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혁명 - 통증, 마음이 보내는 경고
존 E. 사르노 지음, 이재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이 책의 원제목은 [Healing Back Pain : The Mind-Body Connection]이다. 참고로 Back Pain은 신체 후면의 모든 통증으로 머리부터 발까지를 포괄하는 방대한 영역이다. 책의 주요개념인 TMS는 Tension Myositis Syndrome으로 긴장성 근육통 증후군으로 번역되어 있다. 마음 속에 내재한 분노와 불안이 특히 신체 후면의 근골격계 통증으로 전환되어 나타난다는 뜻이다.

2. 저자인 John E. Sarno는 뜻밖에 뉴욕의대의 재활의학과 교수이다. 20년 동안 주류의학의 치료법을 이용하여 환자를 치료하였으나 진단과 치료 상의 모순을 발견하고 TMS라는 진단을 도입하였고 수술이 아닌 소규모 그룹 토론 등을 통한 지식치료로 88%라는 경이적인 치료율을 보였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Back Pain의 95%는 무의식의 분노가 신체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난 것이다. 통증이 극심하다할지라도 이런 증상은 분노나 불안과 같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을 회피하려는 심리적 방어반응으로, 전혀 위험하지 않으며 수술 또는 물리치료 등 여타의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 다만 통증이 과장하는 위험경고를 무시하고 문제의 근원인 자신의 분노로 시선을 돌리기만 하면 치료가 된다. 통증을 지탱하는 심리적인 에너지가 다시 원래의 분노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Back Pain 치료는 정신적인 원인을 도외시하고 신체 구조적인 해결만을 구한 결과 치료도 되지 않고 수술 등에 의한 후유증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침상 안정, 물리치료, 요통 환자에 대한 각종 금기사항 등을 통해 환자들을 통증에 사로잡힌 삶을 살게 한다. 현재의 의료는 환자를 율법과 금기에 묶인 죄수의 신분으로 강등시키고 있다.

3. 나는 여기서 불경과 성경의 대목을 떠올린다.

(1) 외동아들이 죽어 고통에 잠긴 여인이 붓다를 찾아왔다. "위대한 성자님, 제발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붓다는 여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이여, 그렇지만 이 종발에 볍씨를 모아오라. 그 볍씨는 그대의 아들을 소생시킬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아무도 죽지않은 집의 볍씨여야 한다." 여인은 몇 달이 지나 다시 돌아와 울며 말했다. "자비로운 성자님, 당신의 말씀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어느 집도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없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고, 만나면 헤어져야 함을 알았습니다."

(2) 예루살렘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못에는 가끔 천사가 내려왔다. 천사의 옷깃이 물결을 만들면 처음으로 그 물에 들어간 자는 모든 병이 났는다는 소문이었다. 삼십 팔년된 병자가 있었는데 그는 앉은뱅이였다. 그는 언제나 연못에서 천사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못에 들어가려고 하면 이미 다른 사람이 잽싸게 먼저 들어가곤 했다. 이 때 예수가 그 병자를 보고 말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적어도 이 책에 의하면 두 사람은 TMS환자들이다. 그리고 저자의 처방은 붓다나 예수의 치료와 동일하다. 그리고 너무도 슬프게도 아직도 우리는 베데스다 연못의 그 병자처럼 용한 의사와 특별한 권능을 기다리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4. 나 역시 20년이 넘게 TMS를 겪었고 무수한 TMS 등가물에 시달렸다. 알레르기 비염, 안구결막염,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등. 지난 5년간 꾸준한 운동으로 점차 회복하였으나 그 회복의 과정이 단지 운동을 통한 혈액순환 또는 대사 활성화와 정신적인 분투 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점이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TMS라는 관점을 도입할 때 더 설득력이 있다.

또한 나는 수능 또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과 큰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 그리고 갱년기 전후의 중년 여성등을 5년간 치료했다. 경력이 짧아 제대로된 치료를 할 수 없었던 임상 첫해조차도 나는 날을 잡아 하루종일 대부분 침 한개만으로 한 환자를 대하였는데 김광호 선생과 같은 96보사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 중 7, 8은 호전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냉정히 판단하건대 그당시의 나는 실력이 없었던 무능력한 자였고 치료의 성공은 플라시보임이 분명하다.

그러고는 한해가 지나 10년 묵은 오십견 환자랄지 턱관절 증후군 환자 등을 보았다. 대학병원을 포함하여 수많은 의료기관을 전전한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치료없이 나았으며 재발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해가 지나 젊은 학생들을 보았을 때는 의도적으로 침을 쓰지 않았다. 대부분 1년 넘게 통증을 호소하고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이었다. 디스크 진단을 받고 양방치료를 받았으나 의자에만 앉으면 다시 통증이 재발되는 환자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여보게. 자네는 능력보다 한참 모자라는, 또는 별로 가고싶지 않은 막다른 곳으로 자신을 억지로 구겨넣으려 하네. 그러니, 어찌 마음에 갈등이 없겠는가? 그 회피하고 싶은 무의식이 자네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걸세. 

뼈나 디스크가 신경을 누른다면 마비가 되지 통증이 유발되지는 않는다고 하네.게다가 컨디션이나 주변 상황에 따라 통증의 양상이 극심하게 요동치는 것은 바로 통증의 원인이 자네의 내면적 갈등이라는 것을 확증하네. 그런 사기에 놀아나지 말게. 자네가 병원 문턱을 닳도록 돌아다니는 동안 자네는 연신 시험에서 낙방할 것이네. 그리고 통증이 사라지는 순간 자넨 깨닫겠지. 이미 젊음도 기회도 사라졌다는 걸!"

놀랍게도 많은 학생들이 그 조언을 따랐고 때로는 통증을 받아들인채 자신의 전투를 치루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인사하려고 찾아온다.

5. 책의 끝에는 일본 갤럽 치료원 원장 하세가와 준시의 글이 적혀있다. 책을 전반적으로 지지하는 좋은 글로 유용한 정보가 많다. 특히 관심이 가지는 대목을 인용하겠다.

(1) "... 등과 허리 통증의 치료법 가운데 플라시보보다 뛰어난 것은 무엇 하나 확인되어 있지 않다.

수술의 경우, 거짓 치료를 통한 대조 실험은 불가능하지만 물리치료군을 통한 비교시험은 가능하다. 웨버는 추간판 탈출이 확인된 환자 126명을 대상으로 물리치료군과 수술군의 무작위대조 실험을 통해 장기에 걸친 치료 성적을 비교했다([스파인] 8권 131쪽). 그 결과 수술군은 단지 성적은 좋았지만 4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물리치료군과 차이가 없어졌고, 10년 후에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결국 수술이 물리치료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사노 박사가 수술을 '결국에는 플라시보'라고 말한 이유이다.

이와 같이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치료를 시행하고 있는 현 상태에서는 등과 허리 통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급성 통증은 치료법의 종류와 상관없이 한 달 이내에 80퍼센트가 좋아진다. 따라서 플라시보를 써도 급성 통증은 개선 가능하며, 사실상 문제가될 경우는 적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만성화된 통증과 재발을 반복하는 통증이다.

나는 오랫동안 만성 통증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 경험을 통해 알아낸 것은 이러한 통증은 심리적.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심리요법이나 정신요법에 희망을 걸고 싶지만, 만성 통증에 대한 정신 치료적 접근법은 환자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성격의 개조를 목표로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며 우울증이나 공격성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통증 감소에는 효과가 거의 없다고 연구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이런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TMS 이론을 만났다. 사노 박사의 책을 읽기 전에는 이것이 최면술, 명상, 특수한 정신 치료 등의 복잡하고 모호한 것이 아닐까하고 걱정했다. 그렇지만 통증의 원인은 마음의 긴장에 있고, 마음의 긴장 정도와 신체 통증의 정도가 비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또 억압당한 감정을 자각하는 것이 치유의 열쇠라는 설명은 상당히 논리적이며 상식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233 -235쪽)

(2) "현대 의학에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정체술, 카이로프랙틱, 접골요법 등과 같은 비주류 대체의학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들 대체요법은 골반이 뒤틀어졌다는 증거로 두 다리의 길이가 다른 것을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노 박사는 두 다리가 다른 것은 이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잘 쓰는 팔이 있는 것처럼 잘 쓰는 다리도 있다. 인체는 본래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마에카와 키헤이 등이 실시한 보행의 중심학적 연구에 의하면, 걷기 시작할 나이에는 직립 자세의 중심점이 정중앙보다 조금 오른쪽에 있고, 5세 정도가 되면 정중앙으로 이동하고 그후에는 서서히 왼쪽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이는 오른쪽에 있는 간장이 무겁기 때문에 걷기 시작할 시기에는 간장의 무게를 보정할 수 없지만 서서히 중심을 왼쪽으로 옮기는 것으로 보정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자연스럽게 왼쪽 다리가 몸을 지탱하는 다리가 된다고 한다([소아과 진료]51권 1841쪽). 이는 사람의 중심점은 정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좌우의 다리에 각각 역할 분담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좌우의 차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22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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