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기린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받아들고, 제목을 보고서는 갸우뚱거리는 머리를 간신히 붙잡아 고정시켜놓고, 표지를 보고 다시 갸우뚱거리는 머리를 냅뒀더니 얼룩말 열댓마리가 빙글빙글 돈 기분마저 든다. '막스 티볼리의 고백'이라는 책을 무척이나 힘겹게 읽어내린 탓에 조금은 가벼운 추리소설을 읽어야겠다, 다짐을 했더랬다. 그렇다 한들, 책에 슬럼프가 빠진 것 같다 생각되던 나를 이 책이 읽은 후에 나에게 뿌듯한 웃음을 선사할 것이냐, 라는 어이없는 물음이 제기됐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는데? 우습기 짝이 없다. 우습다 못해 토악질이 나올 만큼 어리석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그저 추리소설이라는 사실적인, 또한 띠지에 붙어있는 '일본추리작가 협회상'이라는 문구를 포착하고는 그것에 의존하여 책을 한 장, 두 장 술술 읽어내린다. 정말 말 그대로 술술 잘도 넘어간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그렇게 이야기를 읽어나간다. 바로 전에 읽었던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읽을 때엔 누군가가 정신을 빼앗아가고 눈길을 돌려버렸으며 책장을 넘기려는 손은 붙잡아놓은 듯 미칠 듯한 슬럼프를 느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와는 영 딴판으로 책장이 넘어가는 손놀림이 나조차도 당황스러웠지만 오랜 만에 그런 기분을 느껴봄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참 변덕스럽기도 하여라.

 

 

 

오 마이 갓. 책을 읽었다고 하기에도 민망하리만큼의 책장이 넘어갔다. 그 때, 고작 세 장이었다. 세 장만에 안도 마이코라는 아이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여 죽음이라는 문턱을 너무나도 쉽게 범접하고 만다. 외모, 성적때문이 아니라하더라도 - 아니, 사실은 그것이 모두라고 말할 수 있다. - 어디에서나 특출나게 잘난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 안도 마이코가 그러한 아이였기에 죽은 뒤에도 아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으로 안도 마이코가 살아생전의 그 명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고, 사실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죽음이 한 연예인의 가십거리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는 것일 뿐, 슬퍼하는 기색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조차 없음이 애석하기만 하다. 그렇게 안도 마이코의 죽음을 밑바탕 깊숙히 맨들맨들하리만큼 평평하게 깔아놓은 채로 '범인 추적'을 아니, '안도 마이코'가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여 혼자 가득 안고는 숨기고, 숨기기를 반복한 내면이라는 것이 깨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그렇지만 한없이 투명한, 또 마냥 행복하게만 보이는 스노우볼이라고 박박 우기며 독자 앞에 내놓고 거둘 생각조차 하지 않음에 독자는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속의 진실한 세계를 안도 마이코, 자신이 쓴 동화인 「유리 기린」과 「마지막 네메게토 사우루스」에서 그리고 여러 사람이 내놓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비로소 맛보게 되는 것이다. 헌데, 그 맛이라는 것이 여고생을 닮은 상큼함도, 달콤함도 아닌,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는 의외의 맛임에 독자는 그것을 차마 입에 넣지 못하고 그저 손으로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다.

 

 

 

「유리 기린」, 「3월 토끼」, 「닥스훈트의 우울」,「거울 나라의 펭귄」,「어둠의 까마귀」,「마지막 네메게토 사우루스」,「에필로그」가 삐쭉얼굴을 들이밀며 chapter마다 바뀌는 화자에 「3월의 토끼」로 넘어가는 초반엔 혹, 이대로 끝나버리는 단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을 읽고 있던 나로 하여금 실눈을 뜨고 지켜봐야할 만큼 의구심이 차오르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에필로그를 뺀 총 6개의 타이틀 아래 이루어진 퍼즐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 까닭은 시점에 따라 바뀌는 화자들의 이야기를 짜맞추어 상상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그것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이 책을 바로 읽은 것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을터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이 범인의 자취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읽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미나토 가나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시점이 매 chapter마다 달라진다는 것을 볼 때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과도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다 말할 수도 있고, 소녀들의 내면을 다룬다는 면에서도 미나토 가나에가 올해에 내놓은 작품인 「소녀」와도 은근슬쩍, 혹은 억지로 연관지을 수도 있겠다,싶다. 하지만 소녀들의 내면을 다룬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을 따라올 자가 없을 듯 싶다. - 실은 아직 폭넓지 못한 내가 아직 딱 거기까지만 닿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 어쨌든 오랜만에 읽은 그 때, 그 시기의 아이들은 늘 보듬안아주어야할 만큼 여리고, 부서지기 쉬울만큼 외줄타기를 보는 것 만큼이나 위태롭고 불안하다는 점은 두 말하면 입아프다.

 

 

 

사실 난 이 책을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읽고나서도 서평을 쓰기가 무척 힘겨웠는데 그 까닭은 안도 마이코의 학교생활과 나의 학창 시절의 학교생활은 영 딴판,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나의 학창시절, 난 누군가의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을 뿐더러, 선생에게 인정을 받기보다는 아마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 중 한 명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 나는 학교에 당도하자마자 교복치마를 체육복으로 갈아입고는 말뚝박기에 동참하기도 했고, 힘들면 힘들다,고 온갖 짜증을 내도 받아줄 친구가 있었으며, 꽁해있다가도 매점갈 땐 룰루랄라하며 신바람 난 채로 뛰어가는 내가 기억 속 저편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도 몽롱한 상태를 유지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잘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생각들의 꼬리가 잘려나간 채로 그대로 두기를 몇 날 며칠째, 서평은커녕 책의 줄거리라도 쓰자고 마음먹었지만 다 쓰고 난 뒤에도 아직도 머릿 속은 혼란한 상태, 그대로 여전히 자리잡고서는 두 동강난 생각들을 더 이상 끌어다모아 붙일 기력조차 부족함에 더이상은 안되겠다며 손을 놓은 꼴이다. 더듬더듬 펜으로 끄적이고 키보드를 두들기어 말도 안되는 활자들이 나동그라진 채로 있지만, 이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아마 이것 하나.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냉철하고 날카로운 범인의 흔적이 작가가 발로 슥슥 문질러 희미하게만 남겨두는 것으로 봐서 범인을 잡는 것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