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 (2disc)
조동오 감독, 정우성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진중권 선생의 악다구니에 호기심이 생겨 결국 토요일 밤 12시 영화를 보고 말았다. 사실 D-War는 제목부터 웃긴다. 얼핏 대문자 D가 무언가 거창한 듯 하지만 사실 무척 단순한 걸 가리킨다.  D-war는  Dragons' War, 즉 용들의 전쟁이라는 뜻이다. 이런 묘한 엉성함과 묘한 해체감이 심형래 감독의 대작 영화의 정체이다.

약간 부언을 하면, 나는 여기서 묘한 엉성함과 해체감이라는 말로 영화를 폄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현대 미술에서 존재하는 키치 같이 묘한 느낌을 주는 그러면서 주류의 논리 구조를 따라가지 않는 작품, 그래서 독자적인 존재감이 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며 내내 즐거웠다. 영화가 엉성하고 삐그덕 거릴 때마나 "영구 없다'를 외치던 심형래씨의 웃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300억 비싼 잔치상의 주인은 무언가 폼을 재고 우리를 주눅들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침을 튀기며 껄껄 웃으며 이야기가 개판이거나 우왕좌왕이거나 상관없이 그냥 그대로 즐기라는 그런 영화인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폼이 없다. 예술성도 스토리의 완결도 이 영화의 종착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몇가지 색만을 자신있게 박박 그려만든 어린아이의 스케치같다. 아주 볼거리가 화려한 이 영화는 몇 십년전 싸구려 영화같은 엉성함과 빈티를 풀풀 풍기고 있어서 아애 팔짱을 괴고 앉아 다른 재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 다른 재미? 그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좌충우돌의 열정을 떠올리게 하는 친숙한 구태의연함이다. 영구라는 이름에서 느끼게 되는 그런 유쾌함과 친숙함!

 이 영화가 제목처럼 용들의 전쟁이라면 주인공은 용 또는 이무기이고 사람들은 다만 조연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보는 변신 로봇이야기에서 클라이막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하고 그 로봇을 통해 적을 일망타진하는 그런 장면이 중요하고 그 장면에서의 로봇과의  일체감이 핵심인 것이다.  그런면에서 진중권 선생이 '주인공이 뭐 한 것이 없다.'고 평한 것은 지나치다. 정확히 말하면 '조연이 뭐 한것이 없다.'가 될 것인데 이것도 지나치다. 그들은 사랑을 포기하고 사명을 선택하지 않았나?   

영화를 보며, 심형래 감독이 용가리 시절부터 일이관지 거대괴물에 집착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스필버그도 주라기 공원을 몇 년 해먹다가 팽개친지 오래다. 사실 공룡붐은 조금씩 꺼져가는 추세다. 그런데 공룡도 아닌 용가리, 이무기 이런 것에 매달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 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과연 D-War가 한국 영화의 미래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영화가 [중천]이었다. [비트]랄지 [무사]같은 영화의 조감독이었던 조동오 감독이 100억이 넘는 큰 돈을 모아 만들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때의 평가였다. "화려한 CG에 비해 엉성한 스토리" 정우성, 김태희라는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중천]은 거의 파산했다. 그러나 뒤늦게 영화를 보니 동양적인 풍경과 화려한 액션 등이 절묘한 CG를 통해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였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같은 평을 달고 한 영화는 파산하고 한 영화는 욱일승천했다?

사람들은 결말이 뻔한 유아용 영화라고 [중천]을 폄하했다. 그러나 영화 [중천]에는 기억과 정체성 이라는 깊은 물음이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공간에 녹아있다. 다소 산만하지만 참된 사랑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진지한 영화로 유아용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그리고 [D-War]의 성공은 유아용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명백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영화 [중천]의 색감과 드라마가 좋다. 특히, 마지막 엔딩의 이곽과 소희의 마지막 대화는 참 멋있다고 생각한다.  

10년전 사랑하는 여자와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의반 타의반 헤어지고 말았을 때 난 불교의 윤회라는 것도 아름답고도 슬픈 시라고 생각했다. 이 생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지마는 이렇게 좋아하는 우리는 언젠가는 다른 모습으로라도 만나게 될거야 라는 심정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이 영화는 조그만 위로가 되리라. 이곽과 소희는 헤어졌으나 서로를 기억 속에 되살려내었다.  그리고 다소 억지스럽긴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기억은 사랑이고 이렇게 지펴진 사랑이 희망'이라는  결론에까지 나아간다.

이것은 [D-War]가 [중천]과 비슷하게, 두남녀의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이 다른 생으로 이어지지만 특별한 드라마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구원의 사명이라는 군대 영화 비스무리하게 변화하고 만 것과는 대비된다. 같은 대목에서 한 영화는 용의 전쟁이라는 거대함을 보여주는 쪽으로 나아가고 한 영화는 꽃잎이라는 상징으로 침잠한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스토리 라인 뿐 아니라 CG 역시 [중천]이 훨씬 세련되어 있다. 다만 크고 파괴적인 콘크리트식 영상으로 남은 심형래 감독의 영화와 한 컷 한 컷 심미적인 내밀한 영상을 만들려한 이 영화 [중천]을 비교해 볼 때 나는 단연 [중천]이 훨씬 나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D-War의 마지막 엔딩에서 뭉클한 느낌을 받았다.뭉클함의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다소 유치하긴 하지만  심형래 감독이 이세상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우리의 용을 복원해냈다는 점이었다. 놀랍게도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우리의 용은 버려진 채로 있었다. 그런 것이다. 화려한 헐리우드의 시각 효과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 살아있는 용은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하나는 본 영화를 심형래 감독의 독백과 결합한 무모한 독백 장면에서 였다. 이 예기치 못한 엉뚱함은 묘한 진정성으로 느껴졌다. 이것을 '인생 극장 코드'라고 매도하는 것은 비평가의 우울한 작업이되 인간적인 작업은 아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이질적인 결합이라는 것도 비주류 B급 영화 감독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호사이다. 이 엉뚱함과 우직함은 진정 우리의 희망일 수 있으리라.

반면 국내업체 기술로만 만들고 처음부터 해외 CG 팀과 특수효과 팀에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던 푸르른 영화 [중천]의 참패는 그래서 더  씁쓸하기만 하다. 심형래 감독의 고생 못지 않은 노고의 흔적이 화면마다 보여지고 있는데 지나친 혹평과 따돌림을 받았다.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고도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쯤해서는 진중권 선생의 '정상적인 비정상'이라는 말을 자꾸 곱씹게 된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씁쓸함의 핵심은 그런 현학적인 판정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 노력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가 하는 인생의 비애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생이란 한번의 게임은 아니지 않은가? 조동오 감독의 재기를 기대한다. 정당한 노력은 정당한 평가를 꼭 얻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러한 노력 속에 정당한 실력만큼은 얻게 되리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요 희망이기 때문이다.

**** 끝으로 중천을 세번째 보는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네이버 지식검색을 해보았다. hidlejrtn님의 답변 중에 좋은 내용이 있어 인용한다. (20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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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는 살아있을 때의 기억을 모두 지운 천인,이라는 존재인데 죽어가는 이곽에게 자신의 영기를 줌으로써 (키스하는 장면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고통과 번뇌의 길이라는 인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셨을 텐데 반추가 지배하던 검은 물은 "자명경의 정수"라는 것으로서 원래 인간들이 중천에서 마지막으로 살아 생전 가장 고통스럽고 잊기 힘든 기억을 버리는 물입니다.

반추는 그 물이 갖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신의 힘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반추를 물리칠 수 있는 길은 그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것인데 그 유일한 방법은 천혼(소화와 할아버지들이 모여 앉아 있던 장면 기억하시나요? ^^;;)의 영혼을 그 물에 넣는 것입니다.

극 초반, 천혼이 자신의 영혼을 목걸이에 담아 소화에게 주는 장면이 나오지요. 소화가 반추에게 납치 당할 때 그 목걸이를 빼앗기기 전에 천혼의 영혼(영체라고 하는)을 자신의 몸에 흡수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 영체에는 이승으로 향하는 통로(마지막 장면, 천기관 하늘 위에 붉은 구름이 몰려들며 통로가 열리는 게 살짝 소개되지요)를 여는 힘도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체를 빼앗기 위해 쌍둥이 무사, 여위, 효 등이 이곽과 소화를 공격하고 뒤쫓았던 것이고 반추도 몸에 영체를 흡수시킨 소화를 납치합니다.

반추는 자명경의 정수를 정화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려는 소화를 비웃지만 소화는 그 자명경의 정수에 스스로 걸어들어가 물을 정화시키고 어둠의 힘을 이겨내죠. 소화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던 이곽은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시 질서를 되찾은 중천을 떠나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게 되구요. 소화와 이곽은 다시 환생을 반복하는 인간의 길로 함께 돌아가게 되지만 그 두 사람이 언제 다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므로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 (하늘 연못) 이 영화가 주는 위안은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는 기억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될때 새로운 삶을 열어준다는 식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우연이겠지만, 소가 되새김을 하는 것을 반추한다고 하는데 검은 정수에 앉아있는 반추의 모습은 무의식 속에서 한없이 같은 궤적만을 그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런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꿈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잠겨있는 어두운 과거를 품음으로써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곽은 반추를 죽인 것이 아니라 해방시킨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여하튼  이런 저런 생각이 분주했던 영화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대사인 "향기가 나. 이제. 따뜻해 니 손."과 더불어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은 무척 감동적인데, 이 엔딩만으로도 이 영화가 비록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좋은 영화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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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8-1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천을 잊고 있었군요. 정말 폭삭 망해버린 영화죠. 화려한 씨지라는 광고를 그렇게 했음에도. -_- 적절한 비교대상이 되는군요. 아직 안봤는데 한번 봐야겠습니다.

하늘연못 2007-08-14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지의 제왕]1편에도 검은 망토를 입은 악의 군대에 요정이 쫒기는 부분이 있잖아요? 리브 테일러가 그렇게 매력적인 장면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중천]에도 정우성과 김태희가 꽃이 만발한 언덕아래 악의 군대의 추적으로부터 숨어있다가 나오는 장면을 롱샷으로 찍은 부분이 나오는데 정말 김태희의 모습이 눈부시더군요. 아마 김태희가 가장 아름다웠던 영화로 남을 것 같습니다. [반지의 제뫙]의 다이내믹한 추적과는 다른 정적인 피신 장면인 셈이죠. 이런 게 마음에 드는 영화에요. 저는 CG때문에 영화를 본 것은 아니고 김태희 때문에 보게 된 셈인데 점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