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공 (2disc)
장지량 감독, 최시원 외 출연 / 팬텀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1. 얼마전 불운한 영화 [중천]에 대한 리뷰를 쓰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땅에 발을 디딘 그런 영화가 없을까? 이런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보다는 더 절절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없을까?'

2. 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영화 제목에 대해 조금 언급해야겠다. 내 생각에는 '묵공墨攻'이란 글자를 보고 무슨 뜻인지 알 사람은 별로 없다. 나도 처음에는 '침묵 속의 공격'이란 뜻이려니 생각했지만 침묵의 묵은 默이고 묵공의 墨이다. 그럼 더 이상해진다. 먹물의 공격?

3. 이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전국시대인 BC 370년, 조는 연을 치기위해 십만대군을 파견한다. 양국 중간에 있어 위기에 빠진 양은 약자의 편에 서서 성을 지켜주는 묵가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이러고 보니 묵공의 墨은 제자백가인 묵가의 묵이었다. 세상 사람 모두를 사랑한다는 겸애설을 신봉하는 이상주의이자 공상적인 공동체 사상으로 생각되는 묵가 사상이 이 영화의 바탕이라니!

4. 이 영화의 후반에는 조의 장군 항중엄(안성기)과 묵가 혁리(유덕화)가 참된 승리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항중엄은 '상대를 쓰러트리고 내가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승리이다.'라고 말한다. 혁리는 '당신이 살아남아도 이미 죽은 자들을 살리지 못한다. 전쟁에서 산자나 죽은 자나 불행하긴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한다. 항중엄이 승리를 통한 제국의 건설을 향해 나아갈 때 혁리는 백성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비판을 한다.

5. 아마도 묵가의 공격인 '묵공'은 결국 묵적지수인 '묵수墨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와 남을 가리지 않았던 묵가는 자신의 백성 뿐 아니라 쳐들어온 적군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방어술 위주의 전략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묵가는 전쟁무기를 만드는 시간에 생활을 향상시키는 문명의 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고도 한다.

6. 묵가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집단과 과학기술자 집단을 합한 것 같은 묘한 이상주의적 공동체를 지향했던 것 같다. 지금도 전쟁의 화염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슬픈 현실 속에 2500년 전의 고독한 외침은 묘한 전율감을 준다.

7. 그러나 '묵수'란 말이 '낡은 관습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통용되듯 묵가의 사상은 세상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소멸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묵적지수'의 이야기는 [묵자]의 '공수반편'에 있다는데 초나라의 송나라 공격을 미연에 막았던 묵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송나라 사람들은 그에게 비를 피할 처마조차 내주지 않았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혁리가 힘들게 구해주러 온 양나라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누추한 마굿간에서 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허허롭게 내놓는 전반부의 장면은 고독한 현인에 대한 멋진 스케치다! 멋지다! 세상의 푸대접이야말로 성자에 대한 최대의 극찬이라는 서글픈 모순을 너무도 잘 그려주고 있다.

8.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지워지지 않는 몇 장면.
(1) 10만대군을 막기위해 혁리가 누추한 차림으로 홀홀단신 터벅터벅 걸어오는 장면.
(2) "영웅이고 뭐고 처자식과 함께 살고 싶다"라고 외치는 민초들의 절규.
(3) "묵가는 한일의 댓가를 바라지 않으며 선물도 받을 수 없다"는 혁리의 말. (이것은 결국 무소유, 무집착, 무아의 경지가 될 것인데 이것만이 애증의 세상살이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본 것이 불가와 유사하다. )
(4) "인간의 본성을 몰라 질투를 샀고 도와준 자의 신임조차 얻지 못한 무능력자"라는 비아냥.(이외에도 많으나 더 적지 않는다.)

9. 이 영화는 원래 무척 유명한 일본만화 [묵공]을 한중일 합작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역사가 아닌 픽션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 "여기 숨어있어. 절대 나오지 마. 언니가 지켜볼거야."라는 슬픈 현실은 아직껏 현실이다. 처자식과 또는 어린 동생과 세상살이를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을 무산시키는 국가라는 괴물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니 참된 국가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10. 끝으로 '묵공'의 영어 제목인 'Battle of Wits'도 잘 와닿지 않았는데 우연히 Budinsky의 책제목을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Battle of Wits : the Complete Story of Codebreaking in World War 2]를 '2차 세계대전 암호해독의 온전한 역사'라고 번역해야 한다면 결국 'Battle of Wits'는 '두뇌 싸움' 또는 '전략 전쟁' 정도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적이 나를 죽이려고 덤벼드는데 나의 생명을 보전하고 그 적도 다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최선은 '묵수'의 고사에서 보듯이 모의 전쟁을 통해 적이 전쟁을 통해 얻을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차선은 상대의 공격을 통찰하여 예봉을 막아냄으로써 상대가 경외심을 가지고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여하튼 어떤 경우든지 묵가의 전쟁은 '두뇌 싸움'의 성격이 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1. 배암발 : 이 영화를 보면서 [라스트 사무라이]의 대장군이 혁리와 오버랩되었다. 대장군은 벌레조차 죽이지 못하는 섬세한 감성의 스님이었지만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평생 남을 살육하는 처지에 있었다. 무참한 살육전을 벌이고 난 뒤 피묻은 갑옷을 풀고 법당 안으로 들어설때의 자괴감과 절망감은 어떠하였을 것인가?

 [라스트 사무라이]는나의 식솔을 살리고 싶다는 소박한 애정이 남의 식솔을 죽여야 한다는 핏빛 증오와 만나는 모순을 견뎌야만 하는 지도자의 고독감이 너무도 멋지게 표현된 영화였다.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적병을 보고 너무도 가슴 아파했던 혁리! 대장군과 혁리는 어느 지점에서 참된 위로와 해탈을 느꼈을까?

이 영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쓰고 싶지만 더 적지 않겠다.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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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7-09-04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공]은 [중천]보다는 훨씬 뛰어난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황후 화]의 위세에 밀려 극장에 걸린 것은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