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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우주 최강 울보쟁이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Friends / 2012년 3월
평점 :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쓰는 게 쓸데없는 일 같기도 합니다. 책은 실제 읽어봐야 어떤지 알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이것은 책 이야기를 잘 쓰지 못해서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읽고 느낀 것을 조금이라도 잘 나타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책은 슬프고 재미있고 감동스럽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겠죠. 나타내는 게 좀 다르겠죠. 어머니 아버지하고는 상관없이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요. 제가 잘 몰라서 이렇게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가 되면 달라진다고 하는 말을 듣기도 했거든요. 결혼하고 세 해 만에 아내인 미사코가 임신을 하자, 야스는 달라졌습니다. 그동안은 일이 끝나고 집에 갔다가 다시 술을 마시러 가거나, 파친코에 가거나, 마작을 하러 갔습니다. 얼마 뒤 아버지가 되는 야스는 이제는 집에 가면 밤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야스가 집에 갔다가 다시 나왔던 까닭은 미사코와 둘이서 있는 게 쑥스러워서였어요. 결혼을 했는데도 부끄러워한 거죠. 어쩌면 미사코는 그런 야스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스와 미사코는 둘 다 일찍 부모와 헤어졌습니다. 그래서 식구라는 것을 더 크게 생각했습니다. 아키라가 태어나고 한동안은 행복했습니다. 쉬는 날이면 야스는 미사코, 아키라 셋이서 놀러가서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그런데 야스가 아키라와 동물원에 가기로 한 날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 날은 그냥 집에서 쉬면 좋은데. 야스는 전날 남겨둔 일이 생각나서 일하러 갔습니다. 미사코는 아키라한테 야스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야스를 따라갔어요. 그날 그곳에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키라가 야스한테 수건을 가져다 줄 때 수건을 돌렸는데 그게 쌓여 있던 화물에 걸렸습니다. 화물이 무너질 때 미사코가 아키라를 감쌌습니다. 아키라는 살고 미사코는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군요. 아버지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겠죠. 걱정거리도 하나 있었습니다. 미사코가 어떻게 죽었나에 대해서 언젠가 아키라한테 말해줘야 한다는 거죠.
책 한 권에 나타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나온 시간은 20년 이상입니다(30년 가까이일지도). 그래서 시간이 빨리 흐릅니다. 그게 좀 아쉽게 느껴지더군요. 본래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기까지는 순식간인지도 모르겠네요. 야스와 아키라는 두 식구지만 둘레에 좋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사코의 빈 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엄하지만 정이 깊은 가이운 스님, 아들인 쇼운은 야스와 죽마고우였습니다. 쇼운과 아내인 유키에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서 아키라를 아들처럼 많이 아껴주었습니다. 작은 술집 ‘저녁뜸’을 하는 다에코는 야스를 어릴 때부터 봐서, 아키라도 돌봐주었습니다. 이 책 속에 나온 때는 옛날로 남 일도 자기 일처럼 여기던 때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야스 혼자였다면 아키라를 키우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키라를 키운 사람은 아주 많았습니다.
아키라가 아들이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되어서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지도 알게 됩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은 그렇게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는 거겠죠. 아키라가 결혼하려고 한 상대 유미는 아키라보다 나이가 많았고 한번 결혼했다 헤어지고 아이까지 있었습니다. 야스가 그 일을 알고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야스는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 해도 자기 첫 손자는 겐스케(유미가 데리고 온 아들)라고 했습니다. 조금 무뚝뚝한 야스지만 아키라는 사랑으로 키웠다는 느낌이 듭니다. 야스는 아키라한테 잘 자라주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이 말도 맞는 말이죠.
좀 더 정이 깊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때만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결혼했다 헤어지고 다시 결혼하는 사람이 많기도 합니다. 아이가 없는 사람도 있지만,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에 대해 야스가 겐스케를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본래 제목을 보니 솔개(とんび 톤비)였습니다. 언젠가 우연히 본 일본 드라마 제목이 <솔개>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진짜 솔개와 관계있는 것인가 했는데, 이 책으로 만든 드라마였습니다. 책 속에 보면 솔개가 매를 낳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부모보다 나은 자식이라는 뜻일까요.
희선
☆―
“알겠나, 야스야. 넌 바다가 되는 거다. 바다가 돼야 한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스님.”
“눈은 슬픔이다. 슬픈 일이 이렇게 자꾸자꾸 내린다, 그렇게 생각해봐라. 땅에서는 자꾸 슬픈 일이 쌓여가겠지. 색도 새하얗게 바뀌고. 눈이 녹고 나면 땅은 질퍽질퍽해진다. 너는 땅이 되면 안 된다. 바다다. 눈이 아무리 내려도 그걸 말없이, 모른 체 삼키는 바다가 돼야 한다.” (99쪽)
“식구가 진짜 가짜가 어디 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있으면 그게 식구지. 함께 안 있어도 식구고. 내 목숨하고 바꿔서라도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대는 다 식구지. 그거면 된 거지.” (311쪽)
“나, 하나도 외롭지 않았어.” 하고 말했다. “아버지가 있었으니까 하나도 안 외로웠어…….”
“나도 그랬다.” 얼굴은 보지 않는다. “나도 아키라가 있어줘서 외롭지 않았다.” (367쪽)
“하나만 말하자. 겐스케도 그렇고 태어날 애도 그렇고, 행복하게 해 줘야 한다고 너무 생각할 거 없다. 부모란 게 그래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났고 조금 짊어진 게 많은 거, 그 차이다. 애를 키우다 보면 틀린 것도 억수로 많다. 아쉬운 걸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그래도 아키라는 똑바로 잘 커 줬다. 네가 네 힘으로 똑바로 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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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식한테 꼭 해 줘야 하는 거는 딱 하나밖에 없다.”
“…… 뭐?”
“애를 외롭게 하지 마라.”
바다가 돼라.
먼 옛날 가이운 스님이 한 말이다.
자식의 슬픔을 삼키고 자식의 외로움을 삼키는 바다가 되어라. (3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