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문학동네 시인선 123
정끝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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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이름부터 시네요. 정끝별. 이름은 알았지만 시집은 이번이 두번째예요. 몇해 전에 본 시집에는 어떤 시가 담겼는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일자리 찾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이야기가 담긴 시를 소개했는데. 아버지 이야기도 있었네요. 이번 시집을 보다가 정끝별이 말을 가지고 놀았던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말을 가지고 놀지만 가볍지 않은 듯합니다. ‘애너그램을 위한 변주’를 제목 밑에 쓴 시가 여러 편인데 그 말이 없는 시에서도 말이 여러가지로 바뀝니다. 앞말에서 뒷말로 이어간다고 할까. 대칭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게 재미있네요. 이런 거 처음은 아닐 듯합니다. ‘살자살자살자, 여기를 이겨! (<깁스한 시급>─애너그램을 위한 변주>, 61쪽)’ 이 말은 힘을 주려고 한 말이겠지요. 힘들어도 죽고 싶은 마음을 이기기를.

 

 

 

육 남매 말썽 피울 적이면 엄마는 말했다

 

열 살까지는 부모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어선 다 니들 책임이라고

 

엄마는 책임을 다해 살았다

 

나도 그때의 엄마가 되어 딸에게 말한다

 

열 살까지는 내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으면 네 책임이라고

 

스무 살 스무 살까지만 하며 엄마처럼 살았다

 

보청기 잡음에 전화로도 기차 화통이신

여든다섯 엄마는 책임을 초과해 여태껏

쉰셋 늙은 딸 아침을 알람중이시다 그만

일어나라 밥 먹었냐 따순 밥 먹고 나간 자식들

안 비뚤어진다 파김치 시겠다 가져가라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

 

두 딸이 스무 살 스무 살이 되면

희망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조차도

 

-<삼대2>, 62쪽~63쪽

 

 

 

 제목이 <삼대2>라는 건 첫번째도 있다는 말이군요. 어머니, 딸, 손자 이렇게 삼대겠지요. 부모는 자식이 몇 살이어도 걱정한다잖아요. 어머니는 딸이 어릴 때는 ‘스무 살 넘으면 네 책임이다’ 하고는 쉰셋 딸을 아침에 깨우는군요. 김치까지 가져가라 하고. 딸이 알아서 할 텐데. 딸은 ‘난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그러겠지요. 부모와 자식 사이는 끊기 어렵고 걱정 안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엄마는 엄마고 아이는 아이죠. 옛날에는 엄마와 아이 사이가 무척 가깝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도 그런 사람 없지 않겠습니다. 그런 걸 부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누구하고든 적당하게 거리를 두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 거리를 많이 두었지만. 그런 제 마음 차가운 걸까요. 마음속에 있는 걸 잘 말하지 못합니다. 이건 거리하고는 상관없는 거군요.

 

 

 

경비업체 직원이 죽었다 새벽 귀갓길이었다

 

잠시 귀국해 밤새 놀다 취한 유학생들에게 맞아 죽었다

강남대로변에서 일곱 청년에게 맞고 또 맞았으나

새벽기도 가는 행인 십수 명이 지나갔고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 수십 대가 지나갔으나

때리다 지친 일곱이 다 달아난 후에야 중환자실로 옮겨져

스무날 만에 숨진 그는 스물네 살이었다

 

생모는 동생을 낳다가 죽었다

생부는 그길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은 입양되고 그는 조부모가 거두었으나

조부모마저 이혼하면서 그도 보육원에 갔다

동생을 입양한 부부가 보육원에 봉사왔다 그를 만났으나

세 살 동생과 다섯 살 형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죽고 난 뒤 그가 살던 단칸방 서랍에는 유서인 듯

입대 통지서와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이 있었다

군복무 중인 동생이 유해를 거둬 생모 산소에 뿌렸다

 

집 가는 길이 가장 어둡고 쓸쓸해 눈 감고 걸었던

밤새 어둠을 바라보느라 핏발 선 그의 두 눈이

새벽 취객들 활보를 바로 보지 못해

대형 교회 십자가 불빛 아래서 맞고 또 맞는 동안

십수 명이 지나가고 수십 대가 지나가는 동안

 

그가 마지막까지 바라보았던 건 누구 눈이었을까

 

-<공범>, 94쪽~95쪽

 

 

 

 어쩌면 이 시는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닐까 싶어요. 무언가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 많겠지요. 저라고 누가 맞는 걸 보고 막을 수 있을지. 못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한테 괴롭힘 당하는 사람을 그저 보기만 해도 괴롭히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하지요. 잠시 귀국한 유학생과 보육원에 살았다는 이십대 사람은 대비되는군요. 술을 먹고 남을 때리다니. 그렇게 할 거면 술을 마시지 않아야지요. 슬픈 이야깁니다. 그냥 지나간 차 그냥 지나간 사람은 다 공범입니다. 남일을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만 있지 않을 거예요. 누군가를 도와주지는 못한다 해도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세상을 나타내는 시도 있어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자신. 지금 건망증이 있는 건지 그런 걸 말하는 시 <생각서치>도 있습니다. 저는 마트에서 물건 많이 못 사고 기억도 잘하는 편이어서 아직 공감이 가지는 않아요. 이런 말을 하다니. 언젠가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될 날이 올지. 저는 단순하게 살아서 기억해야 할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잘못하는 일은 아주아주 가끔입니다. 잘 잊어버리지만 기억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건 조금 쓸데없는 거. 다른 사람이 읽은 책 같은 거. 요새는 잘 모르겠어요. 예전보다 집중력이 떨어진 듯도 합니다. 글을 볼 때는 집중해야 할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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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3-17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 님, 안녕하세요? 제 서재에 댓글 달아주셨는데 저는 이제야 인사를 드립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참, 평소에 느끼는 거지만 희선 님은 시인이신가봐요?^^

희선 2020-03-18 02:22   좋아요 0 | URL
언제나 그렇지만 지나갈 때는 그렇게 빠르지 않은데, 지나고 나면 시간이 빨리 갔다고 생각합니다 이달도 반이 넘게 갔네요 다른 때하고는 다른 봄이기도 합니다 세계 어디나 다르지 않겠습니다 시를 잘 보고 싶기도 하고 글 잘 쓰고 싶기도 한데, 여전히 다 못합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라로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