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들의 부엌 (인사이드 에디션)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람은 힘이 들면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갈까. 난 아무것도 안 한다. 아니 아주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는다. 평소에도 하는 책 읽고 쓰기를 아주 느리게 한다. 몇 해 동안 게으르게 책을 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힘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힘든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런저런 일이 나를 힘들게 하고, 게으르게 만든다. 이런저런 일도 아닐지도. 요새는 정말 겨우겨우 책을 다 보고 쓰는 것 같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들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쓴다. 다른 글도 쓰고 싶을 때 있었는데, 그것 또한 그냥 쓴다. 그저 버릇처럼 하는 거구나. 이러면 안 될지도 모를 텐데.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어서 하는 것, 책읽기와 글쓰기구나.
이 책 《책들의 부엌》을 보면서 조금 부러웠다. 누군가한테 맞는 책을 골라주는 사람과 그런 책을 보기도 하다니. 누가 읽을 만한 책 물어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걸 나한테 물어볼 사람은 없구나. 난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을 보기만 한다. 다른 사람한테 책을 골라주려면 어떤 책이든 보고 어떤 사람한테 어울릴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런 거 하는 사람 대단하구나. 우연히 소양리에 갔다가 그곳 땅을 사고 ‘소양리 북스 키친’을 하는 유진이 그런 사람이다. 스타트업이라는 일이 뭔지 모르지만, 유진이 하던 일이었다. 그 일을 그만두고 소양리에 땅을 사고 북카페와 북 스테이할 곳을 만든다. 자신이 지쳤지만, 다른 사람이 쉴 곳을 만들려고 하다니. 어쩌면 자신도 그곳에서 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책과 함께.
‘소양리 북스 키친’이라는 이름을 정하는 데도 2주가 걸렸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 맞는 이름을 고민하던 중, 책마다 감도는 문장의 맛이 있고 그 맛 또한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생각났다. 각각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이 되듯 책을 읽으며 마음을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북스 키친’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맛있는 책 냄새가 폭폭 풍겨서 사람들이 모이고, 숨겨뒀던 마음을 꺼내서 보여주고 위로하고 격려받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12쪽~13쪽)
난 먼 곳엔 가지 않는데. 실제 이곳 소양리 북스 키친이라는 곳이 있다 해도 난 안 가겠지. 늘 책과 함께 하는데. 앞에서 말했듯 요새는 책과 보내는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책과 함께 한다. 난 책과 좀 멀어져야 할까. 아니, 그건 안 되겠다. 책을 안 보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거나 멍하니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 책 속에 나온 사람은 저마다 힘든 일이 찾아온다. 그때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는다.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갈 곳이 생긴 거구나. 처음엔 잘 모르고 갔겠지만. 소양리 북스 키친에서는 자기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자유롭게 보내면 된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고 음악도 듣는 곳이다.
그곳에 가는 사람은 좋겠지만,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가을에 밤따기 감따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거 준비하는 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북 스테이라고 해서 그곳에서 머물 수도 있다. 그러면 밥도 해야 한다. 그런 거 즐겁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즐겁게 하는 듯하다. 이곳에서 일하고 언젠가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 괜찮아 보였다. 책이 있지만 사람한테 위로받는 곳이기도 하다. 난 그렇게 느끼기도 했는데. 유진이나 거기에서 일하는 시우와 세린, 그리고 형준은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까지 하게 하지는 않았다. 말하면 잘 들어줬다. 말하기 편한 분위기를 만든 거구나.
북카페는 책을 보는 곳인가 했는데, 책을 사기도 하는 곳이었다. 내가 북카페에는 한번도 안 가 봐서 몰랐다. 카페도 안 가는데. 소양리 북스 키친에서 하는 것에서 괜찮은 게 있었다. 그건 책을 고르고 편지를 쓰면 성탄절 전날 받게 해주는 거다. 자신한테 편지를 써도 되고 다른 사람한테 편지와 책을 보낼 수도 있다. 느린 우체통을 응용한 거다. 봄쯤에 쓴 편지와 자신이 고른 책을 누군가한테 보내면 괜찮겠다. 태어난 날에 맞춰서 보내주는 것도 좋을 텐데, 이건 관리하기 힘들까. 몇 사람이라면 괜찮아도 그걸 신청하는 사람이 많으면 좀 어려울지도. 별걸 다 생각한다. 실제 그런 거 하는 책방 있다면 좋겠다.
도시와는 먼 곳에 자리한 소양리 북스 키친, 소설이지만 실제 이런 곳이 있고 마음이 지친 사람이 찾아가면 괜찮겠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북 스테이 같은 건 못했겠지만, 그런 거 하는 곳 있다고도 한다. 그런 곳에서 잘 보낸 사람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두번 세번 자꾸 갈지도 모르겠다. 거기 가지 못해도 이 책으로 소양리 북스 키친에 가 보는 것도 괜찮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