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을 읽다가 프로이트와 모세의 기묘한 만남을 구경했다. 프로이트가 말년에 쓴 <모세와 일신교>를 고진이 흥미롭게 읽어내려가는 부분에서다. 프로이트는 모세가 유대인이 아니라 어쩌면 이집트인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프로이트는 왜 그러한 해석을 시도했을까? 단지 역사적인 사실해명과는 큰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고진이 이렇듯 프로이트의 의도를 다시금 원격조정하듯이 강화하는 이유 또한 우리는 다시 궁리해 봐야 한다. 고진이 자신의 책에서 '세계종교"를 말하면서 여기에 가장 근접한 종교를 슬며시 가리키는데, 그건 바로 기독교다. 물론 흔히 우리는 말하는 종교하고는 큰 관련이 없다. '세계종교'도 결국 스피노자가 말하는 (인격신이 아닌) '세계'를 말함이다. 그것은 우리를 제한된 시스템 내의 다신들이 꿈틀거리는 공동체가 아닌, 타자와 만남이 가능한 열린 장소로 (강제로) 나아가게 한다. 고진은 또한 이곳에서 교통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모세와 일신교'는 <종교의 기원>에 들어가 있다.
자기 차이와 자기지시성의 반복이 결국 몰아론에 갇힐 때, 타자의 도입이 주는 균열은 얼마나 놀라운가! 이것을 고진은 강조하는 것이고, 그러한 종교는 지젝이 말하는 기독교와도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독교를 현재 우리 주변 기독교인들의 모습과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문제고, 종교를 부정하는 자들에게서조차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진은 이러한 모세의 종교에 가까운 인물로 스피노자, 마르크스, 프로이트 등을 든다).
이렇게 모세의 신과 공동체의 신, 즉 유대인들이 믿는 야훼의 신을 구분하고, 지금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후자가 살아있음을 씁쓸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고진이 프로이트의 의도를 자기식으로 오해를 했는지는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고진의 생각도 너무 일방적인 감이 있다. 일단 프로이트와 모세에 관한 책은 많지는 않지만, 번역본이지만 몇 권 구할 수 있다. 예루살미가 지은 <프로이트와 모세>라는 책과 얀 아스만의 <이집트인 모세>가 그것이다. 두 권을 아직 접하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간단히 정보를 보니까, 예루살미의 책에서 고진과 비슷한 부분을 조금 볼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얀 아스만의 책은 고진과는 상당히 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오히려 일신교적인 성격 때문에 그 외 다른 종교나 타자들에 대한 공격성이 드러나는 폭력성을 주목한다.
-><종교의 기원>과 이 두권, <프로이트와 모세> <이집트인 모세>를 읽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새벽.. 나머지는 날이 밝으면..