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역사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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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서 우리는 왜 '미술의 역사'가 아니라 '미의 역사'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미술 역사에 관한 책들이 많기에 차별성을 갖고자 그런 제목을 붙였을까? 책 서문에는 이 책의 기획이 분명 미술의 역사와는 궤가 다름을 밝히고 있다. 즉 예술성에 기초한 미술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서양에서 일어난 '미(美)'에 대한 시선의 흐름과 시대별로 달라지는 '차이'를 드러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 이면에 미에 대한 어떤 공통의 요소들은 굳이 밝히지 않고 독자들에게 맡긴다며 능동적인 참여를 권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미에 대한 관점이 절대적이지 않고 시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 지금에와서 독특한 견해도 아닌데, 그것을 유독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의아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시대별로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입맛이 달라지는 것은 이미지 자료들을 통해 읽으면서 충분히 재삼 확인 할 수 있는 것인데, 차라리 겉에서 변화되는 차이 안에 내재해 있는 공통의 요소들을 저자들이 드러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작업이지 않았을까?(한 마디로 어려운 걸 독자들에게 내맡기는 모양새같다)

하지만 이 책은 아름다움과 사람들 시선과의 직접적인 만남에 중점을 두기에, 엄격한 예술성에 적용받지 않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구경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텍스트에는 말레비치의 회화와 패션 잡지 모델 사진이 함께 공존하는 묘한 풍경을 가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다뤄지는 이미지들이 회화 중심인데, 이것은 아마도 과거 자료들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어서 일거 같다. 그래서 현대 시기에 가까워져야 프랙탈을 비롯 좀 더 다양한 이미지들 만날 수 있다.

책의 기획을 가시적으로 부각시키는 차원에서 앞부분에 시대별로 변천하는 대상(인물)에 대한 미적 접근(표현)을 도표로 다루고 있는데, 비너스, 아도니스, 성모, 예수 등이 그 모델들이다. 이 부분은 자의적인 면도 없지는 않지만, 보기에는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은 옴베르토 에코와 지롤라모 데 미켈레의 공동 작업이다. 거의 책 분량의 반을 나누어서 쓴 것으로 보이는데, 에코의 이름만이 부각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리고 책에 많은 이미지들이 포함되기에, 글은 설명 이상의 기발한 발상을 나타내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에코 특유의 지적 향취를 맡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에코의 내공이 실린 미에 대한 철학적 사유들이 간결하게 들어가 있어, 단순히 사진들로 듬뿍 메꿔진 가벼운 책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렇게 책 한권에 수천년 시간 안에 담긴 이미지들이 멋지게 모아져 있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책읽기를 자극한다.

이 책의 평가가 대체로 후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에코라는 이름에 기대치를 높게 잡아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에코와 함께 연어가 아닌 아름다움이라는  넓고도 깊은 여정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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