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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소설 한권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 담기기도 하고 아주 긴 시간이 담기기도 합니다. 이번에 만난 마쓰이에 마사시 소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에는 한 집안 삼대와 그 둘레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고 삼대째인 소에지마 아유미와 소에지마 하지메 이야기가 가장 많은 것 같기도 한데. 이건 그저 제 느낌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아유미 이야기가 더 많았나. 소설 한권에 긴 시간이 담겨서 제가 이 책을 천천히 본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것보다 요새는 책을 오래 못 봅니다. 이 말 여러 번 하네요. 하루에 한시간이나 두시간 정도만 책을 봤다고 한 적 있는데. 책읽기는 차를 타고 어딘가에 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늘 그랬던 건 아니고 얼마전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어딘가에 가는 건 비슷한 시간이 걸리지만 책을 보는 데는 시간이 다르게 걸리는군요. 차 타고 가는 것보다 걷기가 더 어울릴지도. 책은 읽기 시작하면 끝이 납니다. 중간에 읽기를 그만두면 끝까지 못 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어쩌다 한번 빼고는 책을 보면 끝까지 봅니다. 끝까지 못 볼 것 같은 건 시작도 안 하는 일이 더 많을지도(책만 그런 게 아니겠습니다. 했다가 잘 안 돼서 그만둔 것도 조금 있네요).
마쓰이에 마사시가 지은 소설 제목은 빛의 개(光の犬 히카리노이누)인데 한국에서는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로 나왔군요. 이런 말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마쓰이에 마사시는 소설 제목 잘 못 짓는 것 같습니다. 빛의 개는 빛나는 개라 해도 괜찮겠네요. 소설에 개도 나옵니다. 네마리나. 개 이야기가 중심은 아니고 사람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아니 어쩌면 개도 중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사람 곁에 있으니. 홋카이도 개인데 소에지마 집안에서 길러요. 하지메 아버지인 신지로는 홋카이도 개를 우연히 알고 기르고 전람회에 내 보기도 해요. 신지로는 집안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개를 길렀어요. 어머니 요네는 산파였는데 쉰둘에 뇌내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요. 지금 쉰둘은 한창일지도 모를 텐데. 집안 식구들이 다들 덤덤하달까,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부부 사이가 좋고 부모 자식 사이가 좋고 시누이 올케가 잘 지내는 이야기는 드라마에나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건 일본 드라마도 다르지 않더군요. 아니 그런 소설도 있겠습니다. 그런 건 어쩐지 가짜 같기도 합니다. 식구가 아주 친하게 지내는 집안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사람은 다르면서도 비슷하게 살겠지요. 소에지마 집안 사람이 아주 남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신지로 누나와 동생이 결혼하지 않고 옆집에 사는 건 좀 다를지. 신지로 아내인 도모코는 그게 그렇게 편하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한국 속담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집은 멀리 있는 게 좋다고 하잖아요. 누나와 동생은 신지로와는 잘 지내도 올케인 도모코와는 서먹서먹하게 보입니다. 어머니(하지메한테는 할머니)인 요네가 집안 일보다 산파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겨설지. 집안 일보다 식구군요. 지금 생각하니 요네는 일을 가진 엄마였네요. 그렇다고 아버지가 집안에 마음을 썼느냐 하면 그러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 지낼 곳을 만들어 놓고는 집에 자주 오지 않았습니다. 꼭 그렇게 써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다른 것보다 아유미가 암에 걸리고 죽는 건 안타까웠습니다. 사람은 다 나고 살다 죽지만. 예전에는 생각 안 했는데 요새는 이야기에 암 같은 게 나오면 그 집안에 그런 내력이 있을까 하기도 해요. 암이 꼭 유전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아유미가 걸린 암은 드문 거기는 했어요. 누군가 죽음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는 건 힘듭니다. 아유미뿐 아니라 신지로 그리고 에미코. 신지로 그리고 누나와 동생은 다 치매였어요. 그런 거 마쓰이에 마사시가 경험한 건지 둘레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했습니다. 소설 보면서 별거 다 생각했지요. 아직 하지메 어머니가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하지메는 혼자가 되겠습니다. 하지메 앞날이 걱정스럽네요. 결혼하기는 했지만. 치매에 걸리면 그걸 자신이 알 수 있을까요. 신지로 누나 가즈에와 도모요는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에미코는 우울증이어서 더 빨리 치매가 나타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 보면서 저도 자주 우울함에 빠져서 조금 걱정했어요. 우울함에 덜 빠지려고 해야겠네요.
소설 중간에는 아유미와 하지메가 자라는 모습도 있는데, 뒤로 가서는 쓸쓸한 모습이 보이더군요. 사람이 사는 게 그렇기는 하네요. 홋카이도 에다루에 있는 교회, 아유미와 잠시 사귄 목사 아들 이치이, 농장학교. 그리 크지 않은 에다루. 시간이 흐르고 사람도 줄었어요. 큰일 없이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아유미가 암에 걸리고 죽는 건 큰일이네요, 소에지마 집안에. 사람이 올 때는 차례가 있지만 갈 때는 차례가 없다잖아요. 눈이 아주 많이 온 날 얼어죽은 사람도 있군요. 이 책을 다 보고 이런 게 사람 삶인가 하고 조금 덧없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소설은 간접 경험을 하게 하는군요. 지금도 제가 모르는 곳에서는 누군가 죽고 누군가 태어나겠지요. 언젠가는 저도 이 세상에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지겠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겁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