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 베케이션
아오야마 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마지막 모습은 영화 같다. 누군가를 잡아가려고 온 사람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가운데 비눗방울이 날아온다. 사람들은 그 비눗방울에 잠시 눈을 빼앗긴다. 커다란 것과 작은 것이 부딪쳐 터져서 그 밑에 있는 사람은 물을 맞는다. 그 뒤에 그냥 웃고 끝나지 않겠지. 폭풍이 일어나기 전에 조용한 것과 같은 일이다. 그저 잠시 움직임을 멈춘 것뿐이다. 지금 이렇게 말하지만 그 모습을 보았을 때는 ‘이게 끝이야’ 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줄 필요는 없겠다. 한사람이 끌려갔을지도 모르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끝까지 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일보다 먼저 일어난 일은 벌써 이야기가 끝났다. 조금 남은 이야기를 한 것이겠지. 그리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미야 운송에는 어디에도 갈 데가 없는 사람이 모여든다. 여러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시라이시 겐지다. 지금 겐지는 구치소에 있다. 마지막을 먼저 말했더니 이 말도 나왔다. 죄를 지으면 유치장, 구치고 다음에 형무소로 넘어가는 건가. 겐지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 오래전에도 사람을 죽일 뻔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죽였다. 처음에는 왜 그랬을까 했는데, 겐지는 죽일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것보다 작가는 왜 그렇게 썼을까 했다. 그렇게 쓴 작가 마음을 알아야 하는 건지, 겐지 마음을 알아야 하는 건지.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게 삶이기는 하다. 아무리 잘 살려고 발버둥쳐도 밑바닥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가끔 나는 그것은 왜 그럴까 생각한다. 남 이야기 할 때가 아니다. 나 또한 바꾸지 않고 늘 똑같이 살아가니까. 살아가는 것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쉽지 않다’는 말로 달아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꼭 바꿔야 한다는 크나큰 바람은 없는 건지도. 이게 맞는 말이다.

 

책을 보면서 세상에는 남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살아가는 게 가장 힘들다. 평범한 게 가장 좋지만 그 평범함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다. 조직폭력배 친구가 사람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쓶으면서 여동생을 겐지한테 맡겼다. 겐지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병원에 들락날락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겐지 어머니는 겐지 아버지의 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겐지 어머니 일이 가장 먼저구나. 사실 어떤 일은 잘 모르겠다. 겐지 친구 야스오는 왜 조직폭력배에 들어가고 나중에는 사람을 죽이게 되는지(배신당해서일지도), 겐지는 누구한테 쫓기는 건지. 다른 이야기에 그런 게 있을까. 이게 세번째라고 한다. 연작이라고 해도 다른 이야기가 앞에 다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겐지는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달아난 어머니 치요코를 미워했다. 어머니가 겐지와 살았다면 다르게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설에서 일어난 일도 되돌릴 수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오래 갈까. 이렇게 말하니 생각났다. 미워해서 복수하겠다는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아도 싫어서 안 보는 건 할 수 있겠다. 어떻게든 매듭을 짓는 게 나을까.

 

앞에서 겐지가 누구한테 쫓기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하나는 중국 마피아다(책 뒤에 중국 마피아라 쓰여 있어서). 겐지는 중국에서 몰래 일본에 들어오는 사람을 옮기는 일을 했는데 중국 아이를 겐지가 데리고 있게 되었다. 중국 마피아한테 사람은 돈이 된다. 중국에서도 힘들게 살았을 사람들이 일본에서도 힘들게 살아가겠지. 이런 이야기 다른 소설에서도 본 것 같다. 동유럽 여자아이들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일을 찾으러 가는 것과도 같겠다. 노예제도가 없어졌다 해도 그건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 보이지 않는 곳에는 여전히 노예제도가 있다. 겐지는 중국 마피아를 피해서 대리운전을 한다. 어느 날 태운 손님은 마미야 운송 사장이었다. 그곳에서 겐지는 자신과 아버지를 버린 어머니 치요코를 본다. 이런 우연이 일어나다니 싶다. 같은 시에 살아도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일은 드물다(나만 그런가). 반대로 같은 지역에 살아서 우연히 만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감동스럽게 다시 만났다면 좋았겠지만 아오야마 신지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자신을 버렸다 해도 어머니를 다시 만나면 처음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커도 시간이 흐르면 그런 마음을 푼다. 하지만 겐지는 그러지 않았다. 어쩐지 나쁜 마음이 더 자라난 듯하다. 아버지가 다른 동생 유스케와도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지난 일을 용서하고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아니, 어쩌면 겐지는 어머니하고 연을 끊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죽인 또 다른 아들을 기다리기로 한다. 겐지가 사에코와 유리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제와서 이런 이름을 말하다니. 사에코는 겐지가 사귀는 사람이고 유리는 친구가 맡긴 동생이다. 사에코 이야기는 따로 조금 나온다. 어머니라고 해서 자식이 한 일을 모두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치요코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기도 하다면서. 마미야도 같은 마음이다.

 

보통 생각밖에 못하는 나는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이야기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구나. 마음에 안 든다 생각하면 자꾸 나쁜 마음이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다른 사람은 알아본 것을 겐지는 몰랐다. 그것은 어머니가 편하게 살지 않았다는 거다. 겐지는 어머니가 자신과 아버지를 버린 일만을 나쁘게 본 거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치요코가 ‘자식은 언제나 자식이다’고 하는데 이 말이 맞다.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미처하지못한말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아가는 건 어떤 걸까. 나 또한 거기에서 멀다. 나고 자라고 학교에 다니고 일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 낳고 살아가는 것, 일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꼭 이게 평범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없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거나, 자라면서 엄청난 일을 겪어서. 나는 부모도 있고 엄청난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살면서 조금씩 무엇인가 쌓였겠지. 겐지나 마미야 운송에 온 사람들과도 다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곳에는 누군가한테 쫓기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을 보고 그나마 나는 낫구나 했다. 세상에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구나보다 나는 그렇게 나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니. 본래 그런 거 아닐까. 피가 이어진 사람만이 식구일까. 그것은 아니겠지. 마미야 운송 사람들든 피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식구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서로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어느 때는 가정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하고, 어느 때는 가정이 아닌 곳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어두워보이는 이야기지만 그렇게 어둡기만 하지는 않다. 내가 생각을 잘 못하고 잘 못 썼을 뿐이다.

 

 

 

희선

 

 

 

 

☆―

 

“어머니하고 인연을 끊을 작정이었는데 인연이라는 게 어떻게 해봐도 휘휘 휘감겨서 떨어지지를 않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한테까지 이어지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이 한 일을 죄다 용서하고 품어준다. 그런 어머니라는 거, 뭔가 밑 빠진 듯 넓은 품이 말이지 너무 무서웠던 거 아닐까.”  (292쪽)

 

 

“떠돌이를 고용해서 반듯하게 갱생하도록 돌봐주고, 그랬는데도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고…… 그런데도 겐지를 기꺼이 맞아주실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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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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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발린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피가 섞이지 않아도, 아들이건 아니건, 이것도 인연이야. 아니, 인연이라고도 못하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해야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하고 똑같이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내 자식이 아닌 사람한테 폐를 끼친 사람들도 내가 맡아왔는데, 내가 자식을 죽인 사람이라고 어떻게 안 맡을 수가 있겠어. 형이 확정되고 착실하게 징역 살고 나오면 내가 확실하게 겐지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  (293~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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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11-0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이야기라, 아무래도 전편의 배경들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을 겁니다. 헬프리스, 유레카, 새드 베케이션 이렇게 3편의 영화가 있죠. 저는 그 세 편의 영화를 모두 보았습니다만, 솔직히 지금은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나네요. 기억이 나면 위에 의문을 가지신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드릴 수도 있을텐데. 다만 `유레카`의 마지막 엔딩이 아주 좋았다는 것만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도 영화와 이 소설을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어두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은 그래도 희망이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희선 2014-11-05 01:17   좋아요 0 | URL
아주 좋은 마지막은 어떨까 싶네요 다는 아니더라도 예전에 일어난 일을조금 이야기해주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알기 어렵더군요 맨 처음에 말하는 사람이 갑자기 들어가서, 다음에는 잘못 보기도 했습니다 거기도 그 사람이 말하는 걸로 알고 봤는데 아니더군요 제가 예전에 유레카라는 소설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제목이 비슷한 ‘유레루’였어요 그것도 영화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랬습니다 거기에 오다기리 죠가 나온다고 하네요

얼핏 보면 어두워보이는데 자꾸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더군요 책 다 읽고 다른 생각도 했어요 이 소설 조금만 바꾸면 따듯한 이야기가 됐겠다고 그러면 좀 흔한 이야기가 되지만... 그렇게 안 한 게 더 나은 거군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