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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레시아스의 역사 - 서울대 주경철 교수의 역사 읽기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특이한 제목에 끌려 별 생각없이 읽게 된 책이다. 꽤 주목받은 인문교양서인 모양인데 저자나 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지적인 호기심이 생긴 것 같다. 그런데 저자의 사진을 보니 경제학과 다닐 때 몇 번은 본 선배이다. 60년생이니까 59년생인 유시민 선배와 거의 같이 최루탄을 마시며 학교에 다녔을 것 같다.
2. 각설하고,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란 무슨 뜻인가? 책 맨앞에는 테이레시아스가 그리스 신화 속의 특별한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였던 그는 특이한 계기로 여자로 7년을 살다가 다시 남자가 된다. 신의 저주로 장님이 되었지만 결국 특별한 영능 덕분에 최고의 예언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특별한 영능이란 결국 이질적인 세계-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직접 경험한 까닭에 획득한 통찰력 정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테이레시아스가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체험을 통해서 가장 탁월한 예언자가 되었듯, 역사학자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체험을 통해 현재에 대한 통찰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말할 수 있는 무당이 되어야 한다는 의도로 책 제목을 삼은 것 같다.
3. 이 책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글이 거칠고 논리적으로 치밀하지 못하며 사고가 깊지 못하여 실망스러웠다. 저자는 조금더 글을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내 생각은 이렇다. 적어도 일반 독자의 경우 역사학자랍시고 이런게 법칙이다 이런게 현실이다라고 결론을 던진다면 기분이 좋을리 없다. 우리는 같은 상식과 원칙을 공유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투적인 줄거리 짜집기와 '이건 몰랐지?'하는 지식 과시가 피차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리고 만약 짜집기를 하려했다면 목차와 덧댄 글을 통해 전체적인 구조를 탄탄하게 짜야한다. 최소한의 내적 연관을 통해 모종의 관념적인 귀착지를 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냥 대충 모아서 내면 잡지 밖에 더 되겠는가?
예를 들어, 61쪽의 '위기 시대의 종교(즉, 천년 왕국 운동)'부분은 참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이 부분에 왜 이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해 아무 정보가 없다.뜬금없다는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지리멸렬한 편집이라면 들고다니면서 머리 식히는 셈치고 가끔가다가 한두편 읽으라는 말인가? 그런데 240쪽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부분에 가면 천년 왕국설과 유토피아설이 비교가 된다. 그렇다면 다른 정황에서 별도의 글로 씌여졌다고 하더라도 같은 책으로 엮인 이상 각주로라도 유사한 내용에 대한 표시를 해놓아야 되는 것 아닌가?
여하튼 다시 서술 태도로 돌아가서, 일반 독자를 의식했을 때는 오히려 이런 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역사학자라는 사람이 역사라는 도구를 가지고 현실의 갈등을 해체하고 모순을 통찰하는 문제해결의 과정을 보여줄때 일반 독자는 기꺼이 그것을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즉 TV에서 과학수사대를 보며 손에 땀을 쥐는 그런 상황을 연출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학적인 근거와 그것을 다루는 방법론이 체험적인 서술과 결부될 때 일반 독자는 기꺼이 그 과정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그 체험은 굳이 격정적이거나 화려한 서술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경우 문제 의식의 치열함과 논리의 엄정성만으로도 강한 긴장감과 흥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경우라야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라는 책제목도 더 실감있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지만 원래 이 글들이 www.issuetoday.com 등 인터넷에 실렸던 다소 가벼운 글이며 대체로 대학 초년생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는 걸 생각하면 서양 근대사에 대한 편한 교양서로는 권할만 하다. 내용이 다소 반복되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4.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서양근대사와 현재의 상황을 대응시킨 것이다. 예컨대 "주먹이 센 놈이 이긴다"는 강대국의 필수요건인 군사혁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근대초에 유럽에서 각국의 군사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여러 강대국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일방적으로 나머지 국가를 복속할 수가 없자 바깥 세계로 팽창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말하자면 유럽의 흥기와 서세 동점의 양상이 그렇게 태동되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근대사의 핵심 키워드가 군사력 강화라는 것이 핵심주장인데 오늘날의 팍스 아메리카의 기본 요소가 미군이며 우리나라가 1조원을 들여 이지스함을 구입하는 것도 평화를 지탱하는 것이 무력임을 나타낸다는 식으로 현실을 대응시킨다.
이렇게 1부가 서양 근대사와 현재의 우리와의 대비를 보여주는 노력이라면, 2부는 주로 문학작품을 읽은 경험을 역사와 접목시키려는 노력이다. 적어도 서두에서 밝히는 저자의 의도가 그렇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2부의 글들은 그런 저자의 의도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나는 차라리 이런 식으로 읽고 싶다. 1부가 서양근대사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라면 2부는 근대사의 내부에서 나자신을 바라보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부는 역사와의 접점에 포커스가 되어있다기 보다는 자신의 실존과 더 관련되어있는 듯 보인다. 그 결과 1부가 대학 강좌 같이 삭막한 반면 2부는 조금 편하게 읽힌다.
예를 들어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 대한 글의 마지막에는 조셉 캠벨의 책에 나옴직한 다음같은 구절이 보인다.
"지옥 여행 - 그것은 영혼의 어둠을 헤치고 정신적 소생을 도모하는 여행이리라. 우리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세상의 악 그리고 우리 마음 속의 악과 맞대면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옥으로 들어가보는 수밖에 없다. 그대 안의 악의 심연으로 들어가라. 저 어둠 깊은 곳으로 들어가 악마를 만나라. 그리고 그 악마를 밟고 넘어가라!"(187쪽)
5. 다음은 이 책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세세한 것은 적지 않고 큰 줄거리만 잡아보겠다. 아래에서 따옴표(" ")부분은 직접 인용이고 그 외는 요약이다. 나 자신의 의견개진은 괄호( ) 안에 넣었다.
(1) 몇몇 의학적인 이야기 :
인류는 무척 오랫동안 기아선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소량만 먹어도 오래 버틸 수 있으며 그러다가 갑자기 음식이 생기면 최대한 영양소를 저장하는 기전을 발전 시켜왔다. 따라서 살이 찌는 것은 쉽지만 살을 빼는 것은 무척 어렵다. (80-81쪽)
16세기의 서양의 인구동향을 보면 10세이하의 아동은 장염과 열병이 많은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많이 죽었고 60세이상 노인은 대체로 겨울과 초봄에 가장 많이 죽었다. 폐병 때문이었다.(이 부분은 노인들이 대체로 늦겨울에서 초봄에 많이 돌아가신다는 민간의 속설이 통계상으로도 유효하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에 무척 흥미로웠다.)
(2) 유태인 학살에 대한 탁월한 다큐멘타리 영화 [쇼아] :
특별한 영상없이 감독이 "유대인 학살의 생존자들, 나치 가담자들, 그리고 이 학살의 과정을 지켜보았던 폴란드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한 것"을 계속 보여주는 영화이다.
( 참고로 9시간이 넘는 이 특별한 영상 자료는 요즘은 만원도 안되는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20세기의 인류역사를 떠올릴 때 꼭 보라는 이야기를 듣는 자료다.다만 영화를 볼때에는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둘만 하다.)
"이 영화는 폴란드인들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가혹한 비판을 가하고 있고, 독일인과 여타 민족에 대한 증오에 근거해 있으며, 결국 유대인의 고난만을 절대화하는 신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106쪽)
(3) [먼나라 이웃나라]의 역사인식 :
개신교가 긍정적으로 그려져있는 반면 가톨릭은 대단히 부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유대인이나 집시 또는 이슬람에 대해 너무 편파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유럽중심적인 서술이라고 하겠다. 전반적으로 충실한 만화이지만 틀린 내용도 꽤 눈에 띤다.
(사실 나는 이런 구체적인 부분을 10페이지 정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내지 않는지 궁금하다. 일단 나같은 비전공자는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서양사 전공자들이 모여 각자 발견한 이상한 점을 정리해 낸다면 일반 독자에게는 무척 훌륭한 정보제공이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런 정보가 인터넷이나 문자매체로 나온 적이 있나?
참고로 [다빈치 코드]의 오류를 반박하는 책은 직접 구입한 책만해도 4종이다. 그런데 왜 [먼나라 이웃나라]처럼 학생들에게 넓게 읽히는 책의 오류를 반박하는 책이 없는 것일까? 서양사학계의 분발을 촉구한다. 이런 문제는 아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도 같이 적용된다. )
(4)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인식 :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 우익 제국주의 작가이다. 따라서 왜 일본인 시오노 나나미가 그렇게 평생에 걸쳐 로마인의 역사에 매진하는가라는 상식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로마 제국은 이상적인 존재이며 영국, 독일, 미국 같은 서구 국가들이나 일본은 그로부터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로마는 그 간격을 줄이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어떤 시원始源 , 즉 완전한 국가의 이상이며 후대의 국가들은 그것을 모방하는 하나의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 씨의 연구 테마 혹은 자주 언급되는 내용들을 보면 로마라는 이상, 그리고 그것을 다시 부활시킨 르네상스, 그것의 정당한 후계인 영국 제국주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의 아시아판인 일본제국, 이런 순서가 되는 것이 아닐까?"(143-144쪽)
시오노 나나미는 이런 생각으로 로마를 위대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로마를 터무니 없이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로마인은 이민족에게 관대했다거나 로마의 피지배층은 로마의 지배에 감사했기 때문에 노예 반란 같은 것도 없었다든지 하는 왜곡된 서술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역사를 특정한 영웅적인 귀족의 이야기로 서술해가면서 인상적인 스케치에 머문다는 것이다. 즉 역사를 귀족 영웅사이의 멜로 드라마로 만들어놓고, 역사의 하중을 지탱해야 했던 대중에 대한 서술은 빈약하다는 것이다.
끝으로 하나 더 지적해야 할 것은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는 엔터테인인먼트이다'라는 소신에 따라 허구적인 인물이나 사료를 날조해서 적당히 섞어 [로마인 이야기] 서술했기 때문에 그 진술의 진정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눈에 띄는 대목은 저자가 [로마인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 던져주는 조언이다. )
"그러므로 [로마인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읽는 법은 이렇다. 멋있는 문장, 의미심장한 구절이 나오면 의심하라! 내 느낌을 말하자면 명확한 증거가 부족하고 그래서 판단을 내리기 힘들 경우 갑자기 문투가 화려해진다.
예컨대 "나이가 사람을 완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 사람을 완고하게 만든다", 이런 식인데, 추측컨대 많은 독자들이 이런 멋진 말이 나오면 그곳에 예쁘게 밑줄을 그렸으리라. ...내 생각에는 그런 부분일수록 '증거 부족'의 도피처 역할을 할 뿐이다."(140쪽)
(***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조목 조목 비판한 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5) 가장 감동했던 부분
1) 가케무샤..."본체없는 그림자의 고뇌"
2) 오이디푸스..."내게 이 고통, 이 괴로움을 준 것은 신이었소. 그러나 내 눈을 친 것은 나의 손이었소."
3) 유토피아와 천년왕국의 차이... 유토피아는 현실의 변혁을 거부하는 지식인의 전통 공동체로의 퇴행을 보여준다.
4) 솔제니친과 톨스토이 ... "모든 사람은 자신을 살피는 마음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