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어떤 것을 보다가 예전에 읽은 책 제목과 내용을 잘못 기억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잘못 기억한 것을 다른 데 쓰기도 했다. 그때는 고쳐야 할 텐데 했지만 어디에 썼는지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그걸 고치라는 것인지 며칠 뒤에 어디에 잘못 썼는지 알았다. 게으른 나는 아직 고치지 않았다. 제목과 내용 짝을 잘못 지어 기억하다니. 그 두 책은 예전에 읽기만 하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한권은 뒤에 인쇄가 안 된 부분이 있었다. 제목은 잘못 기억했지만 그것은 잊지 않았다). 예전에 읽은 책 가운데는 아주 잊어버린 거 많다. 읽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기도 한다(읽으면서도 잊어버리는구나). 책을 읽고 난 다음 쓰고 안 쓰고하고는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기억하고 잊어버리는 것일 거다. 책을 읽고 쓴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잊는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 낫겠지 생각하지만 잘 모르겠다. 나중에 내가 써둔 것을 보면 그 책이 조금 생각나기도 하지만, 어떤 말은 왜 썼는지 모르기도 한다. 그걸 자꾸 생각하다보면 왜 썼는지 생각난다. 끝내 생각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다음은 별로 상관없는 소설 세 편, 거기에서 둘은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어서. 올해 히가시노 게이고 책 많이 나왔다. 많이보다 엄청을 써야 할 듯. 히가시노 게이고가 실제 많이 쓰는 것도 있고, 우리나라에 올해 나온 것 가운데는 예전에 쓴(일본에 나온 지 오래된) 것도 있다.

 

 

 

 

비밀을 감춘 집

 

  수차관의 살인   水車館の殺人 (2008)

  아야츠지 유키토   김은모 옮김

  한스미디어  2012년 03월 29일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책은 별로 못 본 작가가 아야츠지 유키토다. 그래도 관 시리즈 첫번째인 《십각관의 살인》은 보았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대작이라고 한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도. 어쩌면 이 집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은 관 시리즈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일까. 이 나카무라 세이지도 수수께끼에 싸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죽은 지 한해가 지나고 여섯달 뒤에 십각관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또한 나카무라 세이지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차관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시간으로 보면 수차관 사건이 먼저 일어난 거였다. 그때 일어난 일은 가정부 네기시 후미에가 탑방 발코니에서 떨어져 수로에 빠져서 죽고, 그날 수차관에 찾아온 네 사람 가운데 한사람인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수차관 주인 후지누마 기이치 친구 마사키 신고를 누군가 죽이고 몸을 여러 토막으로 잘라서 소각로에서 태웠다. 후지누마 잇세이가 그린 그림 하나도 사라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마사키 신고를 죽이고 그림을 가져간 걸로 마무리 지었다.

 

한해가 지나고 1986년 9월 28일이 돌아왔다. 수차관은 후지누마 기이치가 열한 해 전에 지었다. 후지누마는 열두해 전에 차 사고로 심하게 다쳤다. 그 뒤에 휠체어를 타고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손에는 장갑을 끼었다. 사고를 같이 당한 사람이 마사키 신고로, 마사키 애인은 죽고 마사키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평소에 수차관에는 집사 구라모토와 후지누마 기이치, 후지누마 아내 유리에만 있었다. 가정부는 가끔 일하러 왔다. 수차관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먼 곳에 있다. 유리에는 이제 스무살로 수차관에서 지낸 지 십년이 되었다. 바깥 세상은 하나도 모른다. 이곳에서 한해에 한번 모임을 가졌다. 후지누마 기이치 아버지 후지누마 잇세이는 환상화를 그렸다. 9월 28일은 후지누마 잇세이 기일로 미술상, 외과의, 대학교수, 절 부주지(오이시, 미타무라, 모리, 후루카와) 네 사람이 왔다. 후루카와는 한해 전에 어딘론가 사라졌다. 그대신 후루카와를 알고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를 아는 시마다 기요시가 찾아왔다. 후지누마 기이치는 수차관을 짓고 아버지 그림을 되사들여 그곳에 모두 모아두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림 ‘환영군상’을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은 보고 싶어했다.

 

지금이 1986년이지만 소설은 1985년 9월 28일에서 29일에 일어난 일도 말해준다. 시작할 때 충격을 주고, 그때 생각한 게 하나 있는데 맞았다. 그 뒤 일은 제대로 생각 못했다. 불청객으로 보이는 시마다 기요시가 탐정처럼 나온다. 1985년에도 그렇고 지금도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 한해 전에는 천둥 번개도 쳤다. 무엇인가 일어나기에 딱 좋은 날이다. 한해가 지난 지금도 일이 일어난다. 두 사람이나 죽는다. 그렇게까지 죽여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시마다 기요시는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사람을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다 생각했다. 시마다는 그때 일을 밝혀낸다. 벌써 이런 말을 꺼내다니. 그 사람은 언제부터 그 일을 계획했을까. 그 사람 처지를 생각하면 안 되기도 했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책 제목은 ‘수차관의 살인’이니 누가 죽지 않으면 안 되기는 한다. 이런 소설을 볼 때면 늘 생각한다. 소설 안에서는 원한을 오래 끌지 않으면 안 되고, 한순간 일어나는 화도 참으면 안 되겠다는. 소설을 보고 사람의 끝없는 욕망을 보고 기분 나빠하지만 자신한테도 그런 모습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수차관 있는 곳 참 좋을 것 같다. 그곳을 지은 후지누마는 세상 사람을 피해 그곳에서 살았을 테지만, 그런 집을 지을 돈이 있었으니 그렇게 살 수 있었다. 한가지 문제는 아버지 제자 딸인 유리에까지 세상과 연을 끊게 한 거다. 유리에는 어리다. 바깥 세상이 어떤지 알고 나서 바라면 수차관에서 살게 해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자신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아내로 삼다니. 유리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유리에는 그곳을 떠나고 싶어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세상 사람과 동떨어져 자연과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거다. 나는 본래 사람 사귀는 걸 못해서. 할 수 있는 한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수차관 있는 곳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집은 싫다. 건축가가 감추어둔 공간이 있는 집은 재미있을 듯하다. 나카무라 세이지는 자신이 설계한 집에 그런 곳을 만든다고 한다. 수차관에도 있었다. 거기에는 후지누마 잇세이가 마지막으로 그린 환영군상도 있었다.

 

여기 나오는 후지누마 잇세이 같은 화가가 정말 있을까. 잇세이는 환시자로 마음의 눈으로 잡은 환상 풍경을 그렸다. 사람들은 그 환상에 사로잡힌 건지도. 마지막 그림에는 누군가의 일이 그려져 있다. 잇세이는 앞을 보는 사람이기도 한 건지. 이런 화가 진짜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도 일어날 테니까.

 

 

 

 

☆―

 

“마치 이 커다란 집을,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이 골짜기 이 공간에 멈추어두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요.”  (43쪽)

 

 

“아버지처럼 나도 그 그림이 무서워. 꺼려질 만큼 오싹해. 그래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뒀어. 아무한테도 보여주기 싫고, 나도 보고 싶지 않거든.”  (93쪽)

 

 

 

 

 

 

 

현실이 괴롭고 힘들어도 제대로 마주해야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

  パラレルワルド·ラブスト (1995)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4년 05월 26일

 

 

 

 

 

 

 

 

 

 

 

패럴렐월드, 곧 평행우주(세계)는 지금 이곳과 똑같은 세계가 또 있다는 거다. 이곳과 그곳에 사는 사람은 똑같지만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평행우주가 단 하나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꽤 많을 수 있다.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무엇을 결정할 때마다 평행우주가 생겨난다는. 그러면 셀 수 없을 만큼 평행우주가 있겠다. 결정한 일을 하고 사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아쉽게도 우리는 하나밖에 모른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참 힘들다. 평행우주가 생겨난 것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자신을 생각하면 재미있을 테니까. 내가 아는 건 겨우 이 정도뿐이다. 좀더 깊게 생각한 책도 있는 듯한데 그런 건 본 적 없다(이 말은 제목만 아는 미치오 카쿠 책 《평행우주》를 생각하고 쓴 건데, 여기에서는 평행우주라기보다 우주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생각한 것은 그런 건데, 그런 것과는 좀 다르다. SF 같으면서도 좀더 현실에 가깝다. 다른 공간을 찾는 게 아니고 뇌에 자극을 주어 현실과 똑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 나온다. 또 다른 사람은 기억과 관계있는 것을 연구한다. 공통점은 뇌다.

 

지금 뇌 연구는 어느 정도나 했을까. 이 책은 1995년에 나온 거다. 그전에 히가시노 게이고는 《변신》이라고 해서 뇌이식수술을 받은 사람 이야기를 썼다. 지금도 뇌이식은 할 수 없지 않을까(얼마전에도 비슷한 말을. 뇌이식을 하면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변신’ 봤지만 거의 잊어버렸다. 해설을 쓴 사람이 이 책 이야기를 잠시 해서. 이 책 ‘패럴렐월드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어떤 실험을 하는 것이어서 기억이 조금 이상해지는 건가 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쓰루가 다카시가 연구하는 차기형 리얼리티인가 했다. 다카시 뇌에 자극을 주어서 이 사람이 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지만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카시한테 일어난 일은 기억이 바뀐 거였다. 그 연구는 다카시 친구인 미와 도모히코가 했다. 왜 다카시 기억이 바뀐 걸까. 차근차근 보다보면 그 까닭은 나온다. 처음에는 그 일을 꾸민 게 도모히코인가 했다. 책을 보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도모히코와 도모히코 연구를 돕던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연구실 사람들은 도모히코는 미국에 갔다 하고, 또 다른 사람(도모히코를 돕던 사람)은 한해 전에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것은 정말일까.

 

다카시가 어떤 일을 기억하게 되자, 지금 애인인 마유코가 사라지고 곧 상사도 모습을 감추었다. 다카시는 마유코가 자기 애인이라 여겼지만, 한해 전에 미와 도모히코가 자기 애인이라 하고 마유코를 소개한 일을 기억해냈다. 그 일을 아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기억이 실제와 다르면 혼란스러울 듯하다. 다카시는 자신한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려고 한다. 다카시가 그러게 할 때 우리는 한해 전에 다카시와 도모히코 그리고 마유코한테 일어난 일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다카시가 기억해 내는 것이기도 하겠지. 사람은 자신한테 일어난 일에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슬프고 괴로운 일은 잊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책에서는 안 좋은 일을 잊게 해주는 약을 주었다. 사실 그것은 나라에서 사람을 통제하려는 거였다. 쓸데없는 생각 못하게. 슬프고 괴로운 일을 잊게 해주려고 무언가를 연구해도 그것은 나쁘게 쓰일 수 있다. 과학에는 그런 위험한 면이 있다. 누군가는 위험을 느끼면 그것을 그만두려고 할 테지. 세상에는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어서. 한사람이 사라지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 또한 그러하겠다.

 

여기에 커다란 음모가 숨어있는 건 아니다. 잠깐 그렇게 보이기도 했지만.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을 적게 느끼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마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이것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그렇다. 아니 상대가 확실하게 했다면 괜찮았을 테지만 그 사람도 흔들렸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을 접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하는 노랫말이 생각나는구나. ‘잘못된 만남’ ‘사랑과 우정 사이’도 있다. 우리나라 노래에도 이런 이야기가 많구나. 아마 내가 말한 것 말고도 더 있을 거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어느 한쪽이 물러나기도 하겠지. 어쩐지 그럴 때가 많을 것 같다. 그게 서로 좋을 테니까. 마음을 감추고 물러나는 사람, 마음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이 물러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 뒤 그 사이는 깨어질까. 마음을 감추었을 때는 괜찮겠지만 드러내면 깨어질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때는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오래 가면 좋을 텐데,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진다. 그때는 그것을 잘 모른다. 사람은 다 그렇다. 나도 비슷하다.

 

두 사람만 좋은 게 아니고 둘레에서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만남은 정말 좋은 거다. 아니 둘레에서 축하해준다 해도 그 안에 마음을 숨긴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겠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도 쉽게 다른 사람한테 소개하지 않기. 이러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두 사람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라면 괜찮을지도. 이런 말보다 다른 말을 해야 하는데. 슬픈 일 괴로운 일에서 달아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그런 일을 겪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일을 많이 겪어도 마음은 무뎌지지 않을 거다, 그래도. 그것은 나를 만드는 기억이고 추억이니까.

 

 

 

 

☆―

 

“자신 따위는 없어. 있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는 기억뿐. 모두 거기에 얽매여 있는 거야. 나나 다카시 씨나.”

 

“그러니까 기억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을 바꾼다는 뜻이 되겠군.”

 

“그래. 바꿨으면 좋겠어, 자신을.”  (468~479쪽)

 

 

 

 

 

 

 

꾸기 알은 재능일까

 

  꾸기 알은 누구 것인가   カッコウの卵は 誰のもの (2010)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3년 11월 15일

 

 

 

 

 

 

 

 

 

 

 

 

“재능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  (395쪽)

 

 

“그런데 그 뻐꾸기 알은 내 것이 아니야, 신고 것이지. 신고만의 것이야. 다른 누구 것도 아니고. 유즈키 씨 당신 것도 아니지.”  (396쪽)

 

 

뻐꾸기 하면 다른 새 둥지에 자기 알을 낳기만 하고 새끼를 키우지 않는 게 생각난다. 그런 뻐꾸기를 아이를 낳고 제대로 돌보지 않고 다른 곳에 보내는 부모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책 제목을 봤을 때는 그게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것은 뻐꾸기가 아닌 ‘뻐꾸기 알’이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은 느낌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뻐꾸기 알을 재능이라 말한다. 글을 쓰기 전에 그렇게 생각했을까. 뻐꾸기 알을 자기도 모르게 아이한테 물려주는 재능(유전자)이라 보고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아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야기를 쓰다보니 어떤 사람이 그 말을 꺼낸 거다.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된 거다. 이것은 좀 아닌가. 이야기를 쓰기 전에 어느 정도 설계도는 그렸을 테니까. ‘백은의 잭’과 이 책 가운데서 무엇을 먼저 썼을까. 스키 선수가 나와서 스키장이 배경인 ‘백은의 잭’이 생각났다. 이걸 쓰다보니 그것도 생각난 거 아닐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쓸거리가 그렇게 바로 떠오를까. 하나를 쓸 때 거기에서 또 다른 게 떠올라서 쓰는 건 아닐까 싶다. 떠오르면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고 바로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나중에 쓰는 것도 있겠지).

 

지금 과학은 사람 유전자를 어느 정도나 알까. 여기 나온 것처럼 유전자로 운동선수 재능을 알 수 있을까. 스키 선수 히다 카자미, 스키 선수로 잘될 유전자를 가진 도리고에 신고. 두 사람이 가진 패턴은 다른 거다. 카자미한테는 비밀이 있어서 아버지 히다 히로마사가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는다. 도리고에 신고 아버지한테 F패턴 유전자가 있어서 아들 도리고에 신고 유전자를 검사하니 같은 게 있었다. 신고 엄마 아버지는 헤어졌다. 아버지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고 제대로 일을 못해서 집안 형편이 안 좋았다. 신세 개발 스포츠 과학연구소에서는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해주는 대신 도리고에 신고한테 크로스컨트리 부문 스키를 하게 한다. 신세 개발 스포츠는 운동선수도 키우고 과학연구도 하는 곳이구나. 과학으로 운동선수를 뽑은 것일 수도 있을까. 카자미는 아버지가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올림픽에 나간 스키 선수였다. 카자미는 어릴 때부터 스키를 타고 재능이 보였다. 아버지는 카자미가 올림픽에 나가고 메달을 따기도 바랐다. 하지만 신고는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신고는 스키 훈련을 받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신고는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를 치고 싶어했다.

 

앞에서 카자미한테 비밀이 있다고 했는데 카자미는 히다 딸이 아니었다. 히다는 이 일을 카자미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 알았다. 히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 도모요 화장대를 정리하다가 아기 유괴 사건이 실린 신문기사를 본다. 신문 날짜는 카자미가 태어난 때와 가까웠다. 이 일을 보면 도모요가 다른 사람 아기를 훔쳐다 자기 아이라고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히다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도모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는 건 그게 아니기 때문이겠지. 모든 일을 다 알고 나서도 도모요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잘 모르겠다. 남편을 속이는 게 괴로워였을까. 그것도 있겠지만 진짜 자기 아이를 잃은 데서 온 우울증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한테도 그 일을 말하지 않았으니까. 식구라도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다. 신고도 아버지한테 자기 마음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아니, 두 사람 다 그랬구나. 못살면 못사는대로 살아가면 될 텐데.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서 먼저 돈을 벌고, 나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 어떨까 하는. 이건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야 즐거우니까. 남이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은 것이기도 하다.

 

어떤 한사람이 가장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좋게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옛날 일을 알아서 배신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아들이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사람은 어떤 일을 결심해도 마지막에는 자신한테 좋은 쪽으로 결정하고 마는구나. 좋은 쪽이라고 해서 이익을 얻는 건 아니다. 누군가하고 관계를 그대로 지킬 수 있는 거다. 나는 어떤 일을 밝힌다고 해도 무엇이 크게 바뀔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사자는 내 생각과 달랐다. 혹시 이것은 히가시노 게이고 생각이기도 할까. 예전에 본 《내가 옛날에 죽은 집》에 나온 사람은 부모가 친부모가 아닌 걸 알고 달라졌다. 이 말 때문에 누가 누구한테 무엇을 밝히지 않았는지 알겠다. 어떤 일은 묻어두는 게 낫기도 하다. 이번에는 빨리 알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잃을 것을 생각하고 시간을 끄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웃음은 누군가의 울음이 있어서기도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게 웃기 어려울까. 행복과 불행이라고 할까 하다가 웃음과 울음이라 했다. 누군가 죽는 데서 이야기는 좋게 끝나기 어렵겠다. 이런 일이 있다면 이 사람처럼 하지 않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일일지도.

 

여기에서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재능’은 누구의 것도 아닌 그것을 가진 사람 것이다는 거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하고 싶은 게 딱 맞아떨어지면 좋겠지만, 재능과 하고 싶은 게 다를 수도 있다. 재능 때문에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키지 않아야 한다. 좋아하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키는 일 자주 있을까. 부모가 자기 아이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일이 생각난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걸 아이가 이루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다. 부모는 부모 아이는 아이다.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 부럽고,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걸 잘 아는 사람도 부럽다. 부러워만 하면 안 될 텐데.

 

 

 

희선

 

 

 

 

☆―

 

“망설여, 뭘?”

 

“지금까지 제가 고집해 온 방식이나 생각이요. 전 저마다 지니고 있는 재능을 살리면 삶도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어요. 스포츠든 예술이든, 남보다 뛰어난 결과가 나오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고, 설사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더라도 차츰 열의를 보이고 몰두하게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삶의 자양분으로 삼으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고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하나도 기꺼워하지 않는 사람 말이에요. 바로 도리고에 신고처럼 말입니다. 신고한테 올림픽은 꿈도 무엇도 아닙니다. 신고 꿈은 마음껏 기타를 치는 거죠. 프로 뮤지션이 되지 못하더라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상관없어요. 그저 음악을 듣고만 있어도 신고는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한테 누가 ‘너는 재능이 있다’고 하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시키는 건 인격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요.”  (397~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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