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 [초특가판]
허진호 감독, 한석규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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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단체 관람한 영화 중에 [소나기]가 생각난다. 간결한 기타 소리가 인상적이었고, 빗소리가 좋았던 영화였다. 아마 그 영화 속의 소년과 소녀가 윤회를 거쳐 이번생에 태어난다면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소년과 소녀가 무엇에 이끌리듯 사랑에 빠지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바뀌어 소년이 먼저 죽고 소녀가 살아남게 되는 영화를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그렇다. [소나기]의 후속작 같은 영화가 이 영화이다.  담담한 수채화같은 영화이다.

감독은 허진호 감독으로 이 영화를 찍을 때 35세여서 의외였다. 나는 그래도 마흔은 넘은 감독이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30대 초반에 인상적인 단편[고철을 위하여]를 찍으며 재능을 보이더니, 다음은 누군가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했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찍었다. [전태일]의 불꽃을 찍은 후 이 영화를 찍었다는 것이 뜻깊게 느껴진다.

 DVD에 나오는 감독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다. [전태일]을 찍고 후속 작품을 물색하던 차에 가수 김광석의 자살 사건을 목도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영화는 만들어졌다고 한다. 감독이 보기에 특이하게도 김광석의 영정사진은 껄껄 웃고 있었는데, "아하 죽어가는 사람도 꼭 슬프고 어두운 건 아니구나. 밝은 면이 있고 웃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가수 김광석을 추모하는 영화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전작때문인지 전태일이 떠오르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정원은 죽음으로 다가설수록 주변의 사람들에게 더 웃음과 사랑을 전하는 존재이다. 노동 운동의 꽃인 전태일의 인생은 격한 투쟁사라기 보다는 주위에 대한 연민으로 채워져 있지 않았던가? 전태일의 불꽃이 잔잔한 미소로 타오른 영화가 이 영화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주인공 정원을 맡은 배우는 감독과 동년배인 한석규이고, 그의 안타까운 사랑인 다림은 심은하이다. 죽음으로 한발 한발 다가가는 한석규의 연기는 정말 좋다. 죽음의 무게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살던 정원은 한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게 되면서 조금은 변한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깨끗한 모습으로 제사상 위 사진으로 남고 싶어하는 할머니를 보며 정원은 자신이 갈 길을 찾게 된다.

'우린  잊고 살지만 죽음이란 누구나의 운명이다. 다만 누군가 먼저 그 길을 가게 되고 누군가는 더 슬프고 억울한 길을 가게 된다는 차이일 뿐...' 아마 이런 생각이 정원의 머리 속에 맴돌았으리라. 이제 그는 아직도 자신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체온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하나하나 비우기 시작한다. 아!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듯 싶었던 정원이, 어느 비오는 밤, 고통과 고독을 이기지 못해 이불 속에서 흐느끼는 장면은 그야말로 가슴을 후벼내는 명장면이다.

그럼에도 사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다림역의 심은하 때문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다림처럼 털털하면서도 청순한 매력을 뿜어내는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 선풍기 바람을 쏘일때 살랑거리는 옷맵시랄지, 정원과 같이 우산을 쓰고 걷지만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한 결과 둘다 쫄딱 젖고마는 장면 등 너무도 아름다운 장면이 많은 영화이다. 다림의 이런 풋풋함이 정원의 짙은 고뇌와 중첩될 때 영화는 한없이 빛난다.

한석규와 심은하 말고도 반가운 배우가 두 명 더 눈에 띠는데, 정원의 단짝친구 역으로 나오는 이한위와 여동생으로 나오는 오지혜가 그들이다. 이한위와 한석규의 담장 오줌씬은 우정이란 무얼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하는 명장면이다. 또 오지혜는 연극 [지하철 1호선] 등으로 유명한 배우인데 나에게는 한겨레 강좌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의 사회자로 더 기억이 남는다. 여하튼 오지혜는 이 영화에서도 나쁘지는 않아서 수박을 먹다말고 오빠를 보며 살짝 눈시울을 적시는 장면같은 것은 인연이란게 무엇인지 사람살이가 무엇인지 하는 감회에 젖게 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또 한명 더 기억해야만 할 사람이 있다. 이 영화의 촬영감독이셨던 유영길 감독이 이 영화를 찍고 작고하고 말았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영화 제작 화면에 나오는 유감독의 모습은 이 영화가 허구이되 사실이 되도록 혼신을 다했던 장인의 마지막 실루엣이다. 제작 장면이 더 찡한 것은 유감독의 아들이 밤늦게 수고하는 아버지를 만나러 오는 장면도 있다는 것인데 일에 미쳐 살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느끼는 허망함이 어땠을까 하는 그런 것이 자꾸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 이 영화에는 좋은 장면이 많다. 그러니  영화를  보시면서 직접 가슴이 아려오고 훈훈해지고 하는 느낌을 가져보시기 바란다. 나는 수수께끼를 하나 내면서 리뷰를 마무리해야 겠다.  그럼 수수께끼가 무어냐.... 음, 감독은 왜 영화의 제목을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했을까요? 힌트를 하나 드린다면 이 영화에서 8월에 대한 이야기는 딱 한번 나온다. 다림이가 "아저씨는 사자자리죠? 나는 사자자리를 만나면 잘 산다던데.."하고 은근슬적 마음을 고백하는 부분이다. (사자자리에 해당하는 사람은  7월 23일 ~ 8월 22일에 태어난 사람이다.)

*** 배암발 : 이 영화의 촬영장소는 전북 군산으로, 주차장에 만들었다는 [초원 사진관]은 볼 수 없지만 그 밖의 풍경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이다. 정원이 흐느끼며 다림을 멀리서 바라보며 유리창을 더듬던 것이 생각나는가? 레스토랑으로 돈까스가 맛있던 집으로 기억이 된다. 영화 속의 정원과 다림이 도와줬는지는 모르나 그렇게 만나서 여하튼 나는 결혼에 골인했다.   

***배암발2 : 이 영화의 제목만큼이나 미스테리한 사실은 이 영화가 15세 관람가 영화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묘하게 상상을 자극하는 부분인데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문제가 되는 부분일까? 담벼락 오줌 장면? 경찰서 난동 장면?다림의 사진관 폭파 장면?) 영화의 상영가능 연령이라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기준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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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 - 운주사 천불천탑의 용화세계 - 학고재신서 10
요헨 힐트만 지음 / 학고재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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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리뷰에 댓글을 달기가 부담스러워서 아직 읽지 못한 책 리뷰에 의견을 밝힙니다.

저 역시 신영복 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를 읽을 때부터 운주사에 꼭 가보고자 했던 사람이지만 그간의 상식과 정반대의 의견이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궁금하신 분은 한겨레 신문을 검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06년도 한겨레 신문에는 운주사 천불천탑이 민중들에 의한 평등세상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 아니라 당시 원나라 정권에 의한 대규모 강제 노력동원의 소산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발표되었습니다.

모두 기억할수는 없지만 탑에 나타나는 무늬가 원나라 양식이라는 점, 그리고 단기간에 조성되다가 갑자기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을 통해 운주사의 천불천탑이 자발적인 민중들의 희망을 담은 역사적 현장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180도 뒤엎는 주장이었습니다.

이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운주사 천불천탑은 (삼별초 토벌 작전 또는 일본 정벌 등에 나서는) 원나라군과 고려 토벌대들의 무운을 기리고자 친원세력이 조성한 유적이 됩니다. 또한 운주사 인근은 민중들의 자발적인 예술 공간이 아니라 지배자들에 의한 혹독한  민중  수탈이 진행되었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 됩니다.   

무엇이 진실일까요?

*********** (이하는 한겨레 신문 내용)***********

묵향 속의 우리 문화유산 (39) 운주사 천불천탑

민중 강제동원 ‘수난의 불사’ 후손들은 찬사를 보내니 역사의 심술인가

‘그들은 협곡 속에 숨어 살면서 미륵님의 계시를 들었다. 이 골짜기 안에 천불천탑을 하룻밤 사이에 세우면 수도가 옮겨온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황토뿐인 야산에서 바위를 찾으려고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들판을 달리고 강을 건넜다. …집채만한 북을 골짜기 어귀에 걸어두고 산천이 떠나가라고 두드리면서 미륵상과 탑을 쪼아 세우는 노고를 온 세상에 알렸다. …세상의 모든 천민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

이 시대의 글꾼이라는 소설가 황석영씨는 역사소설 <장길산>의 대단원을 전남 화순의 운주사 미륵 전설에 대한 이야기로 맺음했다. 무등산 줄기인 영귀산 계곡이 능주의 너른 들녘과 만나는 자리에 하늘에서 부린 듯 난데없는 모양새의 석탑과 불상들이 무더기로 박힌 이 절의 명성은 기실 그가 윤색한 미륵불 전설에서 비롯한 바 크다. 덕분에 오늘날 운주사는 인터넷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표제어가 뜨는, 가장 인기가 많은 답사터이며, 산 중턱에 처박힌 두 분의 와불이나 들머리의 구층석탑, 원반형 연꽃무늬탑, 석조불감 따위는 미륵불 신앙의 상징물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전설의 후광을 걷어내면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절의 내력과 전통 탑과 불상의 양식을 깡그리 무시해버린 천불천탑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거의 없다. 흔히 얘기되는 미륵 전설은 역사적 실체가 거의 없는 허구에 가깝다. 1980년대만 해도 촛불 켜고 사는 오지였던 절 부근의 주민들은 미륵전설 대신 이곳을 ‘중 장터’라고 불렀다. 즉 석탑과 불상들이 장마당처럼 널려 있다보니 각 절의 승려(중)들이 모여 석탑과 불상들을 사갔다는 우스개 민담이 구전된 것이다. 고금 기록에도 풍수 대가인 도선 스님과 관련된 기록들만 내력으로 주로 전해지고 있다.

‘도선이 배가 운행하는 형세인 우리나라의 각 지역에 사탑과 불상을 세워 비보진압했으며 운주사는 배에 해당하므로 천불천탑을 세워 진압했다.’(도선 국사 실록)

‘운주사는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동국여지승람)

여기에 도선이 하룻밤 사이 도력으로 인근 돌을 불러모아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구전과 <동국여지지>에 혜명법사가 조성했다는 기록 등이 덧붙여지는 게 고작이다. 80~90년대 전남대 박물관 발굴조사로 이 절은 11세기께 처음 세워졌으며 석탑 등은 12~13세기 중기 이후에 건립했다는 점이 드러났을 뿐, 천불천탑 조성 경위는 수수께끼로 묻혀 있었다. 호족, 이민족, 천민, 노비 등 건립 주체를 둘러싼 억측들이 지금도 난무한다.

2000년대에 들어 미술사학계에서는 이 천불천탑이 몽골의 고려 간섭기 때 원나라 군부가 고려 백성들과 물자를 강제동원해 세운 수난의 불사라는 외압설이 등장했다. 그 장본인은 석탑 전문가인 소재구 현 국립고궁박물관장이다. 2001년 동원학술대회에 발표한 논문 <운주사 탑상의 조성불사>에서 그는 천불천탑 조성은 엄청난 재원과 석공인력의 동원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라며 이렇게 적고 있다.

“불상과 탑들의 스타일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은 원 침략기 수많은 석공들이 단기간에 완성한 것임을 알게 한다. …원래 몽고인들은 티벳불교의 영향으로 다탑 조성의 관습이 있었다. …당시 고려 왕조가 원과 전쟁 끝에 화친한 뒤에도 계속 항전하는 삼별초 군단들이 진도를 거점으로 서남해 지역에서 항전을 계속했기 때문에 운주사는 서남해의 대몽항쟁군에 맞서는 원 군부의 주둔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주 평야에서 군량미를 동원할 수 있고 영산강 포구는 국제적 항구여서 중국, 고려 왕경과 교류할 수 있었다. 원 군부는 운주사에 강제로 인력을 동원시켜 탑과 불상을 만들고는 타국에 나온 원나라 군사들의 무운을 빌고 삼별초에 대한 전승을 기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설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다층 탑에 엑스(X) 자나 마름모꼴 무늬를 새긴 생소한 탑의 문양 자체가 몽골 전통 건축이나 공예물, 현재의 우표에까지 활발히 쓰이는 데서 드러난다. 운주사 불사는 원나라 군대가 자기네 나라의 모델을 제시하고 석공과 백성들에게 단기간에 완성하라고 막무가내로 몰아부쳐 이뤄진 유산일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다. 기초 공사 없이 바위 같은 데 아무데나 불상과 석탑을 놓은 운주사 천불천탑의 특징 또한 군대가 단기간에 기념물 건립을 강압적으로 재촉했다는 전제 아래서 풀리게 된다. 우리 사서에 전하지 않는 것은 결국 우리 문화사의 정수가 아니었던 타율적 불사였던 탓이라는 주장이다. 소 관장의 추론은 추가 논의가 더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천불천탑의 역사가 민중의 주체적 역사가 아니라 민중을 착취하는 고통의 불사였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맺힌 천불천탑의 탄생이 훗날 전혀 다른 의미로 찬양받게 된 셈이니 역사의 심술이라고 해야 할까.

화순/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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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유희
로버트 클루즈 감독, 척 노리스 외 출연 / SRE (새롬 엔터테인먼트)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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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973년 이소룡이 죽은지 5년이 지나 만든 영화로, 카림 압둘 자바라는 2미터 19센치의 유명한 NBA농구선수와의 대결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영화이다. 사요나라님의 리뷰처럼 이 영화가 이소룡에 의해 완벽하게 마무리가 되었던들 최고의 걸작 영화가 탄생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는 선악의 대결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영화이다. 지하세계 악당들의 위협에 맞서 물러서지 않는 투지, 다양한 악당들과의 박진감 넘치는 대결 등은 이전의 이소룡 영화보다 다양한 볼거리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한단계 올라선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소룡은 죽기 1년전에 마지막 10분의 액션장면만을 찍고 죽었기 때문에 남은 부분을 여러명의 대역배우와 기존에 남아있었던 필름을 활용해서 완성하게 되면서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영화로 변하게 되었다.  

이소룡의 열렬한 팬이라면 이 영화는 존경하는 액션스타의 마지막 유작으로서 애정의 대상이지만 이소룡이 등장해야할 곳곳에 짝퉁 이소룡이 등장한다는 면에서 증오와 짜증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꼭 그렇게 이소룡만을 집중할 필요는 없지않을까? 무술영화의 명품 이소룡에 대한 갈증을 잠시 지운다면 이 영화는 대단히 놀랍고도 이색적인 영화라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소룡 추모영화인 [드래곤]이 이소룡 인생의 화두인 두려움에 대한 극복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명작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드래곤]도 이소룡의 짝퉁이라는 식으로 평가절하된 면이 있다..)

우선 주연 배우의 실제 장례식이 나오는 영화를 당신은 본 적이 있는가? 또 주연배우의 유명한 작품인 [정무문][맹룡과강] 등의 장면을 영화 속에 교묘하게 삽입함으로써 여러 시간대의 이소룡이 함께 존재한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제작진들이 이런 소름끼치는 느낌을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죽은 이소룡과 아직은 살아있는 이소룡, 그리고 이소룡을 닮은 무술인을 교차함으로써 이 영화의 제목 [사망유희]에 걸맞는 영화를 보여준다.

이소룡은 죽었다.그러나 죽지 않았다. 우리의 가슴에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살아움직이고 있다. 이소룡의 울음소리와 이미지는 서로 결합되어 죽어도 살아있는 이소룡을 우리앞에 보여준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이소룡은 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로써 수많은 화신을 거느리고 살아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라.이소룡의 화신, 짝퉁 배우의 흐느적거리는 무술장면은 곧 이어 이소룡의 얼굴로 이어진다. 우리는 죽음으로 흩어진 아쉬운 이소룡의 눈빛, 죽음을 통해 걸어나온 추억의 실루엣을 만난다. 이런 무상감을 그 어떤 영화가 보여줄 것인가! 저렇게 생동하던 그가 지금은 흙이 되고 말았다니! 그런 뜻에서 무술인 이소룡 최고의 작품은 [용쟁호투]일 것이지만 영화상의 재미로 본다면 이 영화가 [용쟁호투]를 능가한다고 본다.   

둘째로 이 영화에서 이소룡을 지우면 무척 다채로운 주변인물들을 만날 수가 있다.

(1)카림 압둘 자바: 마지막에 이소룡과 붙는 엄청나게 큰 흑인 선수는 70년대를 통틀어 NBA를 호령하던 전설적인 선수이다.  71년-80년까지 NBA MVP를 6회나 차지했고 89년 은퇴할 때까지 팀 동료인 매직 존슨과 함께 NBA 챔피온을 다시 6번이나 차지한 선수이다. 이소룡의 제자이기도 했다는 그는 현재 LA레이커즈의 코치로 있다고 한다.

(2) 많은 한국 배우들 : 이소룡과 마지막 결투에서 붙는 고수들 외에도 이소룡의 사후 대역배우 랄지 악당 역으로 많은 한국 배우가 동원되었다. 무림고수인 황인식, 지한재, 왕호와 이소룡의 대역인 김태정이 그들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한국인의 참여가 두드러졌던 무술영화인 셈이다.(자세한 부분은 이하의 인용한 리뷰에서 보시길)

(3) 이소룡과 친한 인물인 대니 이노산토스와 홍금보를 볼 수 있다. 대니는 이소룡에게 쌍절곤을 가르쳐줬다는 이야기가 들릴만큼 뛰어난 무술가인 모양인데 이영화에서 쌍절곤끼리 격돌하는 장관을 보여준다. 홍금보는 이소룡의 제자로 알려져 있는데 [용쟁호투] 초반의 격투 장면에 이어 [사망유희]에서도 상당히 좋은 몸놀림을 보여준다.

(4)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악당 랜드 박사를 잡기위해 5층 건물(영화 속에서는 빨간 고추 식당으로 되어있다)을 올라가며 고수들을 격파하는 부분인데 사실 이 건물이 국보인 법주사 팔상전이라고 한다.

배암발 : 이 영화를 오랫만에 다시보면서 드는 생각은 현실과 영화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거였다. 이소룡이 죽은 후 많은 대역 배우를 통해 완성된 이 영화가 꼭 조잡한 대체물에 불과한 것인가? 이 질문은 이런 식으로 바뀔 수 있으니라. 반드시 그 누군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역사 같은 것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다만 드라마를 진행하는 배우일 뿐인가?  무엇이 본질적인가? 메시지가 중요한가? 진정성이 중요한가?

*** 이하는 홍성식 영화평론가의 [용쟁호투]에 대한 리뷰이다. 중복되긴 하지만 좋은 정보라고 생각되어 인용한다. **** 

이소룡의 마지막 유작으로, 73년작 <용쟁호투>를 촬영하기 전인 1972년에 라스트의 액션 씬만을 촬영한 채 이소룡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제작이 중단된 영화를, 이소룡의 모습을 편집하고 대역을 써서 완성한 작품이다. 감독은 전작 <용쟁호투>의 로버트 클로즈가 맡았다.

 원래 스토리는 유괴된 아들을 살리기위해 유괴범이 요구한 보물을 구하러 각 층에 무술의 고수들이 버티고 있는 한국의 5층탑을 한 층씩 싸우며 올라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5층탑은 바로 한국의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유일한 목조탑인 충북 속리산의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각층 고수로는 <맹룡과강>에 출연했던 황인식(1층)과, 이소룡의 제자인 대니 이노산토(2층)와 타키 기무라(3층), 당시 합기도 7단의 한국인 사범 지한재(4층), 역시 이소룡의 제자인 NBA 농구선수 카렘 압둘 쟈바(5층) 등을 불러서 격투 장면을 먼저 촬영하였다. 한국으로 촬영하러 오려던 계획이 당시 겨울이라 추위에 약한 이소룡의 개인적인 사정에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될 경우 자신의 명예 손실을 걱정한 지한재의 보이콧으로 제작이 지연되는 등 우여곡절이 겪었다. 결국 이소룡은 <용쟁호투>를 끝낸 이후인 73년 요절하면서 영화 완성이 불투명하게 되었다.

 이소룡의 마지막 영화라는 상업적 가치가 큰 작품이라, 이소룡 대역을 응모하여 새롭게 촬영을 시도하였다. 대역에는 많은 지원자가 몰렸지만 적당한 배우를 찾지 못해 고심 중에 한국 동아흥행(후에 동아수출공사)의 이우석 사장이 무명인 김태정을 데려가서 합격 판정을 받고 그를 기용하여 완성시켰다. 김태정은 <맹룡과강>의 이소룡 배역명인 '당룡'이라는 예명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작품 이후 홍콩에서 활동 중인 한국 배우 황정리와 함께 이 영화의 아류작 <사망탑/신사망유희>을 찍었고, <아가씨 참으세요>에서는 톱스타 정윤희와 공연하기도 했다.

 영화 도중 이소룡의 실제 장례식 장면이 잠깐 보인다. 뒷부분에서 이소룡과 쌍절곤으로 대결을 벌이는 대니 이노산토스는 이소룡의 필리핀 친구로 그에게 쌍절곤을 직접 가르쳐준 장본인이다. 그동안 이소룡 영화에서 짬짬이 나오던 쌍절곤 돌리는 모습이 여한없이 등장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즐겁게 해준다. 헌데 도중에 이소룡이 쌍절곤을 너무 꽉 쥐어서 쌍절곤이 휘는 모습이 보인다. 탄력있고 좀 딱딱한 스폰지로 된 쌍절곤임이 여실히 드러난 옥의 티다. 79년도에 이런 재질의 쌍절곤이 국내에서 시판되었다.

 재미있는 사실. NBA LA 레이커스의 카렘 압둘 쟈바가 하킴이라는 고수로 등장하여 이소룡과 한판 붙는다. 그가 이소룡의 제자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마카오의 무술 시합 장면에서 홍금보가 얻어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래 영화의 무술지도(72년 당시)는 당연히 이소룡이 맡았지만, 그가 죽은 후 새롭게 촬영된 영화에선 홍금보가 무술 지도를 맡았다. / 영화 초반에 백사라는 무술인과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이 배우도 왕호라는 한국 배우로 70년대에 한-중 합작의 많은 영화를 찍은 무술 배우이다.

 미완성이었다가 이소룡 사후에 완성된 탓에, 이 영화는 다른 내용의 온갖 잡탕 버전이 존재한다. 특히 영어 더빙과, 재출시판된 중국어 더빙판이 있는데, 타이틀과 편집도 완전히 다르다. 영어판에는 골든하베스트의 마크가 찍히고 나서 <맹룡과강>에서 이소룡이 쌍절곤을 꺼내어 휘두르는 장면이 약간 슬로우모션으로 바람가르는 소리와 함께 보여진뒤 존 베리의 음악이 흐르면서 화면에는 마작 등의 중국 도박기구들이 나오고 기구에 맹룡과강에서 이소룡이 척 노리스와 싸우는 장면이 여러 장면으로 겹쳐서 나온다. 영화 초반에 빌리의 애인, 앤이 스튜디오에서 부르던 노래가 흐르는데 노래와 함께 이소룡의 모든 영화의 격투 장면이 화면을 하나 가득 장식 한다. 하지만 중국어 더빙판은 타이틀과 끝맺음이 단순하다. 그리고 영어 더빙에서는 초반에 백사와 싸우는 장면이 편집에서 잘렸고 마지막에 란박사가 떨어져서 죽은 뒤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끝나는데 중국어 더빙에서는 란 박사가 죽은 뒤 빌리가 경찰에게 연행 되어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입원한 앤을 문병간 란박사 일행에게 앤이 살인자라고 울부짖는 장면도 삭제가 되었다. 백사와의 격투씬은 있지만 후반부에 대니와의 쌍절곤의 혈투 뒤에 합기도의 명인, 지한재와의 대결이 빠진 채 곧바로 카렘과의 싸움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촬영지로 선정된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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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7-05-1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저런 정황으로 볼때 개봉시기와는 달리 이소룡의 최후의 작품은 [용쟁호투]가 되고 이 영화는 바로 직전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용쟁호투]가 개봉이 이르지만 실제 촬영은 가장 늦게 되었고 '무술가는 그림자같은 몸놀림 뒷편의 실체를 보아야 한다.'는 등의 이소룡의 무술철학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 [사망유희]에는 이소룡의 유언이라고 할만한 메시지는 없고 영화의 이미지만이 남아있을 뿐이어서 그런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sayonara 2007-08-1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시적인 제목에, 학구적인 글입니다. 정말로 잘 읽었습니다. 추천이 없다니...

하늘연못 2007-08-23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 반갑습니다.짜집기 글이라 조금 쑥스러운데 어린 시절부터 간직하던 이소룡에 대한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자료를 모은 것입니다. 홍성식 평론가님의 글의 내용을 뻥튀기한 것 같아 지울까 말까 하고 갈등을 하고 있었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의 아들 - 양장본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10여년에 걸쳐 세번째 읽고 있는데도 딱히 멀쩡한 리뷰를 쓸 수 없다는 것이 좌절스럽다. 내가 가진 책은 1979년의 책을 개보한 1987년판인데 이런 것도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박정희가 죽은 그 시점에 이문열은 오늘의 작가상을 비롯한 문단의 상들을 휩쓸며 명성을 다졌고 다시 민주화가 무르익는 이 시기에 개보판을 내고있다. 사실 이문열이라는 작가와 동시대에 살면서도 감정적인 비판 외에 적절한 거리와 독자적인 경험을 통한 인문학적인 성찰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런 자신에 대한 실망과 슬픔 속에서 조그만 몇 가지 틈새를 찾아내보려 한다.

우선 이문열의 책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은 3가지이다. [젊은 날의 초상]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이 소설들은 지금의 이문열을 만든 초기작들인데 [젊은 날의 초상]은 이문열이라는 개인의 자화상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사람의 아들]은 이문열의 사회의식과 인간에 대한 문제의식의 심도를 보여주고 [황제를 위하여]는 이문열 문학의 전형을 완성한 모델 같은 느낌이다. 이후 이문열은 언론과 출판사조차 아부해야하는 거대한 문화권력이 되었고 반면 사회에 저항하고 관습을 비판하는 문인으로서의 생명력은 시들해졌다. 그 결과 적어도 내  생각에는 이들 초기 3작품을 능가하는 책이 나온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마치 오래되어 썩어가는 나무를 보듯이 최근의 그를 본다.

이문열의 작품에서 '사람의 아들'또는 '인자'라는 말이 나오는 책이 또 있다. [젊은 날의 초상]이다. 처음 이 책을 볼때 이 말이 주는 묘한 느낌이 좋았다. 과문해서 이 말에 대해 최근에야 얻어들게 되었는데 [도올 요한복음 강해] 171-174쪽에 그 설명이 나온다. 참고로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발췌하면 이렇다.

"최종적 결론은 이것이다: 인자는 그냥 "사람의 자식"일 뿐이다. 예수의 자기 인식에 있어서 평범한 사람의 자식으로서의 자기의식을 나타내는 말일 뿐이다. 즉 자신을 가난하고 궁핍하고 소외받은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겸손한 표현일 뿐이다. Q자료에 속하는 다음의 용례를 보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여기서 인자는 결코 특칭이 아니다. 그것은 타이틀이 아니라 류의 개념(generic concept)일 뿐이다. 포유류인 여우도 굴이 있고, 조류인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인류의 자식인 나는 편하게 눕고 잘 수 있는 곳도 없다는 표현이다. 지상에서 그의 사역이 얼마나 고된 것이었나, 얼마나 헌신적이고 수고로운 것이었으며, 자기희생을 감내했어야만 하는 것이었나를 나타내주는 표현인 것이다. 그것은 오직 예수가 자신을 사람의 자식으로서 평범한 인간과 동일시함으로써, 그들과 지상에서 운명을 같이함으로써만 가능했던 고난이었고 수난이었다..."    

굳이 이 긴 인용을 적은 것은 [사람의 아들]은 이문열이 자신의 실존적인 고민을 기독교와 사회학, 신화학과 비교종교학적인 탐구를 통해 구체화시킨 작품으로 어느 정도의 지적 탐구를 병행해야만 분석할 수 있은 작품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적어도 엘리아데 등의 종교사가들의 견해에 입각했음을 이문열은 밝히고 있는데 마치 이문열이 이런 생각을 허구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의 말미에 붙어있는 이남호 평론가의 해설은 그런 기본적인 조사도 없이 줄거리 찾기에 급급한 무척 불성실한 글이다.

이 책에서 언급된 사실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인정이 되는 학설로서 몇 년전 문제가 되었던 [예수는 신화다]같은 책의 과격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온건한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나에게도 당장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이 책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인 교양이 70년대의 이문열에도 미치지 못함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사람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지닌 모순의 역동을 느끼지 않고 어떻게 이 책을 볼 수 있겠는가?

하물며 엘리아데 등의 종교사가가 밝힌 종교학적인 상식과 구약과 신약에 대한 간략한 상식조차도 없이 아하스 페르츠의 이야기를 따라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알고보면 적어도 [사람의 아들]에서 이문열이 탐구한 책이라곤 몇 권 안된다고 보여진다. 별로 어렵지도 않고 그쪽 쟝르 사람들에게는 상식적인 책들인데 우리사회의 닫힌 구조 때문에 워낙 낯선 책이다보니 조금만 읽고 인용해도 완전히 새로운 별천지 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이 책이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공부 좀 하라는 질책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은 어려서부터 열심히 교회다니던 사춘기 소년이 어느 순간에 교회의 비리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을 발견하고 신앙을 회의하게 되는 그런 갈등에서 비롯된다. 사랑의 하나님은 왜 세상의 누추함과 비참함에 무관심한가? 사람의 아들 예수의 기독교는 왜 세상의 비리에 동참하고 있는가? 오히려 교회야말로 종교야 말로 구원이 아니라 거대한 사기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유치찬란하지만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절절한 질문에 대해 민요섭도 조동팔도  아하스 페르츠도 고민한다. 아마도 이문열의 개인적인 신학의 종착역일지도 모를 [쿠아란타리아서]에 이르기까지의 비교종교학적인 탐색은 계속된다. 이 책이 구성상의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예수와 아하스 페르츠와의 역동적인 긴장, 그리고 그 긴장 속에 내포된 질문의 치열함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이런 이문열을 나는 좋아했었다. 그러면 이문열이 다다른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민요섭의 신학적 탐구의 종착역인 [쿠아란 타리아서]의 끝은 이러하다.  

"다시 말하거니와 너희는 지음 받는 그 순간에 이미 완성되었다. 우리는 몸소 분별해야 하는 번거로움 대신에 너희에게 선을 부어넣었고, 간섭하는 수고 대신에 지혜를 내렸다. 그 선과 지혜를 정의와 자유로 나란히 누리게 되는가 독선과 악으로 스스로의 멍에를 삼는가는 오직 너희 손에 달렸다.

그 날에는 부질없이 하늘을 우러러 우리를 찾지 말아라. 우리는 땅위에 너희를 세웠으니 구원도 용서도 땅위에서 구하라.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를 억압하고 우리의 거룩함을 보탤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희에게 빼앗아서 우리에게 더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너희를 낮추고서 우리를 높일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 너희 고통 위에 우리 즐거움이 있을 리 없고, 너희 슬픔이 우리 기쁨이 될 리 없다. 너희를 가장 잘 섬긴 자가 곧 우리를 가장 잘 섬긴 자이며, 모든 것은 너희에게서 일어나고 너희에게서 끝나리라."(253-254쪽)   

나는 [쿠아란타리아서]가 무척 의미있는 종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신학적인 인간에서 인문학적인 인간으로의 독립 선언이라고 부를 만하다. 여기서의 신은 기독교적인 신이 아니라 인문학 적인 신으로 '우리의 지혜와 이성을 신뢰하며 우리를 온전히 자유케하는 신'이다. 이것은 율법주의와 교회조직의 횡포에서 고통받는 인간이 종교학의 성과를 통해 다다른 하나의 결론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결론에 이어 바로, 민요섭이 조동팔에게 죽임을 당한다는데 이 책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민요섭은 갑자기 옛 하나님과 그 교회로 다시 돌아가고 마는데 조동팔의 입을 빌어 이렇게 그 심정을 밝히고 있다.

"쓸쓸하고 두렵다는 거였오. 웃지 않고 성내지 않는 우리의 신, 기뻐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며, 꾸짖지도 않고 칭찬하지도 않는 우리의 신- 그에게 이제 지쳤다는 거요. 선악의 관념이나 가치 판단에서 유리된 행위, 징벌 없는 악과 보상없는 선도 마찬가지로  공허하다는 거였오."(265쪽)    

적어도 내 생각에는 이때 민요섭이 돌아간 하나님과 십자가는 맹목적 신앙의 대상이었던 예전의 하나님과 십자가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쓸쓸하고 두렵다'는 것과 '공허하다'는 적나라한 심정의 토로가 지극히 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치열함과 진실성인 것인지 이문열 작가의 기성에의 회귀라는 보수성으로 인한 것인지는 참 알기 어렵다. 바라건대 이 장면에서 민요섭은  칸트가 이성의 끝에서 신을 요청하는 바로 그 지점을 지나고 있으리라고 나는 믿고 싶다.  

반면 민요섭을 죽인 조동팔의 마지막 외침 역시 의미심장하다. 아! 삶에도 신앙에도 유일무일한 해답은 없는 것이리라. 적어도 실천에 있어서는 모두 각자의 길을 가야 하지 않은가?

" 그러나 나까지 패배해 쓰러졌다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지금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은 민요섭의 피지, 우리의 신에 대한 절망은 아니오. 이 시각 이전에나 이 시각 이후에나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은 우리의 신뿐이며, 설령 아무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 고독한 신성은 언제나 당신들의 머리 위에서 빛날 것이오..." 

배암발 : 이문열의 비교 종교학적 탐구를 지켜보며 인문학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지적 편력과 이성적인 해결이 종착일 수는 없다. 인간의 근원적인 상황에 대한 깊이을 확보하지 않는한 정보 검색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이문열의 책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은, 적어도 이 책에서의 안타까움은 넓이에 비해 깊이가 얕다는 것이다. 민요섭이 중간에 실종되고 아하스 페르츠도 구라만 남게 된다. 이것은 이문열 개인의 경험이 실종되고 책만 파서 그렇다는 느낌이 든다. 오!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너무도 초라하였더라. 이 책이 주는 안타까움이 그러하다. 이런 안타까움이 더 애착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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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의 아들, 이문열
    from about morisot 2007-12-02 19:25 
    니체는 유대인들이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원한 감정에서 그리스도교의 탄생 배경을 찾는다.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좌절에서 태어난 증오는 현실을 부정하고 세계사에 유례없는 가치 변조를 은밀히 수행한다. 무력감과 사제적인 복수심에서 유대인들은 지상세계의 가치를 변조했다. 그들은 우리의 삶, 우리의 ‘실제적인 현실성’을 악으로 표현하여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세계로서 저편의 다른 참된 세계를 고안해 내었다.” 니체는 유대인들이 종말론적인 위..
 
 
하늘연못 2007-05-16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빈치 코드] 해설서는 나오는데 왜 [사람의 아들] 해설서는 없는 것일까요?

모리소 2007-12-0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사람의 아들>을 읽던 도중에 인터넷 서평을 찾아보다가 이곳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이 책이 고민거리를 너무 많이 던져주어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었습니다. 더불어 이문열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라딘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고요. 하늘연못님 리뷰가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습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향이 나는 서재에서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하늘연못님 서재에서 노닐다 보니 제 블로그에 적어놓은 미천한 글들이 어린이(?) 특유의 오만과 치기로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하게 부끄럽습다. 나이먹고 철 더 들면 제 블로그도 하늘연못님의 서재처럼 좋은 향취가 베어나올 수 있을까요? 서재를 블로그 구독기에 추가했는데 괜찮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따끈한 글 올라올 때마다 놀러오겠습니다. 앞으로 책을 읽어나가는데 하늘연못님 서재가 제게 소중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하늘연못 2007-12-04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을 표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음을 담은 댓글을 보는 것은 일년 중 몇 번 안됩니다. 재차 감사드립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처자가 잠든 늦은 시간과 흔들리는 버스시간에 틈틈히 읽고 직장 생활의 짜투리 시간에 서둘러 적어내리는 리뷰인지라 설익을 수밖에 없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이죠.(사실 이런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것이 저도 남의 글 잘 안읽고 댓글을 잘 안달아주니까요. 인과응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세번째로 서둘러 읽고 이 글을 썼던 그 시점까지도 저는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대학 다니던 10년 전과 전혀 나아가지 못한 지식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사람의 아들]이 젊은 이들의 책이고 여전히 흥미롭지만 난해한 책이라고 한다면 새로 읽는 사람들은 저보다 조금은 더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진정을 다해 디딤돌을 놓은다면 그 돌을 밟고 조금씩 더 높이 나아갈 것이다.'
정말 이 책에 대해 현학적이 아닌 속 시원한 리뷰가 많이 쓰여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저의 답답한 속도 풀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오랜만에 다시 그리스 신화도 신약 구약도 손에 잡고 있습니다. 조셉 캠벨과 멀치아 엘리아데를 중심으로 종교학도 조금씩 읽어보고 있습니다. 호기심을 누르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저의 갈 길입니다. 다시 한번 진정어린 댓글 감사드립니다.
 
무인 곽원갑
우인태 감독, 이연걸 외 출연 / 엔터원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1991년 영화 [황비홍]을 본 후 그의 팬이 된 후 이연걸의 영화는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마흔이 넘은 그가 은퇴 무대로 고른 영화가 이 영화 [무인 곽원갑]이다. 20세기 후반 중국 무술영화를 생각해보면 이소룡 이후에  결국 이연걸이라고 생각한다. 취권으로 사랑받은 성룡은 무술가로서의 이미지는 약하다. 결국 그 외로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은 왕우나 유가휘, 좋아하는 견자단 정도가 아닐까 싶지만 두 명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소룡의 간소하고 날카로운 격투술과 이연걸의 전통적이고도 유장한 무술이 전혀 다른 스타일이면서도 20세기 중국무술영화를 지배했다.

이소룡의 최고작을 [정무문] [용쟁호투]와 [사망유희]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연걸의 최고의 영화로 4개를 고르고 싶다. [황비홍1] [정무문] [태극권] [곽원갑]! 그 중 최고를 나는 이 영화 [무인 곽원갑]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는 이연걸이 녹아있고 중국 무인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무술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시각적인 재미로 보아도 이 영화는 최고의 영화로  [매트릭스]와 [킬빌]의 무술감독인 원화평과 최고의 무술배우 이연걸의 결합을 통해 뛰어난 무술 장면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 영화 이전에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토니 쟈의 [옹박]을 의식해서 더더욱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만들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이 들만큼 이 영화의 격투 장면은 생생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그렇지만 역시 이연걸의 진가가 나타나는 부분은 맨마지막의 태극권으로 춤을 추는 장면같은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출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춤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아! 이제는 더이상 이런 장면을 볼 수 없다니! 그렇지만 이연걸은 아마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은퇴 무대를 이렇게 아름답게 장식하다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다. 이연걸 당신은 정말 최고다! 

아마도 이연걸이 굳이 곽원갑을 연기한 이유는 곽원갑이 이소룡의 영화 [정무문]의 주인공인 진진의 사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써 자신의 무술 철학과 더불어 이소룡 보다 뛰어난 무술가임을 밝히고자 하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여하튼 이연걸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무술가로서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고 밝힌바가 있다. 그 메시지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산골의 장님 아가씨 문의 이야기가 그 대답이 되지 않을까? 곽원갑이 다른 사람보다 서둘러 모내기를 하다가 너무 바짝 모를 심자 문은 다시 모를 심는다. "모는 제각기 생명이 있어요. 서로 거리를 충분히 유지해야만 살 수가 있지요." 이 장면은 곽원갑과 일본 무도인 안노 타나카와의 대화에서 변화되어 나타난다. "모든 무술은 약하고 강하고의 차이일뿐 근원적인 차이는 없소. 무술가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어디까지 성숙하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오."무술가는 군인이 아니다. 무술가는 자신과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되는 것은 곽원갑의 비극과 무술가로서의 성장이 잘 조화된 드라마 때문이다. 알다시피, 곽원갑의 최고가 되겠다는 열망이 진사부를 격투 끝에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보복으로 처자가 죽게된다. 분노에 차서 찾아간 진사부의 집에서 슬픔에 찬 진사부의 처자를 보게 된 곽원갑은 모든 비극의 시작이 자신이었음을 알고 미치게 된다. 따라서 산골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위로를 발견하고 문과의 만남에서 참된 인생을 발견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으면서도 애절한 인생의 드라마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곽원갑과 문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재회랄지 슬픈 가족사 같은 것이 잠시 슬픈 느낌에 잠기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통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길을 갔던 한 무도인의 삶은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삶의 한자락에는 어떤 시련과 슬픔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통해 우리는 또다른 자신과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리라.

  끝으로 이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라스트 사무라이] 역시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이상하게 짝이 되는 영화같은 느낌이 든다. 이연걸이 바람 속에 서있듯 대장군 켄도 바람속에 서있다. 바람속에 모도 흔들리고 사쿠라꽃도 흩날린다. 영화를 보시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이다. 그렇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불어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를 흔들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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