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하드우드 클래식 - 하킴 더 드림 : 하킴 올라주원 - [할인행사]
워너브라더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NBA 최고의 센터를 찾는다면 누가될까? 샤킬 오닐이나 팀 던컨이 먼저 떠오른다. 또 2006년에 MVP를 차지했던 더크 노비츠키 같은 헌신적인 선수도 떠오른다. 그렇지만 재능으로 따진다면 하킴 올라주원이야말로 단연 역대 최고의 센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하킴은 팀 던컨과 닮았다. 팀 던컨이 조그만 섬나라 출신의 수영선수였듯이 하킴은 원래 나이지리아 출신의 육상선수였다. 팀이 센터이면서도 공격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하킴 역시 현란한 드림쉐이크 후에 멋진 레이업을 날렸다.

하킴이 뛰어난 선수인 것은 타고난 순발력 때문이다. 원래 육상 선수였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센터 중에서 가장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었다. 하킴이 빠른 스피드로 달려가서 덩크를 한다거나 상대의 슛을 손쉽게 블로킹을 하는 모습은 정말 재빠르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아마 농구 역사상 가장 운동신경이 좋은 센터를 찾는다면 단연 하킴 올라주원을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뛰어났지만 하킴은 평생 단 한차례 밖에 우승을 할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우승의 문턱에 있었지만 NBA에 입성하지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한번의 우승을 할 수 있었다. 왜일까? 우선 그가 비교적 팀사정이 안좋은 휴스턴 로케츠에서 뛰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매직 존슨과 래리버드, 마이클 조던의 틈바구니에 끼었기 때문이다. 매직과 버드, 조던의 왕국사이에서 신음했던 거인들이 있다.  하킴 올라주원, 패트릭 유잉, 찰스 버클리,칼 말론! 그나마 하킴과 패트릭은 한차례 우승을 차지했지만  찰스와 칼은 그런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아마도 이런게 운명일 것이다.

여하튼 힘든 투쟁 끝에 우승의 기쁨을 맛보는 하킴의 웃음으로 끝나는 이 DVD는 농구라는 스포츠가 주는 가장 감동적인 드라마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 배암발 : 휴스턴 로케츠가 드래프트 1순위로 하킴 올라주원을 뽑으면서 약체 팀 시카고 불스로 팔려간 선수가 있었다. 그가 바로 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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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하드우드 클래식 : 매직 존슨 - [할인행사]
워너브라더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최근에 나온 하드우드시리즈의 [슈퍼스타]를 보다가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의 공을 비교해 보았다. 마이클이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공처리를 하는 반면 매직은 항상 곡선을 그리는 것이 즉각 눈에 들어왔다.

또 마이클은 공격을 전담하는 포워드이기에 다양한 슈팅과 덩크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패스는 무척 거칠었다. 어찌 생각해보면 그런 공을 받아주는 동료들이 대단하다고나 할까? 반면 매직의 공은 대부분 동료들의 가슴에 사뿐사뿐 안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매직은 최고의 포인트가드였던 것이다.

내가 서른살이 넘어서 농구를 시작한 이유는 영화 [옹박]을 보고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공중 돌려차기나 공중 2회전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토니 자를 보고 무술 도장을 찾아갔으나 이곳도 저곳도 그런 것을 가르쳐줄 사람은 없었다. 실망을 하며 지내다가 우연히 NBA DVD [Dunk]에서 빈스 카터를 보고 나는 기쁘게 외쳤다. "저거다. 농구야 말로 내가 바라던 무술이다."

그동안 유도 도장이나 쿵후 도장을 얼쩡거린 경험으로 말하면 무술도장에서는 기껏해야 초중고생이 몇명 있을 뿐 대학생이상의 거구들은 별로 볼수가 없었다. 85킬로에 180이 넘는 나는 유도도장에서 짝을 찾지 못해 뚱보 사범님과 어울리지 않는 짝이 되어야 했다. 참고로 나는 5킬로 정도는 뛸수 있고 푸쉬업도 정식으로 100개 정도는 쉬지않고 할 수 있다. 이런 내 입장에서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위주로 가르치는 일반 도장이란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니 세상은 달라 보였다. 농구장에는 거구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그런 거구들은 힘이 좋고 재빠르다! 그뿐인가? 170전후의 날렵하면서도 센스있는 운동선수들이 즐비한것이 농구장이다. 몸이 느리면 키가 크더라도 맨투맨에서 20대 7하는 식으로 작살이 난다.그리고 농구공을 든 모든 사람은 나이와 체급을 불문하고 경쟁한다. 농구장이 뭐냐? 주먹 안쓰면서 연신 맞짱뜨는 곳이다.

농구는 주먹을 쓰지 않으며 공중돌려차기가 없지 않느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 조던이 자유투 라인에서 점프를 하면서 공을 내리꽂는 실력으로 사람을 가격한다고 생각해 보라. 마이클 조던이 더블 클러치 트리플 클러치를 하는 실력으로 공중회전 발차기를 한다고 생각해 보라. 매직 존슨이 스핀슛을 던지는 것은 완전히 태극권 동작이다. 

농구는 키큰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농구에는 슈팅과 패스, 현란한 앵클 브레이킹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최홍만이나 서장훈을 보라! 2미터가 넘는 사람이 높이 점프하는 것은 170인 사람이 점프력을 향상시키기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다.

140킬로그램의 샤킬오닐이 농구 한게임을 소화해 내고 연신 덩크를 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적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래서 샤킬 오닐이 엄청난 돈을 거머쥐는 것이다. 샤킬은 그만큼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단언한다. 뚱보 샤킬이 덩크하는 것은 180인 사람이 덩크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니 키에 집착하지 말고 농구가 가진 잠재력을 보라고 하고 싶다.

당신이 10센치를 더 점프할수 있다면 원클러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20센치를 더 점프할 수 있다면 더블클러치를 자유롭게 할수 있다. 30센치를 더 점프할 수 있다면 덩크가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토니 자처럼 도약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잠재력을 발견할 때 우리는 농구코트에서 한없이 자유로우며 역동적인 아마추어가 되는 것이다.

농구를 5년째 하면서 항상 원을 그리며 상대의 무게중심을 뺏고 빈틈이 보이면 뚫고 나가며 다양한 슛으로 링을 노리는 이 운동에 나는 점점 빠져들게 된다. 친구가 없어서 안타깝긴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도전자들과 만나고 언제나 젊은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무술 농구때문이다.

이렇게 사는 내 입장으로 볼때 매직 존슨은 아마도 가장 뛰어난 농구선수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에 대부분 결승에 진출했으며 실제로 5개의 참피온 반지를 차지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그의 훅슛, 그의 어시스트, 그의 절묘한 율동과 기분좋은 미소를 생각할 때마다 단연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하게 된다.

DVD의 마지막 멘트가 가슴에 와 박혔는데 바로 이거다. "농구에 있어서나 인생에 있어서나 Magic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농구를 좋아한다면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수작 DV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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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리 스트로벨.개리 풀 지음, 김재영 옮김 / 두란노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1. 우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처음부터 이상한 것은 영화의 원래 제목이 [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것이다. the는 생략하고 핵심단어로만 영화제목을 삼은 황당한 과감성이 놀랍지 않은가?

2. 그리고 우리는(나만은 아닐거 같으니까 우리는) 영화 제목을 '그리스도의 열정'이란 뜻이리라 짐작하다가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걸 알고 조금 당황하게 된다. passion은 열정이라는 뜻이지만 'the Passion'은 예수의 (특별한) 수난, 즉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밤부터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예수가 겪였던 고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passion과 Passion이 별도의 단어란 말인가? 영영사전을 찾아봐도 특별한 연관을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 다만  the Christ 라고 지칭한 그리스도는 예수인 모양이니까 Christ 즉 구세주는 예수말고도 여러명 되나보다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3. 이 책의 저자인 리 스트로벨의 명저 [예수는 역사다]를 보면,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의 수난에 대한 매우 생생한 화면을 보여주지만 몇 가지 잘못된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1) 예수가 무거운 십자가를 힘겹게 메고 가는 장면이 장엄하지만, 실제 십자가형에서는 죄수가 180센치 크기의 14kg의 가로대만을 지고갈 뿐이라고 한다. 세로기둥은 골고다 언덕에 고정되어 있었다. 물론 혹독한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된 죄수에게는 여전히 고통스럽긴 하지만 실제 예수는 적어도 영화 속 화면보다는 훨씬 가벼운 가로대만 메고 갔다.

(2) 예수가 못박힌 부위는 손바닥이 아니라 정중신경이 지나는 손목부위라고 한다. 손바닥에 못을 박으면 자칫 못이 손바닥을 찢고 떨어져나가기 때문에 뼈사이에 단단히 고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복음서를 보면 제자인 도마가 손가락을 넣고자한 것은 예수의 손이었지 손목이 아니었다. 그러나 원래의 희랍어 원문에서의 손은 손목까지를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3) 산업사회 이전 시기에는 출생아의 75%가 26세가 되기 전에, 90%가 46세가 되기 전에 죽었다고 한다. 따라서 32세의 예수는 요즘 나이로 보면 50- 60세 정도의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당시 사람이 보기에 예수는 젊은이가 아니라 요즘 우리가 중년의 선생님을 볼때 느끼는 원숙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아마도 상당히 시골스럽고 유쾌해보이는 인상으로 꽃미남보다는 털털한 소크라테스 비슷한 모습이었으리라.그는 술꾼이요 탐식하는 사람이었다는 표현이 복음서에도 보인다.    

4. 따라서  얼마전 리 스트로벨의 [예수는 역사다]를 너무도 감명깊게 읽었던 나는, 이 책을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헛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책이리라 판단을 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이 책은 예수 수난의 디테일을 포착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다. 목표는 전도에 있다. 리 스트로벨이 영화 상영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끌고자  쓴 책이다.

자세히 보면 이 책의 원래 제목은 [Experiencing the Passion of Jesus]로 '예수의 수난을 몸소 겪어본다'는 뜻으로 영화 제목과도 약간 다르다. 따라서 나처럼 영화의 구체적인 부분을 알고 싶은 사람이 보아야할 책은 같은 저자의 [예수는 역사다]이다. 특히 'part 3. 부활연구'는 저자와 최고의 신학자의 불꽃튀는 부활에 대한 탐구이다.

또 예수의 수난에 대한 실존적 또는 신앙적 탐구를 원하시는 분이 찾아야 할 책은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예수의 마지막 날]이다. 아주 작지만 좋은 책이다. 이 책에서 특히 감명깊었던 부분은 예수의 수난을 볼때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보다는 악역을 행하는 자들과 자신이 유사하지는 않은지 돌이켜보라는 당부였다.

5.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예수의 가르침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신약을 공부하면서 역시 기독교의 핵심에는 십자가가 있다는 걸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개구리를 잡아 못을 박아 널판지같은데 달아놓은 적이 있다. 가엾은 개구리는 한참을 꿈틀거리다가 말라죽었다. 그런데 개구리가 아닌 사람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을때까지 십자가에 매달아 놓았다니 끔찍한 처형이다. 나는 개구리를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예수를 생각하며 내 팔을 뒤로 젖혀 잠시 난간에 매달려보았다.

수많은 채찍질로 상처를 입지않았으나 나는 무척 괴로웠다.그러나 아시는지?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들은 최악의 고통에 시달리며 2일 또는 3일을 꿈틀대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신약에 나오는 죄수의 정강이 뼈를 부러트리는 풍습은 죽음을 앞당겨 고통을 줄여주는 사려깊은 행위에 속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십자가의 고통이란 과연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십자가는 인간을 가장 비참하게 하는 곳이며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장소로 더 이상 떨어질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곳인 것이다.   

진실을 추구하던 한 인간이(신인지는 난 모르겠다) 모진 학대와 비웃음, 모멸을 당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의 추구를 버리지도 않았고, 죽음을 당하면서도 가해자를 원망하지 않았다. 누가복음을 보면 그는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오히려 가해자를 감싸주었다.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그 개구리라면 나를 용서하겠는가? 아니다. 나는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날카로운 가시관이 머리뼈까지 파고들며 타는 갈증과 호흡곤란으로 꿈틀거렸을 예수의 고통을 생각할 때, 그리고 어린 시절 개구리의 꿈틀거림을 기억할 때 나는 더더욱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 진정 나는 저주와 절망을 벗어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십자가 형벌의 고통을 헤아릴 때에, 예수는 한없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피울 수 있었던 너무도 선량한 사람이었음을 그래서 아마도 신이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였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순결하면서도 깨어있고, 그토록 자비로우면서도 강인한 영혼을 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존재를 신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6. 최근에 읽은 톰 라이트의 [예수]라는 책에 보면 예수가 "오른 뺨을 치면 다른 뺨도 돌려대라"라는 말이 '바보처럼 맞고만 있으라'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고 한다. 간디의 비폭력 사상을 열매맺은 이 말은 결코 그렇게 이해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말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의 관습을 알아야한다. 즉, 유대인들은 동등한 사람에게는 교육의 의미로 손바닥으로 때리고 혐오하는 사람에게는 경멸의 의미로 손등으로 때리는 관습이 있었다. 따라서 오른 뺨을 손등으로 때리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뺨을 돌리는 것은 때리는 이를 손바닥으로 칠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적극적인 저항행위인 것이다. "그것은 당신도 그와 동등한 인간임을,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십자가의 의미를 더 깊이 성찰할 때, 예수의 원수에 대한 사랑은 저항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예수에게 로마병정과 유대인, 그리고 구경꾼들은 원수라고 할 수가 있으리라. 예수는 그들이 참된 길을 알지 못하기에 벌을 내릴 수는 없다고 감싸준다. 아마도 예수의 사랑은 저항에 있다기보다는 포용과 겸손, 연민과 지혜에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7. 이 책을 읽으며 리 스트로벨이 예수의 수난의 의미를 '죄사함'과 '대속'의 논리로만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아쉬웠다. 물론 누가복음이나 바울의 글에서 예수의 죽음을 '죄사함'으로 볼수있는 여지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죄라는 것이 형법상의 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참됨을 알지못하는 어리석음'과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그런 죄는 누군가가 대신 죽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죄 또는 어두움은 참된 말씀과 빛으로 일깨워야만 한다. 이와같이, 일방적인 희생에 의한 속죄가 아니라 참된 자신의 모습을 찾게하는 깨달음의 길을 보여주는 데에 복음의 핵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복음서를 보면 예수가 다시 살아난 후에도 제자의 대부분은 의심을 표했다. 또 관심을 끄는 것은 부활한 예수가 조금은 다른 존재였을 지언정 구름을 타고 벼락을 내리치며 지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가 한 일은 예전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며 식탁에 앉아 빵과 고기를 함께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이야말로 오히려 감명이 깊은 부분이다. 부활 후의 예수조차 여전히 일상의 지평에서 사셨다는 것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승천을 했다고 하는데 저 위에는 대기권 너머 허공 밖에 없다는 걸 다 아는 세상이다. 예수의 승천이란 대기권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가슴 속 깊이 스며드는 그래서 '뼈와 살'이 되는 승천이 아닐까?

 8. 여하튼 책의 맨마지막에 소녀에게 20달러짜리 수표를 주는 리 스트로벨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예를 들어 서점주인이 5달러의 100배 1000배를 요구하면 갚아줄 수 있을 것인가?  

리 스트로벨의 논리에 따르더라도 예수의 죄사함은 한이 없는 것이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극한과 인간이 차마 떨어지고 싶지않은 모멸의 극한에서도 예수는 그들을 용서했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나는 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예수는 자비로웠다. 예수는 그 고통 속에서도 그들을 사랑했고 카르마를 남기지 않으셨다라고.

9.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내가 기독교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된 때가 언제인가? 아마도 [레미제라블]을 읽은 때도 그런 때일 것이다. 미리엘 주교가 범죄자를 집에 들이는 것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은 장발장을 쫒아내고 인격적으로 모독했지만 미리엘은 그를 쫒아내지 않았으며 존대말을 사용했다. 미리엘은 장발장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은 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하지 않아도 좋았소.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오. 이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그 이름을 묻지 않고, 다만 그에게 고통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어볼 뿐이오. 당신은 고통을 받고 있고, 굶주리고, 목이 마른 사람이니 잘 오신 것이오.

그리고 내게 감사할 필요도 없소. ...여기는 내 집이라기보다 오히려 당신의 집이오. 여기 있는 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오. 어찌 내가 당신의 이름을 알 필요가 있겠소.그뿐 아니라 당신이 이름을 말해 주기 전부터 나는 당신의 이름을 하나 알고 있소.... 당신 이름은 '내 형제'라는 것이오."  

오랜 범죄자였던 장발장의 거듭남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미리엘은 판검사의 자리에서 고고한 성직자의 자리에서 장발장을 내려다본 것이 아니라 형제의 자리에 다만 있었다.장발장의 형제 미리엘이 장발장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이었던가? 그는 다만 정직하게 살아가라고 이야기했다. 정직한 사람의 길은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향하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예수는 우리 죄에 상응하는 벌금을 치룬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가장 낮고 비참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에서조차 변함없는 사랑의 길을 갔다. 십자가에 매달린 하나님, 예수의 메시지는 명확하다.우리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참된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사랑과 빛이 충만한 삶을 살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가 주는, 나같이 나약한, 저주와 절망으로 지친 인간에게 주는, 궁극의 위안이자 희망이리라.

10.  좁은 소견이지만, 예수의 사랑이 카르마가 없다고 한 것은 예수의 본뜻이 우리를 정해진 틀에 얽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이 진정 있어야 할 곳과 해야할 일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무엇을 굳이 말한다면 빛이요 생명이리라.

장발장에서 보듯이 참된 사람의 길이 도대체 어디로 가겠는가? 그리고 참된 길을 찾는 것이 머리가 좋아야 한다거나 아니면 굉장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풀잎은 빛을 향하고 뿌리는 땅을 향한다. 생명의 길이란 명확하고 당연한 길이리라고 생각된다.

노파심으로 말씀드린다면, 이런 언사는 나 자신이 바로 그 생명의 길을 가고있다는 뜻이 아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길을 간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나 그길을 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쉽고 아름다운 길이리라는 것이다.

결국 리 스트로벨이 아무리 훌륭해도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예수이다. 너무도 대속의 논리에 사로잡힌 결과 리 스트로벨 당신은 소중한 무언가를 잊고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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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짜리는 줍지마라 - 눈앞의 달콤한 유혹
야스다 요시오 지음, 하연수 옮김 / 흐름출판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읽기 쉬운 책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담겨있는 책도 아니다. 따라서 감정적인 설득을 넘어 실용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질문으로 핵심을 좁혀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단도직입적으로 저자에게 들어보자. 당신은 왜 만원짜리를 줍지말라고 하는가?

"만원짜리를 줍는 순간 시선이 땅으로 내려가 다른 모든 것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만원 지폐에 집착한 나머지 바로 옆에 떨어진, 삶에 있어 휠씬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을 발견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지은이에게 '그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란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밖에 없다. 지은이가 생각하는 소중한 가치는 다음 두 가지로 나타난다.

(1) 새로움 : "시간을 늘려야만 만들 수 있는 상품을 파는 한 장기적으로 볼 때 경쟁사를 결코 이기지 못한다." "머리를 써서 일을 하라" "뛰기전에 한 걸음 멈춰서 전략을 세워라." (따라서 저자가 생각하는 새로움은 시간 소모적이 아닌, 창의적이면서도 전략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2) 승률을 높일 수 있는 장기적인 투자 대상 : 인재, 정보, 브랜드(따라서 소중한 가치는 개인적인 가치라기보다는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결부된 어떤 가치라는 특성이 있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만원짜리라는 단기적인 이익에 매달리다가는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일상 속에 숨어있는 '새로운 정보'를 포착하는 능력이 죽어버리고 만다.

좀더 부연설명을 들어보자. 지은이는 모든 사업이라는 것이 리스크를 안고 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실패 속에서 배우는 것이고, 승률이 높은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승률이 높은 사업이란 결국 새로운 분야의 선점효과와 장기적인 투자가 결합된 사업이다.장기적인 투자는 지은이 식으로는 인재, 정보, 브랜드이다. 그러면 결국 무얼 말하는 것인가? 뛰어난 인재를 키우고 그 인재에게 새로운 가치와 정보를 개발하도록 하게 하라. 그것만이 승률을 높이는 방법이다.그러면 그 새로움이란 것의 실체란 무엇인가? 새로움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는 말인가?

"평소에 늘 봐와서 눈에 익은 광경들 속에는 이러한 원석, 다시 말해 '가치 있는 정보'들이 숨어있다. 그러한 정보들은 새로운 영감과 직관을 선사해 당신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성장시켜 준다."

여기서 다시 질문해 보자. "왜 당신은 만원짜리는 줍지 말라고 하는가?"

"왜냐하면 만원짜리를 줍는 적은 수고로는 만원짜리를 얻는 걸로 끝나기 때문이다. 허리를 펴고 멀리 바라보고 주변을 파악하라. 중요한 것은 일상적인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일상적인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마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여서 무궁무진한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런 걸로 비유할 수가 있다. 우리가 지리산 천왕봉에 가서 한번에 하나만 캘 수있는 보석으로 장사를 해야한다면 그런 사업은 크게 성장하기 어렵다. 반면 전국 어디서나 나오는 수도물에서 보석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런 사업의 성장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따라서 일상을 가치있는 무엇으로 변화시키는 능력, 또는 새롭게 바라보아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란 기업 성장의 핵심이자 필살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언이 하나 있다. 지은이의 직업을 유념하면서 책을 읽으시기를 바란다. 지은이는 벤처기업의 경영 컨설턴트이다. 언제나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어 선점효과를 통해 성장하는 젊은 기업인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 지은이의 직업이다.

(지은이의 신규산업 진출론은 이런 직업을 반영하고 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선택할 때에는, 그것이 새로운 사업이라면 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만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선택할 때에는 그것이 오랫동안 계속해온 사업이라면 그만 둔다.")

따라서 벤처사업가가 아닌 일반 독자는 새로움을 낯선 분야로 한정지어서 읽으면 곤란하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철새처럼 이 직업 저 직업, 이 분야 저 분야로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다. '질적인 변화'가 문제인 것이다. 분야의 이동이 질적인 변화와 이어지지 않는 한 - 질적인 변화란 적은 시간을 투여하면서도 더 나은 성과를 낸다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끝없는 방황에 불과하다. 그것은 새로움의 모색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반인인 내 입장에서 더 중요한 이야기는 이런 말들이다. 

"습관적으로 반복하면 실력 향상이 되지 않는다."

"연습은 향상에 대한 깊은 모색과 새로운 방식의 추구를 말하는 것이다."

"근면과 성실이란 시간의 집중도의 향상을 의미해야 한다."

그런데 까놓고 이야기해서 이런 말들이란 것은 진부하다. 요즘에 이런 내용을 담고있지 않은 책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뻔한 내용을 수긍이 가도록 썼다는 점이다. 또, 지은이가 자신의 체험을 실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내용을 듣다보면 영감을 받는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니, 자기 변화를 모색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그나저나 언제나 이런 책 언저리에서 노니는 나란 인간은, 이런 답답한 윤회의 바퀴를 언제 벗어난단 말인가? 

** 배암발 : 내가 생각하기에 탄복할 만한 구절이 있다. 고객 관리에 있어 좌우명을 삼을만 하다.

(1) 짜증 나는 고객은 거절하라.

(2) 너무 소중한 고객은 만들지 마라. 과도한 부탁조차도 뿌리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3) 상대적으로 조금 우수한 고객을 전체 고객의 30%로 유지하되, 이 우수고객조차 신진대사를 거쳐야 자신의 뜻을 펴면서도 안정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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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OST 포함, 3disc) [알라딘 특가]
김용화 감독, 김아중 외 출연 / 팬텀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영화는 최고의 오락영화로 한번쯤 직접 보시길 권하고 싶다. 이 리뷰는 영화 감상의 토핑에 불과하다.

1. 이 영화 속의 강한나(김아중)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이 몇 있다. 내 여동생만 해도 그런 사람인데 불행한 결혼생활 끝에 아기를 하나 낳고 이혼을 해야만 했던 동생은 2, 3년 사이에 60킬로에서 90킬로로 치달았다. 거의 방실이 아줌마 수준이었던 동생이 좋은 사람 만나 재혼을 하게 되면서 좀더 당당해지고 싶다고 반년간 하루에 6시간에 걸친 운동을  소화해냈다. 결국 다시 60킬로대로 환골탈태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의 강한나가 남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2.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나도 강한나 입장이었던 적이 있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휴학을 했던 나는 1년동안 이런저런 배달을 하며 지내다가 갑작스런 군대영장을 받아 끌려가듯 입대를 했었다. 군생활에 대한 부적응과 선임병의 학대를 받으며 점차 식사량이 늘어났는데 반년도 안되어 30킬로가 불어났었다.

그때는 90킬로만 넘으면 방위병이 될 수가 있었는데 90킬로가 그렇게 가까운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68킬로였던 사람이 일병을 달자마자 100킬로로 변하자 스스로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휴가를 나가면 사람들이 슬금슬금 비껴가고 휴게실 의자같은 것은 가끔 주저앉아 주인의 빈축을 샀다. 언젠가 축구를 하다가 말년 병장과 부딪혔는데 2미터는 넘게 날아가버린 처참한 몰골의 병장을 보고 당황했던 기억도 난다. 

3. 나는 이런 경험 때문에 비만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무엇을 줄일까 걱정을 하기 보다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정말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 역시 다이어트를 통해 살을 뺀 것이 아니라 군대를 제대하면서 내 인생을 살았기에 어느덧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주변 상황에 짓눌려 어찌할 수 없이 움츠러든 자신과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고 노폐물을 쌓아두어 생긴 비만은 쌍둥이 같은  존재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살라! 자신을 불태워라! 그러면 생동감 넘치는 자신으로 변할 것이다. 이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상준이 강한나의 분신 미나에게 자신감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 그거다. 그러면 여기서 자신감이란 무얼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힘이라고 생각된다. 남이 무어라고 해도 자신이 행복해지는 무엇을 마음껏 뻔뻔하게 살아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기운이 나지도 않고 우리안의 생명력은 시들어 버릴 것이다.

 4. 영화를 두번째 보면서 이 영화의 미덕을 하나 더 찾아냈다. 미녀 미나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를 일으켜 세운것은 뚱녀 강한나의 노래였다. 치매에 걸린 누추한 아버지였으며 사회에서 버림받은 스토커였다. 자신의 어두움과 불완전함 속에서 힘을 발견한다는 것, 사회의 약자와 그늘진 현실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꾼다는 것은 언제나 깊은 감동을 일으킨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이거다. 자신이 그렇게 혐오하던 과거의 자신인 뚱녀 강한나의 아우라 속에서 미녀가 된 미나가 참된 자신을 찾게 되는 장면이다. 그런 강한나에게 백코러스로 힘을 보태는 친구의 모습도 아름답지 않은가? 

15. 그러고보니 10년전 연애시절에 여자 친구의 집에 놀러가면 만화 [미녀는 괴로워]가 쌓여있었다.  '미녀는 괴로워'라는 이름이 주는 유치함때문에 코웃음쳤던 것도 떠오른다. 그런 내가 10년이 지나 영화를 보게 되다니! 영화를 보다가 문득 미녀의 괴로움의 정체가 무언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무엇이 참된 나일까 하는 진통이겠지. 나도 군생활할때 초소 위에 융단처럼 깔린 별들을 보며 무엇이 진짜 나인지 물었었다. -누구나 그런 밤들이 있지 않는가?- 그런 고통에는 덧없는 생명의 무상함도 섞여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고통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나는 무언가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나는 외쳤었다. 그렇다. 부처도 일체개고요 제법무상이라 했지 않던가! 이런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 놀랍고도 즐거운 영화다.  

 배암발 : 이 영화하고 쌍둥이같이 비슷한 영화가 [복면달호]이다. 이 영화 역시 일본만화가 원작인데, [엔카의 꽃길]이 원래 만화이다. 둘다 콤플렉스를 가진 가수 지망생들의 인생찾기가 주제이다. 두 편을 같이 보는 것도 유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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