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플레임 이모탈 시리즈 4
앨리슨 노엘 지음, 김은경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죽지 않으면 행복하게 살아갈까. 행복은 사람마다 달라서 사람 수만큼 있다고 한다. 지금은 행복을 하나로만 생각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 나한테는 어느 것 하나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행복하고 멀까. 솔직히 말하면 아주 아니다 말하기 어렵다. 나는 ‘행복’이라는 건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이 말을 많이 들어서 이렇게 말했다. 죽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때 자신이 갖고 싶은 걸 다 갖고 있어서라고 한다. 자신이 바라는 게 다 있는데 나이를 먹고 병에 걸려 죽으면 억울할 것이다. 그래서 죽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고 할거다. 그런 거 찾은 사람이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 있을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런 사람이 뱀파이어나 죽지 않는 사람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게 널리 퍼져서 사람들이 다시 다른 이야기로 만들지 않을까 하고. 진짜는 어떤지 나도 잘 모른다.

 

지난번에는 해독제를 치료하는 치료제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해독제라고 했다. 책에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했다(우리말로 옮긴 사람이 바뀌었다). 에버가 데이먼을 살리려고 먹인 해독제에는 다른 독이 있었다. 그것을 또 해독해야 에버와 데이먼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뭐가 그렇게 급할까 했는데 이번에도 에버는 해독제를 얻으려고 무척 애썼다. 로만이 에버 말을 잘 듣게 하려고 건 마법은 에버가 로만을 자꾸 생각하게 만들고 그런 모습을 본 헤이븐은 에버와 멀어졌다. 헤이븐은 자신이 죽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을 기쁘게 여겼다. 에버가 헤이븐한테 로만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게 하니 에버가 자신을 시샘한다고 보았다. 데이먼은 에버한테 하지 못하게 하는 게 있고, 에버는 헤이븐이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있구나 했다. 에버와 헤이븐이 비슷한데 에버는 자신이 그런지 몰랐다. 본래 그런 거긴 하다. 남은 잘 보여도 자신은 잘 보이지 않는. 에버는 마법 이야기를 데이먼한테 숨겼다. 에버가 진짜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 사람은 데이먼인데 엉뚱하게 주드한테 모든 걸 말하고 도와달라고 했다. 이런 것을 보았을 때는 기분이 조금 안 좋았다. 나는 대체 왜 이런 걸 보기로 한 거야 했다. 다음날 뒤를 보니 에버가 데이먼한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건 마법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에버가 건 마법이 에버가 데이먼한테 말하는 걸 막았다). 그렇다 해도 에버는 잘못했다. 데이먼이 쓰지 마라 한 마법을 썼으니까.

 

해독제는 로만과 함께 사라졌다는 건 무슨 뜻일까. 에버는 에바 아줌마 때문에 로만을 싫어하는 마음에서 벗어났다. 왜 싫어하는 마음이냐 하면, 그런 것은 더 나쁜 것을 끌어당긴다고 한다. 에버가 로만을 싫어하면 할수록 마음속 어둠은 로만을 바랐다. 우리가 안 좋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안 좋아지지 않는가. 그것과도 비슷한 일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 어린 시절을 보면 부모한테 학대받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 로만도 부모한테 사랑받지 못했다. 그런 때 드리나가 로만한테 마음을 써주어서 로만은 드리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로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가지지 못한 것을 더 바라는 마음에 가까웠다(집착). 에버는 로만 어린시절을 알고 그것을 불쌍하게 여기고 로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것까지는 좋은데 바로 로만을 만나러 간다. 에버가 로만 마음을 움직였지만 주드가 나타나서 잘못 생각하고 일을 망쳤다. 주드는 자신이 에버를 사백년 동안 좋아했지만 데이먼이 나타나서 이뤄지지 않은 걸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게 만들고 싶어했다. 로만은 죽고 해독제 병은 깨어졌다. 그곳에 헤이븐이 와서 일은 더 복잡하게 되었다. 헤이븐은 에버와 데이먼 주드한테 나쁜 일을 하겠다고 했다. 사랑과 우정 앞에서 사람은 거의 사랑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듯하다. 로만이 죽지 않았다면 헤이븐이 그렇게까지 화내지 않았겠다.

 

누구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아무리 그 사람은 나쁘다 말해도 그 말을 곧이 듣지 않을 거다. 에버도 헤이븐한테 로만은 안 된다 해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는 로만을 죽게 했다. 실제 죽인 건 주드라 해도 에버가 그렇게 만든 거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드리나, 로만은 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죽었다. 둘 마음이 집착이라 해도 그 마음을 나쁘다 할 수 있을까. 이제는 헤이븐이 그 자리에 들어가겠다. 헤이븐하고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으면 한다. 아니 사이가 좋아지지 않는다 해도 안 좋게 흐르지 않기를 바란다. 죽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약점을 공격하면 죽는다. 주드는 에버한테 그 말을 들었다. 주드는 보통사람이다, 영 힘이 좀 센.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떤 것은 괜찮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마음에 들지 않게 흐르기도 한다. 에버는 이런 경험을 해서 마음이 자라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죽지 않는 사람과 그 사람이 오랫동안 찾아다닌 사람을 만나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맞겠지만.

 

소설을 쓴 사람은 서양 사람인데 동양 사상도 들어있다. 그것은 ‘업’이다. 남은 이야기를 다 보면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알 수 있겠지. 조금 잘못 알고 있었던 게 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음식을 안 먹고 엘릭서를 마시는가 했다. 이 엘릭서는 한번 마시면 오랫동안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 엘릭서를 먹으면 먹을수록 초능력이 세진다. 예전에 엘릭서가 현자의 돌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맞는가보다.

 

 

 

희선

 

 

 

 

☆―

 

“너에 대한 내 마음은 형편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니야. 난 너를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않아. 너한테 질리지도 않아. 널 비난하지도 않고. 난 그냥 널 사랑할 뿐이야. 진심으로.”

 

(……)

 

“아무것도 숨길 필요 없어, 영원히. 알겠어? 난 아무데도 안 가고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뭔가 필요하다거나 곤경에 놓일 때, 혹은 감당 못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내가 널 도울 테니까.”  (113쪽)

 

 

“누구나 저마다 삶의 여정이 있고 충족시켜야 할 운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내가 평온한 거였어. 그리고 지금은 내 운명을 잘 알고 있지.”

 

에바 아줌마를 바라보니 아줌마가 화색이 도는 얼굴로 덧붙였다.

 

“내 삶의 과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내 재능을 쓰는 거고, 두려움 없이 살고 늘 어떻게든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지난날 다하지 못한, 쌍둥이 키우는 일을 해내는 거야.”  (248쪽)

 

-쌍둥이 이야기는 하나도 안 했다. 마지막 말처럼 쌍둥이는 데이먼 집을 떠나 에바 아줌마와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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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어떤 것을 보다가 예전에 읽은 책 제목과 내용을 잘못 기억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잘못 기억한 것을 다른 데 쓰기도 했다. 그때는 고쳐야 할 텐데 했지만 어디에 썼는지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그걸 고치라는 것인지 며칠 뒤에 어디에 잘못 썼는지 알았다. 게으른 나는 아직 고치지 않았다. 제목과 내용 짝을 잘못 지어 기억하다니. 그 두 책은 예전에 읽기만 하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한권은 뒤에 인쇄가 안 된 부분이 있었다. 제목은 잘못 기억했지만 그것은 잊지 않았다). 예전에 읽은 책 가운데는 아주 잊어버린 거 많다. 읽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읽으면서도 잊어버리는구나). 책을 읽고 난 다음 쓰고 안 쓰고하고는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기억하고 잊어버리는 것일 거다. 책을 읽고 쓴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잊는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 낫겠지 생각하지만 잘 모르겠다. 나중에 내가 써둔 것을 보면 그 책이 조금 생각나기도 하지만, 어떤 말은 왜 썼는지 모르기도 한다. 그걸 자꾸 생각하다보면 왜 썼는지 생각난다. 끝내 생각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다음은 별로 상관없는 소설 세 편, 거기에서 둘은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어서. 올해 히가시노 게이고 책 많이 나왔다. 많이보다 엄청을 써야 할 듯. 히가시노 게이고가 실제 많이 쓰는 것도 있고, 우리나라에 올해 나온 것 가운데는 예전에 쓴(일본에 나온 지 오래된) 것도 있다.

 

 

 

 

비밀을 감춘 집

 

  수차관의 살인   水車館の殺人 (2008)

  아야츠지 유키토   김은모 옮김

  한스미디어  2012년 03월 29일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책은 별로 못 본 작가가 아야츠지 유키토다. 그래도 관 시리즈 첫번째인 《십각관의 살인》은 보았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대작이라고 한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도. 어쩌면 이 집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은 관 시리즈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일까. 이 나카무라 세이지도 수수께끼에 싸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죽은 지 한해가 지나고 여섯달 뒤에 십각관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또한 나카무라 세이지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차관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시간으로 보면 수차관 사건이 먼저 일어난 거였다. 그때 일어난 일은 가정부 네기시 후미에가 탑방 발코니에서 떨어져 수로에 빠져서 죽고, 그날 수차관에 찾아온 네 사람 가운데 한사람인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수차관 주인 후지누마 기이치 친구 마사키 신고를 누군가 죽이고 몸을 여러 토막으로 잘라서 소각로에서 태웠다. 후지누마 잇세이가 그린 그림 하나도 사라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마사키 신고를 죽이고 그림을 가져간 걸로 마무리 지었다.

 

한해가 지나고 1986년 9월 28일이 돌아왔다. 수차관은 후지누마 기이치가 열한 해 전에 지었다. 후지누마는 열두해 전에 차 사고로 심하게 다쳤다. 그 뒤에 휠체어를 타고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손에는 장갑을 끼었다. 사고를 같이 당한 사람이 마사키 신고로, 마사키 애인은 죽고 마사키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평소에 수차관에는 집사 구라모토와 후지누마 기이치, 후지누마 아내 유리에만 있었다. 가정부는 가끔 일하러 왔다. 수차관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먼 곳에 있다. 유리에는 이제 스무살로 수차관에서 지낸 지 십년이 되었다. 바깥 세상은 하나도 모른다. 이곳에서 한해에 한번 모임을 가졌다. 후지누마 기이치 아버지 후지누마 잇세이는 환상화를 그렸다. 9월 28일은 후지누마 잇세이 기일로 미술상, 외과의, 대학교수, 절 부주지(오이시, 미타무라, 모리, 후루카와) 네 사람이 왔다. 후루카와는 한해 전에 어딘론가 사라졌다. 그대신 후루카와를 알고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를 아는 시마다 기요시가 찾아왔다. 후지누마 기이치는 수차관을 짓고 아버지 그림을 되사들여 그곳에 모두 모아두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림 ‘환영군상’을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은 보고 싶어했다.

 

지금이 1986년이지만 소설은 1985년 9월 28일에서 29일에 일어난 일도 말해준다. 시작할 때 충격을 주고, 그때 생각한 게 하나 있는데 맞았다. 그 뒤 일은 제대로 생각 못했다. 불청객으로 보이는 시마다 기요시가 탐정처럼 나온다. 1985년에도 그렇고 지금도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 한해 전에는 천둥 번개도 쳤다. 무엇인가 일어나기에 딱 좋은 날이다. 한해가 지난 지금도 일이 일어난다. 두 사람이나 죽는다. 그렇게까지 죽여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시마다 기요시는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사람을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다 생각했다. 시마다는 그때 일을 밝혀낸다. 벌써 이런 말을 꺼내다니. 그 사람은 언제부터 그 일을 계획했을까. 그 사람 처지를 생각하면 안 되기도 했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책 제목은 ‘수차관의 살인’이니 누가 죽지 않으면 안 되기는 한다. 이런 소설을 볼 때면 늘 생각한다. 소설 안에서는 원한을 오래 끌지 않으면 안 되고, 한순간 일어나는 화도 참으면 안 되겠다는. 소설을 보고 사람의 끝없는 욕망을 보고 기분 나빠하지만 자신한테도 그런 모습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수차관 있는 곳 참 좋을 것 같다. 그곳을 지은 후지누마는 세상 사람을 피해 그곳에서 살았을 테지만, 그런 집을 지을 돈이 있었으니 그렇게 살 수 있었다. 한가지 문제는 아버지 제자 딸인 유리에까지 세상과 연을 끊게 한 거다. 유리에는 어리다. 바깥 세상이 어떤지 알고 나서 바라면 수차관에서 살게 해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자신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아내로 삼다니. 유리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유리에는 그곳을 떠나고 싶어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세상 사람과 동떨어져 자연과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거다. 나는 본래 사람 사귀는 걸 못해서. 할 수 있는 한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수차관 있는 곳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집은 싫다. 건축가가 감추어둔 공간이 있는 집은 재미있을 듯하다. 나카무라 세이지는 자신이 설계한 집에 그런 곳을 만든다고 한다. 수차관에도 있었다. 거기에는 후지누마 잇세이가 마지막으로 그린 환영군상도 있었다.

 

여기 나오는 후지누마 잇세이 같은 화가가 정말 있을까. 잇세이는 환시자로 마음의 눈으로 잡은 환상 풍경을 그렸다. 사람들은 그 환상에 사로잡힌 건지도. 마지막 그림에는 누군가의 일이 그려져 있다. 잇세이는 앞을 보는 사람이기도 한 건지. 이런 화가 진짜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도 일어날 테니까.

 

 

 

 

☆―

 

“마치 이 커다란 집을,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이 골짜기 이 공간에 멈추어두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요.”  (43쪽)

 

 

“아버지처럼 나도 그 그림이 무서워. 꺼려질 만큼 오싹해. 그래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뒀어. 아무한테도 보여주기 싫고, 나도 보고 싶지 않거든.”  (93쪽)

 

 

 

 

 

 

 

현실이 괴롭고 힘들어도 제대로 마주해야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

  パラレルワルド·ラブスト (1995)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4년 05월 26일

 

 

 

 

 

 

 

 

 

 

 

패럴렐월드, 곧 평행우주(세계)는 지금 이곳과 똑같은 세계가 또 있다는 거다. 이곳과 그곳에 사는 사람은 똑같지만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평행우주가 단 하나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꽤 많을 수 있다.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무엇을 결정할 때마다 평행우주가 생겨난다는. 그러면 셀 수 없을 만큼 평행우주가 있겠다. 결정한 일을 하고 사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아쉽게도 우리는 하나밖에 모른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참 힘들다. 평행우주가 생겨난 것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자신을 생각하면 재미있을 테니까. 내가 아는 건 겨우 이 정도뿐이다. 좀더 깊게 생각한 책도 있는 듯한데 그런 건 본 적 없다(이 말은 제목만 아는 미치오 카쿠 책 《평행우주》를 생각하고 쓴 건데, 여기에서는 평행우주라기보다 우주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생각한 것은 그런 건데, 그런 것과는 좀 다르다. SF 같으면서도 좀더 현실에 가깝다. 다른 공간을 찾는 게 아니고 뇌에 자극을 주어 현실과 똑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나온다. 또 다른 사람은 기억과 관계있는 것을 연구한다. 공통점은 뇌다.

 

지금 뇌 연구는 어느 정도나 했을까. 이 책은 1995년에 나온 거다. 그전에 히가시노 게이고는 《변신》이라고 해서 뇌이식수술을 받은 사람 이야기를 썼다. 지금도 뇌이식은 할 수 없지 않을까(얼마전에도 비슷한 말을. 뇌이식을 하면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변신’ 봤지만 거의 잊어버렸다. 해설을 쓴 사람이 이 책 이야기를 잠시 해서. 이 책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어떤 실험을 하는 것이어서 기억이 조금 이상해지는 건가 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쓰루가 다카시가 연구하는 차기형 리얼리티인가 했다. 다카시 뇌에 자극을 주어서 이 사람이 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지만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카시한테 일어난 일은 기억이 바뀐 거였다. 그 연구는 다카시 친구인 미와 도모히코가 했다. 왜 다카시 기억이 바뀐 걸까. 차근차근 보다보면 그 까닭은 나온다. 처음에는 그 일을 꾸민 게 도모히코인가 했다. 책을 보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도모히코와 도모히코 연구를 돕던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연구실 사람들은 도모히코는 미국에 갔다 하고, 또 다른 사람(도모히코를 돕던 사람)은 한해 전에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것은 정말일까.

 

다카시가 어떤 일을 기억하게 되자, 지금 애인인 마유코가 사라지고 곧 상사도 모습을 감추었다. 다카시는 마유코가 자기 애인이라 여겼지만, 한해 전에 미와 도모히코가 자기 애인이라 하고 마유코를 소개한 일을 기억해냈다. 그 일을 아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기억이 실제와 다르면 혼란스러울 듯하다. 다카시는 자신한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려고 한다. 다카시가 그러게 할 때 우리는 한해 전에 다카시와 도모히코 그리고 마유코한테 일어난 일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다카시가 기억해 내는 것이기도 하겠지. 사람은 자신한테 일어난 일에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슬프고 괴로운 일은 잊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책에서는 안 좋은 일을 잊게 해주는 약을 주었다. 사실 그것은 나라에서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였다. 쓸데없는 생각 못하게. 슬프고 괴로운 일을 잊게 해주려고 무언가를 연구해도 그것은 나쁘게 쓰일 수 있다. 과학에는 그런 위험한 면이 있다. 누군가는 위험을 느끼면 그것을 그만두려고 할 테지. 세상에는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어서. 한사람이 사라지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 또한 그러하겠다.

 

여기에 커다란 음모가 숨어있는 건 아니다. 잠깐 그렇게 보이기도 했지만.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을 적게 느끼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마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이것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그렇다. 아니 상대가 확실하게 했다면 괜찮았을 테지만 그 사람도 흔들렸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을 접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하는 노랫말이 생각나는구나. ‘잘못된 만남’ ‘사랑과 우정 사이’도 있다. 우리나라 노래에도 이런 이야기가 많구나. 아마 내가 말한 것 말고도 더 있을 거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어느 한쪽이 물러나기도 하겠지. 어쩐지 그럴 때가 많을 것 같다. 그게 서로 좋을 테니까. 마음을 감추고 물러나는 사람, 마음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이 물러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 뒤 그 사이는 깨어질까. 마음을 감추었을 때는 괜찮겠지만 드러내면 깨어질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때는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오래 가면 좋을 텐데,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진다. 그때는 그것을 잘 모른다. 사람은 다 그렇다. 나도 비슷하다.

 

두 사람만 좋은 게 아니고 둘레에서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만남은 정말 좋은 거다. 아니 둘레에서 축하해준다 해도 그 안에 마음을 숨긴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겠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도 쉽게 다른 사람한테 소개하지 않기. 이러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두 사람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라면 괜찮을지도. 이런 말보다 다른 말을 해야 하는데. 슬픈 일 괴로운 일에서 달아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그런 일을 겪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일을 많이 겪어도 마음은 무뎌지지 않을 거다, 그래도. 그것은 나를 만드는 기억이고 추억이니까.

 

 

 

 

☆―

 

“자신 따위는 없어. 있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는 기억뿐. 모두 거기에 얽매여 있는 거야. 나나 다카시 씨나.”

 

“그러니까 기억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을 바꾼다는 뜻이 되겠군.”

 

“그래. 바꿨으면 좋겠어, 자신을.”  (468~479쪽)

 

 

 

 

 

 

 

꾸기 알은 재능일까

 

  꾸기 알은 누구 것인가   カッコウの卵は 誰のもの (2010)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3년 11월 15일

 

 

 

 

 

 

 

 

 

 

 

 

“재능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  (395쪽)

 

 

“그런데 그 뻐꾸기 알은 내 것이 아니야, 신고 것이지. 신고만의 것이야. 다른 누구 것도 아니고. 유즈키 씨 당신 것도 아니지.”  (396쪽)

 

 

뻐꾸기 하면 다른 새 둥지에 자기 알을 낳기만 하고 새끼를 키우지 않는 게 생각난다. 그런 뻐꾸기를 아이를 낳고 제대로 돌보지 않고 다른 곳에 보내는 부모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책 제목을 봤을 때는 그게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것은 뻐꾸기가 아닌 ‘뻐꾸기 알’이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은 느낌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뻐꾸기 알을 재능이라 말한다. 글을 쓰기 전에 그렇게 생각했을까. 뻐꾸기 알을 자기도 모르게 아이한테 물려주는 재능(유전자)이라 보고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아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야기를 쓰다보니 어떤 사람이 그 말을 꺼낸 거다.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된 거다. 이것은 좀 아닌가. 이야기를 쓰기 전에 어느 정도 설계도는 그렸을 테니까. ‘백은의 잭’과 이 책 가운데서 무엇을 먼저 썼을까. 스키 선수가 나와서 스키장이 배경인 ‘백은의 잭’이 생각났다. 이걸 쓰다보니 그것도 생각난 거 아닐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쓸거리가 그렇게 바로 떠오를까. 하나를 쓸 때 거기에서 또 다른 게 떠올라서 쓰는 건 아닐까 싶다. 떠오르면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고 바로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나중에 쓰는 것도 있겠지).

 

지금 과학은 사람 유전자를 어느 정도나 알까. 여기 나온 것처럼 유전자로 운동선수 재능을 알 수 있을까. 스키 선수 히다 카자미, 스키 선수로 잘될 유전자를 가진 도리고에 신고. 두 사람이 가진 패턴은 다른 거다. 카자미한테는 비밀이 있어서 아버지 히다 히로마사가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는다. 도리고에 신고 아버지한테 F패턴 유전자가 있어서 아들 도리고에 신고 유전자를 검사하니 같은 게 있었다. 신고 엄마 아버지는 헤어졌다. 아버지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고 제대로 일을 못해서 집안 형편이 안 좋았다. 신세 개발 스포츠 과학연구소에서는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해주는 대신 도리고에 신고한테 크로스컨트리 부문 스키를 하게 한다. 신세 개발 스포츠는 운동선수도 키우고 과학연구도 하는 곳이구나. 과학으로 운동선수를 뽑은 것일 수도 있을까. 카자미는 아버지가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올림픽에 나간 스키 선수였다. 카자미는 어릴 때부터 스키를 타고 재능이 보였다. 아버지는 카자미가 올림픽에 나가고 메달을 따기도 바랐다. 하지만 신고는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신고는 스키 훈련을 받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신고는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를 치고 싶어했다.

 

앞에서 카자미한테 비밀이 있다고 했는데 카자미는 히다 딸이 아니었다. 히다는 이 일을 카자미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 알았다. 히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 도모요 화장대를 정리하다가 아기 유괴 사건이 실린 신문기사를 본다. 신문 날짜는 카자미가 태어난 때와 가까웠다. 이 일을 보면 도모요가 다른 사람 아기를 훔쳐다 자기 아이라고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히다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도모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는 건 그게 아니기 때문이겠지. 모든 일을 다 알고 나서도 도모요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잘 모르겠다. 남편을 속이는 게 괴로워였을까. 그것도 있겠지만 진짜 자기 아이를 잃은 데서 온 우울증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한테도 그 일을 말하지 않았으니까. 식구라도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신고도 아버지한테 자기 마음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아니, 두 사람 다 그랬구나. 못살면 못사는대로 살아가면 될 텐데.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서 먼저 돈을 벌고, 나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 어떨까 하는. 이건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야 즐거우니까. 남이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은 것이기도 하다.

 

어떤 한사람이 가장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좋게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옛날 일을 알아서 배신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아들이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사람은 어떤 일을 결심해도 마지막에는 자신한테 좋은 쪽으로 결정하고 마는구나. 좋은 쪽이라고 해서 이익을 얻는 건 아니다. 누군가하고 관계를 그대로 지킬 수 있는 거다. 나는 어떤 일을 밝힌다고 해도 무엇이 크게 바뀔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사자는 내 생각과 달랐다. 혹시 이것은 히가시노 게이고 생각이기도 할까. 예전에 본 《내가 옛날에 죽은 집》에 나온 사람은 부모가 친부모가 아닌 걸 알고 달라졌다. 이 말 때문에 누가 누구한테 무엇을 밝히지 않았는지 알겠다. 어떤 일은 묻어두는 게 낫기도 하다. 이번에는 빨리 알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잃을 것을 생각하고 시간을 끄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웃음은 누군가의 울음이 있어서기도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게 웃기 어려울까. 행복과 불행이라고 할까 하다가 웃음과 울음이라 했다. 누군가 죽는 데서 이야기는 좋게 끝나기 어렵겠다. 이런 일이 있다면 이 사람처럼 하지 않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일일지도.

 

여기에서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재능’은 누구의 것도 아닌 그것을 가진 사람 것이다는 거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하고 싶은 게 딱 맞아떨어지면 좋겠지만, 재능과 하고 싶은 게 다를 수도 있다. 재능 때문에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키지 않아야 한다. 좋아하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키는 일 자주 있을까. 부모가 자기 아이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일이 생각난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걸 아이가 이루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다. 부모는 부모 아이는 아이다.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 부럽고,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잘 아는 사람도 부럽다. 부러워만 하면 안 될 텐데.

 

 

 

희선

 

 

 

 

☆―

 

“망설여, 뭘?”

 

“지금까지 제가 고집해 온 방식이나 생각이요. 전 저마다 지니고 있는 재능을 살리면 삶도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어요. 스포츠든 예술이든, 남보다 뛰어난 결과가 나오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고, 설사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더라도 차츰 열의를 보이고 몰두하게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삶의 자양분으로 삼으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고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하나도 기꺼워하지 않는 사람 말이에요. 바로 도리고에 신고처럼 말입니다. 신고한테 올림픽은 꿈도 무엇도 아닙니다. 신고 꿈은 마음껏 기타를 치는 거죠. 프로 뮤지션이 되지 못하더라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상관없어요. 그저 음악을 듣고만 있어도 신고는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한테 누가 ‘너는 재능이 있다’고 하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시키는 건 인격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요.”  (397~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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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 베케이션
아오야마 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마지막 모습은 영화 같다. 누군가를 잡아가려고 온 사람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가운데 비눗방울이 날아온다. 사람들은 그 비눗방울에 잠시 눈을 빼앗긴다. 커다란 것과 작은 것이 부딪쳐 터져서 그 밑에 있는 사람은 물을 맞는다. 그 뒤에 그냥 웃고 끝나지 않겠지. 폭풍이 일어나기 전에 조용한 것과 같은 일이다. 그저 잠시 움직임을 멈춘 것뿐이다. 지금 이렇게 말하지만 그 모습을 보았을 때는 ‘이게 끝이야’ 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줄 필요는 없겠다. 한사람이 끌려갔을지도 모르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끝까지 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일보다 먼저 일어난 일은 벌써 이야기가 끝났다. 조금 남은 이야기를 한 것이겠지. 그리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미야 운송에는 어디에도 갈 데가 없는 사람이 모여든다. 여러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시라이시 겐지다. 지금 겐지는 구치소에 있다. 마지막을 먼저 말했더니 이 말도 나왔다. 죄를 지으면 유치장, 구치고 다음에 형무소로 넘어가는 건가. 겐지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 오래전에도 사람을 죽일 뻔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죽였다. 처음에는 왜 그랬을까 했는데, 겐지는 죽일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것보다 작가는 왜 그렇게 썼을까 했다. 그렇게 쓴 작가 마음을 알아야 하는 건지, 겐지 마음을 알아야 하는 건지.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게 삶이기는 하다. 아무리 잘 살려고 발버둥쳐도 밑바닥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가끔 나는 그것은 왜 그럴까 생각한다. 남 이야기 할 때가 아니다. 나 또한 바꾸지 않고 늘 똑같이 살아가니까. 살아가는 것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쉽지 않다’는 말로 달아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꼭 바꿔야 한다는 크나큰 바람은 없는 건지도. 이게 맞는 말이다.

 

책을 보면서 세상에는 남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살아가는 게 가장 힘들다. 평범한 게 가장 좋지만 그 평범함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다. 조직폭력배 친구가 사람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쓶으면서 여동생을 겐지한테 맡겼다. 겐지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병원에 들락날락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겐지 어머니는 겐지 아버지의 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겐지 어머니 일이 가장 먼저구나. 사실 어떤 일은 잘 모르겠다. 겐지 친구 야스오는 왜 조직폭력배에 들어가고 나중에는 사람을 죽이게 되는지(배신당해서일지도), 겐지는 누구한테 쫓기는 건지. 다른 이야기에 그런 게 있을까. 이게 세번째라고 한다. 연작이라고 해도 다른 이야기가 앞에 다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겐지는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달아난 어머니 치요코를 미워했다. 어머니가 겐지와 살았다면 다르게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설에서 일어난 일도 되돌릴 수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오래 갈까. 이렇게 말하니 생각났다. 미워해서 복수하겠다는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아도 싫어서 안 보는 건 할 수 있겠다. 어떻게든 매듭을 짓는 게 나을까.

 

앞에서 겐지가 누구한테 쫓기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하나는 중국 마피아다(책 뒤에 중국 마피아라 쓰여 있어서). 겐지는 중국에서 몰래 일본에 들어오는 사람을 옮기는 일을 했는데 중국 아이를 겐지가 데리고 있게 되었다. 중국 마피아한테 사람은 돈이 된다. 중국에서도 힘들게 살았을 사람들이 일본에서도 힘들게 살아가겠지. 이런 이야기 다른 소설에서도 본 것 같다. 동유럽 여자아이들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일을 찾으러 가는 것과도 같겠다. 노예제도가 없어졌다 해도 그건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 보이지 않는 곳에는 여전히 노예제도가 있다. 겐지는 중국 마피아를 피해서 대리운전을 한다. 어느 날 태운 손님은 마미야 운송 사장이었다. 그곳에서 겐지는 자신과 아버지를 버린 어머니 치요코를 본다. 이런 우연이 일어나다니 싶다. 같은 시에 살아도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일은 드물다(나만 그런가). 반대로 같은 지역에 살아서 우연히 만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감동스럽게 다시 만났다면 좋았겠지만 아오야마 신지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자신을 버렸다 해도 어머니를 다시 만나면 처음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커도 시간이 흐르면 그런 마음을 푼다. 하지만 겐지는 그러지 않았다. 어쩐지 나쁜 마음이 더 자라난 듯하다. 아버지가 다른 동생 유스케와도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지난 일을 용서하고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아니, 어쩌면 겐지는 어머니하고 연을 끊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죽인 또 다른 아들을 기다리기로 한다. 겐지가 사에코와 유리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제와서 이런 이름을 말하다니. 사에코는 겐지가 사귀는 사람이고 유리는 친구가 맡긴 동생이다. 사에코 이야기는 따로 조금 나온다. 어머니라고 해서 자식이 한 일을 모두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치요코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기도 하다면서. 마미야도 같은 마음이다.

 

보통 생각밖에 못하는 나는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이야기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구나. 마음에 안 든다 생각하면 자꾸 나쁜 마음이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다른 사람은 알아본 것을 겐지는 몰랐다. 그것은 어머니가 편하게 살지 않았다는 거다. 겐지는 어머니가 자신과 아버지를 버린 일만을 나쁘게 본 거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치요코가 ‘자식은 언제나 자식이다’고 하는데 이 말이 맞다.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미처하지못한말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아가는 건 어떤 걸까. 나 또한 거기에서 멀다. 나고 자라고 학교에 다니고 일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 낳고 살아가는 것, 일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꼭 이게 평범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없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거나, 자라면서 엄청난 일을 겪어서. 나는 부모도 있고 엄청난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살면서 조금씩 무엇인가 쌓였겠지. 겐지나 마미야 운송에 온 사람들과도 다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곳에는 누군가한테 쫓기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을 보고 그나마 나는 낫구나 했다. 세상에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구나보다 나는 그렇게 나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니. 본래 그런 거 아닐까. 피가 이어진 사람만이 식구일까. 그것은 아니겠지. 마미야 운송 사람들든 피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식구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서로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어느 때는 가정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하고, 어느 때는 가정이 아닌 곳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어두워보이는 이야기지만 그렇게 어둡기만 하지는 않다. 내가 생각을 잘 못하고 잘 못 썼을 뿐이다.

 

 

 

희선

 

 

 

 

☆―

 

“어머니하고 인연을 끊을 작정이었는데 인연이라는 게 어떻게 해봐도 휘휘 휘감겨서 떨어지지를 않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한테까지 이어지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이 한 일을 죄다 용서하고 품어준다. 그런 어머니라는 거, 뭔가 밑 빠진 듯 넓은 품이 말이지 너무 무서웠던 거 아닐까.”  (292쪽)

 

 

“떠돌이를 고용해서 반듯하게 갱생하도록 돌봐주고, 그랬는데도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고…… 그런데도 겐지를 기꺼이 맞아주실 수 있습니까?”

.

.

.

 

“입에 발린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피가 섞이지 않아도, 아들이건 아니건, 이것도 인연이야. 아니, 인연이라고도 못하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해야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하고 똑같이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내 자식이 아닌 사람한테 폐를 끼친 사람들도 내가 맡아왔는데, 내가 자식을 죽인 사람이라고 어떻게 안 맡을 수가 있겠어. 형이 확정되고 착실하게 징역 살고 나오면 내가 확실하게 겐지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  (293~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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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11-0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이야기라, 아무래도 전편의 배경들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을 겁니다. 헬프리스, 유레카, 새드 베케이션 이렇게 3편의 영화가 있죠. 저는 그 세 편의 영화를 모두 보았습니다만, 솔직히 지금은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나네요. 기억이 나면 위에 의문을 가지신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드릴 수도 있을텐데. 다만 `유레카`의 마지막 엔딩이 아주 좋았다는 것만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영화와 이 소설을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어두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은 그래도 희망이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희선 2014-11-05 01:17   좋아요 0 | URL
아주 좋은 마지막은 어떨까 싶네요 다는 아니더라도 예전에 일어난 일을조금 이야기해주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알기 어렵더군요 맨 처음에 말하는 사람이 갑자기 들어가서, 다음에는 잘못 보기도 했습니다 거기도 그 사람이 말하는 걸로 알고 봤는데 아니더군요 제가 예전에 유레카라는 소설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제목이 비슷한 ‘유레루’였어요 그것도 영화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랬습니다 거기에 오다기리 죠가 나온다고 하네요

얼핏 보면 어두워보이는데 자꾸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더군요 책 다 읽고 다른 생각도 했어요 이 소설 조금만 바꾸면 따듯한 이야기가 됐겠다고 그러면 좀 흔한 이야기가 되지만... 그렇게 안 한 게 더 나은 거군요


희선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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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는 민중 사이에 떠도는 백가지 이상야릇하고 신기한 이야기다. 백이라는 숫자는 무엇일까. 예전에도 이런 생각해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이 나고 백일이 지나면 축하한다. 나고 백일을 넘기면 죽음에서 조금 멀어지지 않을까. 무엇인가를 기원할 때도 백일기도를 드린다(백일보다 더 많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백가지라고 하지만 이 숫자에 맞아떨어지는 만큼만 있을까. 어쩐지 더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백가지라고 정해둔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모여서 백가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를 모으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도 그런 사람(야마오카 모모스케) 나온다. 괴담, 기담 백가지를 모아서 책으로 내려고 하는. 백가지 이야기 하면 생각나는 건 미야베 미유키가 쓰는 미시마야변조괴담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세권 나왔는데, 교고쿠 나쓰히코가 쓰는 항설백물어는 더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두권 나왔다. 다른 건 못 봐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형식은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교고쿠 나쓰히코 소설은 그렇게 많이 못 봤다. 그것보다 우리나라에 많이 안 나온 건가. 교고쿠도 시리즈로 나오는 것 조금, 괴담으로 쓴 소설 두권(‘웃는 이에몬’ ‘엿보는 고헤이지’), 그리고 항설백물어(얼마전에 ‘싫은 소설’도 봤다. 싫은 일이 끝없이 일어나는, 이것도 괴담에 가까우려나). 세가지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 교고쿠도 시리즈에도 괴담, 기담이 나온다. 괴담은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 해석하는 것이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요괴 연구가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쓰는 거겠지. 교고쿠도 시리즈에서 탐정으로 나오는 추젠지 아키히코는 음양사로 헌책방(고서점)을 한다. 탐정을 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헌책방 이름이 ‘교고쿠도’다. 예전에 작가 이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가 아닌가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작가 이름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은 책방 이름에 ‘당(堂 どう도)’을 쓰기도 한다(책방에만 쓰는 건 아닐지도). 교고쿠도는 교고쿠당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빵집에 ‘당’을 붙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이름이 많이 없어졌구나(금은방에도 붙였던가).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닌데. 교고쿠도 시리즈는 그거고 이것은 이것인데. 그래도 이 책을 보다보니 그게 생각났다. 비슷한 점도 있다. 진짜 요괴 귀신은 안 나오는 것.

 

첫번째 <아즈키아라이>에서 비 오는 날 밤 오두막에 모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서 이런 게 죽 이어지는 건가 했다. 앞에 조금 보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오두막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스님 엔카이는 두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무서워했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자기와 상관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엔카이는 예전에 혼례식을 하려는 여자를 끌고 가고, 그 모습을 본 여자 동생을 죽였다. 이렇게 바로 말을 한 건 아니고 이상한 이야기로 꾸몄다. 그렇다 해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아는 사람은 겁을 먹겠지. 빗소리 사이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아즈키아라이는 팥을 씻는 소리를 내는 요괴로 개울에서 팥을 씻는 동승이 앙심을 품은 동승한테 죽임 당한 뒤부터 그 동승 영혼이 가끔 나와 팥을 씻고 울고 웃는 이야기다. 엔카이는 빗소리 사이에서 팥 씻는 소리를 듣고 미쳐서 오두막에서 뛰쳐나갔다. 바깥으로 나가기보다 오두막 안에 있는 게 안전할 텐데 정신이 나가버렸으니 그런 생각은 못했겠지(방 안이 무서운 분위기를 냈구나). 엔카이는 돌에 머리를 찧고 죽었다. 그것을 안됐다고 생각해야 할지, 벌을 받았다 생각해야 할지. 오두막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한 것은 우연일까. 그것은 여러 사람이 꾸미고 마련한 자리다. 마지막에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에도시대에도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렀을 거다. 하지만 모두가 그랬을까. 확실하게 알면 죄 지은 사람을 잡았겠지만 잡히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다. 정의를 위해서 하는 건 아니고, 돈을 받고 죄를 지은 사람을 혼내주는 사람이 있었다. 산묘회(인형사) 오긴, 어행사(승려 차림으로 액막이 부적을 팔고 돌아다니는 걸식인 한 부류)로 꾸미고 다니는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 신탁자(가고시마 신궁 신관을 흉내내고 부적을 달던 걸식인) 지헤이, 여기에 수수께끼 작가 야마오카 모모스케도 함께 한다. 언제나 네 사람이 다 같이 하는 건 아닌데 거의 같이 한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거기에 어울리는 이야기로 연극을 한다. 거의 연극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은 옛이야기를 이용했지만(교고쿠도 시리즈에도 그런 거 나온다). 앞에서 혼내준다고 했는데, 이 말처럼 가볍지 않다. 왜냐하면 상대는 거의 사람을 죽인 사람이니까. 끝이 어떻게 될지 알고 한 건 아닌 듯한데 마지막에는 죽는다. 여우를 잡고 살던 사람은 도적부하가 되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결국 자기 아내와 아이까지 죽인다. 그 사람만은 죽지 않았다. 도적부하를 그만둘 수 있게 해달라고 한 사람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많은 사람이 죽고 그 사람만 살았다. 지금은 정신이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자신의 업보를 생각하고 살겠지.

 

나쁜 사람 때문에 나쁜 짓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일에서 풀려났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 집안을 이용하려는 사람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져버렸다. 그 사람 사이코패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에도시대 때도 사람을 많이 죽이는 사람 있었을 거다. 미야베 미유키도 그런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 쓴 적 있다. 자기 아이만 보면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은 왜 그랬을까. 사람이 죽어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도 나왔다. 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일까. 한번 그 선을 넘으면 되돌아오기 어렵겠지. 정신에 병이 든 걸까. 어쩐지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온 듯하다. 그것은 자기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다. 내가 쓴 마음 길 잃지 않기(예전에도 비슷한 제목을 썼다)는 처음부터 할 수 없을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우리도 마음 길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잘 잡아야 한다.

 

이 책을 지금 보아서 다행이다. 왜냐하면 틀린 게 있다는 걸 알아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 교토’를 안 봤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거다. 틀린 것은 314쪽 하타노 가와카쓰(秦河勝 진하승) 각주다. 진하승은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인데, 책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진 씨 일족 수장’이라 쓰여 있다. 이것은 우리말로 옮긴 사람이 잘못한 거다. 소설은 잘못 썼다고 말하기 애매하다. 하타노 가와카쓰(진하승)가 대륙에서 건너왔다고 하는 말은 없고, ‘원악이라고 하면 또 하타노 가와카쓰를 꼽지.’ 했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어떻게 알고 있을까.

 

 

 

희선

 

 

 

 

☆―

 

“자신은 젊다. 젊고 아름답다는 꿈. 자신의 진짜 모습은 더러운 노파고, 추한 괴물이라는 현실을 그 여자는 못 본 척했어. 아니 안 보고 살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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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참으로 서글퍼. 그 노파만이 아니라고. 너도 나도, 사람은 모두 같아.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서 가까스로 살고 있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살아있지 못해. 더럽고 냄새 풍기는 자신의 본성을 알면서도 속이고 어르면서 살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삶은 꿈같은 게 아닐까.

 

마타이치는 그렇게 말했다.

 

“억지로 쥐어흔들고, 찬물 끼얹고, 볼때기 때려서 눈을 뜨게 해봐야 좋을 것 없어. 이 세상은 모두 거짓투성이야. 그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니 어딘가에서 무너지는 거야. 그렇다고 눈을 떠서 진짜 현실을 보게 되면 괴로워서 살아가지 못해. 사람은 약해. 그러니까 거짓을 거짓으로 알고 살아간다, 그것밖에 길이 없는 거라고. 연기 피우고 안개 속에 숨어 환상을 보고, 그래서 만사가 원만하게 수습되는 거라고. 그렇지 않나?”  (500~503쪽)

 

 

- 어쩐지 조금 어려운 말이다. ‘거짓을 거짓으로 알고 살아간다’가 맞을까 했는데, 진실로 알면 정신이 이상해진다고 하니 맞는 듯하다.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것은 있을지라도 제대로 보고 살고 싶기도 하다. 아무리 삶이 꿈같다 해도. 세상에 조금이라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그게 너무 지나치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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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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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전 친구가 준 백석 시집

백석이라는 이름을 알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뿐

내 마음과 눈이 어두웠던 탓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친구는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새롭게 보게 해주었다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는 언제 다시 보았을까

 

안도현은 백석 시를 스무살에 만나 읽고 베껴쓰고 시를 썼다

서른해가 흘러 백석평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북쪽으로 간 사람 글은 볼 수 없었다

사상 때문에 북쪽으로 간 사람도 있지만,

백석은 부모가 있고 고향이어서 그곳에 남았다

세상을 조금 살펴보고 남으로 왔다면 좋았을 텐데

친구 허준 정현웅이 북으로 와서 백석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까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백석은 시를 쓰기보다 러시아 소설과 시를 번역하였다

순수한 시를 쓰지 못하는 백석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조금 자유롭게 써도 괜찮다고 여긴 것은 아동문학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석은 평양에서 쫓겨나 추운 삼수군에 가서 양치기를 한다

다시 시를 쓰고 싶어했으나 북에서는 백석을 내버려두었다

자신은 일을 해서 개조되었다고 보여주기까지 했는데

그런 시를 쓴 백석 마음은 어땠을까

자기 마음과 다른 말을 써야 하는 건 괴로울 듯하다

일제시대 때도 백석은 언제나 우리말로 시를 썼는데,

그때 마음이 꺾이었구나

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2

 

무엇보다 백석이 북한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 것은 벌써 알고 있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모두 다 처음 안 일이다. 아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나오는 나타샤가 자야를 가리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자야는 기생인 김진향이다. 시에 나오는 나타샤가 자신이라고 한 여성이 많았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일은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쓴 <애너벨 리>다. 여성도 그런 일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남성이 누군가를 만났을 때 영감을 더 받는 듯하다. 더욱이 백석은 친구 허준 결혼 축하 자리에서 만난 통영 아가씨 박경련을 만나고 마음에 들어한다. 백석은 통영에 다녀오고 시도 썼다. 박경련을 ‘난’이라 하기도 했다. 그때 함께 있던 친구 신현중 마음에도 박경련이 자리하고 말았지만. 자야를 처음 만났을 때는 ‘지금부터 너는 내 마누라다’ 했는데, 그때도 백석은 박경련을 생각했다. 그럴 수가. 박경련이 신현중과 결혼했을 때는 아주 놀랐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 백석은 박경련한테 청혼했다. 그런데 신현중이 백석 어머니를 나쁘게 말해서 그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신현중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사랑을 골랐구나. 백석은 부모 때문에 결혼을 여러번 했다. 결혼하기만 하고 함께 산 시간은 짧았나보다. 그 부분은 왜 자신이 확실하게 하지 못했을까, 그런 시대였기 때문일지도. 북에서 백석은 서른네살에 열네살(스물) 어린 리윤희와 결혼하고 자식까지 두었다. 혹시 다른 사람은 아이를 낳지 못해서 헤어졌던 걸까. 백석 스스로 그런 게 아니고 부모가 그렇게 하게 만든 건 아닐지.

 

백석은 최정희, 노천명, 모윤숙과도 친하게 지냈나보다. 세사람이 백석을 말하는 게 재미있다. ‘사슴’ ‘사슴군’이라 했다. 백석은 오산고보를 나오고 한해쯤 집에서 보냈다.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더 할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백석은 글쓰기를 생각하고 썼다. 백석이 학교 다닐 때는 김소월 시를 보았다. 김소월은 백석보다 여섯살 많다. 1940년 백석은 정주 출신 사업가 방응모 때문에 일본 아오야마학원에 공부하러 간다. 영어사범과다. 백석은 시골에서 교사를 하면서 시를 쓰고 싶었는데 일본에서 돌아와서 한 일은 신문기자다(함흥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리고 시집 《사슴》을 100부 낸다. 이 시집을 좋게 말한 사람도 있지만 안 좋게 말한 사람도 있었다. 시가 33편 담긴 것을 다르게 해석한 사람도 있다.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백석이 어떤 뜻을 가지고 그렇게 한 건 아닌 것 같다. 백석이 우리나라 독립을 바라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앞에 나서서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로 말한 건 아닌가 싶다. 우리말 거기에서 평안도 사투리로 시를 쓴 것 말이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때 백석은 시를 쓰지 않았다. 우리말로 쓸 수 없었으니까. 그때 많은 문인이 친일을 했다. 전쟁에 나가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말하는 시도 있었다. 억지로 그런 글을 쓴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짜 그런 마음으로 쓴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구나. 지금도 우리는 힘을 못 내고 있는 듯하다.

 

백석보다 다섯살 밑인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하지 못해 애태웠다. 1937년 8월 도서관에서 《사슴》을 빌리고 공책에 베껴쓰고 감상을 적었다. 그 뒤에도 백석 시를 좋아하게 된 시인은 많을 거다. 역사에 휩쓸려 산 사람은 백석만이 아니다. 일제시대 때는 자신의 신념이라는 것을 지켰지만 북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그때 백석이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은 아닐까. 백석이 쓴 동시는 아이들 정서에 도움이 될 텐데, 북한에서도 아직 자유롭게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3

 

백석 님,

이젠 마음껏 쓰고 싶은 시 쓰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는 그 시를 만날 수 없겠지만,

어느 눈이 푹푹 나리는 날

고조곤히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르겠지요

 

 

 

희선

 

 

 

 

☆―

 

‘유아들이 읽을 동시이므로 길이가 짧아야 하고, 지나치게 사상성이나 계급의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어린아이일수록 동물에 관심이 많으므로 동물 생태에 더욱 유의해서 쓰자.’  (342쪽)

 

 

“본래 남편은 글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지요. 삼수군으로 와 농장원으로 일했지만 농사일은 제대로 하지 못해 마을 사람들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어요. 남편은 도리깨질을 못해서 처녀애들에게 배웠을 정도였고, 너무 창피해서 달밤에 혼자 김매기를 연습하기도 했지요.”

 

지윤희 증언은 이어졌다.

 

“남편은 하루에 한사람을 열번 만나도 그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지나가곤 했어요.”

 

일본 유학 뒤 조선일보사에서 일할 무렵 백석은 “녹두빛 ‘더블부레스트’를 젖히고 한대 바닷물결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 머리 ‘웨이브’를 휘날리면서 광화문통 네거리를 건너가는 한 청년”이었다. 그는 남들이 자주 잡는 문 손잡이를 잡지 않던, 결벽증이 심한 모던보이였다. 그런 백석이 삼수군 관평에서는 누구보다 인사성이 밝고 겸손했으니 삼수군 사람들 가운데는 백석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백석은 삼수군 문화회관에서 가끔 청소년들에게 문학 창작 지도를 했고, 그에게 배운 학생 가운데는 평양 중앙무대에서 상을 받거나 우수한 평가를 받은 청년들도 있었다.  (371~372쪽)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당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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