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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눈의 고양이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9년 4월
평점 :
에도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에는 흑백방이 있다. 본래 그곳은 미시마야 주인 이헤에가 바둑을 두는 곳이었다. 어느 날 이헤에와 바둑을 두려고 온 손님을 미시마야에 온 조카 오치카가 이헤에 대신 상대했다. 바둑 상대는 아니고 이야기를 들었다. 첫번째 책 《흑백》은 그렇게 시작했다. 몇해 전에 봐서 거의 잊어버렸는데 편집후기에 그런 말이 있어서 그랬지 했다. 오치카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자신만 힘들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소설을 봐도 그런데. 흑백방에서 하는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다. 사람이 아닌 것이 힘을 쓰기도 한다. 에도 시대니까. 에도 시대에는 요괴가 있었다.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겠지. 음양사도 생각난다. 세이메이. 이름 아는 음양사는 세이메이밖에 없구나. 일본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 잘 지어낸다. 그런 일 한국에도 있구나. 어느 나라에나 있겠다.
별로 좋지 않은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건지도 모르겠다. 안 좋은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 이야기 앞에 나왔던가. 《피리술사》 《삼귀》, 미시마야 변조괴담이 아닌 책에도. 에도 시대 이야기가 아닌 소설에도 그런 거 나왔던 것 같다. 미야베 미유키는 사람이 안 좋은 말이나 생각을 하면 그게 어딘가에 남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기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 그런 게 보이면 싫겠지. 보이면 밖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도. 자기 것을 남한테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남의 것도 보기 싫을 테니 말이다. 이상한 일을 겪으면 누군가한테 이야기하고 싶을까. 다른 사람한테 말해서 그 일을 다시 보고 진짜 있었던 일이구나 할지도. 아쉽게도 난 그런 일 없다. 죽기 전에 누군가한테 말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 그냥 아무 일도 없을지. 별 일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번에 미시마야에는 둘째 아들 도미지로가 돌아오고 오치카와 함께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다. 도미지로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지키는 오카쓰와 함께 옆방에서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흑백방에서 오치카와 함께 이야기를 듣는다. <열어서는 안 되는 방> 이야기를 하러 온 사람은 도미지로가 함께 있어도 괜찮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무섭기도 슬프기도 따듯하기도 한데 첫번째는 조금 무서웠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살아남고 집안 사람은 모두 죽었다. 행봉신이라는 건 정말 있을까. 바람을 들어주는 대신 다른 걸 받아가는. 좋지 않은 게 마음에 빈 틈이 생긴 사람한테 다가온 것일지도. 바람이 이뤄졌으면 하고 소금 간을 끊은 사람이 어느 날 무언가를 집으로 끌어들여서 그 집 사람은 다 이상해진다. 아니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이상해지고, 식구가 하나씩 죽자 어머니는 행봉신한테 이 집을 나가 달라고 하고 자기 목숨을 바친다. 행봉신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닌 듯도 보였다. 그게 조금 오싹했다.
오치카 혼자 이야기를 듣다가 도미지로가 함께 듣고 조금 바뀌었다. 도미지로는 이야기를 다 듣고 그걸 그렸다. 오치카는 도미지로가 그린 그림을 보고 마음이 편해졌다. 소금은 사람한테 무척 중요하다. 많이 먹으면 안 좋지만 아주 안 먹어도 안 좋다. 소금은 마를 물리치기도 한단다. 몸이 안 좋으면 판단을 잘못하기도 할 거다. 에도 시대에는 정말 소금 간을 끊은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 자신이 바라는 일은 자신이 애써서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누군가와 이야기해야 자신이 하려는 게 잘못됐다는 걸 알겠지. 행봉신을 집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눈치채지 못했구나.
자신이 받아들인 일이라 해도 한이 남아서 혼이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기도 할까. 자신 때문에 산 사람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미안하겠지. 자신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잇코쿠는 후계자 다툼에 희생됐다고 해야 할 듯하다. 외할아버지는 자신이 섬기는 주인을 위해 외손자를 죽였다. 잇코쿠는 자신이 외할아버지한테 죽임 당한 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곳에 몬모 목소리를 가진 오세이가 온다. 몬모 목소리는 요괴를 불러들인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오세이는 혼과도 이야기를 했다. 오세이는 잇코쿠가 성에서 나갈 수 있게 돕는다. 죽으면 자유로울 것 같은데 잘못하면 한 곳에 매일 수도 있겠구나. 잇코쿠가 성에서 나가자 거기 살던 가요히메 목소리가 나왔다. <벙어리 아씨>는 대충 이런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몬모 목소리를 가진 오세이가 마을을 떠나 말이 아닌 손짓 몸짓으로 말하는 부부를 만나고 그 뒤에는 성에서 일하고 겪은 일을 말하는 거다. 잇코쿠는 저세상으로 아주 떠나지 않았다. 연극을 하는 커다란 거미에 들어간다. 자신이 나쁜 것의 원한과 슬픔을 먹고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겠다고 한다. 잇코쿠는 지금도 그럴까.
나쁜 게 세상에 나가지 못하게 막는 일을 하는 집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한 오타네한테는 무서운 일이지만 세상 사람한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도미지로는 그런 가면을 지키는 곳이 한 곳이 아닐 거다 한다. <기이한 이야기책>은 도미지로가 그린 그림을 넣어두는 오동나무 상자 이름인데, 효탄코도 아들인 간이치가 어릴 때 겪은 일을 말하는 거기도 하다. 베끼면 자신의 수명을 알 수 있는 책. 간이치도 그걸 했을지도. 그 뒤 오치카는 흑백방에서 여섯 번 혼인한 사람 이야기를 듣는다. 혼인한 남편 얼굴이 다 닮았다고 한다. 그건 혼인한 사람만 그렇게 본 듯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오치카는 마음을 먹고 효탄코도 아들 간이치를 찾아간다. 오치카는 간이치한테 간이치를 끝까지 지켜보고 싶으니 자신을 아내로 맞아달라고 한다. 오치카가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어울려 보인다.
오치카는 미시마야를 떠나면 이제 나오지 않을까. 도미지로는 자신이 오치카를 이어서 이야기를 듣겠다고 한다. 도미지로는 자신한테는 그림이 있어서 큰일은 없으리라고 여긴다. 일본은 첫째가 집안 일을 잇는다. 첫째가 아닌 사람은 어딘가 데릴사위로 들어가면 좀 낫지만 일 찾기 어려운 듯하다. 도미지로는 둘째다. 흑백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 길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가는 생각 없는 걸까. 그림 잘 그린다는데. 도미지로 형인 이이치로는 어렸을 때 본 금빛눈을 가진 흰색 고양이가 사람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전에는 미시마야 아들 이야기가 거의 없었는데 《삼귀》와 이번 《금빛눈 고양이》에서는 자세하게 나왔다. 흑백방에서 오치카 다음으로 도미지로가 이야기를 듣게 해서겠다. 앞으로도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하러 손님이 미시마야에 오겠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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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마음에 품은 간절한 바람.
생이별한 아이를 만나고 싶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돌아보게 하고 싶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다. 끊이지 않는 불행을 끝내고 싶다.
사람은 약하기에, 욕심을 부리기에 끝없이 바란다. 그 약함에 파고드는 행봉신은 잡아먹을 것이 없어서 어려울 일은 없다. (<열어서는 안 되는 방>에서, 1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