토니오와 매우 좋은 승부를 보여줬다.  

(2) 결승전의 상대인 디트로이트가 뛰어난 상대였기 때문이다. 샤킬 오닐의 LA레이커스를 이기고 전년에 우승을 차지한 챔피온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역시 천시 빌럽스를 중심으로 한 강인한 수비와 팀 플레이를 하는 팀이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경기였던 것이다. 결국 7차전까지 뜨거운 승부를 이어가게 된다.  

이런 이유 외에도 DVD를 추천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샌 안토니오의 내부 사정을 엿볼수 있다는 점이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과 주장 팀 던컨을 중심으로 한 가족적인 팀 분위기와 플레이를 감동적으로 담아놨다. 특히 팀 던컨의 조용하면서도 헌신적인 플레이는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와는 다른 또다른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2) 샌 안토니오는 매우 국제적인 팀이다. 예를 들어 팀 던컨은 서인도제도의 조그만 섬 버진 아일랜드 사람이고 마누 지노블리는 아르헨티나, 토니 파커는 프랑스 사람이다. 여기에 노장 로버트 호리와 브렌트 베리가 뒤섞이는데 서로를 배려하고 각자 자기의 역할을 다하는 성실한 플레이를 하는 모습은 농구에 대해 내가 지녔던 이미지마저 따뜻하게 바꾸어 놓은 것 같다. (샌 안토니오 만세!)

(3) 본편이 60분정도 되는데 Special Feature가 다시 60분이다. 관심이 가지는 토니 파커와 마누 지노블리의 뛰어난 플레이도 실어 놓았고, 팀 던컨의 인생도 10분 남짓 실어 놓았다. 또 디트로이트와의 결승전 마지막 게임 7차전의 마지막 쿼터를 다 실어서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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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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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적 사기]를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해당 주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판단을 보류한 채 몇 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이정우 선생님의 [탐독]에서 [지적 사기]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발견하고 원문을 인용합니다.

참고로 이정우 선생님은 원래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분으로 진로를 철학으로 바꾸어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따라서 수학이나 자연 과학에 대한 이해가 일반 철학 교수분들보다는 높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하 원문 인용)

저열한 미국 물리학자들.(220 -222쪽)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는 많은 책들을 저술하기도 했다. 한참 과학의 세계에 눈뜨고 있을 때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정말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후에 [물리학과 철학]을 읽기도 했다.

사실 하이젠베르크만이 아니라 양자역학의 초기 건설자들 대다수가 위대한 물리학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상당 수준의 철학적 소양을 갖춘 사상가들이었고 나아가 품격 높은 유럽적 교양과 도덕을 한몸에 갖춘 지식인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물리학 논문들만 쓴 것이 아니라 상당량의 철학적 저작들을 쓴 저술가들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유독 하이젠베르크의 책들만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 것 같다. 플랑크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의 저작들도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트기히 루이 드 브로이가 쓴 책들([물리학에서의 연속과 불연속] [물리학과 미시물리학] [빛과 물질] 등은 매우 수준 높은 과학철학서들이다.

(*** 참고 : 적어도 이런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책을 몇권 알고 있는데 쟈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 조셉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 마티유 리카르의 [손바닥 안의 우주]는 인문학과 자연 과학이 이질적인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을 깨뜨리는 책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생리학자나 생명공학자들입니다.***)

그런데 과학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유럽의 중후함과 깊이가 미국의 천박함과 오만방자함으로 바뀌면서 과학자들의 상이 현저하게 변해간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을 비롯해 미국 과학자들이 쓴 저서들을 읽으면서 유럽적 교양과는 너무나도 판이한 세계를 만나고서 실망했던 기억이 많다. 더구나 책 중간중간 철학에 대한 이해하기 힘든 구절들, 무지와 악감정으로 가득찬 구절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과학(특히 물리학)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을 때가 바로 미국 과학자들의 이런 책들을 접했던 시기였다. 일급 물리학자의 말이라고는, 지식인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그런 구절들을 보면서 유럽 문화와  미국 문화가 어쩌면 이렇게도 다를까하고 놀라곤 했다. 과학이 계속해서 유럽에서 발달했다면 과학기술 문명의 풍토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나는 영어 책들 외에도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과학서들과 일본의 과학서들을 많이 읽지만 이런 실망스러운 경험을 한 적은 별로 없다.

미국이라는 거친 나라가 과학기술을 발달시켰고 오늘날 그 힘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 모두에게 비극이다. 더욱 더 불행한 것은 바로 한국이 미국의 우산 아래에 있고 문화 일반, 학문의 성격, 지식계의 분위기조차 거의 그대로 미국을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과학계의 이런 분위기가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바로 소칼의 [지적 사기]일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 사상가들이 과학을 오용한 사례를 분석. 비판하겠다고 했지만 그 근거가 너무나도 허무맹랑해서 한 편의 사기극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볼 수 없다. 이 거칠기 짝이 없는 책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인문학에 대한 미국 과학자들의 폭언, 유럽 문화에 대한 미국 문화의 악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더구나 습쓸한 것은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이 책에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라캉의 [에크리]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같은 책들을 원어로는 그만두고 영어 번역본으로라도 (아직 [차이와 반복]이 우리말로 번역도 되지 않았을 때 였다.)읽어본 사람들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고전들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소칼의 책에 별 관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이 책을 보내주었는데 (누가 보내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몇 대목을 훑어보고서 어이가 없어 그냥 구석에 던져놓았었다. 그런데 이 책이 화젯거리가 되고, 나아가 상당수의 사람들이 동조하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큰 당혹감을 느꼈다. 나는 이 씁쓸한 '지적 사기'를 보면서 학문의 세계, 지식인들의 세계가 사기와 폭력이 횡행하는 이 세상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라는 심각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배암발 : 이정우 선생님이 구체적인 사실을 지적하면서 소칼을 반박한 글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댓글에 달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하튼, 새삼 공부가 짧구나 하는 한탄을 가지게 했던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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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1-2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적 사기 저도 관심있는 책인데, 시중엔 이미 절판났고 오프에는 아직 좀 있는거 같더라구요. 한번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계속 못보고 있는 책입니다.

하늘연못 2007-01-3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친구 책을 빌려서 읽구 맘에 들어서 돌려주지 않음으로써 '지적 사기'에 '민법상의 사기'를 더한 추억이 있던 책이었죠.--" 평생 그런 적이 없었 거든요.
또 책은 경쾌했지만 내심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또는 '도대체 뭐가 진실이야?' 등등 프랑스 철학에도 자연 과학적 지식도 문외한인 자신을 한탄하게 했던 책이죠. 뒤늦게 공부 안했던 거 후회 많이 되드라구요.
여하튼 도올 선생님 책 읽을 때 받는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죠. 그런데 왜 문제가 많은 책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논박하는 학자들이 없는 걸까요? 그렇게 실력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앞마당만 파시느라 옆마당은 보시지 않는 분들만 많은 걸까요?
올해는 '구체적인 사실 뒤집기'라는 게 제 화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Lennon 2007-10-0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우 선생이 저렇게 말씀하셨다니 실망이 큽니다. 교양이 부족한 미국 과학자들이 많고 그러한 분위기가 마음에 안드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하지만 이 책은 정확한 실례를 통해서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내용인데 그걸 한편의 사기극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다니요. 덧붙여서 물리학자로서 한마디 하자면, 파인만의 책 중 철학에 대한 무지와 악감정을 드러낸 책이라면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요 같은 류일텐데, 그런 책을 읽고 물리학에 관심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조차 잘 가지 않습니다.

하늘연못 2007-10-08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년 전부터 작심하고는 실행에 옮기지 못한 중에는 들뢰즈 읽기도 있고 파인만의 물리학강의 읽기도 있었는데 Lennon님의 댓글을 보니 다시 한번 시작해 보아야겠습니다. 간접지식에 의존해서 무언가를 판단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군요.지금은 [지적사기]라는 책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도 없는 시기아닙니까? 여하튼 들뢰즈를 아는 사람은 파인만을 모르고 파인만을 아는 사람은 들뢰즈를 모르고 그런 것이 현실이겠죠. 제 현실은 파인만도 들뢰즈도 멀어보인다는 거고...이런 것이 대학의 전공이 인식상의 벽을 만든 경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는 자연계열과 인문, 사회계열 쪽으로 3전공을 했는데도 결국 어느하나 벽을 넘지 못하고 갇혀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느낌입니다.

sdd 2008-10-0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지나가다 봤는데, 이정우 선생님께서 비판을 하시기는 하셨습니다.
저 글을 쓰신 다음의 일인 것 같은데...

가객 2009-02-2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정우 선생님께서 쓰신, "시간의 지도리에 서서"라는 책 뒷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소칼의 입장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송시헌 2012-03-0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현재 인문학이나 소위 '철학도' 들이 지적인 가식 허영에 사로잡혀서 자기도 모르는 소리 하는거는 사실입니다. 저는 토마스쿤이나 데이비드 보더니스, 모리스 클라인같이 제대로 철학,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존경하지만, 그외 대다수의 '인문학도'들과 '철학도'들은 솔직히 말해서 한심하더군요.
현재 인문학과 철학 하는 사람들 보면 , 가식이나 허영이 너무 많아요. 마치 중국 무술을 보는 듯합니다. 발경이니 기니, 별 어려운 개소리 다하지만 막상 싸움붙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무용지물처럼요.

검색하다 들렸는데 2014-05-25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저 미천한 것이 감히 우리한테 대드는데 왜 사람들은 저 미천한 놈한테 동조하는지 모르겠네 ㅅㅂ"
이런 수준이네요.
 
키 10cm 더 크는 키네스 성장법 가림건강신서 57
김양수 외 지음 / 가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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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장정일의 공부]를 읽고 있다. 거기에는 C.P.스노우의 [두문화]라는 책에 나오는 글귀가 인용되고 있다. “과학자는 세익스피어를 모르고, 전통적인 지식인들인 인문학자는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궁금한 것이 많다. 그것이 꼭 인문적 지식과 자연과학적 지식만은 아니다. 우리가 자신의 키에 대해 불만을 스스로 포기하는 서른 살 즈음이 되기까지 ‘성장-내 키가 얼마나 클까?’라는 것도 참으로 궁금한 사항이다. 이 성장이란 것은 직장을 구할 때나 배우자를 구할 때 매우 중요한 인자가 된다는 걸 우린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진실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성장 - ‘키’인 것이다.


우선 내 경험에 대해 말하고 싶다.


(1) 나는 키가 큰 편인데, 고1, 2 동안 1센치도 자라지 않다가, 고 3때 8센치 정도가 자라고 22살 - 24살 즉, 군대생활 전후로  2 센치가 더 자랐으며, 서른 살 후에도 1-2센치 정도가 다시 자랐다. 성장판은 대체로 고 1 - 3이면 닫힌다고 들었다. 그러면 이 성장은 도대체 무언가? 물론 서른 살 이후 자란 키라는 것은 구부정한 자세 교정에 따른 키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 생각엔 ‘26 살 정도까지는 키가 크지 않나?’ 하는 궁금증이 있다.


(2) 운동을 하면 키가 큰다고 하지만 사실 내 경험은 다르다. 주변에 있는 체고생이나 체대생들을 보자. 그들은 운동을 많이 하지만 그 중 1/3 정도는 오히려 땅꼬마에 가깝다. 그들에게 키에 대해 물어보면 “운동을 많이 하면 키가 안 큰데요.”라고 말한다. 그들의 선배들도 땅꼬마였던 것을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1) 과연 성장판과 성장이란 게 무어며, 사람은 도대체 언제까지 자라는가? (2) 운동과 성장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 운동해야 키가 크나?

이 글을 읽는 분도 이런 게 궁금하시겠지만, 잠시 미루고 이 책 [키네스 성장법]의 순서대로 보면서 궁금증을 차분히 풀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 듣도 보도 못한 ‘키네스 성장법’이란?


책을 보면, 무언가 특이해 보는 키네스 (KINESS)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쭉 설명이 없다가 68쪽에야 설명이 나오는 데 다음과 같다.

 

“작은 키를 큰 키로 만들어주는 키네스 성장법이란 말은 이를 고안한 김양수 박사의 영문 이름 첫 글자의 Kim에서 Ki를 가져오고, 균형된 영양섭취(Nutrition)에서 N, 자신의 체력수준에 맞게 운동하는 맞춤운동(Exercise), 스트레스(Stress) 관리에서의 S, 그리고 깊은 수면(Sleeping)에서의 S를 따와서 만들어진 조어이다.


키네스 성장법은 성장호르몬의 결핍이나 유전자 결함이 없는 정상인이면서도 키가 잘 자라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장환경 조건을 개선하여 자신의 예측 키보다 10Cm 더 자랄 수 있도록 김양수 박사팀에서 고안한 과학적인 키 크기 방법이다.“


알기 쉽게 요약하면 이렇다. 키가 안 크는 것을 병원에서는 성장호르몬 결핍으로 보고 치료하지만, 키네스에서는 성장 환경의 부조화로 보고 교정한다. 그럼 무엇이 성장 환경이냐? 음식물 섭취, 운동, 스트레스, 수면 이런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성장 호르몬의 분비에 영향을 미쳐 키 크기를 좌우한다. 이런 것들을 바로잡음으로써  성장 호르몬을 퐁퐁 나오게 하는 것이 키네스 성장법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뜻밖에 책의 저자들은 의사들이 아니다. 굳이 말하면, 물리 치료사, 운동 요법가, 스포츠 과학자, 식품 영양학자 등이 저자이다. 따라서 성장 환경에 중점을 두었다는 키네스 프로그램이란  태권도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우듯,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키를 키우는 것을 배우고 연습하는 운동중심의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은 당연히 수강료, 돈이다. 

 

도대체 키네스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데는 얼마나 드는가? 대략 300 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뭐 옵션이 끼면 상당히 올라갈 것 같긴 하지만 있는 사람한테 그렇게 큰 돈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한평생이 달려있는 문제라면야 그게 무슨 대수인가? 저자들은 성장 호르몬 치료는 1000 만 원 정도이기 때문에 키네스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점을 주시하고 싶다. 키네스 성장법의 핵심이 습관 개선과 운동이기 때문에 스스로 충분히 시행할 만한 방법이라는 점! 그렇게 심각하게 성장을 고민하지는 않고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인 대다수의 사람은 스스로 키네스 프로그램의 내용을 이해하고 권장사항을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2. 도대체 키는 언제까지 자라나?


일반적으로 키는 유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저자들은 키는 유전이 아니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예를 들어,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5 - 15 센치 정도 키 차이가 나는데 무슨 유전이냐는 것이다. 잘 먹고 잘 뛰어논 아이가 더 잘 자란다는 것이다.  유전이 결정하는 키는 남자의 경우는 160 센치 미만, 여자는 150 센치 미만까지 자라게 만드는 것이고 이보다 크게 자라는 키는 환경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부모의 키는 자녀의 키에 30 % 정도 영향을 끼치지만, 성장 환경에 의해 70 % 정도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우선 부모의 키를 이용한 예측 키 공식을 살펴 보자.


아들의 예측키 = (어머니의 키 + 13 센치 + 아버지의 키 ) / 2

딸의 예측키  = (어머니의 키 - 13 센치 + 아버지의 키 ) / 2


따라서, 큰 키의 부모가 큰 키의 자식을 가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장 환경이 똑같은 때 이야기이다. 즉 큰 키 부모를 둔 아들의 예측키는 크지만 잠 안자고 게임하고, 밥 안먹고 운동 안하면 선천적인 키인 160 센치에서 성장이 늦어지게 된다. 반면, 작은 키 부모 밑에 태어났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키가 쑥쑥 자라서 180 전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장판은 사춘기가 끝나면서 닫히지만, 군대 전후까지 1년에 1 -2 센치 정도는 성장한다고 하니 엄청난 이야기이다. 그 기간이 5년이라고 잡아도 5 -10 센치가 되니까 우리는 키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고등학교 졸업시에 160인 사람도 노력에 따라 170까지는 될 수 있고,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다면 175정도까지도 가능하니 환상적인 이야기 아닌가?

 

예를 들어 키가 작은 가족을 생각해보자. 아버지가 160 어머니가 150이라고 하면 아들의 예측키는 (160+13+150)/ 2 = 161.5 이다. 여기에 키네스 효과 10을 더하면 171.5가 된다. 아쉽긴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에 비해서는 상당히 커진 것이다. 이번에 키가 약간 더 커져서 아버지 165 어머니가 155인 가족을 생각해보자. 아들 예측키는 (165 + 13 + 155)/ 2 = 166.5 여기에 키네스 효과 10을 더하면 176.5이다.  이 정도면 큰 불만이 없을 것이다. 여하튼 책 내용이 사실이라면 !(따님들의 경우에는 여기서 13을 빼면 된다.)

 

키 크는 과정에 대해 책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를 보면 우리 나라는 여자의 경우에는 초경을 시작하기 직전인 초등학교 4 -5 학년인 11세쯤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초경을 시작하면 키가 자라는 것이 급속하게 둔화되는 데 첫 해는 대략 3 - 4 센치 정도로 성장 속도가 줄고, 다음 해는 2 센치, 3 년째에는 1 센치로 낮아지면서 성장판이 닫히고 자연적인 키 성장은 멈추게 된다.


남자는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정도에서 사춘기가 시작돼 겨드랑이에 털이 나기 시작하여서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사춘기가 끝나면서 성장판이 닫히고 성장이 멈춘다. 그러나 성장판이 닫혔다고 키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환경 조건을 개선하면 1 년에 2 센치 범위에서는 키가 자랄 수 있다. 성장판이 닫히고 뼈가 굳어지게 되면 그 동안의 성장환경 조건을 완전히 바꿀 수 있으면 어려움 속에서도 1 년에 1 - 2 센치 씩은 더 클 수 있다.“ (109쪽)


여기서 사족을 단다면 책에는 성장판이 닫힌 후에도 어떻게 성장이 이루어지느냐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도대체 어디서 늘어나는 것인지 궁금하고 답답하다. 추측컨대, 성장판이 닫힌 후에도 뼈 자체는 시멘트처럼 단단한 조직이 아니므로 조금씩 길이 성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즉, 척추 주변의 근육이 발달하면서 길이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 운동으로 인한 자세 교정으로 척추가 세워지면서 구부정하게 숨어있던 2 센치를 찾을 수 있는게 아닐까?


3. 키를 더 자라게 하려면?


1) 성장 호르몬의 분비 자체는 정상적이어야 한다. 성장 호르몬의 분비가 이상한 사람은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한다.

2) 다리, 무릎, 허리 등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의 치료가 선행되어야 한다. 성장이라는 것은 뼈의 성장과 주변 근육의 성장을 이야기 한다. 허리와 다리가 아프면 운동을 할 수가 없으며, 유연성이 부족하면 뼈의 성장을 방해한다. 따라서, 허리와 다리가 아픈데도 통증을 이기며 운동을 계속 해야 하는 선수들의 경우 성장에 중요한 근육 손상 및 통증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성장이 오히려 늦어지는 것이다.

3) 10살부터 사춘기 때가 가장 핵심적인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키네스 성장법을 이용하면 예상 키보다 10 센치 정도 더 클 수 있다. 

4) 사춘기가 지나서도 6 센치 정도는 더 자랄 수 있다. 따라서 노력에 따라 키가 큰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5) 키 크는 식사법 :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하지만, 에너지 식품인 탄수화물과 지방 섭취보다는 구성식품인 단백질과 칼슘, 조절식품인 무기질과 비타민의 섭취가 더 중요하다.

6) 키 크는  수면법 : 평균 6시간이상의 숙면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원활하게 성장호르몬이 분비된다. (성장 호르몬 많이 분비되는 시간 밤 10시 - 새벽 2시)

7) 키 크는 스트레스 관리법 : 성장호르몬은 뇌 속에 있기 때문에 밝게 살아야 잘 분비된다. 가벼운 운동과 긍정적인 사고로 스트레스를 벗어나자.

8) 키 크는 운동법 : 생장점의 자극과 성장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 시키는 맞춤 운동을 해야 한다. 너무 강한 운동은 오히려 생장 호르몬의 분비를 저해 한다. 따라서 서로를 이기려고 애쓰는 스포츠는 키 크는 운동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사춘기에 규칙적으로 맞춤 운동을 실시하면 예측키보다 10 센치 정도 더 클 수가 있다.    

 

 4. 다른 성장 치료는 위험하다.


1) 성장 호르몬 주사 : 정상인의 경우 밖에서 성장호르몬이 주입되면 몸 안에서 신체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성장 호르몬 생산을 줄이게 된다. 따라서 한번 시작하면 계속 주사해야 하고, 만약 중간에 그만두면 몸에서 성장 호르몬 생산 능력을 늘리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동안 키 성장이 멈추게 되어 그 동안의 성장 효과가 상쇄되고 만다. 또 당뇨, 고혈압, 암, 비만 등의 부작용도 조심해야 한다.


2) 일리자로프 수술(=키크기 수술) : 키가 클 수도 있지만, 부작용이 우려된다. 즉, 보행 중에 뼈가 휘거나 순간적으로 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근육과 인대를 당겨서 쪼그려 앉지를 못하거나 까치발로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신경이 늘어나 발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등 수술 후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5. ** 중요** : 책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 책을 살 필요는 없다.


왜냐? 저자들의 인터넷 싸이트인 www.kiness.co.kr에 들어가 보면 책의 내용이 책보다 더 보기좋게 잘 정리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인 1. 키네스 성장법 2. 맞춤운동 3. 균형된 영양 4. 스트레스 관리 5. 숙면 6. 운동 따라하기 등 핵심이 잘 정리되어 있으며, 책에서 언급된 성장 정밀 검사랄지 진단/ 치료 기계 사진도 나와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고 있다. 이 정도면 책의 내용의 6 -70 % 정도에 해당하고 핵심 사항은 다 정리되어 있는 셈이다. 그것도 더 보기 좋은 형태로! 그러니 굳이 책을 살 필요가 없다.

 

 싸이트의 다른 내용도 꽤 풍성한데, 내 경우에는, 키 성장 사례도 괜찮았지만 특히 사이버 검사실이 유용했다. 자신의 키와 나이를 넣으면 예측키를 알려주거나, 정상적인 경우와 비교해서 자신의 성장 상태가 어떤지를 바로 대답해주는 프로그램이 특히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 배암발 :  나같이 부록으로 주는 밴드에 연연해하는 사람에게 그 밴드의 실체를 밝힌다. 우리가 흔히 보는 비싼 무릎이나 손목 보호대가 아니고 가로 15 센치, 세로 1  미터의 빨간 보자기 같은 고무로 된 천이다. 물론 운동 방법을 소상히 밝힌 팜플렛이 있지만 일반인이 알아서 하기엔 거시기하다. 따라서 증정품에 연연하지 말고, 우선 해당 싸이트에서 궁금증을 해소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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