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는 민중 사이에 떠도는 백가지 이상야릇하고 신기한 이야기다. 백이라는 숫자는 무엇일까. 예전에도 이런 생각해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이 나고 백일이 지나면 축하한다. 나고 백일을 넘기면 죽음에서 조금 멀어지지 않을까. 무엇인가를 기원할 때도 백일기도를 드린다(백일보다 더 많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백가지라고 하지만 이 숫자에 맞아떨어지는 만큼만 있을까. 어쩐지 더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백가지라고 정해둔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모여서 백가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를 모으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도 그런 사람(야마오카 모모스케) 나온다. 괴담, 기담 백가지를 모아서 책으로 내려고 하는. 백가지 이야기 하면 생각나는 건 미야베 미유키가 쓰는 미시마야변조괴담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세권 나왔는데, 교고쿠 나쓰히코가 쓰는 항설백물어는 더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두권 나왔다. 다른 건 못 봐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형식은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교고쿠 나쓰히코 소설은 그렇게 많이 못 봤다. 그것보다 우리나라에 많이 안 나온 건가. 교고쿠도 시리즈로 나오는 것 조금, 괴담으로 쓴 소설 두권(‘웃는 이에몬’ ‘엿보는 고헤이지’), 그리고 항설백물어(얼마전에 ‘싫은 소설’도 봤다. 싫은 일이 끝없이 일어나는, 이것도 괴담에 가까우려나). 세가지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 교고쿠도 시리즈에도 괴담, 기담이 나온다. 괴담은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 해석하는 것이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요괴 연구가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쓰는 거겠지. 교고쿠도 시리즈에서 탐정으로 나오는 추젠지 아키히코는 음양사로 헌책방(고서점)을 한다. 탐정을 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헌책방 이름이 ‘교고쿠도’다. 예전에 작가 이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가 아닌가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작가 이름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은 책방 이름에 ‘당(堂 どう도)’을 쓰기도 한다(책방에만 쓰는 건 아닐지도). 교고쿠도는 교고쿠당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빵집에 ‘당’을 붙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이름이 많이 없어졌구나(금은방에도 붙였던가).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닌데. 교고쿠도 시리즈는 그거고 이것은 이것인데. 그래도 이 책을 보다보니 그게 생각났다. 비슷한 점도 있다. 진짜 요괴 귀신은 안 나오는 것.

 

첫번째 <아즈키아라이>에서 비 오는 날 밤 오두막에 모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서 이런 게 죽 이어지는 건가 했다. 앞에 조금 보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오두막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스님 엔카이는 두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무서워했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자기와 상관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엔카이는 예전에 혼례식을 하려는 여자를 끌고 가고, 그 모습을 본 여자 동생을 죽였다. 이렇게 바로 말을 한 건 아니고 이상한 이야기로 꾸몄다. 그렇다 해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아는 사람은 겁을 먹겠지. 빗소리 사이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아즈키아라이는 팥을 씻는 소리를 내는 요괴로 개울에서 팥을 씻는 동승이 앙심을 품은 동승한테 죽임 당한 뒤부터 그 동승 영혼이 가끔 나와 팥을 씻고 울고 웃는 이야기다. 엔카이는 빗소리 사이에서 팥 씻는 소리를 듣고 미쳐서 오두막에서 뛰쳐나갔다. 바깥으로 나가기보다 오두막 안에 있는 게 안전할 텐데 정신이 나가버렸으니 그런 생각은 못했겠지(방 안이 무서운 분위기를 냈구나). 엔카이는 돌에 머리를 찧고 죽었다. 그것을 안됐다고 생각해야 할지, 벌을 받았다 생각해야 할지. 오두막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한 것은 우연일까. 그것은 여러 사람이 꾸미고 마련한 자리다. 마지막에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에도시대에도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렀을 거다. 하지만 모두가 그랬을까. 확실하게 알면 죄 지은 사람을 잡았겠지만 잡히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다. 정의를 위해서 하는 건 아니고, 돈을 받고 죄를 지은 사람을 혼내주는 사람이 있었다. 산묘회(인형사) 오긴, 어행사(승려 차림으로 액막이 부적을 팔고 돌아다니는 걸식인 한 부류)로 꾸미고 다니는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 신탁자(가고시마 신궁 신관을 흉내내고 부적을 달던 걸식인) 지헤이, 여기에 수수께끼 작가 야마오카 모모스케도 함께 한다. 언제나 네 사람이 다 같이 하는 건 아닌데 거의 같이 한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거기에 어울리는 이야기로 연극을 한다. 거의 연극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은 옛이야기를 이용했지만(교고쿠도 시리즈에도 그런 거 나온다). 앞에서 혼내준다고 했는데, 이 말처럼 가볍지 않다. 왜냐하면 상대는 거의 사람을 죽인 사람이니까. 끝이 어떻게 될지 알고 한 건 아닌 듯한데 마지막에는 죽는다. 여우를 잡고 살던 사람은 도적부하가 되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결국 자기 아내와 아이까지 죽인다. 그 사람만은 죽지 않았다. 도적부하를 그만둘 수 있게 해달라고 한 사람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많은 사람이 죽고 그 사람만 살았다. 지금은 정신이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자신의 업보를 생각하고 살겠지.

 

나쁜 사람 때문에 나쁜 짓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일에서 풀려났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 집안을 이용하려는 사람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져버렸다. 그 사람 사이코패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에도시대 때도 사람을 많이 죽이는 사람 있었을 거다. 미야베 미유키도 그런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 쓴 적 있다. 자기 아이만 보면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은 왜 그랬을까. 사람이 죽어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도 나왔다. 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죽일까. 한번 그 선을 넘으면 되돌아오기 어렵겠지. 정신에 병이 든 걸까. 어쩐지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온 듯하다. 그것은 자기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다. 내가 쓴 마음 길 잃지 않기(예전에도 비슷한 제목을 썼다)는 처음부터 할 수 없을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우리도 마음 길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잘 잡아야 한다.

 

이 책을 지금 보아서 다행이다. 왜냐하면 틀린 게 있다는 걸 알아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 교토’를 안 봤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거다. 틀린 것은 314쪽 하타노 가와카쓰(秦河勝 진하승) 각주다. 진하승은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인데, 책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진 씨 일족 수장’이라 쓰여 있다. 이것은 우리말로 옮긴 사람이 잘못한 거다. 소설은 잘못 썼다고 말하기 애매하다. 하타노 가와카쓰(진하승)가 대륙에서 건너왔다고 하는 말은 없고, ‘원악이라고 하면 또 하타노 가와카쓰를 꼽지.’ 했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어떻게 알고 있을까.

 

 

 

희선

 

 

 

 

☆―

 

“자신은 젊다. 젊고 아름답다는 꿈. 자신의 진짜 모습은 더러운 노파고, 추한 괴물이라는 현실을 그 여자는 못 본 척했어. 아니 안 보고 살고 있었던 거야.”

.

.

.

 

“이 세상은 참으로 서글퍼. 그 노파만이 아니라고. 너도 나도, 사람은 모두 같아.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서 가까스로 살고 있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살아있지 못해. 더럽고 냄새 풍기는 자신의 본성을 알면서도 속이고 어르면서 살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삶은 꿈같은 게 아닐까.

 

마타이치는 그렇게 말했다.

 

“억지로 쥐어흔들고, 찬물 끼얹고, 볼때기 때려서 눈을 뜨게 해봐야 좋을 것 없어. 이 세상은 모두 거짓투성이야. 그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니 어딘가에서 무너지는 거야. 그렇다고 눈을 떠서 진짜 현실을 보게 되면 괴로워서 살아가지 못해. 사람은 약해. 그러니까 거짓을 거짓으로 알고 살아간다, 그것밖에 길이 없는 거라고. 연기 피우고 안개 속에 숨어 환상을 보고, 그래서 만사가 원만하게 수습되는 거라고. 그렇지 않나?”  (500~503쪽)

 

 

- 어쩐지 조금 어려운 말이다. ‘거짓을 거짓으로 알고 살아간다’가 맞을까 했는데, 진실로 알면 정신이 이상해진다고 하니 맞는 듯하다.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것은 있을지라도 제대로 보고 살고 싶기도 하다. 아무리 삶이 꿈같다 해도. 세상에 조금이라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그게 너무 지나치면 안 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