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전두환 - 전2권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책의 맨앞은 합천에 일해공원이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일해는 전두환의 호다. 광주시민의 피를 빨아먹으며 대통령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국민의 한숨과 비탄을 삼키며 호의호식한 인간을 기리는 공원이 생겼다는 것이 믿기질 않는다. 이 좁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2. [21세기에는 바꿔야할 거짓말]을 보면서 과거청산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 적이 있다.예를 들어 독일과 일본에 각각 점령을 당했던 프랑스와 조선의 과거 청산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영광이 찬란했던 선진국이었고 1940년에서 44년까지 고작 4년의 독일치하를 겪었을 뿐이었다. 반면 조선은 러일전쟁, 청일전쟁, 진주만해전을 통해 세계적 강대국임을 과시했던 일본에 비해 근대화가 무척 뒤떨어진 후진적 국가였다. 그리고 명백한 식민지 통치시기도 1910년에서 45년까지 무려 35년에 달한다.

쉽게 말하면 프랑스는 20대 청년이 30대가 되기도 전에 승전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지만 조선은 20대 청년이 환갑이 될때까지 희망의 씨앗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냉정하게 보자. 프랑스는 2차대전의 승전국이었지만 조선은 다른 강대국에 의해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약소국이었다. 그런데 프랑스의 과거 청산의 잣대를 그대로 조선에 댈 수가 있는가? 나는 친일파 등등의 과거 청산에 있어서의 난맥상는 그런 근원적인 문제상황이 적절한 사회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한 채 60년이 넘도록 방치되어왔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3. 이런 잡다한 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친일파 청산에 대한 학계 또는 사회 각층의 노력을 반이라도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청산에 힘을 쏟았더라도 일해공원이 생기는 것은 막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때문이다.

나는 이런 책이 이제야 나온다는 점이 우리의 현주소라고 생각된다. 모든 모순의 시초라고 친일파 처단에 핏대를 올리지만 이런저런 난황을 겪으며 허송세월을 하는 동안  최근의 군부독재에 대한 단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 지지 않는 나라! 자국민의 심장에 총을 쏘았던 대량학살마저 정치적인 흥정거리가 되어 주범들은 면죄부를 들고 백주대낮에 활보를 하고 있는데 그 무슨 정의를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나친 시초에 대한 탐구는 오늘 현존하는 악에 대한 대결을 포기한 탓인지도 모른다.

4. 앞의 여러 리뷰에서 지적하듯이 이 만화는 허술한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의견처럼 전두환 노태우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희망이 과하다. 그것은 집에 난입한 강도와의 한때를 되새기며 은밀한 체온을 추억하는 어긋난 심사다.

[만화 박정희]의 리뷰에 밝혔듯이 이 책을 강준만 선생의 [현대사 산책]시리즈와 더불어 읽으시길 권하고 싶다. 이렇게 짝을 지어 읽으면 이 책의 그림이 대문이 되고 강준만 선생의 글이 앞마당이 되어 조금은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5. 앞의 리뷰 중에는 경상도와 미국을 매도하는 진실을 왜곡하는 책이라는 의견이 있어 눈길을 끈다. 나는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예를 들어,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민주화 운동역사상 현실 인식이 한단계 진보한 것을 보여주는 쾌거이다. 그 동안 막연히 우방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이야말로 바로 모든 비극의 한 축임을 광주를 통해 극명하게 인식했다는 것!- 이거야 말로 인식의 진보요 새로운 해결에 대한 진지한 탐구였다.

또 경상도에 대한 편견이라는 것도 우습다. 전반적으로 볼때 동족이 집단학살을 당했음에도 민정당을 중심으로 기득권의 추구에 몰두한 경상도 집단이 분명 있었음을 말하지 않고 8,90년대를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책의 첫머리에서 보듯이 이 순간에도 일해공원을 조성하는 시대착오적인 인간들이 존재하는 곳이 어디인가? 학살의 주범을 경제안정의 위인으로 떠받드는 인간들 집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심한 실소와 조롱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보수언론에 의한 장구한 기간의 진실 왜곡은 적게 생각하고 춘추필법이라고 할만한 객관적 묘사조차 왜곡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안타까운 생각을 들게 한다.

 6. 그래도 이 만화가 아쉬운 것을 적지 않을 수 없다. 두 가지이다. 우선, 광주 항쟁을 사건 일지와 지도 등을 통해 조금 더 명쾌하게 보여줄 수 있었지 않느냐는 점이다. 누가 죽었다는 감정적인 전달도 중요하지만 객관적 자료를 통한 논리적 설득이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 다음으로는, 전두환이 대통령 노릇을 했던 시기의 사건들도 각주등을 통해 세부묘사를 얻을 수도 있었는데 하는 점이다. 읽기에도 훨씬 시원하고 읽고나서도 활용을 할 수 있는 책을 만들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선동책자를 만들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장면에서 약간의 여백과 참고자료를 둠으로써 독자들에게 나름의 사고를 하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다 읽고 나니 [만화 박정희]가 인간 박정희를 입체적으로 그린 반면 이 만화는 풍선인간 전두환을 그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주인공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기간에 있었던 사건들의 지루한 나열은 저자가 애초 의도했던 광주와 땡전뉴스를 모르는 세대에게 진실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아예 내팽개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7. 나는 내가 이 곳에 산다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다. 일해공원 소식이 들려올 때도 그런 때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는 이명박씨가 전두환을 찾아가 알랑방구를 뀌는 것을 볼 때도 그런 때다. 그러나 솔직히 이런 울적한 심사는 이렇게 죽치고 살아도 되는가 하는 자탄에서 비롯된다는 걸 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박정희도 전두환도 저렇게 펄펄 날뛰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오늘이란 그 누군가가 애타게 살고 싶어하던 그토록 소중했던 내일이 아닌가? 살아남은 자에게는 슬픔과 더불어 책임도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고나서도 귓가에 울리는 말은 책 말미의 이런 글이었다. "아직꺼정 고 놈 뒷 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 배암발 : 이 만화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노태우 부분이 책의 말미에 달려 있어 [만화 노태우]를 살 필요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이 역시 두가지 이유인데 첫째 지겨운 군부독재에 대한 책은 이걸로 족하다는 안도감이다. 두번째는 금전적인 문제인데, [만화 노태우]를 사면 아마도 [만화 전두환]을 또 사은품으로 내놓아 속을 긁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산 사람은 대부분 [만화 박정희]의 독자이리라고 생각된다. 차라리 1권을 사면 2권을 준다든지, 아예 한권으로 묶어 10000원이나 12000원 정도로 팔 것이지 [만화 박정희]를 사은품으로 주는 것은 [만화 박정희]를 사준 독자들을 우롱하는 무척 어리석은 판매전략이라고 생각된다.물론 [만화 박정희]를 못본 독자들은 배보다 큰 배꼽을 받아 무척 행복하실 수 있겠다.

그러나 참자. [만화 전두환]은 이런 짜증으로 집어던지기에는 너무도 수고롭게 나온 시대의 늦둥이 자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두환의 밝은 면을 보기는 거부하겠으나 [만화 전두환]의 밝은 면은 보아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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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7-09-17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미자, 최불암 하고 부르는데는 부담감이 있는 사람이다. 이미자님이나 최불암 선생님 이런 식으로 불러야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왜 전두환 님이라고 안부르는가? 작년엔가 TV와 신문에서 예전식으로 보면 살인마이자 역적이라는 판정을 받은 전두환에 대해서는 전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쓸 수 없으며 님이라는 존칭도 쓰는 것이 옳지 않다는 토론을 하는 걸 보고 부터이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야 노인대접을 해 드릴 수도 있으나 공적인 지면에 있어서는 적확한 호칭이 중요하다. 나 역시 민중 학살의 주범이자 군부 독재의 괴수를 결코 님이나 전대통령으로는 부를 수 없다. 아무리 높여 써도 전두환 또는 전두환씨 정도 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이동수 2007-09-2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래전에 받은 부자의 그림 일기와 만화 박정희를 얼마전에 읽었습니다. 처음엔 부자의 그림일기를 몇 장 읽다가 어두운 내용으로 가득해서 읽을 맘이 떨어졌다가 얼마전에 정치의 계절이고 하니 만화 박정희를 읽었는데 재밌더군요. 물론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지요. 그렇지만 그림으로 보니 더욱 현장감이 느껴지고 압축된 역사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무겁네요. 박정희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우리역사는 기회주의자, 친일파의 역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그 시절 특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권력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물적 토대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쉽게 몰락하지 않습니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갑니다. 지금은 세상이 크게 달라졌지만 지난날의 흉터가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이동수 2007-09-22 14:1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박정희는 일본군대를 따라 배우고, 이승만이 독재하는 과정을 흉내내려 하고, 전두환은 박정희를 따라했어요. 만화 박정희에는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칭송하는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육군사관생도를 데리고 시위를 벌인 거지요. 강자에게 아부하고 약자를 짓밟는 짓을 서슴지 않았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서글픈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두환은 국가반란수괴이므로 마땅히 목이 달아나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했는데, 감옥에 있어야 할 전두환이 한가롭게 놀러 다니고 정치인들의 인사를 받으니 참으로 허탈한 노릇입니다.
 
철권 - [초특가판]
유위강 감독, 홍금보 외 출연 / 레드립엔터테인먼트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1.이 영화는 제목부터 사기를 친다. 원래 제목은 '권신'拳神이었는데 '철권'으로 바꾸었다. 아마 '철권'이라는 바뀐 제목만 보면 누구나 이 영화를 전자 오락처럼 화끈한 액션영화로 생각할 것이다. 바로 이 기만적인 제목 바꾸기 때문에 희생자가 속출한 것이다. 이 영화는 전자 오락과는 무관한 참으로 시시껄렁한 영화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별 두개는 줄만하지만 그래도 사기당한 분함 때문에 최저 별점을 먹인다.  참고로, 영어 제목은 the avenging fist(복수의 주먹)이다. 영화의 주제는 복수랄지 분노의 주먹보다는 사랑의 주먹이 더 힘이 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다보면 부아가 치밀어서 사랑보다는 복수와 응징의 주먹을 마구 휘두르고 싶어질 것이다. 여하튼 제목부터 사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2. 이 영화의 사기극은 제목에만 있지 않다. DVD표면에는 '2002년 화려한 드림팀이 완성한 또하나의 걸작'이라고 쓰여있다. 그 밑에는 '홍콩 영화 역사의 모든 것을 집약한 단 한편의 SF 액션 걸작'이라는 멘트!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과장된 문구 외에는 정말 보잘게 없다. 

정이건, 홍금보, 원표, 양영기, 양공여 등 잘 나가는 배우들을 모아서 이런 지루한 영화를 만들다니 그야말로 홍콩영화의 자살극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같은 영화조차 볼만한 영화라고 믿는 너그러운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야말로 '아니올시다'가 절로 나온다. 이 영화를 보며 새삼 최근에 본 [아일랜드]가 좋은 오락영화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미래의 첨단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실패했고 스토리도 아주 구태의연한데다가 마지막 기대했던 액션 장면마저 볼 것이 없다. 나는 양영기라는 자태고운 배우를 만난 것 외에 도대체 무엇을 건졌던가?

그렇지만 재활용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나는 끝으로 이 구태의연한 영화를 우리 꼬맹이에게- 이 놈들은 5살, 4살로 파워레인저와 패트와 매트를 보는 족속들이다- 선사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조금 야실한 댄스가 몇초 흘러가는데다가 결정적으로 홍금보의 배때기를 날카로운 흉기로 쑤시는 장면이 또 몇초 나와서 그것도 포기해야 했다. 결국 볼장 다 본 영화이다. 난 휴지통에 DVD를 던져버렸다. 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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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7-09-1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는 얼마전 김용선생의 [소오강호 세트]에 대해 뷰티풀 말미잘님이 쓰신 '예의없는 것들'이라는 통쾌한 리뷰에 대한 오마쥬입니다. 내공이 딸려서 이런 부실한 글이 되고 말았네용.^^
 
묵공 (2disc)
장지량 감독, 최시원 외 출연 / 팬텀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1. 얼마전 불운한 영화 [중천]에 대한 리뷰를 쓰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땅에 발을 디딘 그런 영화가 없을까? 이런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보다는 더 절절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없을까?'

2. 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영화 제목에 대해 조금 언급해야겠다. 내 생각에는 '묵공墨攻'이란 글자를 보고 무슨 뜻인지 알 사람은 별로 없다. 나도 처음에는 '침묵 속의 공격'이란 뜻이려니 생각했지만 침묵의 묵은 默이고 묵공의 墨이다. 그럼 더 이상해진다. 먹물의 공격?

3. 이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전국시대인 BC 370년, 조는 연을 치기위해 십만대군을 파견한다. 양국 중간에 있어 위기에 빠진 양은 약자의 편에 서서 성을 지켜주는 묵가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이러고 보니 묵공의 墨은 제자백가인 묵가의 묵이었다. 세상 사람 모두를 사랑한다는 겸애설을 신봉하는 이상주의이자 공상적인 공동체 사상으로 생각되는 묵가 사상이 이 영화의 바탕이라니!

4. 이 영화의 후반에는 조의 장군 항중엄(안성기)과 묵가 혁리(유덕화)가 참된 승리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항중엄은 '상대를 쓰러트리고 내가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승리이다.'라고 말한다. 혁리는 '당신이 살아남아도 이미 죽은 자들을 살리지 못한다. 전쟁에서 산자나 죽은 자나 불행하긴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한다. 항중엄이 승리를 통한 제국의 건설을 향해 나아갈 때 혁리는 백성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비판을 한다.

5. 아마도 묵가의 공격인 '묵공'은 결국 묵적지수인 '묵수墨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와 남을 가리지 않았던 묵가는 자신의 백성 뿐 아니라 쳐들어온 적군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방어술 위주의 전략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묵가는 전쟁무기를 만드는 시간에 생활을 향상시키는 문명의 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고도 한다.

6. 묵가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집단과 과학기술자 집단을 합한 것 같은 묘한 이상주의적 공동체를 지향했던 것 같다. 지금도 전쟁의 화염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슬픈 현실 속에 2500년 전의 고독한 외침은 묘한 전율감을 준다.

7. 그러나 '묵수'란 말이 '낡은 관습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통용되듯 묵가의 사상은 세상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소멸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묵적지수'의 이야기는 [묵자]의 '공수반편'에 있다는데 초나라의 송나라 공격을 미연에 막았던 묵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송나라 사람들은 그에게 비를 피할 처마조차 내주지 않았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혁리가 힘들게 구해주러 온 양나라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누추한 마굿간에서 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허허롭게 내놓는 전반부의 장면은 고독한 현인에 대한 멋진 스케치다! 멋지다! 세상의 푸대접이야말로 성자에 대한 최대의 극찬이라는 서글픈 모순을 너무도 잘 그려주고 있다.

8.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지워지지 않는 몇 장면.
(1) 10만대군을 막기위해 혁리가 누추한 차림으로 홀홀단신 터벅터벅 걸어오는 장면.
(2) "영웅이고 뭐고 처자식과 함께 살고 싶다"라고 외치는 민초들의 절규.
(3) "묵가는 한일의 댓가를 바라지 않으며 선물도 받을 수 없다"는 혁리의 말. (이것은 결국 무소유, 무집착, 무아의 경지가 될 것인데 이것만이 애증의 세상살이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본 것이 불가와 유사하다. )
(4) "인간의 본성을 몰라 질투를 샀고 도와준 자의 신임조차 얻지 못한 무능력자"라는 비아냥.(이외에도 많으나 더 적지 않는다.)

9. 이 영화는 원래 무척 유명한 일본만화 [묵공]을 한중일 합작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역사가 아닌 픽션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 "여기 숨어있어. 절대 나오지 마. 언니가 지켜볼거야."라는 슬픈 현실은 아직껏 현실이다. 처자식과 또는 어린 동생과 세상살이를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을 무산시키는 국가라는 괴물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니 참된 국가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10. 끝으로 '묵공'의 영어 제목인 'Battle of Wits'도 잘 와닿지 않았는데 우연히 Budinsky의 책제목을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Battle of Wits : the Complete Story of Codebreaking in World War 2]를 '2차 세계대전 암호해독의 온전한 역사'라고 번역해야 한다면 결국 'Battle of Wits'는 '두뇌 싸움' 또는 '전략 전쟁' 정도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적이 나를 죽이려고 덤벼드는데 나의 생명을 보전하고 그 적도 다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최선은 '묵수'의 고사에서 보듯이 모의 전쟁을 통해 적이 전쟁을 통해 얻을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차선은 상대의 공격을 통찰하여 예봉을 막아냄으로써 상대가 경외심을 가지고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여하튼 어떤 경우든지 묵가의 전쟁은 '두뇌 싸움'의 성격이 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1. 배암발 : 이 영화를 보면서 [라스트 사무라이]의 대장군이 혁리와 오버랩되었다. 대장군은 벌레조차 죽이지 못하는 섬세한 감성의 스님이었지만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평생 남을 살육하는 처지에 있었다. 무참한 살육전을 벌이고 난 뒤 피묻은 갑옷을 풀고 법당 안으로 들어설때의 자괴감과 절망감은 어떠하였을 것인가?

 [라스트 사무라이]는나의 식솔을 살리고 싶다는 소박한 애정이 남의 식솔을 죽여야 한다는 핏빛 증오와 만나는 모순을 견뎌야만 하는 지도자의 고독감이 너무도 멋지게 표현된 영화였다.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적병을 보고 너무도 가슴 아파했던 혁리! 대장군과 혁리는 어느 지점에서 참된 위로와 해탈을 느꼈을까?

이 영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쓰고 싶지만 더 적지 않겠다.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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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7-09-04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공]은 [중천]보다는 훨씬 뛰어난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황후 화]의 위세에 밀려 극장에 걸린 것은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논어의 발견
이수태 지음 / 생각의나무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논어] 읽는 재미에 빠져 살던 시기에 이수태 선생님의 [논어의 발견]을 읽으며 벅찬 감동과 환희를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수태 선생님의 수필집 2권도 다 읽어보았는데 꼬장꼬장한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글들이었습니다.

평생 [논어]를 읽어오시면서 독자적인 안목을 형성하신 것을 [논어의 발견]과 [새번역 논어]로 나누어 펴셨는데 정말 뛰어난 글맛과 논어를 읽어내는 안목이 놀라운 책입니다. 특히 공자의 제자들의 인간됨이나 그들의 눈에 비친 공자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짜맞추어나가면서 논어를 해석해내는 것은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논어] 관련 저작을 30권정도 읽은 것 같은데 저는 이 책을 단연 앞쪽에 놓고 싶습니다.

2. 2000년도에 도올서원에 다닐때 도올 선생님께 이 책을 아시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올 선생님이 버럭 화를 내시면서 "순엉터리야! 중국에도 불교적인 깨달음이라는 관점으로 명청대에 [논어]를 해석한 책들이 있었지. 그렇지만 [논어]는 불교적인 시각으로 볼 수가 없어."라고 꽥 소리를 지르시고 가셨던 것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을 사랑합니다. 이수태 선생님의 꼬장꼬장한 인격과 쉽지 않았을 세상살이, 음악평론가라는 본업에 걸맞은 심미적인 문장 등이 살아잇는 이 책을 버리느니 저는 도올 선생님을 버릴 겁니다.저는 그런 악평에도 불구하고 단연 최고의 책, 최고의 영감을 주는 책으로 꼽고 싶습니다.

3. 예를 들어, '안회는 자주 쌀궤가 비었다'라는 부분을 풀이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사실 [논어]를 읽으면 자공이 뛰어난 것은 조금 알겠는데 과연 안회가 그렇게 뛰어난 사람인가 또는 안회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는 것은 무척 알기 어렵습니다. 불운하고 유약한 젊은 선비인 거 같이 느껴지죠. 과하게 이야기하면 공자가 로마 황제라면 안회는 동성애 애인인 미소년 같은 느낌아닙니까? 그렇지만 이 책을 보며 이수태 선생님이 안회가 왜 뛰어나며 공자의 제자 중에 독보적인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는지를 해석해 내시는 데서 정말 탄복했습니다.

4. [논어]를 깨달음의 책으로 몰고가는  이런 식의 해석이란 도올선생님의 평대로 유사 불교 논리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삶에서 일어나는 진지한 질문을 [논어]와 함께 뼈저린 체험 속에 녹여서 보여준다는 점에 이 책은 단연 돋보이는 책입니다.  분명 설득력이 있으며 적어도 저에게는 실존적인 많은 해답을 들려주었던 좋은 책으로 남아있습니다.  

5. 저는 이 책을 너무도 좋아해서 추천도 많이하고 몇 년전 친형처럼 따르던 선배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절판되는 바람에 이 책을 몇년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한테 다시 책을 돌려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몇 번이었는지 모릅니다. 또이 책을 구하기 위해 온라인 오프라인 대형서점들과 헌책방등을 방문한 걸 따지면 100회는 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시 이 책을 볼수 있게 되어서 너무 행복하군요. [논어]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께 정말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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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바이너리 2012-06-29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정말 좋은 책인데..다시끔 절판된게 참으로 아쉽습니다.
 
중천 (2disc)
조동오 감독, 정우성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진중권 선생의 악다구니에 호기심이 생겨 결국 토요일 밤 12시 영화를 보고 말았다. 사실 D-War는 제목부터 웃긴다. 얼핏 대문자 D가 무언가 거창한 듯 하지만 사실 무척 단순한 걸 가리킨다.  D-war는  Dragons' War, 즉 용들의 전쟁이라는 뜻이다. 이런 묘한 엉성함과 묘한 해체감이 심형래 감독의 대작 영화의 정체이다.

약간 부언을 하면, 나는 여기서 묘한 엉성함과 해체감이라는 말로 영화를 폄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현대 미술에서 존재하는 키치 같이 묘한 느낌을 주는 그러면서 주류의 논리 구조를 따라가지 않는 작품, 그래서 독자적인 존재감이 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며 내내 즐거웠다. 영화가 엉성하고 삐그덕 거릴 때마나 "영구 없다'를 외치던 심형래씨의 웃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300억 비싼 잔치상의 주인은 무언가 폼을 재고 우리를 주눅들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침을 튀기며 껄껄 웃으며 이야기가 개판이거나 우왕좌왕이거나 상관없이 그냥 그대로 즐기라는 그런 영화인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폼이 없다. 예술성도 스토리의 완결도 이 영화의 종착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몇가지 색만을 자신있게 박박 그려만든 어린아이의 스케치같다. 아주 볼거리가 화려한 이 영화는 몇 십년전 싸구려 영화같은 엉성함과 빈티를 풀풀 풍기고 있어서 아애 팔짱을 괴고 앉아 다른 재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 다른 재미? 그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좌충우돌의 열정을 떠올리게 하는 친숙한 구태의연함이다. 영구라는 이름에서 느끼게 되는 그런 유쾌함과 친숙함!

 이 영화가 제목처럼 용들의 전쟁이라면 주인공은 용 또는 이무기이고 사람들은 다만 조연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보는 변신 로봇이야기에서 클라이막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하고 그 로봇을 통해 적을 일망타진하는 그런 장면이 중요하고 그 장면에서의 로봇과의  일체감이 핵심인 것이다.  그런면에서 진중권 선생이 '주인공이 뭐 한 것이 없다.'고 평한 것은 지나치다. 정확히 말하면 '조연이 뭐 한것이 없다.'가 될 것인데 이것도 지나치다. 그들은 사랑을 포기하고 사명을 선택하지 않았나?   

영화를 보며, 심형래 감독이 용가리 시절부터 일이관지 거대괴물에 집착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스필버그도 주라기 공원을 몇 년 해먹다가 팽개친지 오래다. 사실 공룡붐은 조금씩 꺼져가는 추세다. 그런데 공룡도 아닌 용가리, 이무기 이런 것에 매달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 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과연 D-War가 한국 영화의 미래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영화가 [중천]이었다. [비트]랄지 [무사]같은 영화의 조감독이었던 조동오 감독이 100억이 넘는 큰 돈을 모아 만들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때의 평가였다. "화려한 CG에 비해 엉성한 스토리" 정우성, 김태희라는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중천]은 거의 파산했다. 그러나 뒤늦게 영화를 보니 동양적인 풍경과 화려한 액션 등이 절묘한 CG를 통해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였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같은 평을 달고 한 영화는 파산하고 한 영화는 욱일승천했다?

사람들은 결말이 뻔한 유아용 영화라고 [중천]을 폄하했다. 그러나 영화 [중천]에는 기억과 정체성 이라는 깊은 물음이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공간에 녹아있다. 다소 산만하지만 참된 사랑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진지한 영화로 유아용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그리고 [D-War]의 성공은 유아용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명백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영화 [중천]의 색감과 드라마가 좋다. 특히, 마지막 엔딩의 이곽과 소희의 마지막 대화는 참 멋있다고 생각한다.  

10년전 사랑하는 여자와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의반 타의반 헤어지고 말았을 때 난 불교의 윤회라는 것도 아름답고도 슬픈 시라고 생각했다. 이 생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지마는 이렇게 좋아하는 우리는 언젠가는 다른 모습으로라도 만나게 될거야 라는 심정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이 영화는 조그만 위로가 되리라. 이곽과 소희는 헤어졌으나 서로를 기억 속에 되살려내었다.  그리고 다소 억지스럽긴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기억은 사랑이고 이렇게 지펴진 사랑이 희망'이라는  결론에까지 나아간다.

이것은 [D-War]가 [중천]과 비슷하게, 두남녀의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이 다른 생으로 이어지지만 특별한 드라마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구원의 사명이라는 군대 영화 비스무리하게 변화하고 만 것과는 대비된다. 같은 대목에서 한 영화는 용의 전쟁이라는 거대함을 보여주는 쪽으로 나아가고 한 영화는 꽃잎이라는 상징으로 침잠한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스토리 라인 뿐 아니라 CG 역시 [중천]이 훨씬 세련되어 있다. 다만 크고 파괴적인 콘크리트식 영상으로 남은 심형래 감독의 영화와 한 컷 한 컷 심미적인 내밀한 영상을 만들려한 이 영화 [중천]을 비교해 볼 때 나는 단연 [중천]이 훨씬 나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D-War의 마지막 엔딩에서 뭉클한 느낌을 받았다.뭉클함의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다소 유치하긴 하지만  심형래 감독이 이세상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우리의 용을 복원해냈다는 점이었다. 놀랍게도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우리의 용은 버려진 채로 있었다. 그런 것이다. 화려한 헐리우드의 시각 효과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 살아있는 용은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하나는 본 영화를 심형래 감독의 독백과 결합한 무모한 독백 장면에서 였다. 이 예기치 못한 엉뚱함은 묘한 진정성으로 느껴졌다. 이것을 '인생 극장 코드'라고 매도하는 것은 비평가의 우울한 작업이되 인간적인 작업은 아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이질적인 결합이라는 것도 비주류 B급 영화 감독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호사이다. 이 엉뚱함과 우직함은 진정 우리의 희망일 수 있으리라.

반면 국내업체 기술로만 만들고 처음부터 해외 CG 팀과 특수효과 팀에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던 푸르른 영화 [중천]의 참패는 그래서 더  씁쓸하기만 하다. 심형래 감독의 고생 못지 않은 노고의 흔적이 화면마다 보여지고 있는데 지나친 혹평과 따돌림을 받았다.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고도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쯤해서는 진중권 선생의 '정상적인 비정상'이라는 말을 자꾸 곱씹게 된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씁쓸함의 핵심은 그런 현학적인 판정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 노력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가 하는 인생의 비애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생이란 한번의 게임은 아니지 않은가? 조동오 감독의 재기를 기대한다. 정당한 노력은 정당한 평가를 꼭 얻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러한 노력 속에 정당한 실력만큼은 얻게 되리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요 희망이기 때문이다.

**** 끝으로 중천을 세번째 보는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네이버 지식검색을 해보았다. hidlejrtn님의 답변 중에 좋은 내용이 있어 인용한다. (20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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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는 살아있을 때의 기억을 모두 지운 천인,이라는 존재인데 죽어가는 이곽에게 자신의 영기를 줌으로써 (키스하는 장면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고통과 번뇌의 길이라는 인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셨을 텐데 반추가 지배하던 검은 물은 "자명경의 정수"라는 것으로서 원래 인간들이 중천에서 마지막으로 살아 생전 가장 고통스럽고 잊기 힘든 기억을 버리는 물입니다.

반추는 그 물이 갖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신의 힘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반추를 물리칠 수 있는 길은 그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것인데 그 유일한 방법은 천혼(소화와 할아버지들이 모여 앉아 있던 장면 기억하시나요? ^^;;)의 영혼을 그 물에 넣는 것입니다.

극 초반, 천혼이 자신의 영혼을 목걸이에 담아 소화에게 주는 장면이 나오지요. 소화가 반추에게 납치 당할 때 그 목걸이를 빼앗기기 전에 천혼의 영혼(영체라고 하는)을 자신의 몸에 흡수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 영체에는 이승으로 향하는 통로(마지막 장면, 천기관 하늘 위에 붉은 구름이 몰려들며 통로가 열리는 게 살짝 소개되지요)를 여는 힘도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체를 빼앗기 위해 쌍둥이 무사, 여위, 효 등이 이곽과 소화를 공격하고 뒤쫓았던 것이고 반추도 몸에 영체를 흡수시킨 소화를 납치합니다.

반추는 자명경의 정수를 정화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려는 소화를 비웃지만 소화는 그 자명경의 정수에 스스로 걸어들어가 물을 정화시키고 어둠의 힘을 이겨내죠. 소화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던 이곽은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시 질서를 되찾은 중천을 떠나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게 되구요. 소화와 이곽은 다시 환생을 반복하는 인간의 길로 함께 돌아가게 되지만 그 두 사람이 언제 다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므로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 (하늘 연못) 이 영화가 주는 위안은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는 기억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될때 새로운 삶을 열어준다는 식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우연이겠지만, 소가 되새김을 하는 것을 반추한다고 하는데 검은 정수에 앉아있는 반추의 모습은 무의식 속에서 한없이 같은 궤적만을 그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런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꿈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잠겨있는 어두운 과거를 품음으로써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곽은 반추를 죽인 것이 아니라 해방시킨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여하튼  이런 저런 생각이 분주했던 영화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대사인 "향기가 나. 이제. 따뜻해 니 손."과 더불어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은 무척 감동적인데, 이 엔딩만으로도 이 영화가 비록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좋은 영화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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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8-1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천을 잊고 있었군요. 정말 폭삭 망해버린 영화죠. 화려한 씨지라는 광고를 그렇게 했음에도. -_- 적절한 비교대상이 되는군요. 아직 안봤는데 한번 봐야겠습니다.

하늘연못 2007-08-14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지의 제왕]1편에도 검은 망토를 입은 악의 군대에 요정이 쫒기는 부분이 있잖아요? 리브 테일러가 그렇게 매력적인 장면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중천]에도 정우성과 김태희가 꽃이 만발한 언덕아래 악의 군대의 추적으로부터 숨어있다가 나오는 장면을 롱샷으로 찍은 부분이 나오는데 정말 김태희의 모습이 눈부시더군요. 아마 김태희가 가장 아름다웠던 영화로 남을 것 같습니다. [반지의 제뫙]의 다이내믹한 추적과는 다른 정적인 피신 장면인 셈이죠. 이런 게 마음에 드는 영화에요. 저는 CG때문에 영화를 본 것은 아니고 김태희 때문에 보게 된 셈인데 점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