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용손 이야기 소설의 첫 만남 14
곽재식 지음, 조원희 그림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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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책을 보기 전에 한동안 비가 오고 책을 볼 때는 또 비 소식이 들렸어. 여기에서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이야기를 보게 될지 몰랐어. 제목에 있는 용손은 용의 손이 아니고 용 자손이라는 말인 듯해. 옛날도 그렇고 지금도 용 자손은 없어. 그냥 이야기야. 알지. <페어리 테일>에서는 사람을 구하려고 용이 나츠와 여러 아이한테 용을 없애는 마법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용은 길다란 뱀처럼 생긴 것만 있지 않아. 공룡 몸에 불을 뿜는 것도 있어. 여기 나오는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용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용은 다 불을 뿜을 것 같은데. 불을 뿜는 용한테 물속은 안 좋을 거 아니야. 물속을 자유롭게 다녀서 비도 내리게 할 수 있는 건지도. 지금 생각났어, 수룡이라는 게 있다는 거.

 

 남자아이는 6학년 때 자신이 용의 자손이라는 걸 알게 됐어. 아이는 여섯살 때 아버지가 어머니와 싸우고 용 반 사람 반인 사람과 결혼하는 게 아니었다고 중얼거린 걸 들었어. 그때는 그걸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 아이는 여섯살에 배운 적도 없는데 바다에서 헤엄을 잘 쳤어. 어머니 등에서 비늘 같은 걸 보고 자기 등에도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았는데, 어머니 아버지는 그걸 수술 자국이라 얼버무렸어. 그 뒤에도 아이가 용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는 다른 말을 하자고 하고 용이 나오지 않는 책을 보고 게임을 하라고 해. 아이가 어리다 해도 잘 말하면 알아들을 텐데. 왜 그 이야기는 피한 건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남자아이는 소풍날 비가 오면 어쩌나 했어. 남자아이는 자신이 소풍 가는 날에는 꼭 비가 왔다고 생각했어. 아버지는 그건 아닐 거다 해. 소풍날 비가 오고, 남자아이가 학교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소풍날 다 비가 왔지 뭐야. 공부 시간에 아이는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용한테 기도해서 비를 내리게 했다는 걸 알게 돼. 그런 거 있었던가. 아이 마음이 좋을 때뿐 아니라 안 좋을 때도 비가 왔어. 중학교에 가서는 마음을 잘 다스리기도 해. 아버지 어머니한테 반항도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는 남자아이는 어떤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돼. 그 아이와 함께 배우는 게 있었는데, 그날은 남자아이 마음이 일렁이고 어김없이 비가 내렸어. 비가 그 아이가 사는 지역에 다 오지 않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둘레에 조금만 내렸다면 좋았을걸. 그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겠군. 아이는 자기 때문에 피해 입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고 여자아이를 만나기 전날 기상청 홈페이지에 비가 온다는 글을 적어.

 

 어느 날 아버지는 남자아이 마음을 눈치채고 좋아하는 여자아이한테 마음을 전하라고 해. 남자아이는 마음먹고 여자아이한테 자기 마음을 말하려 해. 남자아이는 잘 안 될 걸 먼저 생각하고 기상청 홈페이지에 비가 많이 올 테니 댐을 높이 쌓으라고 적어. 댐 쌓기 어려울 텐데. 남자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를 좋아한다고 했대. 그래도 비는 많이 왔어. 아이 마음이 들떴으니 그럴 수밖에. 남자아이는 버스를 타고 먼 곳으로 가고 비가 잘 내리지 않는 나라에도 갔대. 한곳에만 비가 내리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겠지. 남자아이 혼자 다녔을까. 여자아이는 같이 갔을지. 비가 왜 오는지 아는 남자아이 아버지가 함께 갔을지도.

 

 이야기는 나름대로 괜찮았어. 여기 나오는 남자아이와 나이가 비슷한 아이가 보면 좋아할 것 같기도 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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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병동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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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어떤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돌아가고 싶은 때 없다. 그런 때도 없다니. 어쩐지 슬프구나. 그렇다고 지금 삶이 아주 좋다는 건 아니다.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내가 이 세상에 아예 오지 않은 때로 가고 싶다. 그게 가장 낫겠다. 이것도 돌아가고 싶은 때라 해야 할까. 내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없어진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정말 내가 없었던 때로 가면 난 그걸 아예 모르겠다. 지금 난 진짜 나일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다니. 난 이런 바람도 있다. 내가 죽으면 나를 알았던 사람 기억에서 아주 사라지는 거다.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구나. 살면서 나를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좀 우습구나.

 

 나 자신이 아주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좀 이상하구나. 그건 왜일까. 내가 나를 부정하는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난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자신이 없다 여겼는데. 지금은 그런 걸 자존감이 낮다고 말한다. 내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못하다니.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난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이기를 바라는 걸까. 이것도 조금 슬프구나. 평생 이럴 것 같다. 이런 생각보다 앞으로는 나를 좋아해야겠다 생각하는 게 나을까. 좋게 생각해야 좋을 텐데. 난 모든 걸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언제부터 그런 사람이 됐을까. 어렸을 때는 좀 달랐을지도 모를 텐데. 다 생각나지 않지만 난 어렸을 때도 남과 사귀기 무척 어려웠다. 어떻게든 친구가 있기는 했는데 내가 먼저 말하지 못한 것 같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자주 보다보니 말했다. 안 좋은 성격이 여러 가지에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하야사카 루미코는 의사다. 루미코가 일하는 병원에는 거의 말기암 환자가 오는 듯하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고 보람을 느끼기도 할 텐데, 말기암 환자만 상대하면 우울하지 않을까. 그런 말은 없구나. 루미코는 둔감하고 사람 마음을 잘 몰라서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도 한다. 일부러 루미코가 다른 사람 마음을 안 좋게 하려는 건 아니다. 말기암 환자나 식구는 다른 사람 성격에 마음 쓸 여유는 없겠다. 의사도 사람인데, 그런 생각하지 않고 아픈 사람한테 마음 써주기를 바라겠지. 그러고 보니 나도 아픈 사람 마음을 생각하는 의사가 많기를 바랐구나. 그런 걸 바라지 않아야겠다. 어느 날 루미코는 꽃밭에서 청진기를 줍는다. 주인이 없어서 루미코가 그걸 쓴다. 그걸 환자 가슴에 대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픈 사람이 생각하는 게 들렸다.

 

 다른 사람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청진기라니. 보통 사람이 아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마음이구나. 아니 그 청진기는 누구의 마음이든 알게 해줄까. 루미코는 아픈 사람 마음만 들었다. 청진기는 아픈 사람 마음뿐 아니라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도 보이게 했다. 그리고 돌아가고 싶은 때로 돌아가게 해줬다. 그 삶은 가지 못해서 아쉬워한 삶이다. 엄마가 배우면서 자신한테는 배우가 되지 못하게 한 걸 줄곧 원망한 지도리 사토코, 언제나 일만 하느라 식구들과 함께 지내지 못한 걸 아쉽게 여기는 휴가 게이치, 딸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게 한 걸 미안하게 생각하는 유키무라 지토세, 중학생 때 자신이 용기를 내지 못해 친구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야에가시 고지. 네 사람은 루미코가 담당한 사람이다.

 

 지금과 다른 삶을 경험하면 어떨까. 아쉬움 없을까. 네 사람은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경험한다. 그 삶은 실제와 다르게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살든 사람은 아쉬움을 가질 거다.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사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한사람은 말기암이었는데 죽지 않는다. 그러면 식구가 좋아해야 하는데 아내와 장모는 반기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산 사람 마음을 아는 게 좋을지 모르고 죽는 게 나을지. 루미코가 아픈 사람한테 청진기를 대고 그 사람이 돌아가고 싶은 때로 돌아가 다시 산 게 잘 안 되기도 한 건 그 사람 마음에 그런 바람이 있어서는 아니었을까. 사람은 다할 수 없다. 두 가지에서 하나를 고르면 하나는 가질 수 없다. 자신이 결정한 걸 믿고 사는 것도 괜찮겠다. 휴가 게이치는 좀 다르구나. 건강할 때 식구들과 시간을 보냈다면 더 나았을 거다.

 

 

 

희선

 

 

 

 

☆―

 

 “선생님, 하루하루를 소중히 하세요. 누군가 죽게 되고,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 정도가 딱 좋지 않나 싶어요.”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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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3-23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 하루를 소중히에 큰 한표 던집니다 :-)

희선 2020-03-24 00:53   좋아요 0 | URL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도 살아야 할 텐데, 그걸 알아도 하루 하루를 그냥 보낼 때가 더 많네요 날마다는 그러지 못해서 며칠이라도...


희선

초딩 2020-03-24 01:09   좋아요 1 | URL
과거의 어떤 하루를 생각하다 보면
그 하루를 생각하는 지금의 하루도
미래의 어느 하루의 회상이 되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이 생생함이 회상의 대상이 된다는게 믿을 수 없고요. 그 생생함을 꼭 붙잡아두고 싶은데 그 노력마저도 추억이 되어버리고요.

자꾸 반복되고 반복되는 생각에
영원회귀의 부조리 늪에 빠지는 것 같아

지금을 사는데만 한정해봅니다.

희선 2020-03-24 01:43   좋아요 1 | URL
살면서 별거 아닌 날도 나중에 떠올릴까 하는데 그런 일이 아주 없지 않기도 하더군요 지금은 늘 지나가는군요 사람은 정말 지금을 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거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시간은 붙잡지 못하니... 그래도 어떤 순간은 그곳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떠올리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 일이 많지 않지만...

지난 일을 자꾸 아쉬워하지 않고 앞날을 걱정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사람은 지금보다 지난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더 생각하는군요 지금도 바로 지나가겠지만, 그래도 지금 할 걸 하면 좋겠네요


희선
 
한밤중에 나 홀로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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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겠지. 다음으로 무서운 건 뭘까. 어둠. 밤에는 바깥에 돌아다니지 마라 하고 해가 지면 산을 넘어가지 마라 한다. 어둠은 어둠에 녹아들기 쉽다. 낮이라고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귀신이 돌아다니는 것도 어두울 때다. 무서운 짐승도 밤에 먹이를 잡아먹는다. 옛날에는 호랑이가 있어서 밤에 돌아다니지 마라 했겠지. 그 많던 호랑이는 이제 없지만.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은 적이 있었을지 몰라도 사람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호랑이를 잡았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사람이 살 곳이 늘어서 호랑이가 나타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산짐승은 조용히 산에 살고 싶었을 텐데. 한국에서 사라진 게 호랑이만은 아니구나. 호랑이가 아주 사라진 건 일제강점기 때다. 일본은 한국말과 문화재뿐 아니라 동물까지 없애려 했다.

 

 지금까지 난 공포소설을 별로 만나지 않았다. 책을 보면 거기에서 뭔가 뜻을 찾아야 해서. 이건 책을 읽고 쓴 다음부터 생긴 버릇은 아닐지. 무서운 이야기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지도. 세상에는 뜻깊은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기도 하다. 공포소설이라 해도 뭔가를 담을 수도 있겠지. 아니 나도 잘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거 까닭을 모르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난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것도 어느 순간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 원한이 깊으면 죽어도 죽지 못하겠지. 그런 건 옛날 이야기일까. 억울하게 죽은 여자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것. 두번째 이야기 <검은 여자>는 그야말로 귀신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얻으려고 남자를 병실에 가둔다. 처음에 좋아한 사람도 아닌데 그 사람 이름을 부르고. 여자한테 잡혀간 남자는 달아나려 하지만 끝내 달아나지 못한다. 어둠속에 검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이 긴 여자가 있으면 조심하길.

 

 여자 귀신만 무서운 건 아니다. 진짜 자신을 숨긴 사람도 있다. <히치하이커(들)>에서는 차를 얻어탄 사람 분위기가 안 좋아 보였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더 위험한 게 아닐까 했다. 뉴스에 나오는 연쇄살인마. <취객들>에서는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고 자는 사람이겠지 한 사람이 움직였을 때 중요한 걸 알게 된다. 편의점에서 밤에 일하는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죽이는 사람. 사람이 무섭구나. <Hard Night>에서 형사는 자신이 한 마약거래를 들키지 않으려고 폭력배 사무실에서 장부를 빼내오려 했다. 형사는 사람을 죽이고 약에 취해 좀비처럼 된 사람도 죽인다. 형사 아들은 아팠다. 형사가 돈을 마련하려 한 건 아이 병원비 때문이었을지도. 형사는 다른 경찰이 왔을 때 힘들게 다른 건물로 갔는데 장부를 놓고 왔다. 형사는 다시 돌아갔을까. <구멍>은 평소에는 얌전한테 술을 마시면 힘을 가진 듯한 남자가 나온다. 남자는 장애인 여자아이한테 나쁜 짓을 했다. 남자는 지금까지 술을 마시고 나쁜 짓을 하고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풀려났다. 이번에는 한쪽 팔이 구멍에 끼어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그렇게 있다 죽을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셔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고 남자가 한 짓 용서할 수 있을까.

 

 어둠이 무서운 이야기 <크고 검은 존재>. 마지막에 날이 밝아오자 크고 검은 건 물러났다. 희수는 집으로 돌아갔을까. <마지막 선물>은 따스한 이야기다. 조금 무서우면서도 따스하다고 해야겠다. 여기에도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나오다니. 그 여자는 다리가 없었다. 태풍이 몰아친 날 ‘나’ 는 개울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살았다. ‘나’는 이제 아내한테 마지막 선물을 주려 한다. 그건 자신이 없어도 앞으로도 살라는 말이다. 모두 다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구나. 하나라도 따스한 이야기가 있어서 괜찮았다.

 

 

 

희선

 

 

 

 

☆―

 

 모든 죽은 자들은 사랑하지만 지상에 남겨둘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위해 딱 한번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게 죽음의 법도다. 죽은 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마지막 선물. 나는 열두 살 여름에 엄마한테서 그 선물을 받았다.  (<마지막 선물>에서,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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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20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는 느낌을 갖곤 해요.
마치 어떤 천사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도와 줄 때 꼭 아버지가 보낸 것 같단 생각이 들거든요. 확신할 수 없어서 누구에게 말은 안 하지만... ㅋ
이것에 대해 언제 기회되면 글을 써 보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가 될 테지만요. ㅋ

희선 2020-03-23 01:21   좋아요 0 | URL
세상을 떠난 누군가 자신을 도와준다고 여기는 거 좋은 듯해요 페크 님은 아버님이 도와주셨다고 느끼셨군요 그렇게 느끼셨다면 맞을 거예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모르는 힘에 도움을 받았다고 느낄 때도 있으니... 옛날에는 조상이 돌봐준다는 말 많이 했잖아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페크 님은 페크 님 아버님을 떠올리시겠습니다


희선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문학동네 시인선 123
정끝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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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이름부터 시네요. 정끝별. 이름은 알았지만 시집은 이번이 두번째예요. 몇해 전에 본 시집에는 어떤 시가 담겼는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일자리 찾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이야기가 담긴 시를 소개했는데. 아버지 이야기도 있었네요. 이번 시집을 보다가 정끝별이 말을 가지고 놀았던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말을 가지고 놀지만 가볍지 않은 듯합니다. ‘애너그램을 위한 변주’를 제목 밑에 쓴 시가 여러 편인데 그 말이 없는 시에서도 말이 여러가지로 바뀝니다. 앞말에서 뒷말로 이어간다고 할까. 대칭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게 재미있네요. 이런 거 처음은 아닐 듯합니다. ‘살자살자살자, 여기를 이겨! (<깁스한 시급>─애너그램을 위한 변주>, 61쪽)’ 이 말은 힘을 주려고 한 말이겠지요. 힘들어도 죽고 싶은 마음을 이기기를.

 

 

 

육 남매 말썽 피울 적이면 엄마는 말했다

 

열 살까지는 부모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어선 다 니들 책임이라고

 

엄마는 책임을 다해 살았다

 

나도 그때의 엄마가 되어 딸에게 말한다

 

열 살까지는 내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으면 네 책임이라고

 

스무 살 스무 살까지만 하며 엄마처럼 살았다

 

보청기 잡음에 전화로도 기차 화통이신

여든다섯 엄마는 책임을 초과해 여태껏

쉰셋 늙은 딸 아침을 알람중이시다 그만

일어나라 밥 먹었냐 따순 밥 먹고 나간 자식들

안 비뚤어진다 파김치 시겠다 가져가라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

 

두 딸이 스무 살 스무 살이 되면

희망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조차도

 

-<삼대2>, 62쪽~63쪽

 

 

 

 제목이 <삼대2>라는 건 첫번째도 있다는 말이군요. 어머니, 딸, 손자 이렇게 삼대겠지요. 부모는 자식이 몇 살이어도 걱정한다잖아요. 어머니는 딸이 어릴 때는 ‘스무 살 넘으면 네 책임이다’ 하고는 쉰셋 딸을 아침에 깨우는군요. 김치까지 가져가라 하고. 딸이 알아서 할 텐데. 딸은 ‘난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그러겠지요. 부모와 자식 사이는 끊기 어렵고 걱정 안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엄마는 엄마고 아이는 아이죠. 옛날에는 엄마와 아이 사이가 무척 가깝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도 그런 사람 없지 않겠습니다. 그런 걸 부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누구하고든 적당하게 거리를 두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 거리를 많이 두었지만. 그런 제 마음 차가운 걸까요. 마음속에 있는 걸 잘 말하지 못합니다. 이건 거리하고는 상관없는 거군요.

 

 

 

경비업체 직원이 죽었다 새벽 귀갓길이었다

 

잠시 귀국해 밤새 놀다 취한 유학생들에게 맞아 죽었다

강남대로변에서 일곱 청년에게 맞고 또 맞았으나

새벽기도 가는 행인 십수 명이 지나갔고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 수십 대가 지나갔으나

때리다 지친 일곱이 다 달아난 후에야 중환자실로 옮겨져

스무날 만에 숨진 그는 스물네 살이었다

 

생모는 동생을 낳다가 죽었다

생부는 그길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은 입양되고 그는 조부모가 거두었으나

조부모마저 이혼하면서 그도 보육원에 갔다

동생을 입양한 부부가 보육원에 봉사왔다 그를 만났으나

세 살 동생과 다섯 살 형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죽고 난 뒤 그가 살던 단칸방 서랍에는 유서인 듯

입대 통지서와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이 있었다

군복무 중인 동생이 유해를 거둬 생모 산소에 뿌렸다

 

집 가는 길이 가장 어둡고 쓸쓸해 눈 감고 걸었던

밤새 어둠을 바라보느라 핏발 선 그의 두 눈이

새벽 취객들 활보를 바로 보지 못해

대형 교회 십자가 불빛 아래서 맞고 또 맞는 동안

십수 명이 지나가고 수십 대가 지나가는 동안

 

그가 마지막까지 바라보았던 건 누구 눈이었을까

 

-<공범>, 94쪽~95쪽

 

 

 

 어쩌면 이 시는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닐까 싶어요. 무언가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 많겠지요. 저라고 누가 맞는 걸 보고 막을 수 있을지. 못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한테 괴롭힘 당하는 사람을 그저 보기만 해도 괴롭히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하지요. 잠시 귀국한 유학생과 보육원에 살았다는 이십대 사람은 대비되는군요. 술을 먹고 남을 때리다니. 그렇게 할 거면 술을 마시지 않아야지요. 슬픈 이야깁니다. 그냥 지나간 차 그냥 지나간 사람은 다 공범입니다. 남일을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만 있지 않을 거예요. 누군가를 도와주지는 못한다 해도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세상을 나타내는 시도 있어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자신. 지금 건망증이 있는 건지 그런 걸 말하는 시 <생각서치>도 있습니다. 저는 마트에서 물건 많이 못 사고 기억도 잘하는 편이어서 아직 공감이 가지는 않아요. 이런 말을 하다니. 언젠가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될 날이 올지. 저는 단순하게 살아서 기억해야 할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잘못하는 일은 아주아주 가끔입니다. 잘 잊어버리지만 기억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건 조금 쓸데없는 거. 다른 사람이 읽은 책 같은 거. 요새는 잘 모르겠어요. 예전보다 집중력이 떨어진 듯도 합니다. 글을 볼 때는 집중해야 할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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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3-17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 님, 안녕하세요? 제 서재에 댓글 달아주셨는데 저는 이제야 인사를 드립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참, 평소에 느끼는 거지만 희선 님은 시인이신가봐요?^^

희선 2020-03-18 02:22   좋아요 0 | URL
언제나 그렇지만 지나갈 때는 그렇게 빠르지 않은데, 지나고 나면 시간이 빨리 갔다고 생각합니다 이달도 반이 넘게 갔네요 다른 때하고는 다른 봄이기도 합니다 세계 어디나 다르지 않겠습니다 시를 잘 보고 싶기도 하고 글 잘 쓰고 싶기도 한데, 여전히 다 못합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라로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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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사귀는 건 어떤 걸까.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마 죽을 때까지 알 수 없겠지. 부모, 친구, 다. 서로 모르기 때문에 섭섭하고 잘못 알기도 하겠다. 부모는 자식이 어떻기를 바라고 그런 걸 저도 모르게 강요한다. 자식은 난 어때야 해 하면서 힘쓰고, 그렇게 오래 살 수도 있겠지만 힘들 거다. 자식이. 부모가 나빠서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부모도 자식도 서로 자기 이상을 밀어붙이지 않는 게 좋겠다. 자기 부모가 그러는 것도 힘들 텐데 시부모가 그런다면 어떨까. 그러면 더 숨막히겠지. 시부모는 자식을 잃으면 며느리한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만약 아들이 아닌 딸이 죽었다면 어떨까. 사위한테 기대려 하지 않겠지. 이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듯하다.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결혼하면 남편 집안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죽어서도 남편 집 사람이어야 하다니. 죽으면 부모뿐 아니라 남편도 다 없어질 텐데. 그나마 한국은 여성이 결혼해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이 말 언젠가도 했구나. 일본은 여성이 결혼하면 성이 바뀌고 헤어지면 본래 성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좀 귀찮지 않을까. 어쩌다 일본은 그렇게 됐을까. 중국은 여성이 결혼해도 성 안 바뀌겠지. 한국이나 일본 다 가부장제기는 해도 한국은 여성이 조금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도 여성 집안을 따르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어느 날 가요코는 결혼하고 열다섯해를 함께 산 남편이 시내 호텔에서 뇌졸중으로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남편은 가요코한테 도쿄로 출장간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시내 호텔에 있었다. 이런 말이 나오고 가요코 남편 통장에서 사오리라는 여자한테 달마다 돈을 보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남편이 아주 나쁘구나 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구나. 가요코한테 동정이 가기는 했다. 그런데 가요코가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살 수 있겠다 하는 걸 보니 그리 좋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잃고 마음이 약해졌는지 가요코한테 의지하려 했다. 시아버지는 치매 손위 시누이는 은둔형 외톨이였다. 가요코가 부담스럽기는 했겠다. 남편도 없는데 남편 부모나 시누이까지 보살피려면.

 

 나가사키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다카세라는 집안은 그 지역에서 잘 알려졌나 보다. 가요코는 거의 감시 당했다. 별거 아닌 일도 시어머니가 알았다. 그런 데서 살면 숨막힐 듯하다. 난 밖에 나가도 아는 사람 거의 못 만나는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기는 하구나. 가요코가 사는 곳은 그렇게 좁은 곳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남편이 죽고 시부모는 불단을 가요코 집에 놓는다. 시어머니는 불단에 향을 올린다면서 가요코가 없을 때 모르는 사람과 집에 들어왔다. 식구라 해도 자신이 없을 때 집에 들어오면 안 좋을 거다. 함께 살지 않으면 부모나 자식 집이라 해도 남의 집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가요코는 자신한테 기대려는 시어머니가 부담스러워서 인척관계종료서라는 걸 알고 구청에 가서 낸다. 서류로는 그렇게 된다 해도 사람 인연은 바로 끊을 수 없을지도. 가요코는 남편과 살면서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좋았던 때도 조금 있었다. 가요코는 남편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 말하지 않은 사람도 문제지만. 서로 말한다고 해서 상대를 다 알지 못할 거다. 말 안 하면 더 모르겠지. 가요코가 며느리를 그만두기로 했지만 시어머니와 아주 모르는 사이로 지내지는 않겠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그게 나을 듯싶다. 시간이 흐르면 시어머니도 마음을 추스르고 집에만 있던 시누이도 조금 달라지겠지. 부모 자식이 다 서로한테 의지하지 않으려는 게 나을 듯싶다.

 

 사람 인(人)은 두 사람이 기댄 모습이라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더 기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담도 감당할 수 있어야겠지. 난 딱히 남한테 기대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그런 모습이 보일 때도 있을까. 하나 둘 나를 떠나는 듯해서. 글만으로는 남의 마음 더 모르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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