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혁명 - 통증, 마음이 보내는 경고
존 E. 사르노 지음, 이재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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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이 책의 원제목은 [Healing Back Pain : The Mind-Body Connection]이다. 참고로 Back Pain은 신체 후면의 모든 통증으로 머리부터 발까지를 포괄하는 방대한 영역이다. 책의 주요개념인 TMS는 Tension Myositis Syndrome으로 긴장성 근육통 증후군으로 번역되어 있다. 마음 속에 내재한 분노와 불안이 특히 신체 후면의 근골격계 통증으로 전환되어 나타난다는 뜻이다.

2. 저자인 John E. Sarno는 뜻밖에 뉴욕의대의 재활의학과 교수이다. 20년 동안 주류의학의 치료법을 이용하여 환자를 치료하였으나 진단과 치료 상의 모순을 발견하고 TMS라는 진단을 도입하였고 수술이 아닌 소규모 그룹 토론 등을 통한 지식치료로 88%라는 경이적인 치료율을 보였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Back Pain의 95%는 무의식의 분노가 신체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난 것이다. 통증이 극심하다할지라도 이런 증상은 분노나 불안과 같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을 회피하려는 심리적 방어반응으로, 전혀 위험하지 않으며 수술 또는 물리치료 등 여타의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다만 통증이 과장하는 위험경고를 무시하고 문제의 근원인 자신의 분노로 시선을 돌리기만 하면 치료가 된다. 통증을 지탱하는 심리적인 에너지가 다시 원래의 분노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Back Pain 치료는 정신적인 원인을 도외시하고 신체 구조적인 해결만을 구한 결과 치료도 되지 않고 수술 등에 의한 후유증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침상 안정, 물리치료, 요통 환자에 대한 각종 금기사항 등을 통해 환자들을 통증에 사로잡힌 삶을 살게 한다. 현재의 의료는 환자를 율법과 금기에 묶인 죄수의 신분으로 강등시키고 있다.

3. 나는 여기서 불경과 성경의 대목을 떠올린다.

(1) 외동아들이 죽어 고통에 잠긴 여인이 붓다를 찾아왔다. "위대한 성자님, 제발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붓다는 여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이여, 그렇지만 이 종발에 볍씨를 모아오라. 그 볍씨는 그대의 아들을 소생시킬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아무도 죽지않은 집의 볍씨여야 한다." 여인은 몇 달이 지나 다시 돌아와 울며 말했다. "자비로운 성자님, 당신의 말씀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어느 집도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없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고, 만나면 헤어져야 함을 알았습니다."

(2) 예루살렘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못에는 가끔 천사가 내려왔다. 천사의 옷깃이 물결을 만들면 처음으로 그 물에 들어간 자는 모든 병이 났는다는 소문이었다. 삼십 팔년된 병자가 있었는데 그는 앉은뱅이였다. 그는 언제나 연못에서 천사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못에 들어가려고 하면 이미 다른 사람이 잽싸게 먼저 들어가곤 했다. 이 때 예수가 그 병자를 보고 말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적어도 이 책에 의하면 두 사람은 TMS환자들이다. 그리고 저자의 처방은 붓다나 예수의 치료와 동일하다. 그리고 너무도 슬프게도 아직도 우리는 베데스다 연못의 그 병자처럼 용한 의사와 특별한 권능을 기다리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4. 나 역시 20년이 넘게 TMS를 겪었고 무수한 TMS 등가물에 시달렸다. 알레르기 비염, 안구결막염,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등. 지난 5년간 꾸준한 운동으로 점차 회복하였으나 그 회복의 과정이 단지 운동을 통한 혈액순환 또는 대사 활성화와 정신적인 분투 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점이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TMS라는 관점을 도입할 때 더 설득력이 있다.

또한 나는 수능 또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과 큰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 그리고 갱년기 전후의 중년 여성등을 5년간 치료했다. 경력이 짧아 제대로된 치료를 할 수 없었던 임상 첫해조차도 나는 날을 잡아 하루종일 대부분 침 한개만으로 한 환자를 대하였는데 김광호 선생과 같은 96보사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 중 7, 8은 호전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냉정히 판단하건대 그당시의 나는 실력이 없었던 무능력한 자였고 치료의 성공은 플라시보임이 분명하다.

그러고는 한해가 지나 10년 묵은 오십견 환자랄지 턱관절 증후군 환자 등을 보았다. 대학병원을 포함하여 수많은 의료기관을 전전한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치료없이 나았으며 재발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해가 지나 젊은 학생들을 보았을 때는 의도적으로 침을 쓰지 않았다. 대부분 1년 넘게 통증을 호소하고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이었다. 디스크 진단을 받고 양방치료를 받았으나 의자에만 앉으면 다시 통증이 재발되는 환자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여보게. 자네는 능력보다 한참 모자라는, 또는 별로 가고싶지 않은 막다른 곳으로 자신을 억지로 구겨넣으려 하네. 그러니, 어찌 마음에 갈등이 없겠는가? 그 회피하고 싶은 무의식이 자네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걸세. 

뼈나 디스크가 신경을 누른다면 마비가 되지 통증이 유발되지는 않는다고 하네.게다가 컨디션이나 주변 상황에 따라 통증의 양상이 극심하게 요동치는 것은 바로 통증의 원인이 자네의 내면적 갈등이라는 것을 확증하네. 그런 사기에 놀아나지 말게. 자네가 병원 문턱을 닳도록 돌아다니는 동안 자네는 연신 시험에서 낙방할 것이네. 그리고 통증이 사라지는 순간 자넨 깨닫겠지. 이미 젊음도 기회도 사라졌다는 걸!"

놀랍게도 많은 학생들이 그 조언을 따랐고 때로는 통증을 받아들인채 자신의 전투를 치루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인사하려고 찾아온다.

5. 책의 끝에는 일본 갤럽 치료원 원장 하세가와 준시의 글이 적혀있다. 책을 전반적으로 지지하는 좋은 글로 유용한 정보가 많다. 특히 관심이 가지는 대목을 인용하겠다.

(1) "... 등과 허리 통증의 치료법 가운데 플라시보보다 뛰어난 것은 무엇 하나 확인되어 있지 않다.

수술의 경우, 거짓 치료를 통한 대조 실험은 불가능하지만 물리치료군을 통한 비교시험은 가능하다. 웨버는 추간판 탈출이 확인된 환자 126명을 대상으로 물리치료군과 수술군의 무작위대조 실험을 통해 장기에 걸친 치료 성적을 비교했다([스파인] 8권 131쪽). 그 결과 수술군은 단지 성적은 좋았지만 4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물리치료군과 차이가 없어졌고, 10년 후에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결국 수술이 물리치료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사노 박사가 수술을 '결국에는 플라시보'라고 말한 이유이다.

이와 같이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치료를 시행하고 있는 현 상태에서는 등과 허리 통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급성 통증은 치료법의 종류와 상관없이 한 달 이내에 80퍼센트가 좋아진다. 따라서 플라시보를 써도 급성 통증은 개선 가능하며, 사실상 문제가될 경우는 적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만성화된 통증과 재발을 반복하는 통증이다.

나는 오랫동안 만성 통증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 경험을 통해 알아낸 것은 이러한 통증은 심리적.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심리요법이나 정신요법에 희망을 걸고 싶지만, 만성 통증에 대한 정신 치료적 접근법은 환자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성격의 개조를 목표로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며 우울증이나 공격성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통증 감소에는 효과가 거의 없다고 연구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이런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TMS 이론을 만났다. 사노 박사의 책을 읽기 전에는 이것이 최면술, 명상, 특수한 정신 치료 등의 복잡하고 모호한 것이 아닐까하고 걱정했다. 그렇지만 통증의 원인은 마음의 긴장에 있고, 마음의 긴장 정도와 신체 통증의 정도가 비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또 억압당한 감정을 자각하는 것이 치유의 열쇠라는 설명은 상당히 논리적이며 상식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233 -235쪽)

(2) "현대 의학에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정체술, 카이로프랙틱, 접골요법 등과 같은 비주류 대체의학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들 대체요법은 골반이 뒤틀어졌다는 증거로 두 다리의 길이가 다른 것을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노 박사는 두 다리가 다른 것은 이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잘 쓰는 팔이 있는 것처럼 잘 쓰는 다리도 있다. 인체는 본래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마에카와 키헤이 등이 실시한 보행의 중심학적 연구에 의하면, 걷기 시작할 나이에는 직립 자세의 중심점이 정중앙보다 조금 오른쪽에 있고, 5세 정도가 되면 정중앙으로 이동하고 그후에는 서서히 왼쪽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이는 오른쪽에 있는 간장이 무겁기 때문에 걷기 시작할 시기에는 간장의 무게를 보정할 수 없지만 서서히 중심을 왼쪽으로 옮기는 것으로 보정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자연스럽게 왼쪽 다리가 몸을 지탱하는 다리가 된다고 한다([소아과 진료]51권 1841쪽). 이는 사람의 중심점은 정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좌우의 다리에 각각 역할 분담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좌우의 차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22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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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헌 박요한 원장의 통증 이야기
안익헌, 박요한 지음 / 엠디월드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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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쓴 안익헌 선생님은 유명한 책 [개원의를 위한 통증 일차진료학]의 저자이다. 일차 진료 학회, IMS학회, 응용근신경학(AK)회 회원이기도 하다.

참고로 IMS 또는 INMS는 intra(neuro)muscular stimulation(신경근 자극 요법)으로 침을 근육 또는 인대, 관절, 신경 등에 시행하여 치료하는 방법으로 trigger point에 저농도의 리도카인을 주입하는 TPI(= Trigger Point Injection)와는 다른 방법이다. 또한 최근에 각광받는 응용근신경학(AK)은 근육반응을 이용해 진단하고 주로 손기술과 영양제 처방을 통해 인체의 기능적이상을 치료하는 대체의학이다.

이상을 볼때 이 책은 통증을 수술이 아닌 비침습적인 방법으로 치료하려는 젊은 의사의 의견을 담은 책이다. 통증치료에 대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잘 쓴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의 분량이나 내용은 무척 간략하며 정보의 양도 많지 않다. 크기나 종이질을 낮추어 5 - 7000원 정도로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2. 눈에 띄는 정보

(1) 왜 많은 의사들이 '인대가 늘어났다'는 진단을 내리는 걸까? 만성 통증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단지 상황을 서술하는 것으로 진단의 어려움을 피하는 것이다.

(2) 어깨통증으로 오는 환자 중 극소수만이 오십견(= 유착성 피막염)이다. 실제 오십견은 6개월에서 2년의 치료가 요구된다.

(3) 뼈주사는 관절강내에 염증을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주입하는 것으로 많은 부작용이 있는 치료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맞아서는 안된다. 뼈주사가 유용한 경우는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령, 기저질환 등의 이유로 수술을 못하는 환자들처럼, 무릎통증 환자들 가운데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4) 밸런스 요법은 신체의 밸런스를 회복하여 자가치유력을 통해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INMS와 테이핑등을 이용한다.

(5) 다리 길이가 틀린 경우는 전체의 70%로 대부분 치료할 필요가 없다. 다만 정도가 심하거나 그로 인해 골반이나 어깨가 기울어져 만성 통증의 원인이 되는 경우에는 치료해야 한다.

(6) 목에 통증이 없는 사람도 25%가량 MRI를 찍으면 목디스크로 진단된다. 반면 MRI 진단상으로목디스크로 판명이 나도 목과 어깨, 팔의 통증과는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실제로 내원하는 환자의 극소수만이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고 대체로 3개월간의 비침습적 치료를 통해 회복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디스크 환자는 수술할 필요가 없다.

(7) 뇌출혈이나 뇌종양 등 뇌에 실제 이상이 있어서 생긴 두통은 그 강도가 점차 세어지는 경향이 있고, 일반 두통이 수면 중에는 호전되는데 반해서 시간에 상관없이 증상이 올 수 있다. 또한 구토, 경련, 언어장애, 시각장애 등이 동반될 수 있다.

(8) 오십견에서 운동제한은 통증 때문이 아니라 어깨 자체가 굳은 것이기 때문에 통증이 없어도 남아 있다. 따라서 어깨 힘을 뺴고 다른 사람이 어깨를 움직일 때 통증도 줄고, 팔도 잘 돌아간다면 오십견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9) 테니스 엘보(=외측 상과염) 때문에 염증주사를 맞지만 반복적으로 염증 주사를 맞는 것은 힘줄이 약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한다.

(10) 길을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MRI 검사를 해보면 5명 중 1명 꼴로 디스크 병변이 발견되지만 대부분은 병변과 일치하는 통증을 보이지 않는다. 즉 무증상 디스크 병변이 많다.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요통의 원인을 알지못할때 관성적으로 내려지는 디스크 진단과 이에 따른 수술치료는 무척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통증과 무관한 디스크 수술을 한 탓에 통증은 사라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수술 후유증만 더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디스크로 인한 허리 통증을 치료하려면 우선 지금의 통증이 디스크로 인한 것인지부터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11) 좌골신경통은 좌골신경의 염증 등으로 인해서 통증이 왔다는 말일 뿐, 질병은 아닐 수 있다. 그 근본 원인은 염증이 아닌 틀어진 골반, 무릎 통증으로 인한 비뚤어진 보행, 망가진 발에 의한 불균형 등일 수 있다. 따라서 증세가 호전이 없다면 이러한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만 한다.

좌골신경통의 치료에 쓰이는 주사요법 중 신경차단술에 스테로이드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합병증 등을 고려할 때 스테로이드를 주사해서는 안된다.

(12) 무릎 연골과 뼈가 손상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통증을 크게 느끼지는 않는다.  대부분 연골 손상에는 연골재생주사를 써서 재생을 돕기도 하고, 뼈까지 크게 닳은 경우에는 수술까지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애초에 왜 연골과 뼈가 닳았을까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적절한 치료라고 할 수 있다.

무릎에 뼈주사를 반복해서 맞게 되면 무릎 뼈가 더 빨리 닳게 되고, 치료에 내성이 생겨서 다른 치료들도 효과를 못 보게 될뿐만 아니라 전신 건강에도 매우 나쁘다.

(13) 예전에는 '어느 약국 약만 먹으면 무릎 뿐만 아니라 모든 관절염이 좋아지고 입맛도 좋아지더라'는 소문이 돌아서 약을 소포로 받아서 먹기도 했다.  대부분 그런 약에는 대량의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어서 , 약을 먹을 때는 일시적으로 증상이 호전되지만, 결국은 뼈가 약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갖은 질병을 앓다가 일찍 죽게 되는 쿠싱증후군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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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학습혁명
이케가야 유우지 지음, 양원곤 옮김 / 지상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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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년 학습법이나 기억법에 대한 책을 읽게 된다. 시간에 쫒겨사는 나에게 더 나은 학습법이나 기억법에 대한 갈증이 있다. 적어도 최근 몇년간의 독서로 학습 매뉴얼을 만들 정도인데 다음은 내나름의 추천도서이다.

(1) 이케가야 유우지 [뇌학습 혁명]..저자는 젊은 뇌과학자. 가장 짧으면서도 명쾌하게 학습법을 과학적으로 찾아냈다.

(2) 나이토 요사히토 [항상 깜빡하는 당신을 위한 기억술]... 저자는 심리학 박사. 다양한 상황에 맞추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은 책이다.

(3) 후쿠이 가즈시게 [합격을 보장하는 두뇌혁신 학습법]... 저자는 의학 박사. 의학자의 관점에서 건강과 공존하는 학습법을 찾았으며 직장인이 당면한 시험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처할 것인가를 밝혔다.

기억법과 학습법의 정도를 추적한 이러한 책과는 달리 특히 중고생들의 공부기술을 한단계 올려주는 책들도 있는데 참조할만 하다. 내가 알기에는 최고 수준의 학생들 중 상당수가 이 책처럼 공부한다. 따라서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무용담처럼 보이겠지만 무척 진솔하게 핵심을 적어놓은 책들이다. 웅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연마해야만하는 공부기술이 담겨있다.  

(1) 장승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2) 조승연 [공부기술]  

2. 나이토 요시히토의 책 [항상 깜빡하는 당신을 위한 기억술]에는 기억력이 나쁘다고 한탄하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과연 그걸 꼭 외울 필요가 있는가? ""인간의 두뇌는 진심으로 외우고 싶은 것만을 외운다. 따라서 꼭 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을 버리는 것이 기억법의 시작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케가야 유우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너무도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 정보를 모두 기억한다면 5분도 안되어 뇌가 마비될 것이다. 따라서 뇌에게는 기억하는 것보다는 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숨을 쉬는 것, 밥을 먹어 소화시키는 것, 옷을 입는 것 등은 생존에 있어 중요하다. 그렇지만 미분 적분 백년전쟁의 기간 등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의 대부분은 생존에 있어 부차적인 것들이다. 따라서 뇌는 필요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를 그토록 괴롭게 하는 망각이라는 것은 무척 당연한 작용인 것이다.

우리는 망각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반면 망각에 대항하는 우리의 학습은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정보를 새겨넣는 지난한 행위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다..  

3. 아마도 생활에 절실한 지식만을 암기해야 한다면 우리의 고충이 이토록 크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사회에는 시험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는 필요치 않은 관념적인 껍데기 지식이 사회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암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이런 모순에 대해 이케가야 유우지는 방법기억을 중시하는 학습법을 제시한다.

방법기억이란 사물을 다루는 방법을 암기하는 기억이다. 예를 들어 숙련된 운전자는 특별히 의식 하지 않으면서도 복잡한 거리를 통과하는데 이런 것이 방법기억이다. 재미있는 것은 운전자는 태평하게 거리를 빠져나가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사용설명서는 무척 두껍다는 것이다. 그런데 숙련된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운전이란 패턴화된 몸에 밴 몇개의 동작일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패턴화된 동작은 다양한 상황에 재빠르게 대처하며 명확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즉 사고없이 먼길을 운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몸에 밴 방법기억은 단순해보이지만 고도의 지성적 기억일 수가 있다. 다른 예를 들어 주산을 이용해서 복잡한 계산을 하는 경우를 보자. 주산을 튕길 때, 무척 복잡한 산술적인 과정이 단순하고 반사적인 손놀림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주산 기술은 모든 숫자에 다 적용되지 않는가?

또 다른 예를 들어 주가시세를 응시하는 투자의 달인이나 경영의 귀재들을 생각해보자. 이들도 결국은 패턴화된 통찰을 통해 결정을 하는 것이지 그 모든 것을 컴퓨터 숫자와 논리를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대상이 방대하고 카오스적일수록 패턴화된 방법기억은 최대의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방법기억이야말로 숙달되면 최소노력으로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마법의 기억인 것이다.  

"학교 공부를 통해 지식기억 뿐만 아니라 방법기억도 동시에 습득할 수 있다. 방법기억은 천재적인 능력을 키우는 마법의 기억이다. 모든 사물에 대한 분별력을 길러, 종합적인 이해력과 판단력, 응용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억이다."

"확실히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기억은 사회에 나가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때 배운 방법기억은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사회, 가정, 오락, 일, 인간관계, 이런 다양한 측면을 겸비한 각각의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할 비결이 바로 방법기억이다."

천재적인 학생은 남들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쉽게 풀어 외운다. 간단한 몇가지의 통찰만으로 복잡한 이론을 마치 드라마 읽듯이 읽어낸다. 나에게 오리무중의 미로였는데 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놀이공원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통찰력과 단순한 무의식적 처리를 결합한 방법기억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조언이다. 거꾸로 껍데기 지식에 얽매인다면, 학교와 사회가 동떨어지게 되며 학습에서도 점점 늘어나는 지식량에 고통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 명약관화하지 않는가? [뇌 학습혁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 방법기억으로의 전환이라고 생각된다.

4. 분명히 두뇌는 암기보다는 망각에 소질이 있다.  이 망각하기 좋아하는 두뇌에 대한 이케가야 유우지의 대책은 너무도 간단하다.

반복하여 외우고 잊어버리면 또 반복해서 외워라."몇 번이고 반복해서 외우는 사이에 뇌는 그 기억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몇 번의 노력 끝에 겨우 외웠는데 다시 잊어버린다면? 대답은 마찬가지다. 역시 다시 외우면 된다. 이 방법 밖에 없다."

그렇지만 효율적으로 암기하는 데 꼭 알아두어야할 몇가지 원리가 있다.

(1) 기억의 공장 해마를 속여라. : 뇌에 들어온 정보는 "우선, 해마에 모여, 어떤 정보가 필요하고 어떤 정보가 불필요한지 꼼꼼히 검토한 후 필요하다고 판단된 정보만 대뇌피질에 보관한다."

따라서 기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해마를 속이는 것이다.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정보라고 속일 수 있다면 정보는 버려지지 않고 대퇴피질에 보관된다. 속이는 방법은 반복하여 학습함으로써 중요성를 강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흥미나 호기심, 희노애락의 감정을 동원하는 것이 암기의 효율을 높힌다.

(2) 1개월 안에 복습하라. 꼭 필요한 것은 2개월 동안 4번 복습하라. :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해마는 정보를 1개월 정도만 보관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보를 습득한 뒤에 1개월 안에 반드시 복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학습은 2개월동안 4차례의 복습을 하는 것인데, 1일후, 1주일후, 다시 2주일후, 다시 한달후에 복습을 하면서 암기를 하는 것이다.

(3) 적당한 긴장은 중요하지만 지나친 스트레스는 암기의 적이다. : 끝으로 중요한 것은 절박한 느낌이 들때 암기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즉 긴박감이나, 배고픔, 추위를 유발한 상황에서 학습능률이 올라간다. 그렇지만 지나친 스트레스는 당질 코르티코이드라는 호르몬을 분비시켜 기억력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망각에 주눅들지 않으며 꾸준히 반복하는 근성이야말로 학습법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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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S.E - 스펙트럼 인기외화 할인20선
윌리암 프레드킨 외 감독, 사무엘 잭슨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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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ulius님의 리뷰에 공감한다. 나 역시 이 영화를 기분좋게 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면 별점 네개의 뜻은? 미국인의 상식을 명백하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평균적인 미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했다. 특별히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도대체 자신들이 관계된 수많은 학살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이나 고통은 느끼는 걸까? -이런게 늘 궁금했다.

물론 민간인 학살에 대해 비판적인 미국인도 있다. 예를 들어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에는 미국에 의해 자행 또는 방조된 전세계의 민간인 학살 장면이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감독 마이클 무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평균적인 미국인은 아니다.

반면 이 영화[룰스 오브 인게지먼트]는 평균적인 미국인의 의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전미 박스 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게다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이 영화 속의 재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재판의 결과에 대해 다수의 미국인은 공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미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평균적인 미국인의 현재의식을 보여주는 진귀한 자료이다. 도대체 그들은 예멘의 민간 시위대를 학살한 미 해병대의 행위를 도대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 - 이 영화는 이런 궁금증을 채워준다.

2. 전쟁 영웅 칠더스(사무엘 잭슨) 대령은 시위대에 의해 포위된 미국 대사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해병대와 함께 특파된다. 그런데 저격병에 의해 자신의 부하가 죽고 자신도 총격을 당하자 "싹 쓸어버려"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 결과 83명의 시위대가 학살되고 만다. 영화에 비춰진 자료 화면을 보면 시위대는 대체로 무고한 민간인으로 부녀자와 노인, 어린이가 다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보면 시위대 속에 무장 세력이 있었고 그것을 찍은 비디오가 불태워지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애초부터 비디오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저격병에 의한 해병대원의 사망 자체가 오리무중인 것이다. 여하튼 돌에 맞았든 총에 맞았든 미 해병대원 서너명이 죽은 후에 수백명의 민간 시위대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도대체 이들의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일까? 명백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복잡한 재판 과정을 벌인다는 것이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결론을 받아들이자면  미국인들은 특수한 경우에만 민간인 학살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교통사고 접촉사고 시에 일방적인 사고는 거의 없듯이 어떤 경우에도 미군만의 책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대체로 민간인 학살이 아니라 자위권 발동 정도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6.25에 참전한 미군에 의해 자행된 많은 학살의 흔적을 가진 민족이다. 또한 우리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역시 도처에 발견되는 나라이다. 학살 주범은 상대가 순수한 민간인이 아니고 폭도라서 사살했다고 말한다. 정당한 국방의 의무를 치르는 중에 상대가 공산당이고 빨치산이어서 사살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긴박한 순간에 민간인과 폭도는 구분이 되지 않기에 무고한 민간인을 죽였다고 한다. 

현실은 유감스러우나 이런 시행착오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군대가 어떻게 의무를 다할수 있겠는가 반문한다. 이 영화 역시 똑같은 논리를 따라간다. 별 수 없지 않은가? 그럼 우리가 죽으면 누가 나라를 지키랴! 미군이 아니면 누가 지구를 지키랴!

이 영화가 보여주는 두개의 역설이 이런 것이다. 당신에게는 선량한 아들 딸이라고 하겠지만 그들의 손에는 돌과 몽둥이가 있었다. 즉, 민중과 폭도 또는 살의를 가진 군중은 구분이 안된다는 것이 하나이다. 반면, 국가라고 하는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영웅적인 군인과 민간인을 학살하는 비인간적인 살육자는 너무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두번째 역설이다.  

3. 영화에는 민간인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는 상황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전우인 칠더스를 변호하기 위해 예멘에 갔다온 하지스 대령(토미리 존스)이 격분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냐?"면서 칠더스와 한 바탕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그만큼 민간인 학살의 정황은 명백한 것이다.이걸 뒤집어 칠더스를 무죄로 만드는 과정이  어처구니 없지만 현실 속에서도 영화에서도 미국인의 학살자에 대한 판결은 무죄이다.

여기서 나는 잠시 불쾌한 감정을 접어두고, 이런 상식적 판단의 구조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보이든 미국은 또는 현대국가는  무죄를 선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왜 그들은 무죄라고 생각하는가?

(1) 현대국가는 논리가 아닌 폭력에 기반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현대 국가가 군대라는 무력을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이라는 조직이 해병대라는 충성을 바치는 무력을 포기하고 유지될 수 있는가?

현대 국가는 조직 폭력배와 같다. 자신을 섬기는 넘버 투나 넘버 쓰리가 시장 상인에게 가혹했다는 이유로 처단한다면 조직은 와해될 것이다. 많은 넘버 투의 자리를 노리는 수하들은 그런 불안정성 속에서는 충성을 바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지랄을 하고 감옥에서 평생을 썩어도 자신의 가족을 보살펴주리라는 보스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충성의 원천아닌가?

마찬가지로 전쟁영웅 칠더스에 대한 국가의 응답이 바로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전장에 나가 자신은 죽더라도 가족은 연금을 타며 자신의 이름은 비석에 새겨질 것이라는 계약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군대는 유지되지 않는다. 전쟁영웅이 기껏 학살 따위로 내팽개쳐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어차피 전쟁이란 어처구니 없는 초논리적인 것이니까! 

따라서 우리는 현대 국가의 속성이 이러하므로 민간인 학살 또는 살해에 대해 사죄나 처벌을 요구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미국인이 가진 상식은 조폭 국가주의이다. 헌신적인 조직원은 다른 조직원에게 무슨 나쁜 짓을 해도 보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폭의 논리로 움직이므로 우린 속죄와 사과의 말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2) 역사는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인력은 증거를 조작하며 외형적 대의를 위해 기억을 소거하고 새로운 기억을 창조한다. 학살은 범행의 현장을 넘어 기억과 시간에 까지 이루어진다.  

노련한 베테랑 칠더스는 자신의 민간인 학살 지시, 즉 "다 쓸어버려!"를 망각한다. 목격자의 증언과 주변의 정황으로 추궁한 뒤에야 마침내 아련한 기억을 실토하게 된다. 상식적인 일이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죄스러운 기억은 자주 망각되는 것이다. 사실은 이 칠더스의 망각이야말로 칠더스의 자백에 다름아니다. 그는 정말 개지랄을, 정말 군인으로서는 하지말아야할 선택을 했던 것이다.

또한 칠더스는 환상을 본다. 시위대 속에서 많은 사람이 해병대에게 총을 난사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제 능동적으로 기억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 기억의 허구성은 어린 소녀가  총을 들고있다는 설정에서 고백된다. 과연 베테랑인 칠더스가 죽음의 경계에서 극도의 공포심을 느껴서 그런 환상을 보았을까? 아니면 동료의 죽음에 격분하여 일을 벌이고 나중에 회피적인 기억 소거와 변환을 하는 것일까?

영화에 의하면 다른 해병들은 군중들을 보지 못했고 진실을 본 해병은 죽고 오직 칠더스만 남았다. 과연 칠더스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걸까? Who Knows?  다만 이런 기억의 수많은 변주는 개인의 일만이 아니다. 국가도 자신의 비행을 망각하고 변조하면서 역사를 적어내려간다. 말하자면 애초에 있지도 않은 미해병대에 대한 저격이랄지 그것을 담은 비디오 라는 식의 조작을 적어내려간다. 도대체 역사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현실과 조작의 경계란 어디인가?

4. 착잡함은 있지만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내팽개칠 수도 없는 영화가 이 영화이다. 그렇지만 끝내 비통한 심정으로 내 나름의 판정을 내린다면 칠더스는 살인마요 학살자이고 그의 학살을 두둔한 미국과 미군은 파렴치한 집단이다. 인류 보편의 양심을 저버린 이들은 엄연한 진실앞에 속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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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트로벨의 다 빈치 코드 해체
리 스트로벨.게리 풀 지음, 황혜정 옮김 / 사랑플러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1. 작년에 [다빈치코드] 리뷰를 쓸 때만 해도 나는 맘 편한 상태였다. 소설 책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기독교인들이 못 마땅했지만 '팍팍하게 인생사는 것도 자기 선택이지'라는 식으로 생각했다.

2. 그렇지만 리 스트로벨의 [Experiencing the Passion of Jesus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읽다가 궁금증이 일어났다. 리 스트로벨은 잔혹한 예수의 수난을 다룬 영화에 대해서는 호평을 하면서 왜 이 즐겁고 경쾌한 책은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일까? 도대체 기독교인들의 어떤 마지노선을 건들기에 이 책은 이렇게 시끄러운 것일까?

누군가를 때린다고 가정해 보자. 어깨를 살짝 건드리는 약한 충격이나 머리털을 스치는 것 때문에 감정이 크게 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급소를 가격 당하거나 심한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발끈 하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다빈치 코드]는 기독교의 어떤 급소를 가격하였단 말인가? 그 급소는 기독교를 지탱하며 기독교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어떤 신념, 어떤 진실일 터이다.

3. [다빈치 코드]에 의하면 예수는 사랑하는 여인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사라를 낳았다고 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 마리아와 자신의 후손에게 자신의 조직, 즉 교회를 물려준다. 그러나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제자들은 이에 반발하여 교회를 장악한다. 권위와 조직을 중시하는 이들은 예수를 신격화했을 뿐만 아니라 정당한 계승권자인 마리아를 축출한다.

그런데 이런 콩가루 집안이 로마의 황제와 손을 잡는 행운이 겹친다. 신적인 황제가 되고싶어했던 콘스탄티누스 1세와 베드로의 교회가 만나 무슨 짓을 벌인 것일까? 그들은 권력의 정점에 황제와 교황을 두는 조직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독교의 교리를 뜯어고친다. 그들은 자신의 권위가 절대적이기를 바란다. 그들은 기독교를 권위적인 예수神 종교로 바꾸어버렸다.

그들은 우선 예수가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는 복음서를 이단으로 몰아 없애버렸다. 결국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복음서만이 우리에게 전해졌다.-그러나 이런 참담한 상황은 20세기에 들어 사해 두루마리나 나그 함마디 문서가 발굴됨으로써 역전되게 된다.- 그리고 예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는 것을 315년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공표하였다. 이렇게 땅 속에 묻힌 인간 예수가 통탄할 일이 벌어진채 2천년이 흘러갔던 것이다.그 긴 시간동안 이들은 내내 자신의 권위와 이를 지탱해준 가공의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오점-즉, 예수의 혈통과 이를 증거하는 문서를 멸절시키려 해왔다. 많은 종교적 테러와 중세의 마녀사냥 등을 보라. 

(--에-지금 계속 '[다빈치 코드]가 주장하는 진실'를 중개하고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    

짠! 이때 예수의 혈통과 계승권의 비밀을 지키는 정의의 단체 시온수도회가 등장한다. 2000년동안 시온수도회는 예수의 후손을 보호하여왔다. 짠~! 이번엔 또다른 좋은 편이 등장한다.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템플 기사단이 바로 그들이다. 템플이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템플 기사단이란 표면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사람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기사단이다. 그러나 사실은 시온수도회가 비밀 두루마리를 찾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이들은 예수혈통의 비밀을 간직한 두루마리 문서를 예루살렘에서 발굴하여 시온 수도회에게 전해주었다.

예수의 후손이 정당하게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예수 혈통과 이를 입증하는 문서가 확보된 것이다. 이로써 시온수도회와 템플기사단의 예수혈통 바로세우기의 대반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적들은 막강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베드로의 계승자인 교회는 이들 템플기사단을 이단으로 낙인찍어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몰살하였다. 우리가 아는 '13일의 금요일'이 불길한 날이 된 이유이다.

한편, 베드로 파의 위협과 매도에 의해 위기를 느낀 예수 후손파는 일찍이 막달라 마리아의 혈통을 비밀리에 프랑스에 이주시켰다. 이들이 사실은 메로빙거 왕조로 역사에 등장한 적도 있었으나 교황의 사주를 받은 무리에 의해 축출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시온수도회의 보호아래 예수의 후손은 아직도 살아있다.

예수 가족을 지키는 정의의 사도 시온 수도회는 역사상 쟁쟁한 인물들이 우두머리를 지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이에 대항해 교회는 아주 특출한 집단을 만들어 이들을 공격하는데 이것이 오푸스 데이이다. 이 잔혹한 오푸스 데이가 시온 수도회의 우두머리인 루브르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쟈끄 소니에르를 살해하는 것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빰 빠라바!

4. 다시 말하지만 이상이 [다빈치 코드]에서 군데군데 적어놓은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주장이다. 무식하게 따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아주 맹랑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예수가 신이냐 부활을 했냐 하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나 같은 불교신자는 도통 모르겠다.- 또 예수가 사실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는 것조차도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딸을 낳았고 그 후손이 프랑스로 가서 메로빙거 왕조를 세웠다? 그야말로 바지 벗어주니 팬티까지 벗으라는 식이다.

5. 얼마전에 읽은 도올선생님 책에 의하면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기독교계의 영웅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는 잔혹한 인생을 산 인물이다. 첫번째 부인의 오빠를 죽였으며 자신의 친아들과 둘째 부인을 잔혹하게 살육했다. 또한 골족의 전쟁 후에는 그들의 왕과 부하 수천 명을 산채로 야수가 잡아먹게 했다. 이것은 이 잔혹한 왕의 행적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세례를 받아 기독교인으로 개종함으로써 '천국을 강탈'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사랑을 말하는 한 맘편히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칭송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전세계의 교회를 세우고 기독교를 공인하여 기독교가 세계종교가 되는 엄청난 기적을 이루게 한 장본인인 이 콘스탄티누스를 어떻게 보아야하는가는 참 우울한 이야기이다.

6.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역사상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복음서를 맘대로 빼고 넣고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고 말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 세속의 삶을 살기에 바빴던 것 같다. 죽인 사람이 도대체 몇이며 치룬 전쟁이 얼마냔 말이다. 그리고 부활로 입증된 예수의 신성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기독교의 시작이었다.즉,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요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처음부터 근본적인 신념이었다.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는 콘스탄티누스와 무관하게 이런 사실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나같은 이교도의 입장으로 볼때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말은 참 곤혹스럽다. 하지만 예수 사후 30년 전후에 기록된 것 같다는 4복음서에는 이미 제자들이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적어도 예수의 부활 사건을 계기로 들불처럼 일어난 기독교 운동의 핵심적 동력은 - '예수는 하나님이고 이 분만이 세계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구원하실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신념때문에 많은 이들이 순교를 선택했다.

따라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인간 예수를 신으로 만들고 그것을 입증하는 4복음서 체제를 획책했다는 이야기는 무척 우스운 이야기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연기가 나는 것인데, 연기를 내니까 아궁이에 불을 지펴진다고 말하는 댄 브라운의  기발한 논리! 참 맹랑하다.(다만 기독교가 로마제국과 결탁하면서 국가종교로 권위화 세속화 조직화되고 말았다는 지적은 유념할 만하다. 따라서 현재의 교회가 로마제국적인 교회인지 예수중심의 교회인지 묻는 것은 정당하다.)

7. 나일강 상류에서 발견된 나그 함마디 문서에 대해 말해보자.댄 브라운은1950년에 발굴되었다라고 썼지만 사실은 1945년에 발굴되었다. 예수사후 100년이 지난 AD 2세기 이후의 자료로 다수의 영지주의 복음서를 포함하고 있다. 댄 브라운의 주장에 의하면 이 영지주의 복음서가 인간 예수의 모습을 많이 담았다고 한다. 그런데 실상은 예수가 이 영지주의 복음서에서 더욱 초월적이고 신비한 존재로 등장한다고 한다. 즉 인간 예수를 말하기는 커녕 더 신적인 존재로 예수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지주의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가 결혼을 했다는 얘기가 없으며 댄 브라운이 그린 신비로운 여성에 대한 찬탄도 없다. 그리고 카톨릭에 의해  이 문서가 공표되지 못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학계는 이 엄청난 자료를 즉각적으로 전세계에 유포하였다고 한다. 도대체 기본적인 사실 자체를 이렇게 흉흉하게 바꾸어 놓아서 무얼하겠다는 이야기인가?

8. 4복음서와 영지주의 복음서 중에 어떤 것이 더 믿을만한 자료인가? 당연히 목격자의 진술이 포함된 당대의 기록인 4복음서이다. 더군다나 서술태도도 4복음서가 훨씬 상식적이고 엄밀한 것까지 감안하면 이것은 문제를 삼기도 힘들다.

예를 들어 5월 광주항쟁에 대한 두개의 기록이 있다고 하자. 하나는 항쟁이 있은 지 30년이 채 안되어 항쟁을 직접 그것을 목격한 사람이 썼다고 하자. 그런데 그 기록 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많은 민간인이 군인에게 학살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이 기록들이 그 당시 광주의 지형, 문화, 사건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하자. 그리고 기록한 자의 의식상태가 적어도 미친 사람이 아니며 글로 미루어본 삶의 자세도 건전하고 정직하다고 판단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러한 다수의 성실한 기록은 그 학살이 실제 있음직하다고 유추를 하게 한다.   

 반면 또 다른 기록은 항쟁이 일어난지 100년이 지난 2080년에 LA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 기록은 처음부터 구체적인 시공간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다만 한국의 어딘가에서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주인공인 전두환이 외계인과 UFO를 타고 등장한다고 하자.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더 나은 자료인가? 적어도 사실 확인으로는 전자를 쓰고 특별한 영감이 요구될 때만 후자를 써야 할 것이다.

9. 예수와 관련된 초기 기독교에 대한 믿을만한 자료는 우리가 가진 성경 뿐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상식적이고 학문적인 선택으로 봐도 그렇다. 기독교의 역사와 정경 채택의 역사에는 물론 오점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예수의 참모습을 추적하려는 신앙의 역사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여전히 요한계시록은 들어갔는데 무엇은 빠졌네 하는 문제는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유일한 구세주라는 선포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참 기독교를 향하는 발걸음이 영지주의 복음서를 대안으로 삼을 수는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든 아니든간에 기독교 운동의 기반이 된 예수에 대한 가장 성실한 서술은 4복음서를 중심으로 한 신약성서임을 인정해야 한다. 신약성서가 기독교의 영혼이다. 그 영혼은 예수가 부활했으며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 선언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독자의 몫이지만 신약성서를 버리고 다른 복음서를 통해 예수와 기독교의 본질을 추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10. [다빈치 코드]가 출간되고 꽤 시끌벅적했다. 나는 '왜들 이 난리야? 소설책이 재미있으면 됐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사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이 아마 80%쯤은 사실이라고 믿었다. 내가 아는 이름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막달라 마리아, 모나리자, 루브르 박물관, 레오나르도 다빈치, 나그 함마디, 템플 기사단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자신이 이런 이름을 알고 있다고 자만했고-아, 이것도 내가 아는 것이야. 이것도 아는 거구. 이야! 댄 브라운 대단해요- 기독교에 대한 반감때문에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바보였던 것이다. 스스로 속이고 스스로 속는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어떤 면에서 사람은 진실이기에 믿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편견과 감정을 만족시키기위해서 믿는다. 리 스트로벨은 책의 앞부분에서 이렇게 급격하게 [다빈치 코드]의 거짓에 동조하는 이유는 기독교에 대한 실망과 반감때문이라고 했다. 성직자의 스캔들이나 위선, 교회의 외형적 팽창과 독선 따위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제대로된 종교라면 2000년이나 지났는데 저 지경일리가 없어. 교회나 사제들 자체가 저렇게 썪었는데 뭐가 구원이야!'

11. 기독교는 말한다.- 예수의 부활이 모든 사료와 정황으로 따져보아 실제로 일어났으며 따라서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다시 되살아나지 못한다.'라는 인간의 상식으로 볼때 부활한 예수는 신이다. 하나님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 순종해야 한다.이 길만이 유일한 구원이다.- 이것이 복음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이다. 나 역시 리 스트로벨이나 톰 라이트 등의 이야기를 듣고 성서를 읽으면서 '그럴 수가 있다. 이것도 내 삶에 비추어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게 진짜란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예수가 이 세상에 온지 2000년이 넘은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교회 안도 혼탁한 것은 마찬가지다. 세상도 교회도 구원되지 않았다. 다만 구원되었다는 외침이 빈발할 뿐이다. 적어도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고 부활의 메시지는 '돈오'의 가르침인데-"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도대체 기독교인들의 현주소는 어디냔 말인가? 적어도 이건 아니잖아?

즉 압도적인 부활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예수 사망의 증거가 현존하는 것이다. 예수 사망의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짓거리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다. 적어도 기독교인의 영혼이 죽어있다면 예수는 결코 부활했을리가 없다. 그는 부질없이 썩어 유골함에 갇혀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예수의 부활은 아예 조작되었거나 과장되었을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든지 예수가 부질없이 죽었음을 증거하든지 둘 중 하나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12. 그런데 바로  이 대목이 이 책[다빈치 코드 해체]에서 가장 감명깊었던 부분이었다.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의 전문가인 스캇 맥나이트 박사가 복음서야 말로 믿을만한 것임을 고백하는 대목이다. 그는 평생동안 예수와 복음서의 변함없는 가치에 대해 근거를 대가며 논증을 하였지만 그것이 자신의 실존적인 선택의 근거는 아니라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스캇 맥나이트가 예수와 복음서를 믿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던가?

"나는 복음서를 믿습니다. 30년 동안 복음서를 연구한 끝에 그것들이 믿을만한 것임을 반복해서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서를 공부하면서 예수를 실존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예수는 나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73쪽)

어느 시인은 '나에게는 길이 없다. 내가 간 길이 길이 될 것이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나에게는 믿음이 없다. 내가 산 삶이 믿음이 될 것이다.'라고 부르짖는 듯 하다.

13. 너무나 장황하게 글이 이어져서 이쯤해서 결론을 내려야 겠다.

[다빈치 코드]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기독교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교회사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썩은 기독교의 현재모습은 기독교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고 교회사에 대한 새로운 서술을 요구했던 것이다. 

또한 댄 브라운의 이 허무맹랑한 소설이 범람하게 된 이유는 대중의 눈높이와 지적 허영에 영합한 작가의 글솜씨 때문이라고 보아야겠다. 글솜씨와 결합한 댄 브라운의 지적 사기의 맞은 편에는 역사에 무지한 감성적인 대중이 있었다. 대중의 무지와 지적 허영이 있었다. 즉, 대중은 진실을 추적하지 않고 믿고 싶은 것과 자신의 편견에 부채질하는 흥미거리를 따라갔다. 이런 태도는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돌이켜보아야할 부분이다.

14. 달리 보면, 댄 브라운이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기독교계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준다.[다빈치 코드]는 무식이 신앙을 돕지 못한다는 것을 까발린다. 기독교인들은 댄 브라운에게 감사해야 한다. 맹목적인 신앙만을 요구하는 신앙생활은 저급한 논리에도 휘둘리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도대체 가장 중요한 부분조차도 간과하고 오직 믿음으로 달려가는 그대들은 도대체 무얼하는 사람들이냔 말이다. 신앙생활에도 교리문답를 넘어 지적인 탐구가 요구된다는 것이 댄 브라운이 가르쳐 준 바이다.

리 스트로벨은 조언한다.

"사실이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 열린 마음으로 따라 가라."   

15. 끝으로 댄 브라운이 공격한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믿음을 살펴보자. 댄 브라운 흉내를 내보겠다.

(1) 예수는 부활했으며 이로써 하나님이자 우리의 구세주임을 확증했다.(= 예수는 인간이자, 신이다.) 

  --> 아니요. 예수는 신이 아니고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딸을 낳았구요. 십자가에서 죽었어요.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로 자기 핏줄을 내세웠어요. 그런데 그게 말이죠. 베드로가 가로챘지 뭡니까? (예수는 뛰어난 인간이었으나,  성과 권력을 탐한 인물이었다. 즉, 그는 죽었고 쥐뿔도 아니다.)

(2) 우리 구세주 예수의 참모습을 복음서를 통해 알수 있으니 복음서를 통해 신앙생활을 해야한다.(= 우리의 가장 믿음직한 신앙의 바탕은 복음서이다.)

---> 당신은 바보요. 인간 예수의 가르침 중에서 중요한 부분은 다 누락되었어요. 다 교황과 황제의 농간이었죠. 이 사람들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목적으로 복음서를 완전히 바꿔어놓았어요. 그런데 다행한 일은 나그 함마디에서 믿을만한 영지주의 복음서가 나왔다는 사실이죠. 그걸 읽는 게 나을껄요. 어리석게 예전의 신앙을 고수하지 마시고 참된 신앙으로 오세요.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를 내팽개치고, 인간 예수와 신성한 여성을 믿으세요.

16. 이상이 [다빈치 코드]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에 기독교계가 난리를 친 이유이다. 적어도 내가 짐작하기에는... ! (어때요? 발끈 할만 하죠?) 

** 시온 수도회에 대한 진실 등등의 또 다른 이야기는 [다빈치 코드, 진실인가? 허구인가?]리뷰에서 이어 쓸 생각입니다.너무 긴 리뷰라 일부러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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