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의 섬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4
에도가와 란포 지음, 채숙향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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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은 에드거 앨런 포를 본떠서 만들었다. 일본 미스터리를 알게 되고 에도가와 란포를 알았는데 책은 못 본 것 같다. 책이 하나도 없었던 건 아닐 텐데. 옛날 사람이라 생각해서 못 본 걸지도. 에도가와 란포는 한국이 조선에서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1965년까지 살았다. 란포가 태어난 1894년은 조선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해다. 란포는 잠시 마산에 살았던 적도 있다고 한다. 신기한 일이지만 그때 그렇게 한국에 살았던 사람은 란포만이 아니다. 이름을 우연히 알고 에도가와 란포상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에도가와 란포는 잘 모른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권에서는 에도가와 란포 이야기를 한다. 그런 책도 많겠구나. 란포는 일본에서 추리소설을 쓰는 많은 작가한테 영향을 미쳤다. 란포가 만들어 낸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도. 란포는 아서 코난 도일이나 에드거 앨런 포 같은 다른 나라 작가한테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는 짧은 이야기 두편 <심리시험> <지붕 속 산책자>와 긴 이야기 두 편 <도플갱어의 섬> <검은 도마뱀> 네 편이 실렸다. 세 편에서는 아케치 고고로라고 하는데 <도플갱어의 섬>에서는 기타미 고고로라고 한다. 이 사람은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이겠지. 탐정이어도 성이 다르니. 보통 추리소설은 살인사건이나 어떤 일이 일어난 뒤에 탐정이 수수께끼를 풀고 범인을 찾는데 여기 실린 건 그렇지 않다. 범인이 누군지 먼저 알려주고 범인을 찾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 평범하지 않은 범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 실린 소설을 보면서 란포가 여기 나온 걸 하고 싶어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런 걸 상상하고 즐긴 듯하다. 란포 자신을 소설에 쓰기도 했다.

 

 첫번째 소설 <심리시험>을 보니 도스토옙스키 소설 《죄와 벌》이 생각났는데 그 소설을 보고 이걸 썼다고 한다. 비슷한 건 수전노인 할머니를 죽이는 거다. 그런 사람은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죄와 벌》은 읽지 않았지만 그건 알았다. 친구 하숙집 주인을 죽이고 돈을 훔친 후키야 세이이치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아케치 고고로한테 딱 걸린다. 돈만 훔쳐도 됐을 텐데 왜 사람도 죽인 건지. <지붕 속 산책자>에도 별난 사람이 나온다. 고다 사부로는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고 하숙집도 자주 옮겨 다녔다. 란포도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이사를 자주 다녔다고 한다. 그런 건 란포와 비슷하다. 고다는 지은 지 얼마 안 된 하숙집에 살게 되고는 벽장에서 잤다. 어느 날 고다는 천장으로 올라가고 그곳을 돌아다니면서 하숙집 사람들을 엿보았다. 그러다 천장에서 독약을 떨어뜨려 사람을 죽인다. 그런 게 뭐가 좋다고 한 건지. 그 일도 아케치 고고로가 알아낸다.

 

 란포가 쓴 소설에는 <괴인 20면상>이 있다. 20면상은 변장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던가. 여기 실린 소설에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 지붕 속을 다니던 고다 사부로는 변장을 즐기기도 했다. <도플갱어의 섬>에서 히토미 히로스케는 자신과 얼굴이 아주 닮은 고모다 겐자부로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고모다가 되려 하고 그렇게 했다. 고모다는 부자였다. 히토미 히로스케는 이상향을 만들고 싶었다. 그걸 만드는 데 고모다 재산을 거의 다 쓴다. 히토미 히로스케가 만든 곳은 어쩐지 이상하다. 히토미는 그곳이 좋은가 보다. 돈이 없으면 거기 있던 사람들은 다 없어질지도. <검은 도마뱀>에도 변장을 잘하는 여자 도둑 미도리카와 부인이 나온다. 이거 진짜 이름일까. 여자 도둑을 검은 도마뱀이라 한다. 여기에서는 검은 도마뱀과 아케치 고고로가 대결한다. 적이었던 둘은 서로한테 마음이 기울기도 한다. 이건 연극이나 영화로도 만들었다고 한다. 검은 도마뱀뿐 아니라 아케치 고고로도 변장을 잘했다. 검은 도마뱀도 이상한 취미를 가졌다. 아름다운 보석을 훔치는 건 그렇다 쳐도 사람을 박제로 만들다니. 그런 건 돈 많은 사람이 가질 만한 취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이야긴지 잘 모르지만 란포가 쓴 소설에는 《인간의자》가 있는데, 검은 도마뱀은 사람을 의자에 넣어서 끌고 가기도 한다. 란포는 추리소설에 괴기 환상도 더했다. 멋진 환상이 아닌 이상한 환상이구나. 란포가 이런저런 상상하기를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닐까 싶다. 란포는 여기 저기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글로 쓰는 걸 더 좋아했다. 소설은 밤에 꾸는 꿈과 다르지 않겠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 나온 어떤 사람은 란포가 그린 세상에 들어가고 싶다고도 했다. 소설에 나온 이야기지만 실제로도 그런 사람 있을까. 책을 보고 나면 거기에서 빠져나와야 할 텐데. 많은 사람이 그러겠구나. 현실이 힘들어도 꿈꾸면서 살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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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fi 문학과지성 시인선 511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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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자면서 얼마나 많은 꿈을 꿀까. 꿈을 꿔도 깨고 나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더 많아. 무언가를 보고 자면 그게 꿈속에 나오기도 하고 그 일은 같은 것만 되풀이되기도 해. 어떤 때는 친구가 나오기도 해. 무서운 꿈은 어떤 게 있을까. 귀신 같은 게 나온 적 있기도 한데 모습은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아. 꿈속에서 뭔가한테 쫓기면 잘 뛰지 못해. 이건 실제로도 그럴 것 같아. 무서운 게 보이면 빨리 달아나고 싶어도 발이 그곳에 얼어붙기도 하잖아. 그런 일은 꿈에서 더 자주 일어나던가. 실제로는 그런 일 겪고 싶지 않기는 해. 무서워도 꿈은 깨고 나면 마음이 놓이지만 현실에선 죽을지도 모르잖아. 살다 죽으면 그런가 보다 해도 죽임 당하면 아프고 괴로울 거야. 이런 생각도 하다니.

 

 꿈을 꾸지 않아도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은 자신이 꾼 꿈을 시로도 쓰겠군. 아니 꿈처럼 썼을까. 강성은 시집에 실린 시를 보니 꿈 같아. 춥고 어둡고 길고 긴 꿈. 춥다고 느낀 건 눈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어떤 사람은 늦은 밤에 일하다 사무실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끝없이 눈이 내리고 그 사람은 거기에 갇혀. 잠을 깨야 사무실에서 나올 수 있을 텐데. 눈, 유령이라는 말도 자주 나와. 시 제목이 유령Ghost인 시가 여러 편이야. 죽은 사람도 유령과 다르지 않군. 죽은 뒤에도 자꾸 무언가를 하는 사람 이야기도 있어. 그건 정말 죽은 걸까.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을 나타내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지금 들었는데.

 

 

 

창문에 돌을 던졌는데

깨지지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밤이면 더 아름다워지는 창문

 

환한 창문에 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어느 날엔 몸을 던졌는데

나만 피투성이가 되고

창문은 깨지지 않는다

 

투명한 창문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채광>, 17쪽

 

 

 

집은 햇빛에 불타고

나는 깨끗한 물에서 잠들었다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여름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환상의 빛>, 20쪽

 

 

 

 앞에서 말한 눈이나 유령이라는 말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 시군. <채광>도 <환상의 빛>도 꿈 같아서. 이것 말고 꿈 같은 시는 더 있어. <채광>을 보면 두 가지가 생각나.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꿈속 일이. 죽은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겠어. 죽은 사람이 아무리 창문에 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고 아무도 모를 테니 말이야. 이것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에 들어가겠어. 여러 시 가운데서 이 두 편을 함께 옮기다니.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시 <환상의 빛>을 보니 무척 더웠던 2018년 여름이 떠오르기도 했어. 그러고 보니 <환상의 빛>이란 시도 세 편이군.

 

 

 

새벽 두 시 유모차를 밀며 가는 젊은 여자

한없이 맑은 고층 빌딩 유리창으로

날마다 날아가 부딪치는 여자

여름에도 겨울에도 맨발로 다니는 여자

혼자 동물원에 가는 여자

눈이 내릴 땐 죽고 싶은 여자

불가능과 불가해와 영원이라는 말을 늘 생각하는 여자

파도가 검은 빛으로 변하는 걸 지켜보는 여자

죽은 아이를 업고 다니면서도

왜 몸이 무거운지 모르는 여자

깊은 밤 거울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가라앉아도

다시 살아 기어 나오는 여자

아름다움을 슬픔으로

사랑을 고통으로 아는 여자

그날 이후 얼음이 된 여자

얼음을 도끼로 내리치는 여자

매일 밤 베틀 앞에서 자신의 수의를 짜는

죽지 않는 늙은 여자

 

-<Ghost>, 43쪽

 

 

 

 제목이 Ghost인 시에서 한 편이야. 여자 이야기여서 옮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이 시에 나오는 여자들은 왜 저런 걸 하는 걸까. 갑자기 누군가한테 죽임 당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별걸 다 생각했군. 가끔 그런 소설을 봐서 그런지도. 요즘 세상이 무섭기도 하지. 여기에는 <유령선>이라는 시도 있는데, 그걸 보니 세월호가 생각났는데 그걸 생각하고 쓴 시일지(위에 옮긴 것도 이제와서 세월호가 생각나는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 우리 출항은 순조로워 보였는데 / 날씨는 맑았고 / 우리가 당도할 항구 날씨는 더 맑고 따뜻했는데 /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유령선>에서, 53쪽)” 이 부분을 보니 더 그랬어.

 

 난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실린 시에는 실제 일어난 일도 있을지도. 죽음을 기억하려고 한 걸까. 꼭 죽음만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따돌림 당하고 약한 사람을 생각하기도 해. 거의 힘없는 사람을 생각하는 거군. 세상에는 힘없는 사람 많지. 꿈이라도 좋다면 나을 텐데. 안 좋은 꿈만 자꾸 꾸고 쉽게 깨어나지도 못하는군. 아니 꿈이라면 언젠가는 깨어나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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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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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 한번 오르면 산에 빠져든다고 한다. 제대로 해야 그렇겠지. 내가 산에 오른 건 학교에서 수학여행 갔을 때와 교회에서 소풍 갔을 때다(예전에 잠깐 교회에 다녔다). 산에 오르려고 준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가서 올랐다.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어서 그럴 수 있었구나. 그래도 힘들었다. 평소에 걸어서 다른 준비하지 않아도 산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평평한 땅을 걷는 것과 오르막을 걷는 건 다르지만. 산에 오른다 해도 오르막길만 이어지지는 않겠지. 그러려면 크거나 높은 산이어야 할까. 내가 오른 산 하나는 모르겠다. 거기는 좀 높았던 것 같은데. 모악산을 넘으면 김제 금산사가 나온다. 산을 오르는 쪽은 전주고 내려가면 김제였던가. 그걸 반대로 할 수도 있는지.

 

 수학여행은 설악산으로 가서 설악산을 올랐다. 오래전이어서 거기는 어딘지 잘 모르겠다. 지리산에도 갔다. 여기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이었다. 혼자가 아니고 산에 오르고 싶어서 오른 게 아니어서 그때 어땠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단체로 갔다 해도 산에 오를 때는 혼자였다. 함께 걸을 친구가 없어서. 이런 거나 생각나다니. 어쩌면 처음에는 누군가와 함께 걸었을지도. 걷다가 떨어졌겠지. 힘들다 해도 난 잘 걷는다. 다른 사람은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 않고 난 갔다. 아주 높지 않아서 그랬을 거다. 사람도 많았다. 지금도 그런 곳에 가는 사람 많을 듯하다. 난 가지 않지만. 한국에도 여러 산에 오르기 좋아하는 사람 있겠지. 산 많으니까. 산에 가면 쓰레기 버리지 않고 다 그대로 가져오기를 바란다. 산에 사람이 많이 가도 안 좋을 거다. 꽃과 나무는 보기만 하고 꺾지 않기를. 지금은 산에서 음식 못 해 먹겠지. 잘못하면 산불 날 수도 있을 거다. 조심해야 한다. 이런 걸 생각하다니. 내가 좀 우습구나. 이 책에서 그런 걸 강조하지는 않지만 조심해야 한다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 산에 오를 때는 신발에 흙이 묻어 있으면 안 된다. 흙속에 다른 나라 식물 씨앗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조심해도 다른 나라 식물 씨앗이 오기도 할 거다.

 

 내가 하는 운동이라고 해봤자 걷기뿐이다. 그것도 날마다 하지 않고 어쩌다 한번이다. 그건 운동이 아니고 그냥 밖에 나가는 건가. 산이 좋아서 오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끔 생각하려고 산에 오르기도 하겠지. 산에 자주 올라야 그런 생각도 할 것 같은데 마음에 드는 신발을 사고 처음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다. 산에 오르면 이것저것 생각을 안 하게 되기도 한다던데. 둘레 풍경이 좋아서. 에토 리쓰코는 결혼해야 할까 그만둘까 했는데 산꼭대기에 오르고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겼다. 그리고 불륜해서 조금 싫어하는 일터 동료를 다시 보게 되고 친해진다. 나중에 그날 함께 가지 못한 한사람은 두 사람 사이가 달라진 걸 보고 조금 아쉽게 여긴다. 자신만 따돌림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겠지. 세 사람은 그런 게 있다. 어쩐지 난 늘 혼자였던 것 같다. 지금도 다르지 않구나.

 

 지나간 시대를 붙잡고 있는 것도 안 좋아 보이겠지. 미쓰코는 여전히 거품시대를 살았다. 겉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난 이런 생각도 든다. 다시 사기 싫어서 예전에 산 비싼 걸 그대로 쓰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게 아주 없지 않았겠지만, 미쓰코는 남한테 보여주고 싶기도 했나 보다.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면 안 좋을 텐데. 그래도 미쓰코는 맞선 본 상대와 산에 오르고 산에 오르기 좋아하는 예전 자신을 다시 만난다. 이제 미쓰코는 조금 솔직해지겠지. 혼자 산에 오르기 좋아하는 마키노 시노부는 두번이나 끝까지 가지 못한 야리가타케에 세번째로 간다. 처음에는 대학 산악 동아리 선배가 아파서 모두가 가지 않았고 두번째에는 아버지와 올랐는데 아버지 무릎이 아파서 그만둬야 했다. 세번째에는 혼자 오르리라 했는데 산에서 만난 두 사람이 함께 가자고 한다. 시노부는 내키지 않았지만 함께 간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혼자 산에 오르게 된 게 아니었다는 걸. 시노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산에 올랐다. 아버지가 시노부한테 산에 오르는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다음에는 어머니도 함께 산에 오를지도.

 

 여러 산에 오르는 여러 사람은 혼자면서 이어져 있기도 하다. ‘여자들의 등산일기’로. 거기는 산에 오르려는 사람이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사이트다. 사이는 아주 좋지 않아도 편하게 산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식구일까. 언니는 생각할 게 있어서 동생한테 함께 산에 오르자고 한다. 다음에는 조카도 함께 오른다. 그다음에는 언니네 식구가 다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를 때 누군가 함께 있으면 기댈 수도 있어야겠지. 언니네 식구는 그걸 하게 된 걸지도. 늘 기대는 건 안 좋겠지만 가끔은 가까운 사람한테 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 세상에 걱정거리 하나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다들 무언가를 짊어지고 산다. 여기 나오는 사람은 산에 오르고 자신을 마주하고 앞으로 살 힘을 얻는다. 나한테는 그게 책일까. 책을 봐도 괜찮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산에 오르는 것이든 다른 것이든 자기 마음을 좀 괜찮게 해주는 게 있으면 사는 게 많이 힘들지 않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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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눈의 고양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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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는 흑백방이 있다. 본래 그곳은 미시마야 주인 이헤에가 바둑을 두는 곳이었다. 어느 날 이헤에와 바둑을 두려고 온 손님을 미시마야에 온 조카 오치카가 이헤에 대신 상대했다. 바둑 상대는 아니고 이야기를 들었다. 첫번째 책 《흑백》은 그렇게 시작했다. 몇해 전에 봐서 거의 잊어버렸는데 편집후기에 그런 말이 있어서 그랬지 했다. 오치카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자신만 힘들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소설을 봐도 그런데. 흑백방에서 하는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다. 사람이 아닌 것이 힘을 쓰기도 한다. 에도 시대니까. 에도 시대에는 요괴가 있었다.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겠지. 음양사도 생각난다. 세이메이. 이름 아는 음양사는 세이메이밖에 없구나. 일본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 잘 지어낸다. 그런 일 한국에도 있구나. 어느 나라에나 있겠다.

 

 별로 좋지 않은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건지도 모르겠다. 안 좋은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 이야기 앞에 나왔던가. 《피리술사》 《삼귀》, 미시마야 변조괴담이 아닌 책에도. 에도 시대 이야기가 아닌 소설에도 그런 거 나왔던 것 같다. 미야베 미유키는 사람이 안 좋은 말이나 생각을 하면 그게 어딘가에 남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기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 그런 게 보이면 싫겠지. 보이면 밖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도. 자기 것을 남한테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남의 것도 보기 싫을 테니 말이다. 이상한 일을 겪으면 누군가한테 이야기하고 싶을까. 다른 사람한테 말해서 그 일을 다시 보고 진짜 있었던 일이구나 할지도. 아쉽게도 난 그런 일 없다. 죽기 전에 누군가한테 말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 그냥 아무 일도 없을지. 별 일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번에 미시마야에는 둘째 아들 도미지로가 돌아오고 오치카와 함께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다. 도미지로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지키는 오카쓰와 함께 옆방에서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흑백방에서 오치카와 함께 이야기를 듣는다. <열어서는 안 되는 방> 이야기를 하러 온 사람은 도미지로가 함께 있어도 괜찮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무섭기도 슬프기도 따듯하기도 한데 첫번째는 조금 무서웠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살아남고 집안 사람은 모두 죽었다. 행봉신이라는 건 정말 있을까. 바람을 들어주는 대신 다른 걸 받아가는. 좋지 않은 게 마음에 빈 틈이 생긴 사람한테 다가온 것일지도. 바람이 이뤄졌으면 하고 소금 간을 끊은 사람이 어느 날 무언가를 집으로 끌어들여서 그 집 사람은 다 이상해진다. 아니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이상해지고, 식구가 하나씩 죽자 어머니는 행봉신한테 이 집을 나가 달라고 하고 자기 목숨을 바친다. 행봉신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닌 듯도 보였다. 그게 조금 오싹했다.

 

 오치카 혼자 이야기를 듣다가 도미지로가 함께 듣고 조금 바뀌었다. 도미지로는 이야기를 다 듣고 그걸 그렸다. 오치카는 도미지로가 그린 그림을 보고 마음이 편해졌다. 소금은 사람한테 무척 중요하다. 많이 먹으면 안 좋지만 아주 안 먹어도 안 좋다. 소금은 마를 물리치기도 한단다. 몸이 안 좋으면 판단을 잘못하기도 할 거다. 에도 시대에는 정말 소금 간을 끊은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 자신이 바라는 일은 자신이 애써서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누군가와 이야기해야 자신이 하려는 게 잘못됐다는 걸 알겠지. 행봉신을 집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눈치채지 못했구나.

 

 자신이 받아들인 일이라 해도 한이 남아서 혼이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기도 할까. 자신 때문에 산 사람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미안하겠지. 자신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잇코쿠는 후계자 다툼에 희생됐다고 해야 할 듯하다. 외할아버지는 자신이 섬기는 주인을 위해 외손자를 죽였다. 잇코쿠는 자신이 외할아버지한테 죽임 당한 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곳에 몬모 목소리를 가진 오세이가 온다. 몬모 목소리는 요괴를 불러들인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오세이는 혼과도 이야기를 했다. 오세이는 잇코쿠가 성에서 나갈 수 있게 돕는다. 죽으면 자유로울 것 같은데 잘못하면 한 곳에 매일 수도 있겠구나. 잇코쿠가 성에서 나가자 거기 살던 가요히메 목소리가 나왔다. <벙어리 아씨>는 대충 이런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몬모 목소리를 가진 오세이가 마을을 떠나 말이 아닌 손짓 몸짓으로 말하는 부부를 만나고 그 뒤에는 성에서 일하고 겪은 일을 말하는 거다. 잇코쿠는 저세상으로 아주 떠나지 않았다. 연극을 하는 커다란 거미에 들어간다. 자신이 나쁜 것의 원한과 슬픔을 먹고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겠다고 한다. 잇코쿠는 지금도 그럴까.

 

 나쁜 게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막는 일을 하는 집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한 오타네한테는 무서운 일이지만 세상 사람한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도미지로는 그런 가면을 지키는 곳이 한 곳이 아닐 거다 한다. <기이한 이야기책>은 도미지로가 그린 그림을 넣어두는 오동나무 상자 이름인데, 효탄코도 아들인 간이치가 어릴 때 겪은 일을 말하는 거기도 하다. 베끼면 자신의 수명을 알 수 있는 책. 간이치도 그걸 했을지도. 그 뒤 오치카는 흑백방에서 여섯 번 혼인한 사람 이야기를 듣는다. 혼인한 남편 얼굴이 다 닮았다고 한다. 그건 혼인한 사람만 그렇게 본 듯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오치카는 마음을 먹고 효탄코도 아들 간이치를 찾아간다. 오치카는 간이치한테 간이치를 끝까지 지켜보고 싶으니 자신을 아내로 맞아달라고 한다. 오치카가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어울려 보인다.

 

 오치카는 미시마야를 떠나면 이제 나오지 않을까. 도미지로는 자신이 오치카를 이어서 이야기를 듣겠다고 한다. 도미지로는 자신한테는 그림이 있어서 큰일은 없으리라고 여긴다. 일본은 첫째가 집안 일을 잇는다. 첫째가 아닌 사람은 어딘가 데릴사위로 들어가면 좀 낫지만 일 찾기 어려운 듯하다. 도미지로는 둘째다. 흑백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 길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가는 생각 없는 걸까. 그림 잘 그린다는데. 도미지로 형인 이이치로는 어렸을 때 본 금빛눈을 가진 흰색 고양이가 사람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전에는 미시마야 아들 이야기가 거의 없었는데 《삼귀》와 이번 《금빛눈 고양이》에서는 자세하게 나왔다. 흑백방에서 오치카 다음으로 도미지로가 이야기를 듣게 해서겠다. 앞으로도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하러 손님이 미시마야에 오겠구나.

 

 

 

희선

 

 

 

 

☆―

 

 사람이 마음에 품은 간절한 바람.

 

 생이별한 아이를 만나고 싶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돌아보게 하고 싶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다. 끊이지 않는 불행을 끝내고 싶다.

 

 사람은 약하기에, 욕심을 부리기에 끝없이 바란다. 그 약함에 파고드는 행봉신은 잡아먹을 것이 없어서 어려울 일은 없다.  (<열어서는 안 되는 방>에서,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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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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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 한모퉁에 있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서 주인 조카인 오치카가 흑백방에서 이야기를 들은 지 두해가 흘렀구나. 책은 네권째인가. 오치카가 듣는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다. 이상한 이야기다.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슬프기도 하다. 책이 나온 건 두해가 넘은 듯한데 책속 사람은 두해밖에 흐르지 않았다니. 오치카가 몇살인지 잘 모르겠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오치카가 나이 드는 모습을 쓰겠다고 했단다. 이 말 전에 본 것 같구나. 오치카한테 일어난 일도 나왔을 텐데, 자세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 다시 짧게 나왔다. 오치카와 가까운 두 사람이 죽었다. 그저 사고나 병으로 죽었다면 오치카 마음이 덜 슬프고 덜 괴로웠을 텐데,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오치카 약혼자)을 죽였다. 남은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까. 예전에 써둔 거 한번 찾아볼걸 그랬다. 그냥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오치카는 여관을 하는 집을 떠나 에도에서 주머니 가게를 하는 친척집 미시마야에 오고 흑백방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과 하는 사람은 그것만으로 마음이 나아질지도.

 

 흑백방에서는 듣고 버리고 말하고 버리는 규칙밖에 없다. 오치카는 흑백방에 온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하지 않는다. 오치카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는 힘들고 슬픈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저저런 사람이 흑백방에 와서 이야기 하는 건 소설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소설에도 누군가 알기를 바라는 이야기가 담겼으니 말이다. 소설에는 잘된 사람보다 잘되지 않은 사람 이야기가 더 많다. 소설에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보고 사람은 힘을 얻겠다. 미시마야 변조괴담도 다르지 않구나. 오치카와 오카쓰 그리고 이헤에가 이야기를 듣는 걸로 되어 있지만, 그걸 바깥에서 듣는 사람은 많다. 이 책을 보는 사람 말이다. 책을 보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보다 이야기를 듣는 오치카 처지일 때가 많겠다. 아니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다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사람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니. 듣고 버리고 말하고 버리는 흑백방 괜찮구나.

 

 세상에는 죽은 사람을 되살려 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그런 이야기도 많지 않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프랑켄슈타인》이다.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도 생각난다. 어떤 이야기에서든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없다고 한다. 여기 실린 <미망의 여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혼이 돌아오기는 해도 살았을 때와는 달랐다. 죽음이 슬프고 마음 아픈 것일지라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 해도 그 사람은 예전과 다른 거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소중한 사람이 죽는다면 되살리기보다 자기 마음에 살게 하는 게 낫다. 그것 또한 살았을 때와는 다르겠지만, 죽었다 되살아난 사람은 자신을 왜 이 세상에 돌아오게 했느냐고 원망하기도 한다. 그것도 산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일지라도 아주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편안하게 잠든 사람을 다시 깨운 것일 테니 말이다. 아니면 저세상에서 나름대로 살았는데 억지로 이 세상에 돌아와야 해서일지도.

 

 두번째 이야기 <식객 히다루가미>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쓸쓸하다. 오랫동안 함께 한 요괴 같은 게 자신을 떠나면 쓸쓸하겠지. 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했다. 히다루가미는 산길 들길에서 쓰러져 죽은 영혼이나 요괴를 말한다. 히다루가미가 산을 넘어가는 사람한테 씌이면 음식을 먹으면 괜찮다고 한다. 도시락집 다루마야는 음식이 맛있는데 여름에는 쉬었다. 장사가 잘된다고 일을 많이 해도 안 좋을 듯하다. 지금 다루마야가 된 건 다루마야 주인인 후사고로가 고향에 다녀오다 히다루가미한테 씌이고 히다루가미를 먹이려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도시락 가게를 하게 돼서다. 장사가 잘된 건 히다루가미 덕분이구나. 히다루가미는 후사고로한테 오래 붙어 살았다. 히다루가미를 잘 먹게 해서 살이 쪄서 후사고로는 여름에는 장사를 쉬기로 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재미있다. 난 장사가 잘된다고 가게를 늘리고 여기저기에 분점 내는 것보다 쉬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는 사람한테는 미안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장사하는 사람도 사람이다. 한국에도 아주 없지 않겠지만 일본에는 한정된 시간에만 장사하는 곳도 있다. 그렇게 하면 음식이 남지 않아서 좋겠다.

 

 마지막 이야기 <오쿠라 님>에는 새로운 사람이 나온다. 미시마야 둘째 아들 도미지로가 다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오카쓰는 세책 장수 효탄코도 아들(작은 나리) 간이치를 보고 오치카와 인연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걸 복선이라 하겠지. 오치카가 조금 마음에 들어한 선생 아오노 리이치로는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 자리를 물려받고 친구 아내와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어쩌면 그게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도미지로는 몸이 아프다면서 자신도 오카쓰와 같은 곳에서 흑백방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겠다고 한다. 이건 앞으로 일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할까. 오쿠라 님은 향가게 비센야에서 모시는 신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센야가 없다. 오치카 앞에 나타나 오쿠라 님 이야기를 한 오우메는 실제 있는 사람인지 오치카와 도미지로 그리고 간이치가 찾으려 한다. 오우메를 본 건 오치카뿐이었다. 집안을 지켜준다고 해서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쿠라 님은 심술을 부린 신일지도. 처음 오쿠라 님이 된 사람은 비센야 주인이 거둬준 오갈 데 없는 여자였다. 그 여자는 비센야 예쁜 딸과 비교 당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람은 얼굴이 다가 아닌데. 그 뒤로 오쿠라 님은 비센야 딸이 물려받아야 했다. 이건 저주에 가까운 게 아닌가. 일본에는 이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오치카는 곳간에 갇힌 오쿠라 님이나 언니가 오쿠라 님이 되고 나이를 먹지 않기로 한 오우메와 다르게 살겠다고 한다. 오우메가 오치카를 만나러 와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지도. 사람은 마음 아프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고 거기에 붙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겠지. 자신을 가두지 않고. 오쿠라 님이나 오우메는 자신이 자신을 가둔 것이기도 했다. 오치카는 흑백방을 나갈지도. 그렇다고 흑백방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있으니.

 

 

 

희선

 

 

 

 

☆―

 

 사람은 이야기한다. 이야기할 수 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즐거운 일도. 옳은 일도 잘못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한테 들려준 일은, 한사람 한사람의 덧없는 목숨을 넘어 이 세상에 남는다.  (<오쿠라 님>에서, 636쪽~6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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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4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말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도 일종의 말하기일 겁니다.
무슨 경험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남에게 알리고 싶은 충동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거의 본능 같아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음식점에 간 적 있는데 브레이크 타임, 이라고 해서 영업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종업원들을 봤어요. 좋은 현상 같아요. 휴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손님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지만 감수해야죠. 이 사회가 점점 나아지는 모습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만으로 좋지 않습니까.

긴 글, 잘 보고 갑니다.

희선 2019-11-16 02:12   좋아요 0 | URL
저는 말은 잘 못하지만 이렇게 쓰기는 합니다 글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요 글로라도 말하려는 건 저도 말이 하고 싶은거겠지요 쓰는 건 더 잘하고 싶기도 하니 이런 생각은 그렇게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별거 아닌 말이면 어떤가 싶기도 한데...

한국에도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중간에 쉬기도 하는군요 잠시 쉬었다 일하면 더 일을 잘하지 않을까 싶어요 차례로 쉬기보다 모두 한꺼번에 쉬었다 일하는 게 더 좋죠 손님은 그런 걸 안 좋게 여기겠지만, 일하는 사람 기분이 좋으면 손님 기분도 좋을 듯합니다

어느새 주말입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