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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王 (小學館文庫) (文庫)
早見 和眞 / 小學館 / 2018년 12월
평점 :
소설왕
하야미 가즈마사
소설 좋아한다. 소설이면 다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다 다르듯 좋아하는 소설도 다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소설이든 잘 알아듣고 좋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 글을 잘 알아본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런 거 잘 아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은 여기에 나온 코야나기 슌타로처럼 책 만드는 편집자가 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편집자가 되기 전에 책을 좋아하고 자신도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겠다. 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냥 읽는 사람이구나. 소설에는 글을 쓰는 사람과 그걸 알아보고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읽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어쩌면 소설가와 편집자보다 더 중요한 게 소설 읽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소설왕》은 언젠가 본 《무죄의 죄》를 쓴 하야미 가즈마사가 쓴 소설이다. 하야미 가즈마사 소설은 이걸로 두번째인데 처음에 본 ‘무죄의 죄’와 ‘소설왕’은 참 다른 소설이다. 여러 가지 소설을 쓰는 작가인 듯하다. 부럽구나. 한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를 쓰다니. 난 책 보고 쓰는 것도 늘 거기에서 거긴데. 앞에서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하고는 여기에서는 쓰는 것도 놓고 싶어하지 않다니. 책을 읽고 그 이야기에 오래 빠져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난 그런 거 해 본 적 없다. 아니 아주 없지는 않던가. 오래는 아니어도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잠깐이라니. 한때는 책을 한권 보고 바로 다른 걸 봤다. 책을 읽고 쓰고부터는 바로 다른 책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이건 좀 다행 아닌가. 잠깐이라도 내가 본 책을 생각하니 말이다.
책을 다 보고 생각하는 것보다 책을 보면서 생각한 걸 잊어버리지 않으면 좋을 텐데. 늘 그건 잊는 것 같다. 이 책 《소설왕》을 볼 때는 좀 우울했다. 이 책 볼 때만 그런 건 아니구나. 여기에는 대학생 때 소설을 쓰고 신인상을 받고 작가가 된 요시다 토요타카와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요시다 토요타카가 쓴 첫번째 소설을 보고 자신은 안 되겠다 생각하고, 몇해 뒤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갖고 편집자가 된 코야나기 슌타로가 나온다. 그밖에 다른 사람도 나오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중심이다. 토요타카와 슌타로는 초등학생 때 친구로 학급신문을 함께 만들었다. 두 사람이 아주 친했던 건 아니지만, 대학생 때 토요타카가 소설을 쓰고 상을 받아서 다시 만나게 된다. 토요타카는 신인상을 받고 화려하게 작가가 됐지만, 그 뒤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소설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냈다. 슌타로는 아이가 생겨서 결혼하고 시간이 지나고 편집자라는 꿈을 갖고 편집자가 된다. 슌타로는 토요타카한테 언젠가 함께 책을 만들자고 한다.
지금 사람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다. 그래도 일본은 한국보다 사람이 많아서 좀 다를지. 일본도 한국과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슌타로는 토요타카 재능을 믿고 함께 책을 만들고 싶어한다. 슌타로는 토요타카한테 ‘아버지 죽이기’를 쓰라고 한다. 그건 첫번째 소설에도 조금 보였던 거다. 토요타카는 그걸 피했다. 편집자가 소설가한테 뭘 쓰면 좋겠다는 말도 할까. 만화가와 편집자 이야기가 담긴 <바쿠만>에서도 그런 모습 보이던데. 토요타카 아버지는 토요타카가 중학생일 때 다른 여자를 만들고 집을 나갔다. 그런 일 때문인지 몰라도 토요타카는 글을 썼다.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썼는데,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는 글로 마음을 풀었달까. 토요타카가 쓴 소설에는 여성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 《소설왕》도 비슷한 느낌이다. 토요타카 어머니 이야기는 별로 없다. 어머니 이야기는 없지만 토요타카가 잠깐 사귄 배우 아야노나 나중에 사귀는 하루코 이야기는 있다. 슌타로 아내인 미사키도. 이 소설은 토요타카가 쓴 게 아닌데, 토요타카가 쓰는 소설과 비슷하게 가다니. 그렇다 해도 여기에서 토요타카가 쓴 소설은 볼 수 없다.
작가는 문예잡지에 연재하는 걸 좋아할까. 아니 연재해야 돈을 조금이라고 벌고 먹고 살겠지. 슌타로는 토요타카가 쓰는 소설 《에필로그》를 자신이 다니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문예잡지에 연재하려고 했는데 그 잡지가 휴간된다. 여기에는 출판사가 돈이 안 되는 건 잘 하지 않는다는 것도 나온다. 그때 난 바로 인터넷에 연재하면 될 텐데 했다. 실제 그렇게 한다. 토요타카가 쓴 소설 《에필로그》는 어떤 소설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들 재미있다고 한다. 주제는 ‘아버지 죽이기’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가 떠오르는 건가 보다. 소설가와 편집자는 소설이 재미있다고 하면 좋아하겠지. 이 책 보면서 재미있었던 건 하루키 이야기가 조금 나온 거다. 야구장에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거.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한 종교와 소설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 걸 끼워넣다니.
사람은 소설을 보고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기도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소설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도 다르지 않겠다. 소설이 있기에 사람은 살기도 한다. 나도 그럴까. 아직 만나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서 산다. 소설가는 자신이 쓴 소설을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자꾸 쓰겠다. 긴 소설은 못 써 봤지만 이야기를 쓰는 재미는 아주아주 조금 알기도 한다. 그걸 다 썼을 때 기쁨이 있어서 소설가는 힘들어도 소설을 쓴다.
*더하는 말
이 소설은 한국말로 나오지 않았지만, 만화는 나왔다. 만화 제목이 <소설왕>이어서 책소개를 봤더니 원작은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걸 봤다. 만화 재미있을지. 일본에서는 이 소설로 드라마도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소설을 원작으로 만화나 드라마 영화로 만들기도 한다(만화를 원작으로 드라마나 영화로도 만든다). 이건 한국도 비슷한가. 한국은 웹툰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만드는구나.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