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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S.E - 스펙트럼 인기외화 할인20선
윌리암 프레드킨 외 감독, 사무엘 잭슨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1. iulius님의 리뷰에 공감한다. 나 역시 이 영화를 기분좋게 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면 별점 네개의 뜻은? 미국인의 상식을 명백하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평균적인 미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했다. 특별히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도대체 자신들이 관계된 수많은 학살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이나 고통은 느끼는 걸까? -이런게 늘 궁금했다.
물론 민간인 학살에 대해 비판적인 미국인도 있다. 예를 들어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에는 미국에 의해 자행 또는 방조된 전세계의 민간인 학살 장면이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감독 마이클 무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평균적인 미국인은 아니다.
반면 이 영화[룰스 오브 인게지먼트]는 평균적인 미국인의 의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전미 박스 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게다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이 영화 속의 재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재판의 결과에 대해 다수의 미국인은 공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미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평균적인 미국인의 현재의식을 보여주는 진귀한 자료이다. 도대체 그들은 예멘의 민간 시위대를 학살한 미 해병대의 행위를 도대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 - 이 영화는 이런 궁금증을 채워준다.
2. 전쟁 영웅 칠더스(사무엘 잭슨) 대령은 시위대에 의해 포위된 미국 대사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해병대와 함께 특파된다. 그런데 저격병에 의해 자신의 부하가 죽고 자신도 총격을 당하자 "싹 쓸어버려"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 결과 83명의 시위대가 학살되고 만다. 영화에 비춰진 자료 화면을 보면 시위대는 대체로 무고한 민간인으로 부녀자와 노인, 어린이가 다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보면 시위대 속에 무장 세력이 있었고 그것을 찍은 비디오가 불태워지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애초부터 비디오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저격병에 의한 해병대원의 사망 자체가 오리무중인 것이다. 여하튼 돌에 맞았든 총에 맞았든 미 해병대원 서너명이 죽은 후에 수백명의 민간 시위대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도대체 이들의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일까? 명백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복잡한 재판 과정을 벌인다는 것이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결론을 받아들이자면 미국인들은 특수한 경우에만 민간인 학살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교통사고 접촉사고 시에 일방적인 사고는 거의 없듯이 어떤 경우에도 미군만의 책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대체로 민간인 학살이 아니라 자위권 발동 정도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6.25에 참전한 미군에 의해 자행된 많은 학살의 흔적을 가진 민족이다. 또한 우리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역시 도처에 발견되는 나라이다. 학살 주범은 상대가 순수한 민간인이 아니고 폭도라서 사살했다고 말한다. 정당한 국방의 의무를 치르는 중에 상대가 공산당이고 빨치산이어서 사살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긴박한 순간에 민간인과 폭도는 구분이 되지 않기에 무고한 민간인을 죽였다고 한다.
현실은 유감스러우나 이런 시행착오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군대가 어떻게 의무를 다할수 있겠는가 반문한다. 이 영화 역시 똑같은 논리를 따라간다. 별 수 없지 않은가? 그럼 우리가 죽으면 누가 나라를 지키랴! 미군이 아니면 누가 지구를 지키랴!
이 영화가 보여주는 두개의 역설이 이런 것이다. 당신에게는 선량한 아들 딸이라고 하겠지만 그들의 손에는 돌과 몽둥이가 있었다. 즉, 민중과 폭도 또는 살의를 가진 군중은 구분이 안된다는 것이 하나이다. 반면, 국가라고 하는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영웅적인 군인과 민간인을 학살하는 비인간적인 살육자는 너무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두번째 역설이다.
3. 영화에는 민간인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는 상황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전우인 칠더스를 변호하기 위해 예멘에 갔다온 하지스 대령(토미리 존스)이 격분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냐?"면서 칠더스와 한 바탕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그만큼 민간인 학살의 정황은 명백한 것이다.이걸 뒤집어 칠더스를 무죄로 만드는 과정이 어처구니 없지만 현실 속에서도 영화에서도 미국인의 학살자에 대한 판결은 무죄이다.
여기서 나는 잠시 불쾌한 감정을 접어두고, 이런 상식적 판단의 구조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보이든 미국은 또는 현대국가는 무죄를 선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왜 그들은 무죄라고 생각하는가?
(1) 현대국가는 논리가 아닌 폭력에 기반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현대 국가가 군대라는 무력을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이라는 조직이 해병대라는 충성을 바치는 무력을 포기하고 유지될 수 있는가?
현대 국가는 조직 폭력배와 같다. 자신을 섬기는 넘버 투나 넘버 쓰리가 시장 상인에게 가혹했다는 이유로 처단한다면 조직은 와해될 것이다. 많은 넘버 투의 자리를 노리는 수하들은 그런 불안정성 속에서는 충성을 바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지랄을 하고 감옥에서 평생을 썩어도 자신의 가족을 보살펴주리라는 보스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충성의 원천아닌가?
마찬가지로 전쟁영웅 칠더스에 대한 국가의 응답이 바로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전장에 나가 자신은 죽더라도 가족은 연금을 타며 자신의 이름은 비석에 새겨질 것이라는 계약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군대는 유지되지 않는다. 전쟁영웅이 기껏 학살 따위로 내팽개쳐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어차피 전쟁이란 어처구니 없는 초논리적인 것이니까!
따라서 우리는 현대 국가의 속성이 이러하므로 민간인 학살 또는 살해에 대해 사죄나 처벌을 요구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미국인이 가진 상식은 조폭 국가주의이다. 헌신적인 조직원은 다른 조직원에게 무슨 나쁜 짓을 해도 보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폭의 논리로 움직이므로 우린 속죄와 사과의 말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2) 역사는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인력은 증거를 조작하며 외형적 대의를 위해 기억을 소거하고 새로운 기억을 창조한다. 학살은 범행의 현장을 넘어 기억과 시간에 까지 이루어진다.
노련한 베테랑 칠더스는 자신의 민간인 학살 지시, 즉 "다 쓸어버려!"를 망각한다. 목격자의 증언과 주변의 정황으로 추궁한 뒤에야 마침내 아련한 기억을 실토하게 된다. 상식적인 일이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죄스러운 기억은 자주 망각되는 것이다. 사실은 이 칠더스의 망각이야말로 칠더스의 자백에 다름아니다. 그는 정말 개지랄을, 정말 군인으로서는 하지말아야할 선택을 했던 것이다.
또한 칠더스는 환상을 본다. 시위대 속에서 많은 사람이 해병대에게 총을 난사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제 능동적으로 기억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 기억의 허구성은 어린 소녀가 총을 들고있다는 설정에서 고백된다. 과연 베테랑인 칠더스가 죽음의 경계에서 극도의 공포심을 느껴서 그런 환상을 보았을까? 아니면 동료의 죽음에 격분하여 일을 벌이고 나중에 회피적인 기억 소거와 변환을 하는 것일까?
영화에 의하면 다른 해병들은 군중들을 보지 못했고 진실을 본 해병은 죽고 오직 칠더스만 남았다. 과연 칠더스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걸까? Who Knows? 다만 이런 기억의 수많은 변주는 개인의 일만이 아니다. 국가도 자신의 비행을 망각하고 변조하면서 역사를 적어내려간다. 말하자면 애초에 있지도 않은 미해병대에 대한 저격이랄지 그것을 담은 비디오 라는 식의 조작을 적어내려간다. 도대체 역사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현실과 조작의 경계란 어디인가?
4. 착잡함은 있지만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내팽개칠 수도 없는 영화가 이 영화이다. 그렇지만 끝내 비통한 심정으로 내 나름의 판정을 내린다면 칠더스는 살인마요 학살자이고 그의 학살을 두둔한 미국과 미군은 파렴치한 집단이다. 인류 보편의 양심을 저버린 이들은 엄연한 진실앞에 속죄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