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st Of Lee Ritenour
소니뮤직(SonyMusic)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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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릿나워의 매력은 조금 경쾌하면서 매끄러운 연주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음반은 너무 초창기의 곡들이어서 조금 지루한 느낌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앨범 쟈킷만 좋고 다 별로였습니다.


[World of Brazil]이나 차라리 리 릿나워가 참여했던 슈퍼 프로젝트 그룹 Fourplay시절의 음반을 권하고 싶습니다.

 Fourplay의 1집 [Fourplay] 2집 [Between the Sheet]는 정말 밝고 감미로운 음반입니다. 리 릿나워가 특별히 기교를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는 음반이죠.

그에 비해 [World of Brazil]은 어쿠스틱을 이용해서 조금은 빠른 연주를 보여줍니다. 리 릿나워의 기교를 느끼기에 가장 적절한 음반이죠.

만약 하나 더 추천한다면 [This is Love]가 비트가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음반이에요. 가장 요즘 음악같은 느낌이 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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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래리 버드 : 농구의 전설 - [할인행사]
JIM PODHORETZ 감독 / 워너브라더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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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래리 버드는 냉혹해 보이는 인상과 BIRD라는 이름이 결합되어 꼭 독수리같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2. 사실 요즘같이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이 많은 세상에 철지난 래리 버드나 매직 존슨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마이클 조던 조차 세월의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에게 묻기를 만약 농구의 신이 있어 어떤 선수가 되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매직 존슨이 될까를 한참 망설이다가 래리 버드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적어도 농구코트안에서 가장 뜨거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3. 아마도 마이클 조던 리뷰를 시작으로 했던 NBA리뷰는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 동안 서른 네살에 농구공을 처음 사면서 시작되었던 지난 5년간의 평균 하루 3시간 정도의 농구체험과 더불어 살면서 느껴왔던 것을 같이 적어 보고싶다.  이 기록은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격한 투쟁과 패배, 역전, 승리, 고독한 연습, 슬럼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4. 운동과 무관하게 책상에만 붙어있었던 내가 이 나이에 20대의 환호를 받으며 농구장을 휘젖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지난 5년간 때로는 밤 11시에서 새벽 2시까지 때로는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연습에 매진했다.

아무도 없는 추운 겨울날 코트의 눈을 쓸고 시작해서 맨마지막에 대자로 쓰러져서 도장을 찍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봄비나 가을비를 맞으며 슈팅을 했고 장마비를 맞으며 실연을 겪고있는 대학생과 웃통을 벗고 게임을 한 적도 있다.

언제나 변함없는 연습에 노숙자들도 간혹 구경을 하거나 게임을 청하기도 했으며 전국체전에 참석했던 육상부 학생들과도, 해병대와도 맞짱을 떴다. 그들은 나를 아저씨 또는 형이라고 불렀다.안경은 부서지고 멍이 들고 이가 부러졌지만 다음날 다시 뛰었다. 이제 나에게는 이렇게 격렬하게 뛸 시간이 아주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유도나 권투로 전향할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경험 속에서 나는 이 DVD를 봤고 이 리뷰를 쓴다. 지난 5년이 이 리뷰를 쓰게 했다면 나는 만족한다. 내가 농구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리뷰를 쓸 수 없을테니까!

5. 이 DVD는 래리 버드가 인디아나 주의 프렌치 릭이라는 깡촌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대스타가 되어서도 평범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장작을 패거나 소소한 시골일을 했다는 래리 버드. 그는 마치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얼빈 매직 존슨처럼 농구 천재로 인생을 시작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형들에게 농구를 배웠지만 나이 차이가 많아서 대부분 혼자 연습으로 농구를 터득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그는 별볼일 없던 선수였다. 심지어 NBA에 와서도 외모도 볼품없고 저렇게 굼뜬 사람이 과연 제대로 농구를 할 수 있을까 의심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오로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서 오늘의 그가 되었다. 고등학교 코치도 증언한다. 연습이 끝난 빈 농구장에서 래리 혼자 비를 맞으며 슈팅연습을 하곤 했다고.

어떤 일이든 초반에 진척이 없는 사람은 대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앞서 나가는 친구를 보며 자신의 부족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 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누구나 같은 길을 가지는 않는다. 지난 5년동안 NBA리뷰를 쓰며 느꼈던 것은 뛰어난 선수는 조금씩 조금씩 슈팅 폼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만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6. 래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비약적인 실력 발전이 생겨서 명문 인디아나 대학에 입학하지만 시끌벅적한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달도 못되어 자퇴하고 만다. 그는 프렌치 릭의 환경미화원으로 꼬박 1년을 살았다. 그는 그 생활을 무척 만족해 했던 것 같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자살이 아니었던들 래리라는 대스타는 환경미화원으로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프렌치 릭같은 깡촌은 아닐지라도 한 시간을 논두렁을 걸어야 학교에 도착했던 나도 모진 고생끝에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적응을 못하고 낙향해서 1년정도 신문배달과 노가데로만 산적이 있다. 월 15만원의 배달비가 주된 수입원이었지만 그리 나쁘진 않았다.

군대에 갔다와서 같이 일하던 목수아저씨는 "자네는 손재주가 없으니 벽돌쌓는 것이 좋겠다."며 기술을 배울 것을 권하셨는데 나도 마냥 집이 올라가는 것이 기뻤던 시절이었다. 관념적인 언어의 유희보다는 중간에 막걸리도 마시는 보이는 생활이 그냥 좋았었다. 공치는 날 주변 저수지에 가서 하루종일 빛나는 물결무늬를 보는 것도 얼마나 황홀한 경험이었던가?

이런 시간들은 평생의 위로요 안식처가 된다. 아마도 래리는 험난한 투쟁의 와중에서 겪는 고독한 순간에 프렌치 릭의 생활을 떠올렸으리라. 젊었을 때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것은 고생이 아니다. 화려한 무늬를 수놓을 바탕을 마련하는 그 순간은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온전한 자신만의 뿌듯한 순간이다. 이때가  자신과의 평온함과 인내, 투지 등이 체득되는 순간이다.

7. 표면 상으로 보면 마이클 조던의 챔피온쉽 6회 우승, 매직 존슨의 5회 우승에 비해 래리 버드의 2회 우승은 조금은 광이 안난다. 그렇지만 래리 버드의 보스톤 셀틱스는 과거의 영광에 비해 너무도 약체로 전락한 팀이었다. 래리 버드가 다시 우승의 궤도에 올려놓았을 때 너무 많은 나이와 숱한 부상으로 다시 우승에서 멀어졌다. 게다가 농구 역사상 최강팀이었던 매직 존슨의 LA 레이커스가 버티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보잘 것 없는 12척의 배를 지휘했던 이순신 장군같은 불굴의 투지를 보여준 것이 래리 버드이다. 그는 다른 선수보다 1시간 전에 연습을 시작해서 연습 끝나고 다시 2시간을 더 연습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뛰어난 패스와 어떤 순간에도 터져나오는 슈팅으로 유명한데 슈팅연습을 너무 열심히 해서 손가락이 굽어진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보라! 진정한 대가나 천재의 모습이 이러하다. 래리 버드 덕분에 보스톤 셀틱스는 언제나 우승권을 떠나지 않았다.

8. 이제 리뷰를 끝내려 한다.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끝내려 한다. 다만 마지막으로 지난 5년이 나에게 이야기한 것을 들려주고 싶다.

농구는 농구장에 뛰어들어 배워야 한다. 너무 나이가 먹었다거나 함께 할 또는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그 무엇도 언제나 친구와 함께 하지는 못한다. 또 누가 반드시 술뚜껑을 따야만 술을 마시겠다는 사람은 술꾼이 되기는 힘든 사람이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은 해야된다. 그리고 쏟아부으면 길이 열린다.

혼자라구?당신 자신이 함께 하며 저 깊은 곳의 울림과도 같은 신이 함께 한다. 당신도 어두운 새벽 공이 바운드되는 소리와 자신의 격렬한 호흡만이 함께 하다가 저멀리 해가 뜨는 그 순간이 되면 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게 되리라.

여하튼 농구는 단지 놀이만이 아니다. 그것이 단지 농구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무엇도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쏟아 부으면 그 순간부터 시간은 풍성한 이야기를 그대에게 건네 줄 것이다.

*** 배암발 : 제 생각에는 사람들은 영화는 영화로 보고 스포츠는 스포츠로 봅니다. 그리고 어제와 다름없이 살아갑니다. 이런 것이 상상력의 고갈이고 해석의 편협함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제가 지난 시간 NBA를 붙들고 있었던 것은 소위 땀흘리기 싫어하는 먹물인 제가 변화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했지만 가장 자본주의적인 잡기로 전락한 농구를 조금만 더 해석하면 사람살이에 대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는 에로영화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지 않고 사색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 인문학의 모토인 이상 이런 부분이야말로 일상사의 한부분으로 반드시 도전해야 할 과제입니다.


특히 18미리 에로같은 부분은 우리의 간절하면서도 동시에 누추한 욕망과 사회적인 억압이 만나는 장소이고 달리 말하면 사회에서 억눌린 왜소한 현대인이 자신의 욕망조차 왜곡시켜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워올린 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끌림과 안스러움이 교차하는 이 영역이 다양한 해석으로 열릴 때 우린 좀더 생동하고 자유로운 사람살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농담을 하면 저는 transformer입니다. 그러나 누군 변태라고 부릅니다. 변태가 없이 자유없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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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Potts - One Chance (Repackage)
폴 포츠 (Paul Potts)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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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주에야 Paul Potts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감동적인 동영상을 보았다. Paul은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교통사고와 종양 등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다가 Britain's Got Talent를 통해 꿈을 이룬  인물이다.

특히 감동적인 동영상은 역시 예선전 모습으로 초라한 행색의 Paul이 다소 무시하는 듯한 심사위원들앞에서 Nessun Dorma를 부르는 장면이다. 관객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감동을 받아서 기립박수를 했으며 심사위원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Paul의 노래에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결국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참고로 내가 아는 가장 깨끗하게 편집된 동영상 주소는 http://blog.naver.com/musictim?Redirect=Log&logNo=40043927198 이다.

2. 예선전 동영상을 보면서 새삼 '테너의 목소리가 지상에서 부르는 천상의 소리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Paul의 조금은 육중하고 볼품없는 몸에서 그런 맑고도 신성스럽기까지한 소리가 흘러나오다니!  나도 그렇지만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감동을 받아서든 Paul의 노래솜씨에 반해서이든지 그의 앨범을 기대하게 된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음반 제작자 사이먼과 1주일도 안되서 뚝딱 만든 앨범이 [One Chance ]이다. 제목의 뜻은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한번의 기회는 오기 마련이니까 희망을 가지자' 정도 된다고 한다. 이 음반이  워낙 인기가 있어서 크리스마스를 맞아  O Holy Night, Silent Night, Ave Maria 등 크리스마스 음악 5곡을 실은 CD2를 보너스로 실어준  앨범이 이 앨범이다.

3. 이 음반의 CD1을 보면 대회에서 불렀던 Nessun Dorma, Time To Say Goodbye가 처음을 장식한다. 좋지만 대회때의 감동보다는 조금 부족한데 반주를 조금 줄이고 Paul의 소리를 더 내세웠으면 좋았으리라 생각된다.

다음으로 나오는 것이 Amapola인데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서 어린 제니퍼 코넬리가 발레를 할 때 틀어놓았던 곡으로 좋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유명한 Caruso랄지 My Way가 이어진다. 참 좋다.

그렇지만 사실 내게 가장 좋았던 곡은 자신의 변함없는 후원자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Cavatina였다. 소년처럼 청명한 목소리와 단순한 기타 위주의 반주가 조화를 이룬 좋은 곡이었다. 더 바란다면 아예 기타 한 대만 배치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앨범의 끝은 오페라의 유령의 유명한 테마곡인 Music of the Night이다. 내가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긴 리뷰를 쓰고 앨범을 들었기 때문에 훨씬 각별하게 느껴진다.

4. 이 음반은 추천할 만 하다. 물론 부족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Paul Potts가 플라시도 도밍고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같은 완숙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사람이다. 또 Paul의 진실한 목소리가 우리를 울렸던 그 감동을 이 음반은 묘하게 흩트려 놓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실망이 그리 크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아쉬움보다는 기쁨이 더 많은 음반이다. 전체적으로 맑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굉장히 유명하고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좋다. 나는 우리 아기들이 잠을 잘때 자장가로도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도 잠결에 이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나에겐 어떤 기회가 남아있을까?'하는 느낌이 들어 좋다.

 
5. 사실 나는 아내의  허락을 받아 2일간의 인생휴가를 보냈다. 지난 10년 동안 알고지내던 옛 애인들을 방문했다. 오페라의 유령 리뷰를 마치고 그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5명을 만났는데 한 명은 선배의 아내, 또 한명은 후배의 아내, 또 한 명은 나의 아내였다. 남은 두 명은 아직 미혼인데 둘 다 결혼 직전이었다.

그때 친구들에게 선물로  준 것이 이 앨범이다. 공교롭게도 CD가게에서 빨간 장미모양의 포장을 해 주어서 마치 리뷰를 읽은 사람인듯 느껴졌다. 여하튼 내가 이렇게 싸돌아다닌걸 알면 친구들은 날 잡아먹을려고 하리라.^^

6. 마지막으로 만난  후배와 결혼한 친구는 딸아이를 데리고 나왔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가 같은 날 같은 시 바로 옆 예식장에서 결혼을 올렸다는 것! 서울 사람인데 지방에서 결혼식을 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새삼 인연은 인연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밤늦게 예전에는 용기도 못냈던 친구와 팔짱을 끼고 공원을 걷기도 했는데 너무 좋아서 밤도 늦었으니 잠좀 재워달라고 졸랐다. 친구는 눈을 흘기며 "결혼도 안했는데 유부남 껴안고 자는 내 신세도 좀 생각해 주라구!"하고 웃었다.

나도 "옛 애인하구 삼겹살 구워먹는게 좋지, 배 다른 자식 나아서 인생을 모험으로 만드는게 좋나? 나도 그쯤은 안다구. 얼어죽지 않고 싶다는 거지 뭐."하고 웃었다. 친구는 "니가 장가 잘 갔다는 생각이 드네. 내 남편이 이렇게 천방지축이면 걱정되어서 살겠니?"하며 또 웃는다.

여하튼 죽어도 좋은 날들이었고 이런 추억을 빛내준 앨범을 나는 사랑한다.  
 
7. 여러 개를 사다보니 신나라 레코드에서 크리스마스 이디션을 사고 알라딘에서 리팩을 샀는데 결국은 같은 앨범이었습니다. 그러니 싼 걸 사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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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1disc) - 할인행사
조엘 슈마허 감독, 에미 로섬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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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다보면 축복이라고 밖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난 언제나 서투르고 이기적인 사람인데도 친구들로부터 몇년만에 연락이 오기도 한다. 올초엔 어쩌면 상황이 달랐다면 아내가 되었을지도 모를 친구들로 부터 몇 년만에 연락이 왔다. 나는 서른이 되도록 변변한 데이트조차 한 적이 없었지만 묘하게도 결혼하기 직전 2년동안 갑자기 천사같은 친구들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분에 넘치는 양다리를 걸친 채로 2년이 갔다. 물론 그런 상황이란 것이 거짓된 연극처럼 간 것은 아니었지만 한 사람이 떠나가기 전에 한 명이 또 나타나고 그가 또 떠날 즈음에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는 식으로 2년이 갔다. 스스로에게 조금은 실망스럽게 생각되었던 것은 왜 순수한 마음으로 단 한명만을 좋아하고 상황을 명료하게 만들지 못하느냐하는 그런 점이었다. 왜 초상집에서 조문하는 아가씨에 눈독을 들이는 그런 기분으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서른이 넘은 그 시점에서 여관방을 전전했다는 것도 아니고 뒤늦게 학생식당에서 밥이나 한끼 할까를 기다리고 밤에 받는 메시지에 기뻐했던 그 시점에 그런 충만감을 저버리기를 주저한 것도 사실이다. 얼빠진 변명을 하면, 나는 무슨 단물을 빼먹으려고 그러고 있었다기 보다는 외로웠다. 그렇지만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면 그건 어리석고 정직하지 못했다고 말하리라. 여하튼 그런 나에게 상처받아 떠난 친구도 있었고 그런 것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무척 쓰기 공포스러운데 이 리뷰는 아내도, 묘한 관계의 친구들도 보고 있기 때문인데 나는 이혼을 당할 수도 있고^^ 그나마 오랫만에 재개된 우호관계가 드디어 종말을 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데 왜 이런 잡다한 이야기를?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 속에 언제나 괴로웠던 이 문제가 스물스물 움직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과 자유가 충만한 공간을 선사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 때도 지금도 생각한다. 나도 그런 걸 꿈꿨다. 그렇지만 자신의 충동과 집착으로 내 스타일의 삶을 강요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의 인격을 그의 삶의 모든 가능성을 잠식하는 유령같은 존재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2. 이 영화를 보면서 이번 주 내내 생각해온 소통의 문제가 드디어 마침표를 찍혔다. 소통의 문제는 결국 -마음 속의 상처를 가진 자가 꿈꾸는- 사랑에 대한 문제이다. 신체적인 결함으로 상징되는- 상처받은 자인 유령은 크리스틴을 사랑한다. 

우리들 사랑의 상황이 사실 그러하다. '이렇게 부족한- 이렇게 상처받은- 내가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해도 되나요? 과분한 그녀는 결국 또다른 상처만을 남긴채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을까요?'하는 질문을 많이 하지않나? 그런데 자신이 가진 상처가 너무 과도할 때, 모처럼 다가온 사랑이 흩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증폭되면 스스로 개지랄을 해서 파토를 내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인형처럼 소유하고자 하는 멍청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녀들의 새해인사 메시지에도 흔들리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해보건데, 사랑하려면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사랑이란 소통이고, 소통이란 상처가 야기한 외로움이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상처가 너무 크면 자신의 소리만이 증폭될 뿐이요,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랑이란  상대방의 삶을 잠식하는 유령과도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상처에 묶어두는 삶! 그것은 아무리 화려해도 사랑이 아니다. 자신의 상처에서 비롯되는 고통의 그늘에서 사랑이 사육되지만 공연히 불안하며 뜬금없는 무상감이 함께 한다. 이게 바로 유령의 사랑이다!

3. 내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어렸을 적 이웃집 갓난 아기를 보다가 볼을 물어뜯겨서 깊은 이빨자국이 생기고 말았다. 여대생이 되어 강남의 성형외과에 가기까지 그 상처를 가리기 위한 동생의 노력은 대단했다. 사실은 예쁜 얼굴이고 그 상처는 약간의 흠이 될 뿐으로 여고생이 될 때 즈음엔 거의 희미했었다. 그러나 동생은 그 상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무척 우울해졌고 성적이 곤두박질 쳤었다. 동생은 자신은 두들겨맞아야 마땅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마흔이 다된 지금도 동생은 아직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내가 가끔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예쁘고 명랑하고 당시에는 부반장을 꿈꾸었던 그 인격체가 그런 조그만 상처 때문에 인생이 그렇게 망가뜨려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양말에 돌멩이가 들어가면 걸을 때마다 괴롭다. 바닥이 울퉁불퉁하면 더 괴롭다. 이 때는 잠시 멈춰서 양말을 벗고 돌멩이를 빼야 한다. 우리가 사는 삶이 간혹 돌멩이를 빼지 못하는 바보짓일 때가 있다.

사랑이라는 것도 결국 사는 거다. 그런데 그게 삐걱 거리면 자꾸 외형적인 상처나 남을 탓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양말 속의 돌멩이다. 자기 안의 상처다. 상대방이 야기했다고 여겨지는 감정의 격분 뒤에는 아직도 자라지 못한 상처받은 아이, 갓난 아이에게 물어뜯겨 울부짖는 내 여동생이 그 시간 그대로 박제된 채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축복처럼 다가오지만 성숙과 더불어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 만이 사랑을 자유와 생명으로 충만한 삶으로 이어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새삼 영화를 보며 좋은 연인도 ,그렇다고 노력하는 연인도 아니었던 나를 다시 한번 책망할 수 밖에 없었다.  

4. 리뷰를 쓰면서 들곤하는 생각이 '어디까지 써야하는가?'이다. 특히 영화나 소설의 경우엔 결말을 암시한다는 것은 범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다음은 영화보신 분만 읽으시라.

맨 마지막 크리스틴이 유령을 저주하면서도 문득 마음을 돌려 절절한 키스를 보내는 장면은 너무도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 순간은 내 여동생이 잠시 울음을 멈추는 때고, 나같은 어리석은 자가 잠시 위로를 받는 때다. 양말 속에 돌멩이가 있는 데도 내몰리는 심정이 된 자는 계속 걷다가 발을 온통 상하게된다. 진정한 사랑과 깨우침은, 내몰리는 자에게 잠시의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평생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받은 오페라의 유령은, 자신이 크리스틴을 향한 욕망에 묶인 까닭은, 자신의 콤플렉스, -추악한 외모 탓에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거라는 절망감, 소외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크리스틴의 키스가 진정한 사랑은 이 덧없는 육체가 아니라 영혼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 까닭이다. 크리스틴은 오페라의 유령의 얼굴을 보았지만, 소유욕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보았지만, 열렬한 키스로 그에게 신적인 용기를, 진정한 다가섬을 보여주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크리스틴 때문에 잠시 쉬었다. 그리고 크게 공명했다. 크리스틴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It's not your Fault! You're a Good Person!"(당신 탓이 아니예요. 그리고 당신은 좋은 사람이예요.)-이 부분은 내가 직전에 쓴 [굿 윌 헌팅]리뷰와 함께 보시기를 바란다. 솔직히 내가 어떻게 이 두편의 영화를 동일한 시기에 보게되었고 소통이라는 주제로 결합을 시키게 되었는지는 신기할 따름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그 짧은 순간 엄청난 삶의 에너지와 영감에 충만했다. 그는 사랑하는 크리스틴을 떠나보낼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지니게 되었고, 자신을 평생 가두어두었던 원숭이 인형을 떠날 수 있었으며 거울을 깨부술 수 있었다. 그는 사랑과 자유를 쟁취했던 것이다.

5. 이 영화는 그야말로 구원의 메시지가 충만한 작품으로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유령이 크리스틴을 떠나보낼 때에도, 유령이 거울을 통쾌하게 부셔버릴 때에도 나는 감정에 북받쳤다. 어리석은 나와 어리석은 내 동생을 떠올리며 울고 싶었다.

크리스틴의 묘지에 놓여있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인 장미를 보며, 나를 떠났지만 아직도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런 축복과 사랑은 오페라의 유령이 가면을 벗어던지는 성숙과 용기를 -크리스틴이 보여준 신적인 용기와 포용을 - 내가 본받을 때 살아있는 관계로 남을 것이다. 나도 뒤늦게라도 그들, 가면을 벗지못한 유령인 나를 축복하는 나의 크리스틴에게 진심어린 장미꽃 한송이를 보내고 싶다.

6. 그런데 여기서 잠시 크리스틴이 왜 유령에게 진심어린 키스를 보낼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크리스틴은 유령을 아버지가 보내준 음악의 천사로 생각하고 순종했다. 천애고아인 상처받은 한 아이는 유령의 진심과 열정을 먹고 컸다.

정말 외롭고 버림받았다고 크리스틴이 흐느꼈을 그 길고 깊은 밤, 더 깊은 상처를 지닌 영혼이었던 유령이 변함없이 지켜주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어린 자의 삶도 삶이고 어리석은 자의 사랑도 사랑이다. 중생심이 보리심이고 초발심 없는 구경열반도 없다.

맹목적인 첫사랑의 설레임이 없이 어찌 성숙한 사랑의 꿈을 꾸랴! 부족하니까 사랑하지못한다구? 사랑하면서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아니 그게 사랑이다. 삶의 신비이다. 유령의 사랑은 크리스틴을 지켜주었고 그 진심은 결국 자신의 빛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삶은 매순간 불타올라야 하는 무엇이다.

그렇다! 유령의 헌신은 크리스틴을 성숙시켰고 크리스틴은 맨 마지막 파멸의 순간에 유령에게 깊은 감사와 신뢰를 보여줌으로써 고귀한 소통의 순간을 창조해낸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 "괜찮아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예요." 라는 크리스틴의 마음이 유령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 소통의 순간은 짧았으며 그 순간은 아쉽게도 유령과 크리스틴의 이별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와 생명으로 가득한 저마다의 삶으로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쨍그렁!" 거울은 이렇게 깨어졌다. 울부짖으며 왜곡된 자아상을 상징하는 거울을 부수는 오페라의 유령은 홀가분하면서도 가슴 저민- 외로운 뒷모습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가 울부짖을수 밖에 없는 것은, 상처뿐인 삶을 벗기 위해, 끝내 부숴야만 하는 거울에 그토록 열렬히 매달리고 집착했던 크리스틴에 대한 사랑도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 크리스틴이여! 이제 그대를 진정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되었는데 작별의 순간이라니!'

7.아!  끝내 나를 격동시킨 것은 영화의 마지막에 나지막하게 울려퍼지는 노래 때문이었다.

" 우린 거친 황무지에서 태어나 무상하게 흩어질 존재지요. 우리는 어둠 속에서 외롭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되죠. 우리는 진정한 위로와 삶을 함께 할 유일한 동반자를 구하지만..... 알쟎아요. 사는 것은 그런 게 아니죠. 우리는 결국 외로움 속에서 웃어야 합니다. 우리는 외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해요. 삶이란 결국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Child of Wilderness, Born into emtiness,

 Learn to be Lonely, Learn to find your way in Darkness,

 

 Who will be there for you?, Comfort and care for you?,

Learn to be Lonely, Learn to be your one companion,

 

Never dreamed Out in the world, There are arms to hold you,

You've always known, Your Heart was on its own,

 

So laugh in your Loneliness,Child of the Wilderness,

 Learn to be lonely, Learn how to love life that is lived alone,

 

Learn to be Lonely,

Life can be Lived, Life can be Loved,...Alone.

가면을 벗어던진 유령의 삶이 그러했을 것이다. 두렵지만 가면을 버리고 맨얼굴을 드러내놓기를 선택했던 어제의 유령은 오늘 외로움 속에서 웃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그의  앞길에는 수많은 장미꽃이 놓여있을지니!  나같은 자들, 무수히 많은 유령들이 그의 삶이 빛으로 화하기를 염원하기 때문이다.     

8. 배암발 : [오페라의 유령]은 원래 프랑스 작가인 가스통 르루의 유명한 추리소설이라고 한다. 1925년부터 영화화되었으나 세계적인 작품이 된것은 영국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로 재창조한 이후였다. 소설을 못읽어서 확신할 수는 없으나, 소설은 범죄 스릴러였던데 비해, 뮤지컬은 상처받은 사람이 집착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는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있어 전세계적인 걸작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뮤지컬[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다.1948년생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이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캐츠]를 히트시키고 최상의 기량을 뽑내고 있을 때였다. 광고일지도 모르지만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오페라의 유령]에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걸작 뮤지컬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가 60이 다 되어 자신의 걸작을 재해석해서 직접 만든 영화가 이 영화이다. 아마도 그의 생애가 투영된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그러니 오페라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는 배부른 이야기이다. 적어도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다.극작가 자신이 20년 세월을 다시 숙성시켜 다듬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마지막 노래가 무척 중요하다. 영화의 모든 것을 녹여낸 메시지일 수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노래는 무척 히피스러운 반기독교 정서가 물씬 나는 노래라는 점이다. 적어도 내 주변의 오페라 선호층은 기독교인들인데 그들은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물론 나는 이 노래 역시 하느님의 섭리를 나타내는 거라고 보는 사람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 홀로 걷는 길이란 결국 신과 함께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발길에 닿는 돌멩이와 들풀조차 늘 새롭고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또한 영화의 별난 재미는, 그 동안 논리적 비약일 수 밖에 없었던 유령의 어린 시절 같은 것이 삽입되었다는 것 이다. 이런 부분을 유년기의 트라우마라는 식으로 정신분석적인 요소로만 본다면 상투적이다. 나는 단지 억압의 상징으로 읽고 싶다. 이 역시 상투적인 해석이지만 많은 선택항을 품고있기에 특정한 선택을 강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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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총총 2008-01-1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페라의 유령과 멋지게 소통하셨군요.. 꼭 다시 보고 시퍼요. 제가 미혼이라면 하늘연못님하고 데이트 해보고 싶을 것 같네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과 자유가 충만한 공간을 선사하는 것이라는 말.. 가슴속에 간직해 놓고 실행해야겠습니다 그 아름다운 공간이 나의 공간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연못 2008-01-1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보,당신의 멋진 메시지에 숨어있는 것이 비수가 아니길 빌 뿐이오.^^

하늘연못 2008-01-1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하튼 의도치 않았으나 이렇게 소통리뷰 3부작을 마무리한 셈입니다. 1부 [우행시] 2부 [굿 윌 헌팅] 3부 [오페라의 유령]... 홀가분하면서도 기진맥진한 느낌입니다.

허준 2008-02-05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집니다~! 영화가 보고 싶은데요~

동그라미 2008-02-22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꼭 한번 뮤지컬로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오히려 안보고 님의 설명을 듣는편이 더 감동적이네요. "당신탓이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은 좋은 사람이예요" 라는 말은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하늘연못 2008-03-04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페라의 유령을 보는 방법은 많을 겁니다. 사실 구원이라는 것이 누구나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닐 겁니다. 그저 아름다운 노래와 크리스틴과 라울의 로맨스만으로 이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요. 저의 리뷰는 신파극을 닮은 너무도 상투적이고 진부한 글이지만 무색 무취의 플라스틱과 같이 변해버린 오페라의 유령에 조금은 피가 돌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글과 영화, 연극이 자신의 삶과 부딪쳐 강하게 소용돌이 치는 그 충격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새삼 그런 글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드네요.긴 글 읽어주신 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굿 윌 헌팅 - [할인행사]
구스 반 산트 감독, 로빈 윌리암스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1. 2년 전에 아내가 권해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땐 참 심드렁한 영화에 불과했다. 로빈 윌리엄스도 조금은 식상했던 것 같고, 영화 도입부의 천재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거슬렸다.

2. 그런데 이번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왜 전에는 저런 멋진 장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럼 이 멋진 영화로 들어가 보자. 처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MIT의 응용수학과 교수인 랭보는 누군가 풀기를 기대하며 어려운 수학문제를 벽에 걸린 칠판에 적어놓는다. 그런데 막상 문제를 푼 것은 뛰어난 그의 제자들이 아니라 말썽꾸러기 청소부 윌 헌팅이었다.

윌 헌팅은 폭력성이 다분하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고뭉치로 하루하루 그의 재능은 잠식당하고 있었다. 랭보교수는 그의 천재성을 이용하기 위해 친구인 정신과 의사 숀을 부르는데 이 때부터 숀과 윌 헌팅과의 소통을 위한 전쟁이 펼쳐진다.

3. 이 영화는 뛰어난 천재 윌 헌팅의 기상천외의 행적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핵심은 이거다. 사람은 능력을 인정받을 때보다 한명의 인간으로서 신뢰를 받을 때 진정 행복하다는 것! 아무리 손오공처럼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결국 행복이란 인간관계에서 온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자연을 벗삼으며 낚시나 등산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많지 않나?

4. 오히려 내 관심은 '천재가 무얼까?'하는 점이었다. 만약 어떤 특정한 영역을 위주로 보았을 때 분명 천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1, 2년 만에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하고 전자오락실에서 최고 득점을 올리는 전자오락 매니아와 얼마나 다른걸까? 그래서 이렇게 다른 사람과 벽을 높이 쌓는 천재 개념을 폐기하고 달인 개념 또는 거장 개념으로 옮겨갈 때 조금더 건실한 생각을 하게 된다고 생각된다. 천재보다는 달인이 만인에게 개방된 개념이며, 천재보다는 거장이 인생을 통해 축적해가는 개념이다.

분명 이른 성공이 인생 전반의 성공은 아니지 않는가? 전무후무한 권투의 귀재인 마이크 타이슨이 결국 패가망신한 놈으로 남았듯이, 남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푼다는 걸로 성취를 가름하는 자는 저주가 있으라!

5. 또 이 영화에서 관심을 끈 점은, '전혀 다른 사람이 과연 어떻게 소통을 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영화 [우행시]에서는 '비밀을 전제로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소통의 시작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정신과 의사 숀은 다른 상담가들이 기법에 충실할 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서로 공감하게 되는 순간까지 기다린다. 숀은 '신뢰가 없으면 소통은 없다'고 말한다.

이건 그럴싸한 이야기다. 예를 들어 우리는 상대가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해서 며칠 굶어볼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의 처지가 될 수는 없다. 누군가와 같이 될 때만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소통이라는 것의 건널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하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는 소통이 많이 있을 수 있는 신뢰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그러나 신뢰가 있다고 물높이가 같은 컵처럼 쨍하고 공명음이 난다고 믿는 것은 너무 소박하다.  

내가 너가 될 수 없으니, 기껏 남는 것은 '믿을 만한 사람인가?'라는 신뢰관계이다. 그리고? 너나 나나 각기 인생을 사는 것이다. 소통은 공명처럼 행운이고 축복이다. 그것은 감사의 대상이지 요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엄마 젖을 빨듯이 언제나 공감받고 공명 받을 수 없다.

그런 헛된 희망은 피로와 소외 감정을 만들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소통은 순간적이고 상황적이며 지속되기 어렵다! 다만 소통이 준 마치 깨달음과도 같은 공명하는 인식의 지평이 인생을 변화시킬 뿐인 것이다. 

6. 그럼 윌 헌팅과 숀은 소통에 성공했는가? 성공했다. 어떻게 성공했는가? 숀이 좋은 사람이고 윌 헌팅같은 꼴통이어서 성공했다.

내 생각은 이점이 중요한데 소통은 숀이 윌 헌팅하고 같은 처지인 '천재적 꼴통'이어서 이루어 진게 아니다. 숀은 자신도 윌 헌팅도 꼴통-어리석고 상처받은 인간-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을 환자를 치료하는 우월한 위치에 두지 않았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숀은 윌 헌팅을 다만 연민을 가지고  만났던 것이다. 그 역시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상처는 또는 고통은 소통의 필요조건이다. 상처와 고통이 야기한 고독이 아니고서야 누가 소통을 원하겠는가?   

결국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윌 헌팅이고 그 힘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신뢰인 것이다. 그럼 숀은? 다만 너무 초조하지 말라고 기다려주고 다독거렸던 것이다.

 7. 영화 제목을 보며 무슨 뜻인지 그 때도 지금도 궁금했었다.

윌 헌팅과 숀의 전쟁같은 소통은 끝내 끝날 것 같지 않은 "It's not your fault!(괞찮아! 네 잘못아냐!)'로 일단락을 맺는다. 제목까지 쓰면 "괜찮아. 넌 '좋은'-good- 사람이야." 정도 되겠다.(You, Will Hunting are a Good Kid! Please,Trust yourself! Love yourself! Live yourself!) 

너무 똑똑한 것도 죄 아니고, 공부 못하는 것도 죄 아니다. 그렇지만 행복하게 살려면 누군가 믿을 사람은 있어야 하고, 부족하지만 언제나 -있는 그대로-' 좋은' 자신을 믿어야하며,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두렵지만 뛰어들기도 해야하는 거다!

실패했다고 상처받았다고 내리 자학하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자기 가슴에 영원히 '나쁜 놈'이라고 낙인을 찍을 필요 없다. 그래서 예수도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나? " 네 거적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라!"

마음의 상처를 감내할 수 있을 때 우린 비로소 소통하게 된다. 그러니 소통은 상처입은 자에게는 치유의 결과요 다가가는 자에게는 성숙과 겸손의 결과다.

8. 숀은 정신분석의 끝에서 "괜찮아. 넌 좋은 사람이야."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 순간 그가 말하는 것은 인간이 다하는 날까지 변함없는 진실이다.그 순간 그는 상담가도 의사도 아니다. 그는 같은 사람이요, 같은 길을 가는 친구로서 절규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절절한 진실마저 서로 나누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숀이 윌 헌팅에게 너무도 절절하게 들려주는- 그토록 끝없이 되풀이되는 'It's not your fault!'는 반야심경이나 주기도문을 외듯 외워야하는 만트라가 아닐까? 이해할 수 없지만 공명의 신통은 있는 기도가 아닐까?

친구들이여! 힘들때는 삶의 만트라를 외우자! "괜찮아! 너는(또는 난) 좋은 사람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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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8-01-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뒤늦게 진정한 천재의 모습을 가수인 paul potts에게서 발견합니다. 자신을 믿고 꿈을 접지 않았던 그래서 마음의 상처마저 노래로 바꾸었던 그가 제 마음 속의 진정한 천재입니다.

별총총 2008-01-09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보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