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그래도 이 더위 속에서도 슬슬 쇠락해가는 여름의 기운이 감지된다.
나 스스로도 더운 여름에는 책을 쫌 꺼리는 편이다. 그렇다고 가을에 확 구별이 될 만큼 많이 본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두 책은 분명한 주제, 방향성이 있는데, 동양인과 서양인의 그림(이미지)에 대한 시각적-심리적 태도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꽤 흥미로운 주제인데, 인지적인 측면에서 다룬 책들은 종종 있는데, 이미지 더 나아가 예술의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들어가는 책이 별로 눈에 띄진 않는다.
<동양의 눈 서양의 눈>이란 책은 좀 더 대중적인 느낌인데, 그림도 많이 곁들인 책이라 쉽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양자역학은 생각보다 우리한테 그리 멀리 있는 과학은 아니다. 이와 관련된 책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고, 다큐에서도 여러 번 다뤘다. 전에는 신과학이나 좀 신비적인 측면에서 흥미 위주로 다룬 책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물리학의 테두리에서 여러 다양한 모습들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양자 불가사의>는 조금씩 보는 책인데, 이 책보다 <양자우연성>이란 책이 더 호기심을 갖게 한다. 양자역학에는 그 이전의 물리학과는 다르게 꽤 기이한 현상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초기 거기에 관여한 과학자들도 큰 혼란을 겪었고, 철학, 특히 인도나 중국 사상에 눈을 돌렸던 학자들도 종종 있었다. 관찰도 중요하지만 해석도 큰 역항을 하기 때문에, 철학적 사고력이 덧붙여진다면 뭔가 풍부하고 아름다운 서술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 개인적으로 알튀세르를 다룬 적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읽은 책도 별로 없다. 그의 사상보다는 부인과의 비극적인 사건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라캉 또는 알튀세르>라는 책을 흘깃 구경하다가 알튀세르를 환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셈이다. 이 책은 반갑게도 우리나라 학자의 글인데, 여태 나온 라캉, 알튀세르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차원은 아닌 것 같다. 라캉과 알튀세르는 의기투합이 있었고, 반목도 겪었는데, 이러한 과정을 되짚으면서 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기존의 뻔한 도식에서 약간은 이탈해서 재구성하려는 저자의 해석이 담겨 있다. 거기에는 지젝이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주장한 것들이 비판되기도 하는데, 왠지 재미가 있을 거 같은 책이다.
브라이언 마수미도 뭔가 톡 튀는 느낌을 주는 인물인데, 자기만의 컨셉을 가지고 꾸준히 전진하는 학자라는 인상을 준다. 들뢰즈에 관심을 갖다가 닿은 사람이기도 한데, <가상과 사건>이라는 책이 최근에 나온 걸 발견했다.
역시 브라미언 마수미도 참여한 <정동 이론>이란 책도 그냥 지나치기엔 아쉽다. '정동'에 대한 개념잡기도 쉬운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양인에 비해서 동양인은 이에 대해 많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정신과 육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도식은 서양에 비해 동양은 약하거니와, 몸철학적 사고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정동'이라는 육체와 정신이 서로 합치고 떨리는 지점에서 스피노자와 니체로 이어지는 점도 어렴픗이 느껴본다. 그걸 더 느끼기 위해서 이 책은 차분하게 읽어 볼 필요가 있겠다.
<눈과 손 그리고 햅틱>이란 책은 들뢰즈와 화가 베이컨을 함께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전에도 이와 비슷한 유형의 책들(철학과 예술 관련)을 여러 권 냈다.
햅틱이란 말은 간단히 말하면 '눈으로 본다'에서 더 촉각을 부여해서 '눈으로 만지다'라는 왠지 알거 같으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엔 애매한 그 무엇을 말한다. 그러니 왜 들뢰즈가 소환되었는지는 조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끝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괜찮아 보이는 책이 있어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